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우리는 순명 덕에 대해 숙고했습니다. 앞으로 숙고해야 할 덕이 두 가지 더 있습니다. 청빈 덕과 정결 덕입니다. 이 세 가지 덕은 우리 신분에 따른 의무이며, 사도직과 결부되어 있는 덕입니다.
또한 세 가지 덕은 세 가지 서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우리의 모든 행위가 곱절의 공덕을 쌓게 된다는 것을 유념합시다. 곧 서원을 실천할 때 법을 준수하는 것이며, 수도자로서 공덕을 쌓는 것입니다.
우리 신분에 따른 세 가지 서원, 곧 복음삼덕은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드러내줍니다. 우리는 거룩한 서원을 함으로써 세 가지 서원을 실천하고 사도직 활동을 하게 되며, 완덕을 지향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68 | 우선은 일정한 기간을 정해 서원을 합니다. 곧 유기서원인데, 청원기와 수련기를 거쳐 서원을 한 것처럼 이 기간은 종신서원을 준비하는 때입니다. 지혜로운 어머니인 교회는 성급하게 종신서원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삶의 봉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신중한 선택으로 그 희생이 합당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봉헌은 자발적이고 타당하게 행해져야 합니다. 주님은 먼저 지성을 드리고, 그 다음 마음을 드리는 합당한 신부新婦를 바라십니다.
서원은 처음에는 1년간을, 그 다음엔 3년간의 갱신서원을 한 후 종신서원을 하게 되는데, 유기서원기에도 의지는 반드시 한 방향을 지향해야 합니다.
일단 수련기를 보낸 수녀는 더는 양자택일의 삶을 살려고 하거나 “한 번 살아본 뒤에 봅시다.”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속에 앞으
로 나아간다는 확고한 결심이 세워져야 합니다.
이러한 결심은 사제직에 관해 소품을 받는 사람들에게도 요구됩니다. 삭발식, 구마품, 수문품을 받은 사람은 ‘성직자의 넋’1을 지녀야 합니다. 첫 서원을 하거나 준비하는 사람도 ‘수도자의 넋’2을 지녀야 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금년에 한 번 살아보고 그 다음에 정하겠습니다.”라는 말은 안 됩니다. 교회는 중요한 일에 있어 아주 신중합니다. 진정으로 서원을 열망한다면 서원만 생각해야 하고, 오직 훌륭한 수도자가 되는 것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완덕으로 나가게 해주는 규칙을 살기 원한다면, 앞으로 나아간다는 결심과 열망이 늘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마귀는 인내를 방해하기 위해 69│장애물을 놓으려고 애를 씁니다. 이 장애물은 외적인 것일 때도 있고 내적일 때도 있다는 점을 유념합시다. 서원의 소중함은 변할 수 없습니다. 잃어버릴 위험에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피에몬테의 혹독한 겨울날씨에, 아름다운만큼 민감한 야자나무를 밖에 내어놓으면 얼마나 빨리 죽어버리는지요! 우리의 서원도 그렇습니다. 무절제한 생활에 방치되어서는 안 됩니다. 최대의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서원을 지키기 위해서는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소식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세속적인 신문을 읽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왜 어떤 친구, 어떤 자매가 한 일을 그렇게 자세히 알려고 합니까? 서원을 하고 몇 년이 지나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믿는 일이 생깁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유기서원 기간을 갖고 서원을 갱신하는 것입니다. 그런 기간을 가지면서 필요 없는 생각을 끊어버려
야 합니다. 그리고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저런 것을 좋아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하고.
그 동안 그대를 위한 것이 아닌 것을 다시 즐기려 했기 때문에 그대는 달라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세상을 버리고 나서 다시 그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아주 쉽게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수도생활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모든 규칙과 지시를 기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음을 수도회에, 장상과 자매들 사이에 두어야 하고, 깨어있어야 합니다. 마음과 성소는 민감한 꽃과 같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세상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성소를 보호할 필요가 있습니다.
70 | 여러분이 신뢰하고, 여러분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보낼 곳은 자매들 사이이며, 수도가정입니다.
성소를 잘 살기 위한 아주 좋은 방법은 자신의 사도직에 모든 관심을 기울이고 투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도직은 공부하지 않으면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모든 위험에서 성소를 구하고 살립시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 아니라,3 끝까지 자신이 갈고 있는 밭을 바라보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주의하십시오. 여러분이 인내로울 때 축복받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잘못했다고 느낀다면?” 잘못한 것이 아니니 안심하십시오. 부르심을 받지 않은 것처럼 여겨진다면, 성 아우구스티노의 충고를 따르십시오. 곧 부르심을 받도록 하십시오. 주님은 장상들의 수락과 그대의 서원에 대한 수용으로 외적 성소를 주신 다음 내적 성소를 주실 것입니다. “그대를 부르시게 만드십시오Fac ut voceris.”4
신랑이신 예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왜 두려움을 갖습니까? 신랑의 손을 잡고 영원한 혼인잔치에 들어갈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맙시다. 예수님은 좋은 분이십니다.
물론 우리 자신만 바라본다면, 뭔가를 할 수 있다고 말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또 비록 그렇게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충분하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 잘못을 기억하고 우리 자신을 낮추는 바로 그때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있을 필요를 깊이 느끼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혹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입회했습니까?” 실의에 빠져 울지 마십시오. 서원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 아직 있습니다.
71 | 여러분이 나에게 무엇이 더 나은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렇게 하면 성녀가 될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여러분은 성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좋은 몫을 택한 것입니까?” “여러분은 아주 좋은 몫을 택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바로 이것입니다.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여러분이 죄를 지어 성소를 잃게 되었어도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참회자로서 성화되도록 해주실 것입니다.
끝까지 항구하고, 자매들 앞에서 의심스러운 말을 입 밖에 내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이제 두 번째 서원으로 가봅시다. 바로 정결서원입니다.
이 서원은 내적으로, 또 외적으로 아름다운 덕을 거스르는 것을 금합니다.
수도자는 나누임이 없는 마음을 오직 예수님께만 드리고, 지성, 의지, 힘까지 정결하게 예수님께 드려야 합니다. 수도자는 주님께 열매
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나무까지 드리는 것입니다. 그 나무는 온전히 하느님의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선택에 대해 만족하게 되고,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늘 기뻐하실 것입니다. 한 가정을 이룬 이들이 서로 의견이 잘 맞을 때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주님과의 일치도 그렇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정결보다는 애덕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온 마음을 보존하는 사람은 완전한 정결, 곧 완전한 애덕을 지니게 됩니다.
1. 애덕이란 무엇인가?
애덕은 하느님 마음에 드는 것, 그분을 좋아하는 것, 부족한 모든 것을 그분께 바라는 것으로 72│마음에 드는 사랑, 자비로운 사랑, 갈망하는 사랑입니다.
1) “마음에 드는 사랑. 하느님 마음에 들 것!” 이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하느님은 지혜로우시고 영원하시며 무한하십니다. 하느님은 진리이시고, 창조주시고, 아름다운 모든 영의 사랑이십니다. 오, 주님은 얼마나 위대하시고, 예수님은 얼마나 아름다우십니까!
어떤 젊은이들은 신분을 선택해야 할 시점에서도 자신의 결심과 세상의 수많은 유혹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모두에게 기쁨을 주려고 아름답게 단장을 하는가 하면, 유흥과 오락에 빠져 자신의 만족만 찾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지 못하고, 마음속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함께 머물지 못하므로 공허와 슬픔, 불만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더 분명하게 말하면 마음을 충만하게 채워주는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젊은이는 더 큰 사랑에 매료되어 예수님과 함께 지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 사랑을 알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성녀 아녜스,5 성녀 앙티드 투레Antida Thouret 등 성녀들 모두가 이 사랑을 알았습니다.
지상에서 예수님 외에는 좋은 것을 결코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여러분도 이 사랑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영혼과 예수님 사이에는 일치의 결속이 한층 더 강화됩니다. 세상의 많은 것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어머니가 되는 것, 또 더 높은 학문, 풍요로운 재화에 대한 욕구에 쏠릴 수 있지만,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이 아닐 때 평화를 누루지 못합니다. 성 베르나르도Bernardo di Chiaravalle(1090-1153)6의 마음도 그랬습니다. 성 베르나르도는 지상의 모든 것이 무미건조했고, 예수님의 이름이 담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모든 독서가 헛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7 73│우리 또한 무엇으로 우리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만초니8의 작품에 등장하는 수녀는 그 좁은 머릿속에 수많은 환상을 간직하고 있어 어리석은 행동을 즐겼습니다만, 참회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은 그녀는 행운아였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즐기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마음으로 신중하게 선택했습니까? 아니면 눈에 보이는 대로 선택했습니까?
안 됩니다, 정말 안 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을 누가 차지하고 계신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분만을 생각하고, 그분만을 사랑하고 있음을 느끼십시오. 여러분이 죄인들의 회개, 이단자들과 이교도離敎徒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은 그분을 위한 것이고, 어린이들이 늘 즐겁기를 염원하는 것도 그분을 위한 것이며, 자매들 안에서
성성이 자라고, 가족 모두가 구원되기를 바라는 것도 그분을 위해서입니다!
이 마지막 사항은 첫 번째 결과에 해당합니다.
2) “자비로운 사랑”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복음과 수도생활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도와드리기 위해 애쓰고, 성전이 예수님께 대한 찬미로 가득 차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열의를 갖고 사도직이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하고, 다른 이를 잘 보살피고, 맡은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3) “갈망하는 사랑”9은 예수님과의 일치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이 갈망에는 많은 단계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과 함께 잘 지내고 있습니까? 영성체, 성체방문을 잘 하고, 열심히 미사에 참례하고, 여러분의 영혼이 예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까? 그러기 위해 그분을 흠숭하고 경배드려야 한다는 열망을 갖고 있습니까? 좋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갈망하는 사랑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2. 애덕의 필요성
하느님을 향한 애덕은 결코 멈출 수 없는 것입니다.10 주님께 대한 사랑을 열망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고, 74│천국을 향한 열망과 같은 것입니다. 저 높은 곳에 이를 때 신앙과 희망은 그치겠지만, 사랑은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애덕은 덕의 여왕입니다. 애덕은 이 삶에서 천국을 미리 맛보게 하고, 모든 선한 행동에 생명을 줍니다. 애덕 없이는 사도직에 대한 열의를 가질 수 없습니다. 죄 가운데 사는 것은 아주
나쁜 것입니다. 성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11
그렇습니다. 이것이 애덕이 있어야 할 이유입니다. 애덕은 필요불가결한 것입니다.
3. 애덕을 성장시키기 위한 수단
애덕은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타오르도록 양육되고 보호되어야 합 니다.
1) 애덕은 특히 신심을 통해 “양육됩니다”. 곧 미사, 묵상, 성체방문, 양심성찰, 화살기도를 통해, 또한 희생정신과 작은 덕행들을 통해 양육됩니다.
작은 덕행 하나가 열렬한 열망 열 가지에 필적합니다. 덕행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의 애덕이 차갑게 식었다고 느낄 때, 애덕이 자라고 보존되기 위해 작은 희생이 필요합니다. 우리 마음을 다시 뜨겁게 하는 데에 희생보다 좋은 것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지나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어떤 장상은 건강을 해치도록 방치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습니다! … ” 75│좋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성인들이 행한 것을 열망하십시오. 공동생활 안에서 성화되십시오.
선한 의지를 가질 필요가 있는데, 모든 면에서 선한 것이어야 합니다! 어떤 희생은 아주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덥거나 추운 것을 견디고, 작은 불편을 견디고, 열정이 넘치는 자세로 일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소한 것들이 하느님을 향한 애덕을 키웁니다.
2) 애덕은 쉽게 상처 입기 때문에 “보호받아야 합니다”.
애덕의 적은 호감이나 반감, 자기애입니다. 이러한 것은 아주 약삭빠르게 움직여 의식 속으로 깊이 숨어들므로 분명한 실체를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많은 선행, 공적인 선행조차도 올바른 지향이 아닐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변명을 늘어놓고, 책임을 회피하며, 자만에 차 있습니까! 이 자기애가 내면에 숨어 있다가 밖으로 드러날 때 더 나쁘게 드러납니다. 자신이 무엇이나 된 듯이 존경받아야 마땅하다고 믿습니다. 다른 이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결점들이 바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적입니다. 글을 쓸 때, 행동할 때, 말할 때 그러한 잘못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자신을 잘 살피십시오! 보속으로 자주 애덕송과 “예수 성심 호칭기도”를 바칠 필요가 있습니다.
오, 여러분의 수도원에 “저의 하느님, 모든 것 위에 당신을 모시고 마음을 다하여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포스터를 붙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76│이 말씀을 늘 기억하며, 여러분이 늘 주님의 것인지 성찰하도록 하십시오.
주님이 여러분을 축복해 주시고, 여러분에게 아름다운 애덕을 부어주시기 바랍니다.
1 anima clericalis: “삭발식과 다른 서품들은 사제직에 뜻을 가진 사람들에게 수여해야 한다.”(CDC 1917, 교회법 973조 참조)
2 animus religionandi: 이 의미는 다음과 같다. “수도자 신분은 공동으로 살아가는 확고한 방식이다. …”(CDC 1917, 교회법 487조 참조)
3 루카 9,62 참조.
4 Agostino, 「페틸리아 반박론Contra Petilianum」, 2(“Tu ergo attende quo voceris, et unde revoceris: 그러므로 너는 네가 부르심 받은 일을 생각하고, 네가 어디로부터 다시 부르심을 받았는지 숙고해 보라.”
5 아녜스는 로마 출신으로, 3세기 중엽 때 겨우 13세의 나이로 참수되었다.
6. 베르나르도는 프랑스 태생으로 시토 수도회의 위대한 신비가요, 교회 학자이다. 동정 마리아의 신학과 영성에 관한 많은 강의와 작품을 남겼다.
7. 성 베르나르도, 「아가에 관한 담화Discorsi sul Cantico dei Cantici」, Disc. 15,6 참조.
8. Manzoni Alessandro, 「약혼자들I promessi Sposi」, cap. IX.
9 원문에는 compiacenza로 되어있다.
10 1코린 13,8 참조.
11 1코린 1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