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o Giacomo Alberione

Opera Om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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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공동생활에 대한 사랑

수도생활은 완덕의 생활입니다. 수도생활 자체가 완전함을 지향합니다. 성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을 ‘거룩한 민족Genes sancta’1이라고 불렀는데, 실제로 성인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성성을 향한 성소에 불리었기 때문입니다.
수도자들은 크게 두 종류로 구별됩니다. 봉쇄수도자monache와 활동수녀들suore입니다. 혼합된 삶을 사는 수녀들도 있는데, 그들도 활동수녀들 부류에 속합니다. 여러분은 이 마지막 범주에 속합니다. 세상 한가운데에서 활동의 삶을 살면서 신심생활을 녹여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여러분은 수도원에서 특별한 수도생활 규칙 준수에 마음을 쓸 필요성이 생기는 것입니다. 또한 외적 활동이 191│내적 삶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도록 하고, 여러분이 세상에 선한 일을 실행함에 있어 세상의 악이 방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1. 공동생활이란 무엇인가?

공동생활은 성인이 되기 위해, 참된 수도생활을 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함께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과를 포함한 모든 것을 함께합니다.
또한 공동생활은 생각의 일치와 목적의 일치가 포함된 수도회의 모든 지향에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곧 기획2의 일치, 정신의 일치 그리고 특히 청해야 할 은총의 일치가 포함됩니다. 여러분은 힘이 필요

~

할 때 모두 일치해서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공동생활은 비품, 노동, 식사, 주거와 시간표까지 함께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친화적이고, 온순하고 착한 성격이 공동생활을 잘 하게 해주므로 성격을 바꾸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이러한 공동생활은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계속 이행하도록 해주는 큰 공덕의 원천입니다.
공동생활에 뛰어난 충실함을 보인 성 요한 베르크만스는 허락을 필요로 하는 일을 아예 하지 않았습니다.
공동생활은 우리를 성화시키고, 죽음 다음에 지속될지 모를 연옥의 고통을 겪지 않게 해줍니다.

2. 어떻게 해이함에 빠지는가?

해이함은 신심실천을 소홀히 함으로써 시작되는데, 갈수록 고해성사를 뜸하게 보거나 192│자주 고해사제를 바꿉니다. 기상起床과 휴식시간, 음식과 복장이 불규칙해지고, 감정의 기복이 심해져 침울함이 계속되다가 아주 밑바닥까지 떨어지곤 합니다. 특별한 배려를 받을 것이 많아져 허락을 받지만, 그렇게 하다가 예외적인 것이 일상이 되어버립니다.
침묵이 여러분의 큰 희생 중 하나이지만, 침묵의 의미도 잊어버려 지킬 필요성마저 느끼지 않게 됩니다. 거룩한 수도자는 작은 일에 대한 세심함과 시간표 준수를 통해 드러납니다.
침묵을 깨트릴 때 정신적인 고통을 느낍니까? 침묵을 지키십시오! 프로파간다에서, 선한 말씀의 보급에서 효과적인 결과를 원한다면 혀를 통제하십시오! 이 은총은 다른 많은 은총을 보장해 주므로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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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하십시오. 그런 다음 극기하도록 노력하십시오. “하지만 극기의 기회가 오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고요?” 아! 훌륭한 수녀여, 언제 그대에게 승리의 때가 주어지겠습니까? 기회를 잘 포착하십시오!
수도원에서, 다시 말씀드리지만 침묵과 시간표를 잘 지키고 작은 일들을 잘 하십시오. 며칠 전에 제게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분원 공동체를 소수 인원으로 구성하지 마십시오. 여인네들처럼 돼버릴 것입니다. …” 그러나 여러 사람이 있는 공동체라도 잘못하는 사람이 두세 명만 있으면 모든 것을 망칩니다! 수도생활이 파괴될 때 무슨 좋은 것이 밖으로 보여지겠습니까? 사도직을 완수할 수 있겠습니까? 활동적인 삶에 193│관상적인 삶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두 가지 모두 마음을 쓴다면 기적을 행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당신의 벗 라자로를 만나기 위해 베타니아에 가셨을 때 그의 동생들인 마르타와 마리아를 어떻게 대하셨는지 들려줍니다.
예수님의 방문을 받은 마르타는 늘 하던 대로 서둘러 달려 나갔습니다. 훌륭한 점심상을 준비하기 위해 마음이 급했던 것입니다. 잘 차렸습니까? 물론입니다. 사랑이 그를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지상에 오신 하느님의 성자로서, 주변의 도움으로 살아가신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 그 대신 마리아는 스승의 발치에 앉아 하느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마리아의 모든 것을 꿰뚫는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셨습니다. … 그 순간, 마르타는 스승께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예수님은 온화하게 말씀하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3

~

자 보십시오. 예수님 몸소 활동의 삶보다 관상의 삶이 우위에 있다고 선포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마리아야말로 놀라울 만큼 자신의 삶에서 활동과 관상을 융합할 줄 알았습니다. 교회는 이 복음을 성모 승천 대축일에 읽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중요합니까? 의심할 여지 없이 기도와 194│하느님과의 일치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일을 염려하는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 삶을 함께 융합할 때 아주 큰 가치가 있고, 이를 거룩하게 행하는 사람은 이중의 화관을 쓰게 될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관상과 활동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서로 보완하여 완전하게 만듭니다. 만일 여러분이 신심실천을 잘 한다면 보급[프로파간다]을 잘 할 것이고, 또 봉쇄수도자들을 괴롭히는 분심과 고통에서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도생활의 다양한 신분 중 어떤 것이 탁월한 것인지 질문하지 마십시오. 각자 더 나은 성소를 하느님에게서 받았습니다. 특히 여러분은 신심생활과 활동생활이 함께 짜여있는 삶으로 부르심 받았으므로 주님께 감사드리고, “미세레레Miserere”4뿐 아니라 “사은 찬미가Te Deum”5도 부르십시오! 수련기를 끝내고 거룩한 서원을 하게 될 때, 성소에 반대되는 생각이 들면 그것은 마귀에게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추호의 의심도 없이 수련기를 마쳐야 합니다!
“그런데 다른 길로 부르심 받았다는 느낌이 든다고요?”6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닙니다. 혹시라도 전에 성소를 받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대에게 “앞으로 나아가십시오.”라고 말한 날, 성소를 받은 것입니다. 장상들이 여러분의 대답과 여러분의 말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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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장상들은 여러분의 성격을 관찰하며 기도하고, 주님께서는 장상들을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여러분에게 “앞으로 나아가십시오.”라고 했다면, 차분하게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195│더 잘 응답하기 위한 수단을 찾지 않아도 됩니다. … 주님은 당신께 자신을 맡기는 영혼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시고, 당신의 약속에 충실하십니다.7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이러한 유혹에 대해 그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만일 누군가 유혹에 동의한다면 그것은 순결을 거스르는 것보다 더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일을 사랑하십시오. 요리, 빨래, 프로파간다, 서원書院, 모든 것을 구별 없이, 더 힘든 일을 하게 되더라도 거기에 온 마음을 쏟으십시오. 여러분이 그 일을 주님을 위해 하게 되면 가장 좋은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자매는 아주 착하지만, 너무 순진합니다!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십시오.”8
뱀은 밖으로 머리를 내밀기 전에 주변을 잘 살핍니다!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자기 몸을 휘감아 똬리를 틉니다.
복음에 이런 비유가 있습니다. 열 명의 처녀가 있는데 그중 다섯은 슬기로운 처녀였고 다섯은 어리석은 처녀였습니다. …9 이 비유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어떤 자매들이 다른 수도회 수녀들과 함께 지내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수녀들의 규칙과 자신들의 규칙, 그리고 서로 다른 사명을 비교하게 되었습니다. 잘 하는 일입니까? 유혹

~

에 빠진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 도미니코회 수녀들처럼 성무일도를 합창으로 노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러나 쓸데없는 욕심입니다. 여러분의 성체조배 시간을 사랑하십시오.
196 | 여러분이 참된 성바오로딸들이므로, 여러분에게│주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보편적인 마음, 곧 구원해야 하고 성화시켜야 할 모든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가끔 어린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더 크게 느끼는 것은 여러분이 그들을 위해 글을 쓰고, 인쇄를 하고, 보급하는 것을 배우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즉각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머지않은 때에 그렇게 하게 될 것이고, 노인들과 젊은이들을 위해서도 그렇게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출판을 통해 어린이들, 어른들, 가난한 이들, 슬퍼하는 이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곧 출판을 통해 그들을 도와주고, 그들을 비추어 주고, 그들을 위로해 줍니다!
“그 사명은 정말 아름다운 것처럼 여겨집니다!”라는 말을 더는 하지 마십시오. 정말 아름답다니 … 여러분의 사명보다 더 아름답습니까?
아침 7시부터 8시까지 세상을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때입니다. 곧 잠에서 깨어나 인쇄하고, 보급하러 가는 시간입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 가지 밖에 할 수 없더라도 최고의 노력을 기울여 잘 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자기 자리가 있고, 자기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성소를 사랑하십시오. 여러분의 성소에 대해 말하고, 알리고, 도움을 찾고, 수도회의 사업을 알리는 데 힘을 쏟으십시오.
여러분 모두가 함께, 그리고 각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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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네 바퀴

여러분은 이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수도회는 네 바퀴로 된 수레이고, 수레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밀어주는 힘이 필요합니다.10
첫 번째 바퀴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가장 중요합니다. 가장 좋은 시간을 기도시간으로 정하십시오.
두 번째 바퀴는 “사도직”입니다. 인쇄를 하든, 글을 쓰든, 또는 보급을 하든, 마음을 딴 곳에 둔 채 사도직을 하지 마십시오.
세 번째 바퀴는 “면학”입니다. 힘이 들더라도 마음을 모아 열심히 공부하십시오. 모든 것에서, 모든 사람에게서 배우려고 노력하십시오.네 번째 바퀴는 “청빈”입니다. 사랑으로 적극적인 청빈과 소극적인 청빈을 실천하십시오. 지상의 것에 애착하지 않도록 노력하십시오. 지상의 것이란 사람들, 분원들까지 포함됩니다. 이 분원과 다른 분원 사이에, 이 직책과 저 직책 사이에 차별을 두지 마십시오.
어떻게 이 많은 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도우심을 통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서, 어려움이 생기면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청원기와 수련기 동안 여러분의 조언자는 늘 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또한 여러분에게 일러준 내용은 여러분에게만 맞는 것이므로 그 내용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단순한 성바오로딸들에게 알맞는 충고를 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당나귀 이야기를 또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모든 이에게 충고를 받으려고 하지 말아야 하지만, 또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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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충고는 경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다른 가르침을 주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우리 규칙서가 허용하지 않습니다.” “우리 규칙서가 그렇게 원합니다.” 여러분은 무엇보다 “감사하십시오.” 198 │그런 다음 여러분이 해야 할 바를 하십시오. 우리는 세상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생의 마지막에 해야 할 말만 품어야 합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Cursum consummavi, fidem seravi. In reliquo reposita est mihi corona iustitiae. …”11

~

1 1베드 2,9 참조.

2 원문에는 iniziative로 되어있다.

3 루카 10,40-42 참조.

4 시편 51편 참조.

5 감사의 전례 찬가.

6 원문에는 sentiva로 되어있다.

7 1코린 1,9 참조.

8 마태 10,16 참조.

9 마태 25,1-2 참조.

10 신심, 면학, 사도직, 청빈 등, 네 바퀴로 달리는 바오로인 수레의 이미지(AD 100 참조)는 알베리오네 신부의 교육학적 노선을 드러낸다. 곧 지성, 의지, 마음 육체적 힘을 다해 천상 스승께 나아가는 것이다.

11 2티모 4,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