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o Giacomo Alberione

Opera Om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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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우리 삶을 지탱해 주는 두 개의 축

성 바오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더 나아가 이들 가운데 자신이 가장 큰 죄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1 자, 이것이 우리 희망의 토대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믿을 수 있는 가장 합당한, 가치 있는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확고한 희망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고, 우리에게 하늘의 문을 열어줄 것이며,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줄 것입니다.
십자고상은 큰 희망이요, 완전무결한 희망입니다. 우리는 죽음의 순간에 공덕에 대해 큰 결산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 이미 효과가 없어진 의약품과 의사들은 한편으로 밀쳐질 것이고, 가장 열망하는 대상, 우리 마음에 가장 소중한 대상은 바로 십자고상이 될 것입니다. 모든 것에 대해 눈을 감은 채, 우리는 여전히 그분의 상처에 입맞추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분의 상처는 34│우리 공덕의 가치요, 그 가시관은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신 고통의 표시임을 알려줍니다.
자, 이것이 우리 삶이 통과해야 할 두 개의 축입니다. 곧 우리 자신에 대한 불신, 우리 죄에 대한 두려움과 예수님의 상처와 고통을 통해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무한한 신뢰입니다. 이 두 가지 자세는 고해성사를 위해서도 뛰어난 자세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이 점에 멈춰봅시다.
주 예수님은 당신 생애에서 여러 번 우리의 의로움을 위해 단죄 받으셨으며, 늘 당신의 공덕을 신뢰하며 우리에게 겸손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성 바오로의 주석가들은, 모든 바오로 신학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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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불신하고, 우리의 전부이신 하느님을 신뢰하라는 말씀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교만한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가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그들의 거짓을 꾸짖으셨습니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존경받기 위해 선행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하느님 앞에서 행동하여라.”2
그렇다면 과연 누가 죄의 용서를 받겠습니까? 위대한 진리의 책, 복음서를 숙고합시다.
아주 무질서한 삶을 살던 불쌍한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과 대면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이리 함께 오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여자가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한 것은 맞는 말이다. 너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지금 함께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니, 너는 바른대로 말하였다.’”3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불쌍한 여인은 머리카락 뿌리까지 붉어지면서 예수님 앞에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낮추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을 알아뵙게 되어 자신의 혐오스런 삶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사도가 되었고, 35│참된 회개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은 자신을 낮추었기 때문입니다.
간음한 여인의 경우를 봅시다. 그녀는 과오를 범했습니다. 위선적인 바리사이들은 그녀를 예수님께 고발했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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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어떠하십니까?” 그러는 동안 그 여인은 자신을 낮추며,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으시고 땅바닥에 손가락으로 무엇인가 쓰셨습니다. 다른 이들이 그분께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이 말씀에 고발하던 자들이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떠나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여인을 돌아보고 물으셨습니다.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이 이르셨습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4
한 가지를 더 보도록 합시다. 자캐오는 부자였지만, 가난한 이들에게 피해를 줄 정도로 자신의 권력을 남용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보고자 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자캐오가 나무 가지 사이에 있을 때 예수님이 위를 쳐다보셨습니다. 자캐오가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주님은 그에게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캐오는 재빨리 내려와 주님을 자기 집에 모시고 식탁을 차리게 했습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예수님은 줄곧 그에게 눈길을 주셨습니다. 그는 은총에 감동하여 이렇게 외쳤습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의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에게 “너는 너무 많이 잘못했기에 용서받을 수 없다.”라고 하시지 않고,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5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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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 자캐오는 예수님의 열성적인 제자가 되어 그때까지의 태도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세리였던 마태오도 있습니다. 세리들은 죄인들이었는데, 그도 세금 징수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세금을 거두면서 할 수 있는 한 돈을 착취했기에 모든 사람이 그들을 미워했습니다. 예수님은 길을 가시다가 부당한 세금을 받아 내는 나무로 지어진 세관6에 앉아 있는 그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오야, 나를 따라라.”7 그는 머리를 숙여 죄의 용서를 청했으며, 그때부터 그는 구세주를 따르는 사도요, 복음사가가 되었습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겸손해질 때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고, 신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에 신뢰해야 합니다!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도 있습니다. 자만심에 가득 찼던 바리사이는 제대 앞으로 나아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 불쌍한 그 사람은 자신의 교만 때문에 자기 죄를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그 대신 세리는 성전 구석에 서서 가슴을 치며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의롭게 되어 성전 밖으로 나갔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8 자신의 자선에 대해, 자신의 긴 기도에 대해 으스대며 다른 이들을 판단하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에게서 늘 비난을 받던 이웃 사람은 늘 자신을 낮추면서 선하게 살았기에 병이 들었지만, 아주 거룩하게 죽음을 맞았습니다.
우리의 교만은 은총을 받지 못하도록 얼마나 끈질기게 우리를 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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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니까! 수도복을 입고 있다는 것이 천국의 입장권을 이미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까? 오, 우리 자신을 너무 신뢰하지 맙시다! 수도원에 와 있다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37 |  1) 많은 은총을 받기 원하지만, 우리가 예수님께 그 은총을 청하지 않으면 그분은 주시지 않습니다. 대개의 경우 가정의 어머니는 기도를 조금밖에 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기도할 수 있는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큰 열성으로 기도하여 다른 이의 부족한 기도를 보충해야 합니다.
  2) 더 많은 의무를 지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의무 가운데 중요한 것은 바로 서원의 의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우리 의무를 사랑합니까?
  3) 수도자는 훨씬 엄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성 그레고리오9는 하느님에게서 더 많이 받은 사람은 더 많은 셈을 바쳐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결국 하느님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의무가 대단히 많지만, 우리는 그 의무를 어떻게 이행해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신뢰를 떨쳐버리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깁시다. 
이제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살펴봅시다.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고 싶지 않은 아들은 그에게 돌아올 몫의 재산을 달라고 하여 그것을 받아 멀리 떠났습니다. 그는 악습에 빠져, 짧은 기간에 그가 가지고 갔던 돈을 모두 탕진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허기를 채우기 위해 가난한 농부의 일을 돕게 되었는데, 농부는 농장에서 기르던 돼지를 돌보도록 그리로 보냈습니다. 그러자 그는 실의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내 아버지 집에는 하인들도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아들인 나는 여기서 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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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죽게 되어 동물들이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 배를 채워야 한단 말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자, 이것이 겸손입니다. 그는 걸치고 있던 해진 옷, 더러워진 발, 예전에 여러 개의 반지를 끼고 있던 야윈 손가락을 바라보며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10라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겸손과 합쳐진 이러한 신뢰는 그에게 38│구원이 되었습니다. 그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아무런 질책도 하지 않고 그를 맞아들여 식탁에 앉히고 하인들에게 가장 좋은 옷과 신발과 반지를 준비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아들은 잃었다가 다시 찾은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는 우리에게 무엇에 주목하게 합니까? 아들의 겸손과 아버지께 대한 신뢰입니다. 죄를 지은 우리에게도 이와 똑같은 자세가 필요합니다. 곧 겸손과 예수 성심께 신뢰하는 것입니다.
성 바오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입니다.”11 그러므로 그는 첫 번째 사도가 되어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일했습니다. 훨씬 뒤에 그는 그 사실을 인정했지만, 곧바로 다음과 같이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이 한 것입니다.”12
막달레나에 대해서도 기억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 얼마나 울었습니까! 그녀는 눈물로 구세주의 발을 닦아드렸습니다. 예수님은 그녀를 공격하는 사람 앞에서 그녀를 옹호하셨고, 그녀를 용서하셨으며, 아주 특별한 은총을 베푸셨습니다.13
참회의 삶을 살아 참회자들의 모범이 된 그녀는 많은 수도자의 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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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되었습니다.
잠시 우리 자신 안으로 들어가 봅시다. 우리는 자신을 신뢰하는 우리 교만에 대해 큰 두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무한하고 확고한 신뢰를 지니도록 합시다.
교만: 1) 이는 참된 고해성사의 적입니다. 사람들은 고해성사를 잘 준비하기를 원한다면서 해야 할 말만 생각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교만은 우리 자신을 아는 것을 방해합니다. 때때로 우리의 결점을 모두가 알고 이야기할 정도로 명백한데도 우리 자신은 다른 이들보다 더 존경받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여깁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결점을 잘 포장할 줄 압니다. 39│교만은 우선 정신을 눈멀게 하고, 마음도 눈멀게 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정당하게 보입니다. 수도생활에 미흡한 점이 많아도 늘 변명을 늘어놓을 수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마음이 완고해지지 않도록 깨어 있읍시다. 2) 통회를 방해하는 것은 양심성찰의 좋은 결실도 방해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섬세한 사람이 아주 작은 것도 큰 잘못으로 여기며 슬피 우는 앞에서도 무관심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단순한 소죄에 의해 무너지고 만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언젠가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나는 바다로 뛰어들고 말거야!” 그러나 이것은 더 큰 죄요 스캔들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섬세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불완점함조차 찾지 못하는 곳에서도 악을 발견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통회의 마음 없이 고해성사에 임하므로 늘 같은 사항을 되풀이하지만, 참회를 못합니다. 교만은 진심으로 죄를 고백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습니다. 죄를 지으면 고해사제를 바꾸고 싶어합니다. 그렇다고 진정으로 원상태를 회복합니까? 교만한 사람은 자기 죄를 고백하는 수치심을 견디지 못합니다. 무엇인가를 말할 때 변명하고 정당화하는 데에 급급할 뿐입니다. 어떤 잘못을 범하면 자매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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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들을 비난합니다. “내게 말해 주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장상들 탓으로 돌립니까? 강의 때 그렇게 여러 차례 말했건만! 교만한 사람은 고해성사 때 대화를 원합니다. 우리의 환상에서 벗어납시다! 성 베드로는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14 하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고해성사에 다가가기에도 합당하지 못합니다!
우리 삶은 두 개의 축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곧 우리에 대한 불신과 하느님께 대한 신뢰입니다.
40 | 마음속에 성 필립보의 말씀을 새기도록 합시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는 실망했지만, 주님을 신뢰합니다.” 우리가 실망하는 것보다 더 많이 희망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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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티모 1,15 참조.

2 마태 6,1.6 참조.

3 요한 4,16-17 참조.

4 요한 8,4-11 참조.

5 루카 19,5.8-9 참조.

6 피에몬테식의 표현으로서 “cabina”(세관/사무실)에 상응함.

7 마태 9,9 참조.8. 루카 18,11.13-14 참조.

9 대 그레고리오(Gregorio Magno, 약 540-604)는 로마 출신으로, 590년부터 교황직에 올랐다. 교부요 교회학자이며, 전례 성가를 정리했고, 성경에 관한 많은 주석서를 저술했다.

10 루카 15,18-39 참조.

11 1티모 1,15 참조.

12 1코린 15,10 참조.

13 루카 7,44-48 참조.

14 루카 5,8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