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마태 25,46)
1. “심판관이신 하느님께서108나에게서 멀리 떠나가라는 말씀을 듣는 사람은 모두 저주받은 자들이며, 영원한 불 속에서 끊임없이 벌을 받을 것입니다. 심판관이신 하느님께서 나에게 오라는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모두 복된 이들이며, 하느님 아버지의 왕국에서 하늘의 상급을 받아 누릴 것입니다.”라고 성 이레네오는 말합니다. 하느님은 영혼을 창조하셨으며, 그 영혼은 결코 소멸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세상 끝날에 부활할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몸이 영혼과 함께 심판대에 서게 될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선인과 악인으로 나누어질 것이며, 악인은 영원한 벌을 받을 것이고, 의인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하느님처럼 영원할 것입니다. 만일 기쁨에 끝이 있다면 그것은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형벌에 끝이 있다면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하늘이 참되게 복된 곳이라면 기쁨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고, 지옥이 절망의 심연이라면 저 아래는 결코 고통의 끝이 없을 것입니다.
2. 형벌이 아무리 엄청나게 무거운 것이라도 길게 지속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엄청나게 무거운 형벌이 아닐 것입니다. 마치 수술받을 때의 고통과 비슷할 것입니다. 그러나 형벌이 아주 길고 끝이 없다면 아무리 가벼운 것이라도 사라지지 않는 엄청나게 무거운 고통이 됩니다. 몇 주, 몇 달, 몇 년간 산책과 같은 것을 통해 받는 위로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기에 오히려 |
더 가혹한 고통으로 뒤바뀔 뿐입니다.
지옥에서는 인간의 감각이 고통의 벌을 받고, 인간의 모든 감각 기능이 고통을 겪으며, 육신 전부가 불 속에 잠긴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지옥에서 타오르는 불은 결코 꺼지지 않습니다. 단순히 몇 세기나 몇 십억 세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영원토록 꺼지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죄인은 그곳에서 결코 불의 형벌을 피할 길이 없으며, 용서받지 못할 것이고, 고통이 완화되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천국의 영광 또한 영원합니다. 영혼이 더는 죄를 짓지 않을 것이며, 하느님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복된 이는 영원토록 행복을 향유할 것이고, 마치 매순간 새롭게 시작하는 것처럼 영원토록 활기가 가득할 것입니다. 늘 기쁨에 목마르지만, 또한 늘 채워질 것입니다. 복된 이들은 만족감으로 가득채워져 있는 질그릇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109(1테살 4,17)라고 성 바오로는 말합니다.
3. 주님, 그러니 영원히 타오르는 불 앞에서 한순간의 만족감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만일 한순간의 만족감이 평생 지속된다 하더라도 수십억 년과 수십억 세기 동안 누리는 형언할 수 없는 황홀감에 비하면 백 년의 기쁨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성찰 – 부적절한 쾌락을 맛볼려고 할 때, 한순간의 쾌락이 영원한 고통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성인들은 지혜롭고, 사리에 밝으며 현명한가, 아니면 사악한가?
그리고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성경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수효는 끝이 없다고 말한다. 혹시 내가 여기에 속하지는 않는가?
결심 – 다섯 명의 슬기로운 처녀들과 다섯 명의 어리석은 처녀들의 비유 이야기를 기억하고,110 죄의 위험을 경계할 것.
기도 –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제게 지혜로움을 주소서. 분별의 은혜를 제게 내려주소서. 제가 용기를 내어 선을 위하여 일할 줄 알게 하시고, 보상으로 영원을 획득할 줄 알게 하소서.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처럼 하느님은 우리 소망의 완성입니다. 우리는 끝없이 그분을 뵙게 될 것이며, 아무런 망설임없이 그분을 사랑할 것이고, 기꺼이 그분을 찬양할 것입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평온을 얻을 것이며, 지고의 선이신 그분을 관상할 것입니다. 보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찬양할 것입니다.
108 DFms 31 참조. “1. 영원은 끊임없는 생명을 온전히, 한꺼번에, 그리고 완전히 소유하는 것이다(interminabilis vitae tota simul et perfecta possessio). 인간적인 예측을 한다 해도 영원이 무엇인지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영원한 생명, 영원한 불 속(Vitam aeternam, ignem aeternum). 2. 저 세상으로 건너간 사람들 중에 축복받은 이들은 그들 몫인 최대의 평온을 누리면서 매순간 영원히 충만한 기쁨을 향유한다. 저주받은 이들은 무서운 절망뿐 아니라 현재 당하고 있는 고통의 중압감을 한꺼번에(tota simul) 영원히 짊어져야 한다. 예를 들면 평평한 탁자 위에 눕혀져 납으로 된 포환으로 내리누르는 듯한 중압감이다. 3. 영원은 우리 영혼에 대단한 자극이 되어야 한다. 영원이 위험에 놓일 경우, 아무리 안전을 강조해도 충분치 않다(nulla nimia securitas ubi periclitatur aeternitas). 영원은 우리에게 달린 것이다. 인간은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가야만 한다(ibit homo in domum aetertatis suae). 삶은 영원을 준비하는 것인데, 지혜로운 자는 어떠한 희생을 치른다 해도 자신을 구원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웃으면서 자신을 멸망시킨다.”
109 “Sic semper cum Domino eri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