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짓는 사람이고, 가난한 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이는 행복한 사람이다. 악을 꾸미는 자들은 반드시 길을 잃게 되지만, 선을 꾸미는 이들에게는 자애와 진실이 따른다.”(잠언 14,21-22)
1. 우리 자신에 대한 통제는 마음의 통제로 이루어집니다. 마음이 정직하고, 선하며,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을 때 마음에 평화가 깃들입니다. 마음은 선을 창출하는 탁월한 원천이거나, 악을 발생시키는 증오스러운 기술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 마음을 인도하거나 제지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내 아들아, 너의 마음을 나에게 다오.”119라고 말씀하십니다.
양심이 있는 사람들은 큰 존경을 받기에 마땅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군가를 애정이 담기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고 경계합니다. 대신에 섬세하고 부드러운 마음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주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사람은 사랑받을 때 본능적으로 똑같이 반응합니다. 마음은 위대한 동력입니다.120 이것은 |
교육자와 사도들의 힘입니다. 그들은 사랑하고, 사랑으로 극복해 냅니다.
마음의 움직임은 특별히 네 가지로, 연민, 헌신, 선의, 우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천상 모델에 맞추어 자신의 마음을 가꾸고자 하는 사람은 이 네 가지를 거룩한 마음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2. ‘연민’. 이것은 선한 마음의 첫 번째 요인입니다. 왜냐하면 고통은 연민을 자극하고 감동시키며, 연민은 고통을 위로하기 위하여 고개를 숙이기 때문입니다. 보고, 느끼며, 슬픔에 젖어듭니다. 그리하여 치유하기 위하여 애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성 빈첸시오 드 폴은 파리 거리에 나가 고아와 걸인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구호소와 병원, 사랑의 협회, 피신처를 설립하여 버림받은 이들과 약자, 병든 이들을 돌보았습니다. 재소자들을 위로하고, 위험에 처한 이들을 보호해주며, 전쟁으로 인해 굶주림에 시달리는 군중들에게 빵을 주었습니다.
3. 한편, 악한 마음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합니다. 심하게는 고통을 볼 줄 모릅니다. 그는 거만하며,121 예리코의 길을 가던 사제처럼 길가에 쓰러져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보지 못한 척합니다.122 그는 아픈 병자에 대해 연민을 느끼지 못하고,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희생하지 않으며, 자기의 돈을 내어놓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이들의 질병은 무질서한 삶의 원인이라고 비난하는 일을 서슴치 않습니다. 더 나아가 정신적인 고통에 대해서도 무감각한 태도를 보입니다. 침묵을 지켜야 할 때 오히려 떠벌립니다. 아직 명예를 지켜줄 수 있음에도 암시와 악의적인123 해석으로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듭니다. 그는 절망에 빠진 이들과 모함을 받은 이들을 짓밟으면서 악마적인 쾌락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상처를 치료해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비통하게 만들고, 악화시킵니다. 타인의 불행이 그의 무관심을 움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단지 그가 더 잔인해지고 있다는 것을 드러낼 뿐입니다. 이렇게 그는 악한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찰 – 두 가지 묘사: 두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이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일까?
결심 - “저 군중이 가엾구나!”124라고 탄식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을 것.
기도 – 복되신 예수님, 당신은 저희를 초대하시어 당신의 마음을 본받도록 하셨나이다. 그러나 저희의 마음은 당신의 것과 는 너무도 다릅니다. 제 안에 당신의 연민과 선하심의 감정을 부어주시어 모든 불행한 이들을 향해 나아가게 해주소서.
119 Praebe, fili mi, cor tuum mihi.(잠언 23,26)
120 이것은 아주 효과적인 표현으로, 알베리오네 신부의 다른 글에도 언급되어 있다.(「성 바오로」, 1953년 9월-10월 참조;「복음을 위한 몸과 마음」, (서울-바오로딸), 158쪽; NPS, p.174) 알베리오네 신부가 마음의 역할에 부여하고 있는 중요성과 가치는 아직 개척해야 할 부분이다! 이러한 주제에 대한 그의 전망의 혁신적인 측면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마음은 성경적 개념에 따라 단순히 생명과 생각, 지향의 바탕일 뿐만 아니라, 감정의 바탕이기도 하다. 마음-감정은 기도에서 연결되어야 한다. “기도는 감정을 다스려야 한다. …”(DF, 14항)
121 거만한, 오만한.
122 루카 10,30-31 참조.
123 사악한, 악한.
124 마태 1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