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무한한 사랑에 대해 자주 묵상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주셨습니다.”1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셨고 계속 사랑해 주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신다면 우리가 청하는 모든 은총을 주신다는 것을 왜 신뢰하지 않습니까?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께 신뢰하는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 그리스도의 고난과 늑방의 상처를 보시어 모든 은총을 주시도록 청합시다. 우리 인생의 모든 가련함을 그분 안에서 발견할 수 있음을 신뢰합시다.
이제 죄에 떨어질 위험에 대해 봅시다. “위험을 즐기는 자는 그 위험으로 망하리라.”2 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모든 위험은 우리를 죄로 이끕니다.
길을 갈 때 길 가운데로 걸어간다면 자동차에 치일 위험이 있습니다.
절벽 끝으로 간다면 절벽 아래로 추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죄로 이끄는 위험에는 특히 세 가지가 있는데 유혹과 기회와 습관입니다.
1) 미움, 분노, 욕정, 복수, 교만의 유혹들은 악마에게서 올 수 있습니다.
이런 유혹들은 세상에서 기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주 자동차나 기차로 여행하여 거기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가지 현상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유혹은 자주 우리 자신에게서 올 수 있습니다. 미각, 교만, 게으름의 유혹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가든 육신을 지닙니다. 성 야고보는 “사람은 저마다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꼬임에 넘어가는 바람에 유혹을 받는 것이다.”3라고 말했습니다.
죄에 떨어지게 하는 첫 번째 위험이 이 유혹입니다.
2) 죄에 떨어지게 하는 두 번째 위험은 기회입니다. 어떤 사물이나 사람이 죄 지을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우리에게 미지근함, 게으름으로 이끌 때 바로 죄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미지근함보다 더 큰 죄에 이끌리게 한다면 더욱더 그렇습니다.
독서와 시간을 허비하게 하고 생각을 산만하게 하는 영상 등도 죄의 기회가 됩니다. 죄의 기회는 세상에든 공동체 안에든 어디에나 있습니다.
소유하고 있는 물건에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영상물이나 사진이 우리 마음을 산란케 한다면 우리에게 죄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3) 세 번째로 죄의 위험은 나쁜 습관입니다. 습관들이 쉽게 죄를 범하게 하는 것입니다. 불경스런 말을 하는 습관이 있다면 무의식중에 모독의 죄를 범하기도 합니다. 경솔하게 얘기해버리고 거짓말을 하는 나쁜 습관이 있다면 죄를 피하고자 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렇게 모든 죄에 대해서도 노력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나쁜 습관이 있음을 인식했다면 경계하여 그것을 끊어버리도록 애쓰는 동시에 특별한 기도를 바쳐야 합니다. 깊이 뿌리박은 결점들은 깊이 뿌리박아 다 자란 나무와도 같아서 이를 벗어나기 위한 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모든 죄의 위험을 피해야 합니까? 죄의 위험 중에는 의도적인 것과 의도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의도적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과 함께 간다면 분명히 죄에 떨어지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와 행동을 같이하는 경우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좌우되는 것이 아닌 다른 경우들도 있습니다. 성 바오로는 “모든 죄악을 피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 여러분이 아예 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4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직을 할 수도 없고, 세상에서 우리 육신을 지니고 있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면서도 그 위험으로 뛰어든다는 것은 죄가 됩니다. 의도적으로 죄의 기회에 빠지는 것이 죄입니다. 좋지 않은 생각을 일으키는 서적이므로 보지 말라는 장상의 지시가 있었음에도 그 책을 본다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알면서도 위
험에 빠지는 것이 죄입니다. 예를 들어 위험한 그림을 보면서 |
“나는 동의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이중으로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사랑을 거스르는 것뿐 아니라 정결까지 거스르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죄의 위험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합니다. “나는 위험한 기회에 빠지긴 했지만 죄에 떨어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위험한 기회에 빠지는 것이 죄의 행동과 마찬가지로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편이 낫습니다. 고해성사 때 “저는 정결을 거스르게 될 위험에 빠졌었습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죄의 기회에 동의했을 때 죄를 범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부르심을 받은 것 같지 않아. 주님께서 내가 수도자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은총을 주신 것 같지 않아…”라고 말하면서 습관적으로 성소에 대한 의심을 품는다면 항구하지 못한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특히 종신서원 후라면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런 생각을 키우는 사람은 쉽게 실망하고 수도생활을 중단하게 될 위험에 스스로 뛰어드는 것이므로 죄를 짓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죄의 위험에 떨어지려는 의도를 지닌 것은 아니지만 특정한 사람과의 애정, 쾌락, 기쁨을 맛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일 누가 물건을 훔치기 위해 어떤 장소에 갔다면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더라도 절도죄를 범한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전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위험에 빠진 경우에는 죄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수녀가 (질문하기를) “프로파간다를 하러 갈 때 좋지 않은 생각이 일어나는데 가야만 합니까?” 하고 묻는데, |
그 생각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므로 가야 합니다. 프로파간다 중에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게되고, 좋지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될 때에도 계속 해야 합니다. 수도자로서 순명으로 그 일을 하는 것이므로 죄의 위험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의도적이거나 위험에 근접한 기회를 만들지 않도록 피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을 생각하면서 좋지 않은 생각을 떠올린다면 자신을 그런 기회에 빠뜨려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사도직과 기부금 때문에 어떤 부인을 만나게 될 때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거나 세속적인 것들을 보게 되더라도 사도직의 목적이 분명하므로 의도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경우에는 기도하고 (의식적으로) 깨어있으면서 가능한 한 짧게 방문을 끝내야 합니다. 또 누군가에게는 너무 자주 가지 않도록 제한해야 합니다. 일반 사람 중에도 남들을 교화시키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너무 세속적이고 경솔하며 죄의 위험으로 이끌어 갑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은 준비가 잘 된 연장자들에게 맡기는 것이 좋습니다.
마귀가 선한 모습으로 유혹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내가 봉쇄 수도회에 입회했다면 위험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않고, 또 그런 상황을 보지 않아도 됐을 텐데…”라고. 이 수도회나 저 수도회를 더 좋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신 수도회를 가장 좋아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위험이 없다면 또 다른 위험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 위험에 대해 불평을 많이 하는 이들이 바로 봉쇄 수녀원 수녀들입니다. 여러분은 필요한 은총을 받게 될 것이니 부름받은 신분 안에 머물면서 평온하게 지내도록 하십시오. |
부름받은 착한 수녀라면 한 가정의 좋은 어머니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훌륭한 어머니라도 훌륭한 수녀가 되는 은총을 받지는 못할 것입니다.
신분의 은총을 신뢰하십시오! “내가 이런 일을 맡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분심 없이 나 자신에게 더욱 주의를 기울이며 살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맞는 말이지만 다른 이들의 책임자로 있을 때 자기 자신을 생각할 시간이 더 있어야 합니다. 남을 위한 사랑은 우리 영혼에 대한 사랑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 책임 때문에 분심이 든다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풍성한 은총을 주시길 주님께 더욱 기도하십시오.
그럼 이제 우리가 당하는 유혹에 대해서 어떤 점을 생각할 수 있는지 봅시다.
유혹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닙니다. 유혹을 이길 때는 공로를 쌓을 기회가 되고, 실패한다면 죄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유혹 자체가 우리를 더 악한 사람이 되게 하거나 착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유혹 앞에서 우리가 취하는 자세에 따라 사람이 바뀌는 것입니다. 착각하지 맙시다. 누구든지 유혹을 당하게 마련입니다.
주님의 기도 중에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5라는 구절을 외울 때 특히 게으름으로 의도적인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필요한 은총을 청합시다.
누구에게나 유혹이 다가옵니다. 예수님도 유혹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6 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승리하신 예수께 천사들을 보내시어 시중들게 하셨습니다.
끊임없이 유혹을 당하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기도로 주님께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어떤 상상이나 환상이 오랫동안 머리에 남아 있더라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 생각이나 환상, 행위가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에 동의할 때 죄가 되는 것입니다. 생각 없이 예상치 않게 어떤 영상을 보게 되는 것도 행위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죄는 동의가 있어야 하고, 동의하기 위해서는 의지의 작용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행위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더라도 행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흉한 것, 악이 항상 존재합니다. 진짜 악인 죄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합시다. 대죄뿐 아니라 소죄에 떨어질 위험에서 구해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자주 소죄에 떨어지는 사람은 차츰 대죄까지 범하게 됩니다. 소죄로 인해 힘이 약해지고 도움의 손길도 줄어들어 죄에 빠지게 됩니다. “위험을 즐기는 자는 그 위험으로 망하리라.”7
1 참조: 갈라 2,20 라틴어 원문: “Tradidit semetipsum pro nobis.”
2 집회 3,25.
3 야고 1,14 라틴어 원문: “Unusquisque tentatur a concupiscentia sua.”
4 1코린 5,10 참조.
5 마태 6,13.
6 참조: 마태 4,10 라틴어 원문: “Vade retro, satana!”
7 집회 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