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란 여인에게서 난 몸, 수명은 짧고 혼란만 가득합니다. 꽃처럼 솟아났다 시들고 그림자처럼 사라져 오래가지 못합니다. 바로 이런 존재에게 당신께서는 눈을 부릅뜨시고 손수 저를 법정으로 끌고 가십니다. 그 누가 부정한 것을 정결하게 할 수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진정 그의 날들은 정해졌고, 그의 달수는 당신께 달려 있으며, 당신께서 그의 경계를 지으시어 그가 넘지 못합니다.”(욥 14,1-5)
1. 죽음38은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영적 생명, 곧 은총의 상실은 영적 죽음, 또는 대죄상태라고 말합니다. |
육체적 생명의 상실은 물리적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단지 육체가 영혼과 분리되어 죽는 것입니다. 영혼과 육신이 결합되어 있는 인간적 결합이 해체되는 것입니다. 육신은 그 본성상 부서지고 부패될 수밖에 없습니다.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Memento homo quia pulvis es et in pulverem reverteris.”(창세 3,19) 우리는 바람이 흩날려버리는 먼지이고, 행인이 밟고 지나가는 먼지이며, 교회가 부활의 희망으로 축성하고 거룩하게 생각하는 먼지입니다.
2. 죽음은 시련의 종착점입니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때에는 아무도 일하지 못한다.”(요한 9,4) 성 예로니모는 “우리가 살아있을 때만 선행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죽었을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일정한 수명을 부여하셨습니다. 그 기간 동안 사람은 성실하게 사랑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지상생활이 끝날 때 우리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영원히 구원을 얻든지 아니면 영원히 구원을 잃어버리든지 할 것입니다.
3. 나의 죽음의 시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죽음은 나를 기다리고 있고, 나는 매일 죽음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달력을 넘길 때마다 나의 생명의 날들은 가혹하게 줄어듭니다. 나는 무덤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벌써 많은 지인들이 나를 떠나서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그들은 묘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는 곧 그들에게 당도할 것입니다. 그때 육신이 없는 내 영혼은 더는 어떤 공로도 쌓지 못할 것이며, 또한 죄의 용서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
나는 선행이나 악행의 결실을 가지고 심판대에 서게 될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만일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 날이라면? “너의 집안일을 정리하여라. 너는 회복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39
성찰 – 나는 죽음의 교훈을 늘 유념하고 있는가? 내가 행하는 활동이 죽음의 순간에 위로와 격려가 될 수 있는가? 아니면 형벌의 계기가 되겠는가?
결심 – 나는 모든 활동을 내 생애의 마지막인 것처럼 실행하도록 할 것.
기도 – 나의 생生은 천막처럼 잘려 나갔습니다. 베짜는 이처럼 그분께서 나를 베틀에서 잘라버리셨습니다. …40 당신 앞에서, 오 주님, 저는 제 영혼의 비통함 속에서 저의 온 생애를 다시 살피겠나이다. 주님, 만일 그러한 것이 생명이라면, 만일 그러한 것들 안에 제 영혼의 생명이 심어져 있다면 저를 고쳐주시어 제게 생명을 주소서. 그러면 말할 수 없는 저의 비통함이 평화로 바뀔 것입니다. 당신은 저 자신을 잃어버리게 함으로써 제 영혼을 해방시켜 주셨고, 저의 모든 죄를 어깨 너머로 던져버리셨나이다.
38 DF, 30-32항 참조.
39 2열왕 20,1; 이사 38,1.
40 이사 38,12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