Beato Giacomo Alberione

Opera Om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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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성체방문

여러분이 지금뿐 아니라, 전 생애에 걸쳐 서원을 잘 지킬 수 있기 위해서 일반적인 결심을 잘 세우는 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서원은 여러분이 죽을 때까지 가야 할 길을 열어줍니다. 그러므로 회헌(규칙서)에 기초한 영성의 길로 나아가는 결심을 잘 세우십시오. 곧 수도회가 이끄는 대로 자신을 맡기려는 항구한 마음 자세를 갖추고, 가르침을 받게 되면 곧바로 실천하려는 태도를 갖추고, 여러분의 힘, 적성, 시간을 여러분을 인도하시는 하느님 손에 맡기십시오. 221│서원을 하면 여러분은 수도회의 회원이 되고, 수도회는 여러분의 것이 됩니다. 또한 여러분은 여러분의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모든 것을 수도회에 기대할 수 있고, 수도회는 여러분의 모든 힘을 요구할 수 있게 됩니다.
사회에서 사는 젊은이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다시 선택할 자유가 있지만, 우리는 한 번 선택을 하면 용기 있게 끝까지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결정 전에 (매우 중요한) 수련기를 거치는 것입니다. 수련기는 시작하려는 삶의 모든 측면에 대해 공부하고, 자신의 역량을 측정해보는 기간입니다. 서원을 하고 나면 부르심에 대해 더는 생각하지 않고, 힘차게 걸어가야 합니다. 서원자에게 유혹이, 그것도 아주 큰 유혹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장 심각한 유혹은 성소를 거스르는 유혹입니다. 이 유혹은 잘 가고 있는 궤도에서 순간적으로 벗어나게 만들어버립니다. 기차가 탈선할 때 얼마나 참혹한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유혹에 빠지게 될 때 마음과 영혼이 하느님 뜻에서 아주 멀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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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현자들은 태만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고 합니다. 이미 결정한 것을 후회하며 다시 옛날로 되돌아가려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태만입니다. 시간만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아름다운 일들을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선택한 것을 더 확고히 하고, 그 결정을 행동으로 옮길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선을 행할 수 있는지요!
222 | 어떤 사람은 “내 영혼은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메마른 땅과 같습니다.”라고 비통하게 말합니다. 불쌍한 사람, 그러한 말을 여러분은 어디서 배웠습니까? 그런 말을 다시는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해야 할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책에서 그런 말을 배웠습니까? 그런 책은 여러분을 위한 책이 아닙니다!
“얼마나 큰 악한 경향을 느끼는가!” 아, 그렇습니다. 그런 말은 처음 듣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손상된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활동적이고 민첩해지십시오! “주님께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밖에 없습니까?” 여러분 마음대로 생각하십시오. 그러나 그분을 섬기는 거룩한 일을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행동에 있어서는 민첩해지고, 신심생활에서는 단호해지십시오. 우는 소리만 늘어놓을 때 아무런 결론도 내릴 수 없습니다. 길가의 낮은 돌담 위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만 있으렵니까! …
어떤 수녀는 “나는 지난 날의 죄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고통스럽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보십시오, 그러한 것들을 수련기 동안 고백했습니까? 그렇게 했다면 범한 모든 죄에 대해 다시 통회하고 끝내십시오. 그 죄가 하느님께 상처를 입혔으나, 당신을 겸손하게 해줄 것입니다. 이미 고백했고 사죄를 받은 죄에 대해 더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환상에 다시 불을 지피는 위험을 겪고 싶습니까? …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존경하는 원장님을 만났고, 아주 소중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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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가 있었고,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 그만 잊으십시오. 주님은 그대가 그들에게서 멀어지기를 원하셨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걸어가십시오.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223 | 전쟁에서 패하자 장군들은 나폴레옹에게 애도를 표했지만, 그는 시계를 쳐다보면서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고는 두 번째 공격 명령을 내려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어떤 자매들은 불평을 합니다. “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이 아니라, 사도의 모후여야 합니까? 왜 예수 성심이 아니라, 길 진리 생명이신 스승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까? …”
그냥 놓아두십시오. 특정 문제를 파고들지 말고, 여러분에게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을 단순하게 실행하십시오. 쓸모없는 질문의 답을 알고 싶습니까? 결심을 자주 바꾸고, 조언을 구하고, 공상을 하느라 가야 할 길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공책을 꽉 채우려 하지 말고, 짧은 영적 일기를 쓰십시오. 민첩해지고, 또 민첩해지십시오! 아주 단순하셨던 성모님처럼 민첩하십시오. 여러분의 위대한 일에 믿음을 가지십시오!
오늘 아침에 저는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를 방문하는 문제에 머물고 싶었습니다.

1. [성체방문이란] 무엇인가?

성체방문은 묵상이나 영적 독서 시간이 결코 아닙니다. 그분을 흠숭하고, 그분께 감사드리고, 우리 죄에 대한 용서를 청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은총을 구하기 위해, 그분과 대화하기 위해 그분을 만나러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서원을 했지만 특별한 일이 생겨 224│며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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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 집에 다녀올 허락을 받았다면, 집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무엇부터 하겠습니까? 어머니께 인사를 할 것이고, 그런 다음 좋은 일, 혹은 나쁜 일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 나서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누구에게보다 어머니께 여러분의 모든 감정을 털어놓으며, 새로운 삶에 대해서도 말할 것입니다. 언제나 여러분에게 종교적 신중함으로 충고해 주는 어머니에게서 도움을 받기 위해서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은 “와서 보아라.”1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분을 따라갔고, 그날 예수님과 함께 묵었습니다. 밤이 깊어갈 때까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고, 식탁에 앉아 함께 음식을 먹었고, 함께 휴식도 취하면서 그분이 약속된 진정한 메시아인지 끈기 있게 물었고, 그것을 증명해 보이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을 떠나면서 진리의 말씀을 완전히 믿게 되었습니다. 신뢰하며, 단순한 마음으로 빛을 받기 위해 당신께 오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지성에 참된 빛을 내려주시고, 스승을 따를 용기를 주시고, 자신의 성화와 많은 은총을 청하고 얻기 위한 신뢰를 증가시켜 주셨습니다.
자, 이것이 바로 우리의 성체방문입니다. “묵주기도와 영적 독서는 성체방문에서 중요한 요소는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부분을 생략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다만 우위를 가릴 수 없을 뿐입니다. 영적 독서는 여러분의 지성을 비추어줍니다. 여러분이 성경으로 영적 독서를 할 때 진리이신 예수님을 흠숭하는 것이지만, 성체방문시간 내내 성경을 읽지는 않습니다. 묵주기도는 225│생명이신 예수님을 흠숭하는 셋째 부분에서 바쳐야 합니다. 신비에 대해 묵상하면서 바치는 묵주기도는 여러분과 다른 이들을 위해 중요한 은총을 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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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켜 주고 또한 은총을 청하는 것이지만, 한 시간 동안 계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뜻을 잘 알고 올바로 행하는 성체방문은, 우리 자신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게 하는 큰 이익을 가져다줍니다. 영적 독서를 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께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묵상에서는 우리가 선한 일이나 덕행 실천에 대해 의지를 기울입니다. 대신에, 인간의 모든 능력을 집중시켜 예수님의 성사적 현존 앞에 머무는 성체방문에서는, 우리 언어를 통해 그분께 말씀드리고, 신앙을 청하며, 우리 결점을 털어놓고, 어려움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분을 많이, 아주 많이 사랑하려는 강한 염원을 드러냅니다. 영혼은 예수님 앞에서 언제나 솔직하고 기쁘게 마음을 열고, 마음속에 있는 것이 솟아 나온 다음에는 만족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성체방문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성체방문을 제대로 한 것이 아닙니다. “잘 하지 못한 것이라면 성체방문을 그만두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향상시켜야 합니다! 훌륭한 성체방문을 한 다음 여러분은 영적 질병에서, 슬픔에서, 무기력에서 치유된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 자발적으로 다가가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예수님께 말씀드리지 않은 것은 사람들에게도 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흥분되고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성당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에는 넘치는 만족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226│아직도 희생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겠지만, 그 희생을 껴안을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손을 잡아주시기 때문입니다.

2. 우리의 방법

성체방문의 방법에는 열 가지 아니, 열두 가지가 있다고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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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예수님이 유일하게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길 진리 생명이라고 알고 있는 그 방법뿐입니다. 이 방법에서, 하느님의 현존 앞에 제대로 자리 잡는 짧은 도입부가 올바르다면, 그 다음은 진리로 시작하든 길로 시작하든 상관 없습니다.

먼저 길이신 예수님께 흠숭을 드리면서, 예수님의 덕과 우리의 덕을 비교해봅시다. 예수님이 큰 귀감으로 등장하시는 복음의 수난 장면을 읽고, 가장 관심이 가는 대목을 숙고합시다. 곧 예수님의 겸손, 침묵, 인내를 보면서 나의 주요 결심을 떠올리고, 하루 동안 진보했는지 아니면 퇴보했는지 살피는 양심성찰에 이어 깊은 통회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결심을 세우고, 고통의 신비나 애덕송, 또는 시편 51편 미세레레를 바치면서 마무리합니다.

진리이신 예수님: 하느님의 위대하심에 깊이 스며들기 위해 성경을 읽는 것이 좋으나, 우리 아버지 성 바오로의 서간을 읽는다면 더 좋습니다.독서 끝에 신덕송을 바치고, 신앙을 고백하고, 이 덕을 증가시켜 주시도록 청하고, 영광의 신비(2단이나 3단)를 바치도록 하십시오.

227 | 생명이신 예수님: 성체방문의 마지막 부분은 은총을 청하는 때인데, 우리가 깊이 고개를 숙여야 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만, 예수님은 생명 자체이십니다! 우리와 다른 이들을 위한 은총을 청하고, 시편이나 “오소서 성령이여”를 바칩니다. 또는 묵주기도의 세 번째 현의나, 금요일이라면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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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언제 우리의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가?

모두 우리의 방법으로 합니다. 성체방문을 하러 성당에 들어가면서 이미 우리 마음이 예수님으로 가득 차있고 감실만 바라보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많은 생각이 떠올라 가장 중요한 부분인 양심성찰 부분을 소홀히 했더라도 성체방문을 차분하게 계속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것을 우리는 진리 부분을 통해 행하게 됩니다. 의지를 다해 사랑하라는 명령은 길 부분을 통해, 마음을 다해 사랑하라는 명령은 생명 부분을 통해 행합니다.
예수님께 다가갑시다! 우리의 부족함에 너무 괴로워하거나 눈물을 흘리지 마십시오. 예수님께 다가갑시다. 예수님께 늘 첫 자리를 내어드리고, 예수님이 우리 모든 생각의 주인이 되시도록 합시다!
지상에서 성체방문에 충실한 영혼은, 하늘나라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영원히 대화를 나눌 공덕을 쌓는 것입니다.
228 | “성체방문에 대한 충실은 가장 확실한 사랑의 표지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이 올바른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간다면, 그분은 당신을 만나게 해주실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어디를 가든지 감실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해야 하며, 그분을 잊어버리거나 다른 곳으로 찾아 나서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이 대리석처럼 차갑게 느껴질 때도 예수님께 가십시오. 그분이 여러분을 데워주실 것이고, 여러분을 비추어주실 것입니다. 성사 안에 계신 예수님을 방문하는 것이 우리 성소의 구원이 되고, 행운이 되게 해준다는 사실을 얼마나 더 입증해야 하겠습니까! 성체방문에 충실하십시오. 성체방문은 다른 모든 신심실천을 집약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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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한 1,38-39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