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과 하느님께 대한 신뢰는 우리 삶이 달려야 할 두 개의 축이 되어야 한다는 것과 좋은 고해성사를 위한 중요한 자세가 어떤 것인지 숙고했으니, 오늘 저녁에는 이 성사에 대해 이야기 해봅시다. 1) 고해성사란 무엇인가? 2) 우리는 고해성사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3) 어떻게 고해성사에 다가가야 하는가?
1. 고해성사란 무엇인가?
참회의 성사라고도 하는 고해성사는 세례성사 후에 지은 죄를 없애기 위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사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면서 모든 이의 죄를 위해 보속하시고, 모든 이에게 천국을 다시 열어주시면서 구원의 성과를 당신 사제들이 거행하게 하셨습니다. 사제들에게 당신의 가르침, 당신의 모범, 당신의 은총을 주셨습니다. 41│은총은 영혼의 생명으로 세례성사 때 주어지지만, 죄를 통해 잃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은총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하므로 고해성사를 통해 은총이 다시 주어집니다. 병은 의사에 의해 치유됩니다. 예수님은 영혼의 위대한 의사십니다. 그분은 당신 구원의 물이 운하를 통해 우리에게 도달하도록 제정하셨습니다. 이 운하가 바로 여러 가지 성사입니다.
참회는 성사로서 이 운하 중 하나이기에, 우리 오만을 벗어버리고 사제에게 우리 상처를 보여드립시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치유받고 씻겨집니다. 이 성사는 통회, 겸손, 다시 일어서려는 열망을 전제로
하기에 고해성사라고 합니다.
이는 주님이 거룩한 세례성사를 통해 단 한 번 우리에게 구원을 주실 수 있기 때문에 자비의 성사입니다. 주님은 하늘나라에 오직 죄 없는 이들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나는 너를 위해 죽었고, 너에게 나의 은총을 주었으니 만일 네가 그 은총을 잃으면 네가 해결해’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이 천상 스승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1 그 의미는 ‘끊임없이’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우리는 ‘처음에는 용서하지만, 두 번째는 화를 내고, 세 번째는 몽둥이로 때립니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인간적 자비심을 지니고 있으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으로서 하느님의 자비를, 다시 말해 무한한 자비를 지니고 계십니다.
42 | 그러므로 사제들은 정의의 교역자들이 아니라, 자비의 교역자들입니다. 은총의 분배자요, 예수님의 피의 분배자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외적인 것이 아니면, 고해사제의 좋은 권고나 주의사항을 요청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고, 더 나아가 참된 보속이 아닌 보속을 합니다. 그는 아주 쉽게 고해사제들을 구별하고, 또는 수많은 조언을 구하지만 아무런 실천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뢰가 바로 구원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주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고해성사를 보아야 할 때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피정, 대피정은 그에게 훌륭한 생각을 가져다 줍니다. 자주 자기 자신 안으로 들어가 자신을 알게 되고, 자기 영혼의 생각과 느낌을 주의 깊게 살핍니다. 그는 자주 자신이 낮 동안에 한 모든 말, 일상생활의 의무를 더듬어보
아 어디서든 향상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을 줄 압니다.
신뢰와 겸손을 지닌 사람은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구세주요 스승이신 예수님을 볼 때 얼마나 감동합니까! 그는 그분의 상처 하나하나와 그분에게 박힌 가시를 생각하며 “예수님, 누가 당신을 십자가에 매달았습니까? 바로 접니다. 당신께 저지른 그 포악한 횡포의 100분의 1이라도 저에게 가했다면 저는 복수를 했을 터인데, 그 대신 당신은 …” 하며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러고는 예수님의 가슴에 입술을 갖다 대며 구원을 마십니다. 그런 다음 그는 자신을 낮추어 고해사제에게 모든 것을 고백하지만 결코 충분히 행하지 못했음을 마음 아파합니다.
주님께 대한 신뢰는 모든 고해사제 안에서 하느님을 보게 하며, 예수님께 한 고해성사는 교정을 잘 받아들이게 하고, 이 지상의 모든 것을 보상할 수 있는 은총을 얻게 해줍니다.
어떻게 거룩한 대사를 열망해야 합니까! 어떤 신심이 거룩한 미사에 참여하게 하며, 어떤 사랑이 십자고상에로 인도하는지!
2. 우리는 고해성사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 43
고해성사는 우리의 과거를 정화하고, 우리의 미래를 강화하며, 은총을 주고, 영혼을 비추며, 많은 어려움을 겪을 때 위로해 주고, 죄 때문에 잃은 공덕을 다시 선사하는 위대한 수단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고해성사를 교회의 지혜로운 배려에 따라, 위로의 수단으로 여깁시다. 교회는 8일마다 고해성사를 보고, 우리가 원할 때마다 열려 있는 문처럼 영성체하도록 합니다. 예외로 아주 드물게 더 자주 고해성사를 보도록 허용하지만, 다른 사항에 대해서는 규칙서를 따르도록 노력합시다.
8일마다 고해성사를 보는 것은 겸손을 위해서나 신앙 성숙에 도움이 되는 매우 좋은 규칙입니다. 일반적으로 너무 자주 보지 말아야 하
고, 너무 드물게 보지도 말아야 합니다. 가끔 방문선교를 갔을 때 10일, 12일까지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인내가 필요합니다. 수도원으로 돌아오면 제일 먼저 고해성사를 보도록 해야 합니다. 본질적으로 1년에 52번 고해성사를 보도록 해야 합니다.
고해성사는 초자연적 정신으로 보아야 합니다. 참된 성사로 생각해야 합니다. 영성체는 사람이 직접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그 자체로 더 영적입니다. 그 대신 고해성사는 예수님과 영혼 사이에 사제가 중개자로 있으므로 인간적인 역할을 대변하지만, 사제 안에서 지극히 높으신 분의 교역자를 보면서 영적 존재로 여겨야 합니다. 고해사제 안에서 오직 인간만 생각한다면 재앙입니다!
고해성사는 성사이기 때문에, 결실을 내기 위한 좋은 토양, 좋은 씨앗이 필요합니다. 그뿐 아니라 44│고해성사는 성사이기 때문에, 고해사제를 잘 알지 않을수록 좋습니다. 사제를 사제로 생각하고, 성사를 성사로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는 우리가 언제나 참회성사에 거룩하게 다가가고, 영혼들이 그들의 구원을 위해 가능한 한 많이 이용하도록 하기 위해 거룩한 교회법, 많은 규정, 많은 법률, 신중한 조처를 마련하기를 원했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누구에게 고해성사를 보아야 합니까?” 모원이 여러분에게 지시하고 명령하는 대로 하십시오. 여기서 교회법을 따르기 위해, 그리고 아주 민감한 이 사안에 관해서도 주님의 많은 은총을 얻기 위해 순명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다양한 법률을 제정했지만, 첫 번째 사항은 수도자가 고해성사를 볼 때마다 언제나 합법적이고 유효하도록 회헌 정신에 따라 하도록 큰 자유를 허용합니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고해사제에게 성사를 보십시오. 예외는 단지 예외일 뿐입니다.
교회법을 따르기 위해 우리는 현명하고 지혜로워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순종할 때 바로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법
률을 준수합시다. 평온한 양심을 유지하기 위해, 규칙은 규칙으로 여겨야 하고, 예외는 예외로 여겨야 합니다.
언제나 예외가 필요하고 인간적인 위로가 필요한 사람은 수도생활을 살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수도서원을 허락하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특정 경향은 성소가 없다는 분명한 표시입니다.
수도생활은 공동생활입니다. “나는 다른 자매들과 똑같은 빵을 먹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나 45│공동생활은 특히 정신으로 이루어집니다! 특히 세상 한 가운데 있어야 하는 여러분에게 있어 외적 사항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어떤 자매를 수녀원에 가두어버리고 싶습니다.”라고 말할 때, “수녀원에요? 아직도 자물쇠가 부족합니까!”라고 답변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사도직으로 인해 너무 자주 외출하기 때문이라면 모원이 여러분에게 준 정신을 따라야 하고, 특정 사항에 관해 교육을 잘 받아야 합니다.
특별하게 하지 말고 너무 엄격하게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좋습니다. 다시 말해 규칙을 잘 지켜야 하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예외를 허용할 줄 아는 것도 좋습니다.
고해성사를 구원의 참된 수단으로 선택합시다. 할 수 있는데도 공동생활에 충실하지 않는 사람은 참된 참회도 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정신에 따라 확고한 생각으로 무장합시다.
만일 하느님의 자비를 저버린다면 우리에게 재앙이 올 것이고, 인간적인 위안을 찾으면서 남용할 때에도 재앙이 올 것입니다! 고해성사는 위대한 성사로서, 우리는 고해성사를 성사 자체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교회가 고해성사를 자유롭게 하도록 한 것은 오로지 영혼의 진보를 위해서입니다.
교회법을 남용하게 될까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지만, 교회의 허락
을 남용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공동생활을 위해서는 어떤 희생과 욕망과 욕구를 바쳐야 합니다. 육신을 위해서뿐 아니라 정신을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 약간의 예외가 필요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46 │공동생활에 충실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주님이 모든 것을 보살펴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인도하는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염두에 둡시다.
여러분에게 있어, 여러분의 연령과 수도회의 연륜에 따라 고려되어야 하겠지만, 고해성사는 오로지 죄의 용서를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도는 다른 이들에게서 받을 것이 아니라 모원에서 받아야 합니다! 어떤 좋은 권고도 소년으로서가 아니라 어른으로서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혜로워야 하고, 훨씬 더 지혜로워져야 합니다!
3. 이 성사에서 결실을 얻도록 다가가기 위한 자제
1) 첫째 사항은 기도할 것: 성사는 우리 성화에 관한 것이기에 먼저 기도합시다!
마귀는 특히 고해성사에로 많이 몰려들어, 고해성사를 본질적인 방법으로 하지 않도록 고해성사를 망치려 듭니다. 그러므로 자세를 잘 갖추기 위해 먼저 기도합시다.
2) 양심성찰: 여러 방식으로 할 수 있습니다. 대피정 중에는 계명에 관해, 규정에 관해, 서원에 관해, 자기 신분에 따른 의무사항에 관해 그리고 특히 신심, 면학, 사도직, 청빈의 네 가지 사항에 관해 성찰해야 합니다.
대피정 중의 고해성사는 별들 사이에 있는 태양과 같은 것이어야 합
니다. 세 가지 서원에 관해서는 세부사항을 잘 보아야 합니다. 신심에 있어서는 실천에 대해 성찰해야 합니다. 사도직은 우리가 맡고 있는 직무에 관해 숙고해야 하고, 면학은 한층 더 앞으로 나아가도록 숙고해야 합니다. 청빈에 관해서도 성찰해봅시다. 소극적인 청빈뿐 아니라 47│적극적인 청빈도 성찰하고, 형성되어야 하는 모습으로 양성되도록 성장하고, 거룩한 결실을 맺도록 성소자들에게 우리가 가져다준 도움에 관해 성찰해봅시다.
그러나 성찰은 조금 불완전할 수 있습니다. 욕정을 완전히 이기지 못한 많은 사람은 우리가 이겨냈다고 믿을 때 그 욕정이 여전히 살아 있으며, 우리를 지배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는 일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이 점에 머물러 성찰해야 합니다. 패배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을 이겨야 합니다! 다른 이들이 자기보다 더 잘 해내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려야 합니다! 하느님이 어떤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셨는데 왜 그것이 고통스럽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지나치게 자기 뜻에 집착하곤 합니다!
선을 행하고, 또 선을 행합시다. 악처럼 공덕도 그것을 행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어떤 욕망이 수련기 동안은 죽은 것처럼 보이고, 잔잔한 영혼은 잠자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욕망의 불씨는 잿 속에 살아 있습니다. 그 비밀스런 불씨는 죽은 것이 아니므로 어느 새 큰 나무로 자라서 열매를 맺게 되므로, 악마는 모든 것을 훔칠 수 있기 때문에 만족스럽게 웃습니다. 그러므로 악마가 여러분에게서 많은 노고의 결과를 앗아가지 않도록 깨어있으십시오. 성찰할 때 수첩에 쓰는 것은 좋지만 쓸데없는 말을 쓰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뜻을 쓰십시오.
3) 통회: 고해성사에는 깊은 통회가 따라야 합니다. 하느님께 상처가 되는 죄의 심각함을 알고 기도할 때 통회를 하게 됩니다. “주님, 저는 당신 앞으로 다가서기에 합당치 않지만,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 없
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당신께 청하오니, 48│저를 용서하시고 저를 당신 자녀로 받아주시는 은총을 베풀어주소서.” 죄는 진보를 더디게 만들고 우리의 공덕을 잃어버리게 하고, 우리가 성인이 되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모든 것보다 통회에 더 마음을 쓰고, 거룩한 고해성사를 보아야 합니다.
4) 고백: 총고백, 특별 고백, 주간 고백, 또는 피정 후 월간 고백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기소(역주: 고백 내용을 말함)든지 간략하고 분명해야 합니다.
고백을 한 다음 고해사제의 훈계를 잘 들어야 합니다. 고해사제는 성성의 길도 우리 영혼을 인도하기 위해 훈계를 주는 것인데, 외적인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고해사제는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의 규칙서를 알고 있지만 세부사항까지 내려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대피정을 하는 수도회에서 사제에게 강의를 부탁할 때 규칙서를 먼저 읽어보도록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일반적으로 해온 것처럼 외적 지도를 위해서는 여러분의 마에스트라에게 가십시오. 그러면 후회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마에스트라들은 자매를 잘 인도해줄 수 있는 모든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또한 여러분은 주님이 여러분을 이탈리아 사람, 특히 피에몬테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2 어디를 가든지 이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5) 속죄 또는 보속: 고해사제가 보속을 주는 것을 잊었다면, 일반적으로 주어지는 보속을 해야 합니다. 이 피정 동안에는 거룩한 희년3을
누리십시오. 특별한 전대사는 하느님께 상처를 드린 여러분의 모든 잘못을 보속하기 위한 것입니다.
평화로이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대피정 첫 날은 49│흔히 의기소침해집니다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 나아갑시다. 예수님은 우리를 괴롭히려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두 가지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곧 겸손과 신뢰입니다. 신뢰는 하느님의 자비를 유순하게 따르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죽음의 침상에서 공덕의 열매를 누릴 수 있도록 씨를 뿌리고, 또 뿌립시다.
1 마태 18,21-22 참조.
2 문맥 안에서 잘 이해해야 할 표현이다. 아마도 그 지역의 몇 가지 특성을 강조하려고 했던 것 같다. 특히 바오로 공동체임을 드러내는 형태를 말한다. 이를테면 단순함, 검소함 등.
3 1934년 4월 2일 비오 11세는 4월 21일부터 1935년 부활까지 거행하게 될 구원의 성년을 전 세계에 확장시켰다. 그러므로 아직 희년 기간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