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성바오로딸들이 묵주기도를 많이 바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누구를 기다린다든가, 이 일에서 저 일을 하러 갈 때, 기차를 기다린다거나 기차로 여행하면서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묵주기도는 특히 거룩한 순명을 잘 하도록 많은 도움을 주며, 기쁨의 신비와 고통의 신비가 특히 유익합니다.
영광의 신비에서는 순명을 잘 한 사람들이 받는 상을 보여줍니다. “미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도다.”1
예수님의 순명에 대한 성 바오로의 말씀을 묵상합시다. “그리스도께서 순명하셨습니다.” 어느 지점까지? “… 죽기까지 순명하셨습니다.”2 예수께서는 몇몇 수녀들이 젊은 시절에만 순명하듯 하지 않으셨습니다.
수도회는 회원들이 순명을 잘할 때 강한 힘을 지니게 됩니다.
예수님은 청년 시절까지만 순명하신 것이 아니라 죽음의 순간까지 순명하셨습니다. “나는 이제 어린이가 아니다. 이제 나이가 들었다.”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때부터 순명을 더욱 잘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세상이 행하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로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스무 살이 되면 가정을 이루어 자유롭게 삽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때부터 순명과 정결을 실천하며, 금전을 취급하기는 하지만 수도회에 내 놓으면서 청빈을 실천하게 됩니다. (프로파간디스타들이 집에 돌아오면 기쁘게 맞아들이고, 보급이 잘 안 되었을 때에도 격려하도록 합시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혹시 프로파간디스타들이 그날 많이 보급하지 못했다고 해도 다른 방식으로 봉헌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주님께는 많은 길이 있습니다. 아스팔트 길만이 아니라 항공을 이용하실 수도 있습니다.)
저는 성바오로딸 가운데 누군가에게 분원장의 명령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프리마 마에스트라라면 이렇게 하지 않으셨을텐데…”라고.
여러분은 주어진 명령을 그렇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분명하게 회헌을 거스르지 않는 한 주어진 명령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분원장에게 순명해야 합니다. 동시에 분원장은 프리마 마에스트라에게 순명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스물다섯 살까지만 순명하신 것이 아니라 죽음의 순간까지 순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돌아가셨습니까? 폐결핵으로 돌아가신 것입니까? “그분은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3 |
순명을 통해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4
육화 안에 드러난 예수님의 순명에 대해 묵상합시다. 인류는 죄로 인해 비참한 상태에 놓였습니다. 인간은 멸망할 수밖에 없었으나 성자께서는 “원하신다면 저를 보내주십시오.”5라고 성부께 말씀하셨고, 아버지는 성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6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7 성 바오로는 또 말씀하셨습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죽음이 왔듯이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8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9 “땅 위에 슬기가 나타나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었다.”10
묵주기도의 기쁨의 신비는 그리스도께서 육화하실 때 순명하신 것에 대해 묵상하게 해줍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하느님의 아드님은 베들레헴에 탄생하러 가셨습니다.
그 당시 황제가 호구조사령을 반포했으므로 요셉과 마리아도 등록하기 위해 고향에 가야 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거절당한 그들은 동굴에 몸을 피했습니다. 예언을 이루려고 그곳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셨습니다. “유다 땅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11
그리고 헤로데 왕이 예수님을 죽이려 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집트로 피신하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대로 이집트로 피신하셨습니다.
또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리리라.”12 는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 나자렛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30세까지 어떻게 사셨습니까? 짧게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들에게 순종하며 사셨다.”13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33세까지 사신 분이 30년을 순명만 하셨다는 것은 11년 중의 10년을 그렇게 사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마리아와 요셉께 순종하셨고, 성 요셉이 돌아가시자 변함없는 온순함으로 마리아께 순종하셨습니다.
나자렛 집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우리에게 의견을 묻는다면 우리는 누구를 지명하겠습니까? 예수님이 아니겠습니까?
그분은 가장 지혜롭고 전능하시며, 하늘과 땅의 창조주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께 권고를 드리자면 그 집을 다스릴 분은 예수님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삼위께서는 그리스도가 순명하는 인간이길 원하셨으므로 피조물인 두 사람에게 종속하도록 하셨습니다. 신비입니다! 같은 신비가 제대 위에서 매일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부르는 인간의 뜻에 순명하시어 제대에 내려오십니다.
하느님 아들이 강생하시어 피조물인 두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과 두 사람이 그에게 명령했다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감탄스럽습니까? 이 두 가지 신비가 똑같이 감탄스럽고 숭고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때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이 완전한 것이 아님을 아시면서도 아주 작은 것에 대해서까지도 늘 순명하셨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단순하고 일상적인 것들을 예수님에게 지시했습니다. 물 긷기, 만들어진 물건을 손님에게 가져다주는 등의 일이었는데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단순한 마음으로 실천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의 동작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순명하실 때에도 많은 외적 자세를 취하지 않으셨으며 “나는 이것을 순명의 공로를 얻기 위해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쓰인 대로, 명령대로 단순하게 순명합시다. |
“여기는 남쪽이니까 다르게 해야 한다, 여기는 아르헨티나이니까, 여기는 미국이니까 등등” 핑계를 대지 마십시오. 어디서든 하느님 뜻에 맞추도록 하고, 하느님의 뜻을 우리의 뜻에 맞추려 하지 맙시다. 자기 뜻대로만 하려는 것인지 조심합시다!
수도서원을 하겠지만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공부시켜 주기를… 많은 조건을 내세웁니다!
어떤 분원장이 어느 날 뭔가를 하도록 지시했을 때 “수녀님이 하세요.
나는 공부를 했기 때문에 그것을 할 수 없어요!”라고 했다. 참으로 변덕스런 사람!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공부를 한 것입니까?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라면 순명을 더욱 잘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성체 때 예수께서는 사제를 통하지 않고 직접 신자들의 혀에 오실 수도 있으나 꼭 사제를 통해서 오십니다.
공부한 것이 (그 사람에게) 독립성을 조장한다면 그것은 저주받을 공부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지옥이나 “나는 하늘로 올라 나의 왕좌를 하느님의 어좌 곁에 놓겠다.”14라고 말한 교만한 루치펠에게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공생활 동안에도 예수님은 계속 순명하셨습니다. 물론 그때는 마리아께 순명하신 것이 아니라 (사제가 직무를 행할 때 어머니에게 순명하는 것이 아니듯이) 천상의 아버지께 순명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15라고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순명이 바로 여러분의 음식이어야 합니다. 순명을 먹고, 순명으로 양육되도록 하십시오!
복음 말씀을 들읍시다. “어느 날 예수께서
복음 말씀을 들읍시다. “어느 날 예수께서 어떤 집에 계실 때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 많은 군중이 있었다. 아직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사촌들이(이모의 아들들로, 이종 사촌들이었다. 그 당시에 이들을 형제라고 불렀다.)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16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이들은 예수님의 친척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비스러운 일처럼 생각됩니까? 피상적으로 생각한다면 그렇지만 깊이 묵상한다면 이해할 것입니다.
어떤 때 성모님을 부러워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하느님의 뜻을 행한다면 마리아처럼 예수님과 친척 관계를 갖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 마음 안에 예수님을 탄생케 하여 예수님의 어머니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많은 책과 팸플릿, 모범과 말로써 얼마나 많은 선을 행하고 있는지 누가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나아갑시다. 예수님은 성체성사를 세우신 다음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17라고 말씀하시고, 유다스에게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18하고 허락까지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올리브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당신을 체포할 원수들이 그곳으로 올 것을 아셨지만, 하느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그리로 가셨습니다. |
그전에도 여러 번 원수들이 예수님을 잡으려 했지만 아직 당신의 때가 오지 않았고, 하느님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를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분의 때가 왔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순명하는 아들로서 자신을 보여주십니다. 무릎을 꿇어 땅에 닿도록 깊이 머리를 숙이고 계신 모습은 말할 수 없는 슬픔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얼마나 아름다운 기도를 아버지께 드리시는지 들어봅시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19
여러분이 순명에 어려움을 느낄 때 놀랄 일이 아닙니다. 어떤 명령 앞에서 반발과 거부감을 느끼더라도 놀라지 마십시오. 이것은 우리 육신의 나약함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순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순명이 어려워질 때 언제나 잘 순명할 수 있도록 미사와 영성체를 잘하고, 성체방문 때 기도하십시오.
어떤 때 직책이 바뀌어 더욱 겸손할 수 있는 일이 맡겨질 때 무겁게 느낍니다. 그 일이 힘들어 건강까지 잃을 정도가 되더라도 “저는 땀을 흘리기까지, 죽기까지 순명하고 싶습니다.”라고 주님께 끊임없이 말씀드리십시오.
성 코톨렌고는 죽은 사람을 몹시 두려워하는 수사와 살았습니다. 코톨렌고는 그 수사에게 그 무서움을 이겨내게 하려고 거의 저녁마다 병원에 있는 죽은 이들에게 가서 강복하도록 했습니다. “이제 수도원으로 돌아가도 좋은데 먼저 죽은 이들을 강복해 주고 “깊은 구렁 속에서De profundis”20 를 바쳐드리시오.”
수사는 두려워 떨면서 “네, 그런데 죽은 이들이 일어나 제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코톨렌고는 그 명령을 취소하지 않고 농담을 해가며 그곳에 가도록 했습니다. 순명은 이렇게 많은 어려움과 또 많은 나쁜 경향을 이기게 해줍니다.
예수님은 쓴잔을 마시기까지 순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잔을 받아 마신 후 큰 위안을 받으셨습니다.21 여러분도 힘든 순명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주님께서 위안과 도움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순명했다고 해서 자랑하지 맙시다.
예수님은 유다스 앞으로 나가 원수에게 당신의 손을 내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가 아니라 원수에게 당신의 손을 내미셨다는 사실을 생각해 봅시다.
사제서품 예절 중에 이와 관련되는 상징적인 행위가 있습니다. 미사 중 ‘거룩하시다’부터 영성체 때까지 서품자들의 손을 묶어 놓습니다. 영성체가 끝난 후 주교는 서품자의 손을 두 손안에 넣고 “나와 나의 후계자에게 존경과 순명할 것을 약속합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약속합니다.”라는 서품자의 대답이 있고 난 후에 두 손을 풀어줍니다. 수도자도 자신의 손을 묶어야 합니다. 곧 예수께서 원수에게 자신을 맡기셨듯이 자신의 의지를 장상의 뜻에 맡겨야 합니다.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이 권세를 떨칠 때다.”22
빌라도가 예수에 대한 권한을 과시하자 예수님은 “네가 위로부터 받지 않았으면 나에 대해 아무런 권한도 없었을 것이다.”23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순명 때문에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갈바리아까지 가셨습니다. 그 십자가는 매우 무거웠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행한다는 것이 때로는 아주 무겁고 힘듭니다. 바로 그럴 때 예수께 기도하십시오. 예수께서 여러분의 거룩한 키레네 사람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십자가를 아무 불평 없이 지고 가시던 예수님처럼 여러분도 묵묵히 순명의 십자가를 지도록 하십시오. 형리들이 예수님에게 십자가 위에 누우라고 명했을 때 순순히 따르고 옷까지 벗기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묶어 놓을 필요도 없이 자신의 몸을 사랑의 끈으로 묶어 놓았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다음 높이 올렸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세 시간 동안이나 십자가에 매달려 계셔야 했습니다. 이미 피를 많이 흘리고 탈진하신 예수님이 세 시간 동안이나 운명하지 않으시고 견디신 것도 기적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자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해 사형 집행인들을 용서하시고, 성 요한에게 당신의 어머니를 선물로 주셨으며, 아버지께 버림받은 듯한 그리고 원수의 조롱까지 극도의 고난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모든 것을 이행했습니다. ‘다 마쳤다.’”24 하시기까지 모든 것을 끝까지 다 받아들이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머리를 숙이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먼저 머리를 숙이셨습니다. 몸이 굳어져 자연적으로 머리가 숙여진 것이 아니라 순종의 뜻으로 먼저 머리를 숙이고 숨을 거두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당신 이름을 높이 올리셨습니다. 그분의 순명으로 우리는 모두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25라고 쓰여 있듯이 이것이 ‘순명 안에서 산 한 영혼의 역사’입니다.
여러분의 생애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도록 합시다. 하늘에서 천사들이 여러분 생애의 제목을 “순명 안에서 산 어떤 사람의 역사” 라고 가장 아름답게 쓸 수 있도록 합시다. 서원을 발한 날부터 끝날 때까지, 곧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여러분 생生의 마지막 행위가 순명의 행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로써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순명만큼 하느님을 사랑하게 해주는 것이 없으므로 여러분은 하느님에 대한 완전한 사랑에서 죽을 것입니다.
머리가 굳어지고 어려움이 많을 때 성당에 가서 주님께 여러분의 자유를 온전히 받아주시도록 “주님, 저의 모든 자유를 받아주십시오.”26라고 간청하십시오. 여러분의 자유를 온전히 포기함으로써 언제나 하느님의 뜻만을 행하는 천국에 기쁘게 들 수 있을 것입니다.
1 루카 1,52 라틴어 원문: “Et exaltavit humiles!”
2 필리 2,8 라틴어 원문: “usque ad mortem.”
3 필리 2,8-9 라틴어 원문: “Mortem autem crucis” “Propter quod [et] Deus exaltavit illum.”
4 필리 2,9 라틴어 원문: “Et dedit illi nomen quod est super omne nomen.”
5 이사 6,8 참조.
6 참조: 히브 10,5 라틴어 원문: “Corpus aptasti mihi.”
7 갈라 4,4 참조.
8 로마 5,18 참조.
9 요한 1,14 라틴어 원문: “Et Verbum caro factum est.”
10 바룩 3,38 라틴어 원문: “Et cum hominibus conversatus est.”
11 마태 2,6.
12 마태 2,23 라틴어 원문: “Quoniam Nazarenus vocabitur.”
13 루카 2,51 라틴어 원문: “et erat subditus illis.”
14 이사 14,13 참조.
15 요한 4,34.
16 마태 12,46-50 참조.
17 요한 16,7 참조.
18 요한 13,27 참조.
19 마태 26,39 참조.
20 시편 130 참조. 그리스도인 전례에서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 사용.
21 루카 22,43 참조.
22 루카 22,53 참조.
23 요한 19,11 참조.
24 참조: 요한 19,30 라틴어 원문: “Consummatum est!”
25 참조: 히브 10,7 라틴어 원문: “In capite libri scriptum est de me ut faciam voluntatem eius qui misit me.”
26 성 이냐시오 로욜라, 「영신수련」 n.234c 라틴어 원문: “Accipe, Domine, totam meam libertat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