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1요한 3,2)
1. 천국은 하느님을 마치 그분 안에 있는 것처럼 명료하게 인식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은 무한하시기 때문에 영혼은 그분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그분을 직접 뵙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오로지 피조물을 통해서만 그분을 알 수 있습니다. |
피렌체 공의회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세례를 통해 원죄의 사함을 받은 영혼은 다른 죄로 얼룩지지 않았거나 완전히 정화되었다면 임종하는 즉시 곧바로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영혼은 하늘나라에서 한분이시고 삼위이신 하느님을 마치 그분 안에 있는 것처럼 명료하게 직관할 것입니다.”100 천사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얼굴을 늘 바라보고 있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 바오로는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1코린 13,12)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이며, 그분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직관하게 될 것이고, 그분의 얼굴에서 모든 진리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인성, 지극히 거룩한 동정녀, 모든 성인들, 자연계의 모든 진리, 누렸던 은총, 그리고 우리의 응답을 보게 될 것입니다.
2. 하느님을 직관하는 것은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101 교회가 가르치는 신비와 진리를 믿는 사람은 언젠가 기적처럼 명료하게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믿음은 영광을 얻을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모든 계명과 교리, 진리를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세례 때 선물로 받은 것으로서, 행동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종교교육으로 함양되어야 하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풍요로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믿음에는 세 가지 의무가 있습니다. 알고,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102 그러므로 지상에서 믿음을 공부하고, 동의하고, 고백(증거)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루카 12,8)
3. 저는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시고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를 믿나이다. 저는 하느님의 외아들이시고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나이다. 그분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를 가르치시고, 우리를 위하여 수난을 받으시고 죽으시며 부활하시어 하느님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으셨음을 저는 믿나이다. 저는 성령과 거룩한 가톨릭 교회를 믿고, 성인들의 통공과 죄사함을 믿으며, 영원한 생명을 믿나이다.
성찰 – 나는 믿음의 진리를 공부하고 있는가? 나는 마음속 깊이 확고한 믿음을 지니고 있는가? 나는 믿음의 자각을 말과 행동으로 드러내는가?
결심 – 하느님의 말씀과 책을 통해 믿음의 진리를 함양할 것.
기도 – 주님, 제 믿음을 성장시켜 주소서.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 당신 마음에 들 수 없나이다.103 제가 당신께 가까이 나아가고 영적 생활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나이다. 나의 하느님, 가톨릭교회의 품에서 태어나게 해주신 것에 대해 참으로 감사드리나이다! 마음을 다하여 당신께 감사드리오며 제 믿음에 따라 살아가고자 하나이다.
100 피렌체 공의회, 1439-1445, “그리스인들을 위한 교령”.(덴징거-휘너만, 「신경, 신앙과 도덕에 관한 선언 편람」, 다국어판, 1995, 1305번)
101 이것은 알베리오네 신부님이 자주 강조하는 개념이다. 그의 관점에서 볼 때 유념해야 할 것은, 믿음을 단순히 신적인 덕행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되며, ‘진리이신 예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믿음을 통해 하느님의 지혜에 참여하고, 하느님과 일치됨으로써, 하느님의 지혜는 우리의 지혜가 되고 하느님의 정신은 우리의 정신이 됩니다. …”(이 책 97항 참조)
102 “nosse, credere, profiteri”.
103 히브 11,6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