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 있는 사람은 사려 깊은 생각을 지나치지 않지만, 거만하고 오만한 자는 겁 없이 나서리라. 지각 없이 행동하지 말고, 행동하는 동안에는 마음을 바꾸지 마라. 모든 일에서 너 자신을 지켜라. 이것도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집회 32,18-19.23)
1. 양심114은 내 영혼 자체이며, 나의 내적 ·외적 활동을 숙고하고 조정합니다. 양심은 숙고하는 능력115이 있어서, 나의 행동을 관찰하고, 내가 행하려고 하는 것이 정당한지 또는 금지된 것인지를 판단합니다.
나의 영혼에서 울리는 하느님 음성의 메아리입니다. ‘인간의 참된 생명’입니다. |
해야 하는지 또는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압니다. 해야 하는 것인지 또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를 알려주는 실천적인 판단입니다. 내 존재 깊숙이 새겨져 있으며, 유해한 꿈에서 보호해주는 하느님의 전령사입니다. 넘어지면 일어설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멈춰서면 앞으로 나아가도록 부추겨줍니다. 절망에 빠지면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격앙될 때는 현실을 의식할 수 있도록 차분하게 해줍니다.
2. 양심은 ‘친절한 안내자’입니다. “음울한 분위기를 경계하라. 그러한 동료, 그러한 독서를 피하라. 그러한 오락은 멀리하라. 생각과 마음을 조심하라. 감정의 변덕스런 움직임에 맞서라.” 양심을 말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러나 양심의 소리를 더는 듣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양심은 강력한 ‘제동장치’입니다. 유혹에 휩쓸리어 뜨겁고 격정적인 본능이 난폭한 욕구116에 따라 나설 때, 양심은 그것을 통제하고 억제하며 다스리어 치명적인 타락에 빠지는 것을 막아줍니다. 한편 양심의 소리가 무시되고 사람이 파국의 비탈길로 미끄러져 갈 때, 양심은 더욱더 큰 소리로 반발하고, 건전한 반응을 일깨워줍니다. 경악할 만한 환상이 지나가고 나면, 양심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사람은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 비탈길을 다시 올라가며, 진리와 선의 길을 걸어갑니다.
양심은 진흙탕에 빠진 패배자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할 것이며, 재기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하고, 회심하도록 인도해줍니다. 비록 죽음에 직면한 순간일지라도 양심은 단념하지 않습니다.
양심은 ‘자극제’입니다. 죄인들에게도, 의인들에게도 자극제가 됩니다. 게으름뱅이와 잠꾸러기를 깨우는 자극제가 됩니다. “어찌하여 재능을 무기력하게 방치하는가? 어찌하여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인생을 탕진하는가? 심판의 날이 두렵지 않는가?”
양심은 낙담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줍니다.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일깨워줍니다. “지울 수 없는 얼룩은 없습니다. 하느님은 악인의 죽음을 바라지 않습니다. 악인이 자기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117 은총과 힘은 기도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구원을 얻습니다.”
3. 나는 침묵의 시간이나 고뇌의 시간에 다음과 같은 음성을 자주 들었습니다. “더욱 고결하게 살아라. 한층 더 열의를 가지고 살아라. 한층 더 마음을 드높이 들어 올려라. 한층 더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져라.”
성찰 – 나는 양심의 소리에 얼마나 가치를 두었는가?
결심 – 자주 잠심의 시간을 가질 것. 내 주변의 소음을 모두 제거하여 내밀한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일 것.
기도 – 주님, 양심을 통하여 제 존재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당신의 음성을 듣나이다. 음울한 꿈에서 저를 보호하여 주시고, 넘어지면 저를 일으켜 주소서. 멈춰 서면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시고, 저의 비겁함을 이길 수 있게 해주시며, 저의 나약함을 극복하게 해주소서. 오 주님, 당신의 음성에 온순하게 귀 기울이게 하시어 당신의 경고를 따르게 하소서.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118
114 양심 주제에 대해 알베리오네 신부는 1957년 3월에 발행된「성 바오로」지에 “양심의 증언(Testimonium conscientiæ nostræ)”이라는 소논문을 실었다. 이를「복음을 위한 몸과 마음」, (서울-바오로딸), 313-334쪽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115 창립자는 ripiegarmi를 ‘반성하다’, ‘정신을 차리다’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116 강한 열망들, 갈망들을 뜻한다.
117 에제 33,11 참조.
118 시편 95,8; 히브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