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피정 동안 예수님께 빛, 속죄, 천상적 지혜, 덕, 힘, 기도, 관상의 은총, 그리고 언제나 거룩한 성사를 잘 받을 수 있는 은총을 청하십시오.
감실의 빛을 받은 여러분은 죄의 간악함을 깨닫게 되어 예수님을 창으로 찌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가시관을 씌우는 등의 악행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온갖 노력보다 하느님의 아주 작은 은총이 훨씬 더 가치가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저는 여러분에게 고해성사 때 지녀야 할 통회의 정신에 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고해성사를 잘 보기 위한 다섯 가지, 또는 여섯 가지 마음의 자세를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곧 기도, 양심성찰, 죄에 대한 통회의 마음, 더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 죄의 고백, 참회와 그에 뒤따르는 보속인데, 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통회입니다. 159 |
1. 통회란 무엇인가?
하느님의 선물인 통회는 다음과 같이 정의됩니다. 곧 더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이끄는 죄에 대한 역겨움과 혐오감, 깊은 슬픔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거룩한 이유로 주님께 상처를 입혀드렸다는 것 때문에 느끼는 거룩하고 달콤한 비애입니다!
이러한 불만스러움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매우 특이한 느낌으로, 자신의 잘못으로 비난을 받을 때 느끼는 불쾌감과는 아주 다릅
니다!…
통회가 무엇인지 올바르게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막달레나를 생각해봅시다. 그녀가 지은 죄는 아주 수치스러운 것이었습니다만,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자신이 어떤 죄의 심연에 빠져있는지 깨닫고 통회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구세주께 감히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처지였지만, 속죄하려는 열망으로 용기를 내어 바리사이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분 발치에 엎드려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닦아드리는 것만 아니라, 아주 귀한 향유를 발라드렸습니다. 자신의 몸을 치장하기 위해 사용하던 값진 향유를 예수님을 위해 사용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저 여자가 누구인지 알 터이고 자기에게 손을 대도록 놓아두지1 않았을 텐데’ 하고 속으로 말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이를 알아차리시고 두 사람의 채무자에 대한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둘 다 갚을 길이 없었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160 | 시몬이 ‘더 많이 탕감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은 ‘옳게 판단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주었다.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
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2
자 보십시오, 통회를 얼마나 경이롭게 묘사하고 있습니까!
죽을 죄를 지었을 때의 통회는 보편적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모든 죄가 다 포함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죽을 죄에 대한 참된 통회는 소죄에 대한 통회도 하게 합니다. 어떤 수녀가 “저는 저의 모든 죄를 뉘우치지만, 그 우정만은 끝내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면 참된 통회를 한 것이 아닙니다. 그뿐 아니라 하느님께 드린 서원의 중대함으로 인해 그 우정은 죽을 죄도 될 수 있으므로 모고해가 됩니다.
올바른 양심을 갖는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불행한 이들이 아니라, 가난한 이로 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 중 누군가가 어떤 장소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장소 가까이에 더 가치있어 보이고 외관도 훌륭한 종교적 시설이 있는 것을 알자 ‘내게 더 훌륭한 곳으로 갈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니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하고 말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수녀는 161│자기 자신의 거취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신분이 아니었기에 잘못을 범하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 중에 누군가가 “그 수녀님이 제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는 이야기를 했지만 마에스트라에게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한다면,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 사실을 밝혀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혼란을 주는 말은 사람을 실망하게 만들고, 성소에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반복해서 말씀드립니다만, 전염성이 강한 실망이라는 병은 절대로 퍼뜨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수도회에 들어와서 실망
이라는 씨를 뿌리는 사람은 큰 책임을 지게 됩니다!
보편적인 죄, 모든 죄의 뿌리가 되는 죄가 아닐 경우에도 통회는 최고의 통회여야 합니다. 곧 앞으로는 어떤 경우에도 하느님께 상처를 드리는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이 암시하신 자세는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3
죄에 빠지기보다는 무엇인가 하나를 잃겠다는 마음자세가 필요합니다. “제게는 신앙을 위해 순교할 용기가 없습니다.”라면서 유혹 앞에 아무런 방비책도 없이 있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런 순간을 당해보지 않았기에 당연히 은총을 통해서 이겨낼 힘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162│그 순간을 이겨낼 현행은총이 내려지지 않는다면, 그 누가 환한 얼굴로 늠름하게 고문을 받으러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또한 통회는 ‘초자연적’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범한 죄에 대해 자연적인 이유(불명예, 질병, 재산 낭비)만을 내세우며 뉘우치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초자연적인 근거에 토대를 두어야 합니다. 사실 죄를 지음으로써 우리는 하느님께 상처를 드렸고, 당신의 성자 예수님의 죽음을 초래할 정도로 우리의 영적 파멸은 심각한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2. 통회는 필요하다
통회가 꼭 필요할까요? 예, 필요할 뿐만 아니라, 용서받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요소입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4
세례자 성 요한은 우리에게 “회개하여라, 뉘우쳐라, 악의 뿌리를 뽑아버려라!”5 하고 외쳤습니다.
그렇지만 악의 뿌리는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 없이는 뽑아버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물 없이 빨래를 할 수 없는 것처럼 통회 없이는 자비를 얻을 수 없고, 악의 뿌리를 근절할 수도 없으며, 죄 사함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50번의 사죄경을 베푼다 해도 단 한 번의 용서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소죄는 여러 방식으로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섯 가지 소죄를 범했는데 두 가지에 대해서만 통회를 했을지라도 다른 세 가지 죄도 사해집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것은 하나뿐입니다. 진지하게 걸어가십시오. 163│잘못한 것이 없다고 여겨지더라도 많은 잘못을 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죽어가고 있음을 느껴야 합니다. 언제나 더 깊은 겸손으로 살아갑시다. 내가 하느님 앞에서 어떤 상황인지 누가 알겠는가!라고 생각합시다.
앞으로는 착각에 빠지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이제는 어린아이가 아니며, 이미 많은 선을 행하기 위한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깊이 인식하면서 실천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무 의심 없이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신분에 따른 의무가 있습니다. 그 의무는 한 가정을 지키는 어머니들 못지않게 중대하고 절실한 것입니다. 어떤 어머니가 자녀를 잘 키워 평화의 천사로 칭송을 받을 정도라면, 남편을 사랑하고 위로했다면, 가정의 많은 고통을 떠안았다면, 그 어머니는 구원
받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여러분도 성소에 잘 응답했다면, 매일 여러분에게 주어진 영적 작업을 잘 행했다면,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더 근면하게 협력했다면 구원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더 편안하게 살려는 의도로 수도신분을 택하고, 계속 그런 의도로 살아간다면 아주 심각한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는 자매들이 얼마나 많은 노고와 얼마나 많은 고뇌 속에 살아야 하는지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는 봉쇄 수녀원을 원합니다. 그곳에서 제가 바라는 평화를 누리며 살고 싶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출판-사도직을 통해 일하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 아니기에 올바른 염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을 하기 위한 자유입니다! 잘못 생각하는 죄를 너무 가볍게 여기지 맙시다!
164 | 어떤 자매들은 기도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일을 게을리합니다. 불쌍한 사람들! 자신이 세라핌이 된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청빈서원은 노동을 중요시합니다. 서원을 한 그들은 자신의 의무를 완수하기 위해 더 많이 공부해야 합니다!
3. 어떻게 하면 죄에 대한 통회를 잘 할 수 있는가?
1) 성체성사 안에 계신 예수님의 발치에서 하느님께 드린 상처를 더 깊이 숙고해야 합니다.
2) 통회는 천상적 선물이므로 복되신 동정녀와 성인들의 전구를 통한 기도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통회는, 하느님의 어지심 안에서 사는 자녀로서 신뢰하고
빛을 받는, 초자연적이고 보편적인 최상의 통회가 되어야 합니다.
돌아온 작은 아들처럼 행동하십시오. 그는 모든 것을 탕진한 뒤 굶주림에 내몰려 고통을 받게 되자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굶어죽겠구나!’ 그러니 이제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6
만일 마귀가 불신을 부추기며 여러분을 유혹한다면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여러분에 대한 사랑 때문에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용서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스승의 발치에 앉아 울던 막달레나의 통회를 본받읍시다. 예수님께서는 그녀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자는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1 원문에는 lascierebbe로 되어있다.
2 루카 7,39-48 참조.
3 마태 5,29-30.
4 루카 13,5.
5 루카 3,8-9 참조.
6 루카 1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