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덕의 가장 좋은 영양소는 성체입니다. 성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지체가 된 우리는 그분 안에서 일하고, 그분과 똑같은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성 바오로에게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나를 따르는 자들을 왜 박해하느냐?’라고 하시지 않고 ‘왜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들과 하나이시고, 그들은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하나의 신비체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몸에서 지체 하나가 고통을 겪으면 다른 모든 지체도 고통을 겪습니다.2
우리는 성체 안에서 예수님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 우리 생각이 그분의 생각이 되고, 그분의 애정이 우리의 애정이 되며, 그분의 말씀, 그분의 느낌이 우리의 것이 됩니다.
이러한 진리는 신앙의 빛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바로 여기에 예수님과 신비적 합일에 대한 성 바오로의 사상에서 피어난 꽃이 있습니다.3 이를 심화하기 위해 서간을 자주 읽는 것이 좋습니다. 77 │우리 마음이 예수 성심과 완전히 일치될 때, 우리가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를 어린이처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사랑하게 됩니다.
거룩한 성체를 잘 모셔야 합니다. 우리의 애덕은 성체로 양육됩니다!
1.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웃의 선을 기뻐하고, 이웃에 대해 만족하고, 이웃이 바라는 것을 우리도 바라는 것입니다. 곧 자비로운 사랑, 마음에 드는 사랑, 갈망하는 사랑입니다.
1) “마음에 드는 사랑”이란 천사들, 성인들,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 더 나아가 교황, 주교들, 성직자들, 수도자들, 세상의 선한 사람들이 모든 선을 함께 감탄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우리의 삶을 더 아름답게 해주고, 천국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줍니다.
2) “자비로운 사랑”은 이웃이 아직 가지고 있지 않는 선을 갖도록 열망하는 것입니다. 곧 이방인들에게 신앙을, 죄인들에게 구원을, 병자들에게 인내를, 개종자들에게 항구함을, 임종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수도자들에게 더 높은 성성을, 성직자와 가톨릭 액션의 모든 선행이 사도직의 효과를 더 증가시키도록 바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수용하는 넓은 마음을 지닌 이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물 한 잔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맙니다. 성 바오로는 “우리의 마음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4라고 말합니다.
78 | 여러분은 미사성제 때, 영성체 때, 성체조배 때 무엇을 청합니까?
모두에게 도달할 수 없는 우리는, 모든 이들이 바라는 것이 모두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많은 공덕을 쌓아야 합니다.
3) “갈망하는 사랑”은 이웃과 자기 동료를 사랑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에서 마음을 떼어놓을 줄 아는 것입니다. 곧 우리가 성화되도록 도와주는 이들과 함께 기꺼이 머무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부모에게서 떨어져 있습니까? 아니면 복음 말씀은 뒤로 한 채 아직도 가족과 가족의 일에 관심을 쏟고 있습니까? “누
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5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들은 멀리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서원에서, 응접실에서 왜 그토록 길게 대화를 나눕니까? 짧게, 짧게. 여러분은 늘 짧게 말해야 합니다. 그 대신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과 더 길게 영적 대화를 나누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은, 집안의 모든 응접실에 비길 만한 큰 응접실을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곧 늘 머물 수 있는 성당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두려움 없이 길게 머무십시오. 이웃과 예의바른 대화를 나누는 데 익숙한 사람은 주님에게서 그분과 함께 자발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잠심의 큰 은총을 얻을 것입니다.
세속적인 말, 소문들에 휩싸여 세상으로 다시 끌려들어가는 느낌을 받을 때 빨리 잘라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도시의 주교, 성직자들, 수도자들을 화제로 삼는 것도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79│신심을 과시하지만 주변 사람들에 대한 소문에 밝아 길게 늘어놓거나, 미사 때 사제가 왜 신경을 바치지 않았는지 알려고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람들이 진정 영적인 사람들인지 알고 싶습니까? 그들 자신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지 살펴보십시오.
피에트로 발데Pietro Valde6는 매우 엄격한 수도자였습니다. 동료 수사들이 청빈을 철저히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도회를 나온 발데는, 발데파의 설립자가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개혁시키는 것으로 무엇인가 시작하려는 이를 피하십시오. 참된 개혁은 내 허물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남에 대한 충고를
많이 하지 않습니다. 외부인들과 접촉하면서 비판하는 것을 쉽게 배우게 되므로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외출이 잦은 자매들에게 이런 것에 대해 당부하십시오.
루터7는 자기 자신에 관한 개혁이 아니라, 교황과 추기경들을 개혁시키려다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에게서는 어떤 결점도 찾아내지 못하면서 공동체 안에서는 수천 가지 결점을 찾아냅니다. 자기 것이 아닌 타인의 악함을 드러내려는 것은 우리 영혼에 아무런 득이 되지 않습니다. 아니 이러한 것은 아주 좋지 않은 것입니다. 그 영혼은 식탁에서 자기는 음식에 손도 대지 않은 채, 손님에게만 모든 것을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비추어주시고, 우리가 위험을 분명히 알아차리게 해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어떤 부인은 서원에 들어오면 끊임없이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불쌍한 수녀는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어떻게 알려야 할지 몰라 쩔쩔 맬 때가 많습니다.
80 | 같은 경우 변호사 A씨가 어떻게 했는지 들어보십시오. 아주 친절한 변호사인 그에게 늘 많은 부인들이 찾아와서 여간 귀찮게 구는 것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그들을 그대로 내쫓으면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처음에는 그들을 그대로 놓아두면서 방법을 궁리했습니다. … 마침내 좋은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그들이 애완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그가 소파에 애완동물들을 데려다 놓자 그 부인들은 그를 평화롭게 놓아주었습니다.
여러분의 서원은 빛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결코 불평을 늘어놓는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수도자는 식탁에서 불평을 늘어놓던 형제들이 그를 대화에 끌
어들이려 하자 “제 입이 다른 일로 바빠서…”라고 했습니다. 음식물이 들어 있어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렇게 해서 그는 나쁜 말에 끼어들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도 보았습니다. 겨우 12명의 수녀가 살고 있는 수도원인데, 대단히 화려하게 꾸민 응접실이 4개나 되는가 하면 공동체 자매들이 기거하는 방이나 성당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일이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수도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는 응접실이 아니라 성당이어야 합니다.
“갈망하는 사랑”은 영적 가족과 함께 즐겁게 지내는 것입니다. 어떤 자매들은 외부인들에게는 환한 웃음으로 찬사를 보내다가 자매들에게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 가족에 속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식당에서, 휴게실에서 공동체와 함께 기쁘고 즐겁게 지냅시다. 모두와 함께 단순하게 이야기합시다. 81│모든 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는 상냥한 성격이도록, 성격을 원만하게 만들도록 노력합시다.
그리스도인답게 온화한 성격을 지니십시오. 여러분은 근거 없는 소문이나 좋지 않은 내용의 글에 쏠려서는 안 됩니다. 사랑 안에서 견고해지십시오. 이러한 사랑은 삼중의 사랑이어야 합니다. 곧 연민의 사랑, 도움의 사랑, 배려의 사랑입니다.
2. 이러한 애덕은 중요하다
다음과 같은 “일반적인 이유” 때문에도 애덕은 매우 소중합니다.
1)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이고, 서로 형제입니다. 어떤 성인은 열등한 창조물에게서도 형제애를 느꼈고,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새, 물고기, 늑대를 형제처럼 대했습니다.
2) 모든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속량되었음을, 예수님이 모든 인간을 위해 돌아가셨음을 알고 있다면, 우리도 다른 이들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3) 그리스도인 삶의 특징은 사랑입니다.
“특별한 이유”, 곧 가족에 대한 사랑, 가장 가까운 이웃에 대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사랑을 무시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죽이는 큰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엄마가 가난한 이들이나 자신의 부모를 위한다는 구실로 자기 자녀들이 굶어죽게 만든다면 죽을 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혈연의 가족이 아니라, 영적 가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원誓願을 통해 새로운 가족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됩니다. 초자연적 원칙에 토대를 둔 이 새로운 가족은 혈연의 가족보다 훨씬 월등한 가치를 지닙니다.
82 | 수도회 회원들은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지만, 예수님과 성 요셉이 살았던 긴밀한 유대관계의 일치를 사는 것입니다. 성 가정도 여러분처럼 초자연적 유대관계로 맺어진 가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 바오로 안에서 친자매처럼 서로 사랑하십시오. 서로 아껴주십시오! 자매들과 함께하는 삶을 성화시키십시오!
가족적인 사랑은 늘 실천해야 하는 사랑이고, 또 여러분에게 가장 아름다운 공덕을 쌓게 해주는 바로 그 애덕입니다. 그 애덕을 통해 여러분은 반감만 아니라, 호감도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은 자매들에게서 때때로 느끼게 되는 중압감이나 슬픔, 고통이 아니라 빵을 함께 나누는 거룩한 느낌, 감미로운 친밀감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곧 자매들의 영혼과 육신을 서로 양육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매들 사이에서 죽음을 맞고, 하늘에서 자매들을 다시 만날 것입니다.
3. 애덕의 특징
가족에 대한 사랑에는 다음과 같은 적들이 있습니다.
1) 판단, 악의에 찬 의혹, 의심스러운 시선. 그러나 어떤 사람이 잘못했다면 그 사람을 용서하십시오! …
2) 호감과 반감. 이것은 감각적인 사랑의 위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사랑을 할 때 미움이 끼어든다는 것을 아십시오. 잘못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 대해 예외8를 두지 말고, 공정하고 착한 마음을 지닐 수 있도록 주님께 청하십시오.
더 많은 선을 행하는 사람이 더 많은 존경을 받게 된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장상들이 일을 잘 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일을 맡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호감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호감은 인간적인 특별한 경향, 곧 편애입니다. 호감은 애덕과 달리 특정 동료만 사랑하는 것입니다. 애덕은 결코 기쁨을 누리기 위해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반감은 호감의 반대로, 본능적인 거부감 때문에 동료를 회피하는 것이며,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특별한 것을 드러내지 않지만, 영혼 안에 희생에 대한 큰 사랑을 지니고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는 자매들이 있습니다.
이 사랑스러운 이들이야말로 더 사랑을 받아야 하지만, 흔히 반감을 갖게 됩니다.
마귀가 그러한 일을 꾸미는 것인데, 우리가 그 동료에게서 얻게 될
구원의 열매를 알기 때문에 동료들 사이를 갈라놓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서로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수도회는 큰 발전을 이룰 것입니다!
질투가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우리 사이에 그 유명한 “우화”가 재현되지 않도록 깨어 있읍시다.
여러분도 그 우화를 아십니까? 정말 아십니까? 이방인의 신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게 주어질 아주 귀한 황금 사과를 내려 보냈습니다. 그러자 바로 그 사과가 나타나면서부터 모든 여인이 서로 불목했기 때문에 그 황금사과는 주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9
다른 자매를 지도할 책임이나 사도직을 이끌 직책을 맡은 자매들은 특히 84│자신의 마음, 곧 감정을 지배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직무는 모든 이에게 질투심을 불러일으킬 위험이 있고, 고통스러운 결과를 감수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애덕의 적은 아주 작은 불평, 말다툼, 비판, 비방, 잘못에 대한 비난, 가벼운 언쟁 등입니다.
애덕의 적은 자매들에게 짐이 되는 행동, 곧 비탄, 탄식 등의 어두움을 퍼뜨립니다.
애덕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살펴봅시다.
애덕, 곧 참된 사랑을 하기 위해 초자연적이고 너그러워야 합니다. 참을 줄 알아야 합니다. 요나의 아주까리를 갉아먹던 벌레처럼 사랑을 메마르게 하는 시기와 질투 대신 보편적이어야 합니다.10
두 사람이 함께 살 경우 대개는 관대함을 보이거나 질투를 하게 되지만, 애덕은 가장 작은 것으로도 큰 위로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공동체에는 아직 연로한 수녀들이 없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노인이 되어갈 것입니다. 노인은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아 작은 일 앞에서도 툴툴댑니다. … 이제 여러분은 애덕의 새로운 동기를 많이 알게 될 것입니다.
성 바오로는 열두 가지 애덕의 특징을 썼고,11 성 알폰소12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의 실천Pratica di amor Gesù Cristo」에서 이것을 주석했습니다. 지금은 그것을 다 말할 수 없으므로 그 책을 자주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주님께서 하느님과 이웃에게 아주 중요한 이 덕을 우리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성 요한 복음사가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끝내겠습니다. 그가 아주 연로했을 때에도 85│그를 아버지처럼 사랑한 제자들은 그의 말을 듣기 위해 자주 그를 모셨습니다. 그런데 성인은 “아들들이여, 내 아들들이여, 서로 사랑하시오.” 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늘 되풀이되는 그 말에 지친 제자들이 다시 청했습니다. “하지만 아버님, 저희에게 다른 말씀도 해주십시오.” 그러자 사도는 “여러분이 그렇게 행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서로 사랑하시오.”라고 말했습니다.13
오늘 저도 여러분에게 똑같은 말씀을 드립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1 사도 9,4.
2 1코린 12,26 참조.
3 갈라 2,20 참조.
4 2코린 6,11.
5 루카 14,26.
6 Pietro Valdo 또는 Valdes(1140-1217는 프랑스 리옹 태생이다.
7 Martin Luther(1483-1546)는 독일의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수사였다가 루터주의와 종교개혁 운동의 창시자가 되었다.
8 원문에는 accettazione로 되어있다.
9 그 당시 학교에서 많이 읽혔던, 호모의 시집 「일리아드Iliade」에 실린 그리스 신화.
10 요나 4,7 이하 참조.
11 1코린 13,4-7 참조.
12 Alfonso Maria de’ Liguori(1696-1787)는 나폴리 출신으로, 구속주회 창립자이다. 윤리신학의 기초와 수덕신학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겼다.
13 성 예로니모는 「갈라 6,10의 주석Commento della Lettera ai Galati 6,10」에서, 노년의 성 요한은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아들들이여, 서로 사랑하시오. 이것을 실천한다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