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실천할 수 있도록 수호천사께 도움을 청합시다. 지금 우리는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극기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이 주제는 중요한 것이지만 듣기 싫어합니다.
항상 극기를 해야 하지만 사순절 동안에는 더욱 의무적으로 해야 합니다.
극기는 원래 제압한다는 뜻으로 방해되는 것들을 눌러서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욕정을 극기하여 우리를 지배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천국을 얻기 위해 극기를 실천하고, 십자가와 순교의 정신으로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본받아야 하는 우리는 극기해야 합니다. 우리가 범한 죄의 보속을 위해서도 극기해야 합니다. 선을 행하기를 원한다면 극기해야 합니다. 우리 신분이 어떠하든 덕을 실천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므로 덕의 실천을 위해서도 극기해야 합니다.
성 빈첸시오 드 폴1 은 극기는 영적 삶의 기초와 같다고 했습니다. 극기 없이 덕의 길에 진보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나를 따르고자 하면 (곧 그리스도인이 되려거든) 자기 자신을 버리라.”2 곧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자기 자신, 자신의 의지, 자신의 원의를 끊어야 하고, 마음을 다스리며 교만을 지배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극기란 태만을 이기는 것, (예를 들어 아침에 종 칠 때 힘들더라도 곧바로 일어나며) 또 묵상과 기도에 지성이 완전히 몰입하는 데 불필요한 모든 환상과 생각을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을 끊어버린다는 것은 환상을 몰아내고 음식을 절제하며 공부할 때나 사도직할 때 분심 없이 온전히 몰입하는 것입니다. 다른 성격의 사람들을 참아주고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에도 용서하며 혀를 절제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극기를 하지않는다면 참된 수도자가 될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수도생활이 바로 순명, 순결, 가난의 삶이라는 모든 극기의 삶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수도자가 되기 위해 규칙을 지키려면 극기가 요구됩니다. 마음에 드는 것만 나름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서원한 대로 살기 위해 시간표를 따르고 공동생활 등을 잘 하기 위해 마음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면에서 항상 극기해야 합니다. 눈의 극기를 하지 않는다면 결코 마음을 집중하지 못할 것입니다. |
눈으로 보는 것에서 죄로 넘어가는 것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깊이 주시하게 될 때 마음과 지성이 방해를 받습니다.
그러고도 죄에 떨어진다는 것이 놀랄 일입니까? 오히려 죄에 떨어지지 않는다면 놀랄 일입니다. 창문을 열면 바람이 들어오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럼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말입니까? 봐야 하지만 주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하고 있는 사람을 너무 주시하지 않도록 합시다.
필요한 교육을 받으면서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위험을 가져오는 사람에 관해서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그렇습니다. 사람의 얼굴을 너무 주시하는 습관을 갖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성인들에게서 배웁시다. 성 도미니코 사비오3 는 시선을 늘 조심하였습니다. 어떤 날 모든 동료와 함께 산책하러 나갔을 때 마침 넓은 서커스 장에서 말을 타고 곡예하는 것을 정신없이 보느라고 모두 멈추었습니다.
도미니코 사비오는 눈을 극기하였습니다. 동료들이 그의 극기의 까닭을 물었을 때 “천국에서 성모님을 뵙기 위해 눈을 지키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보이는 것을 본다는 것이 죄가 되지는 않지만 주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걸어갈 때 바람이 두렵다고 눈을 감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먼지를 일으킬 때 눈을 감는 것은 당연합니다.
둘째, 청각의 극기에 대해서 봅시다.
험담하는 것을 왜 듣고 있습니까? 험담하는 것을 듣고 나면 남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잃게 됩니다. |
완전한 사람이 없으므로 불평할 일이나 사건이 늘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함께 불평하도록 끌어들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참 나쁜 일입니다! 누가 이를 보속합니까? 어떤 때는 비방으로 진짜 죄를 짓는다는 것을 모릅니까? 비방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자기 자신을 해치는 것입니다!
남에 대해 선하게 말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까? 연장자 수녀는 자매들이 험담하는 것을 보게 되면 침묵하도록 해야 합니다. 곧바로 “우리 자신을 바라봅시다. 오늘은 그 사람이 잘못했지만 내일은 우리가 더 위중한 모독이라는 잘못을 범할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나쁜 말에 동의하여 어디까지 이르려는지요? 우리가 강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요?)
험담하는 것은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험담을 듣는 사람도, 험담의 대상이 되는 사람도 해를 입을 뿐입니다. 험담을 하는 것이 도둑질보다 더 큰 죄임을 왜 모릅니까? 한 푼도 훔치지 않은 사람이 남을 험담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조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돈보다 존중이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장상이나 자매들을 비방할 때 연옥에서 보속해야 할 것들을 쌓는 것입니다. “나는 단지 진실만 말하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참된 것이라고 해서 다 말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진실만 말한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혹시 우리가 색안경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혀를 극기해야 합니다. 침묵 시간에 침묵을 잘 지킵시다. 성당 안에서 이야기를 계속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성스러운 곳에 대한 존경도 잃어버린 것입니까? |
특히 아침 저녁 정해진 시간에 침묵을 잘 지킵시다.
혀를 극기합시다. 스스로 착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사제나 수도자에 대한 불평을 계속하면서 성당에 나가지 않는 냉담자와 세상에 있는 악에 대해서는 한탄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무슨 이득이 됩니까? 잘 안되는 일이나 사회악에 대해 두 시간 동안 불평하는 것보다는 성모송을
한번 바치는 것이 더 가치 있습니다.
수도자는 자신과 관계없는 일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과 관계없는 것에 대해서 모른다고 대답하는 것이 훨씬 좋은 인상을 주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여 명예를 훼손시켰다면 어떻게 회복시켜 주겠습니까?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재판관처럼 모든 사람, 모든 일을 판단합니다. 어떤 분원에서 잘못하는 것이 있기라도 하면 모두가 다 말하는데 그래서는 안됩니다. 항상 선을 뿌립시다. 순명, 애덕, 수도생활에 반대되는 말을 삼갑시다.
정의와 애덕의 이유일 때만 그에 대해 말하도록 합시다. 기도 안에서 하느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도록 합시다.
그리고 미각의 극기에 대해 봅시다. 단식에 대해 관면을 받았다 할지라도 미각의 극기를 할 기회가 적지 않습니다. 각 사람에게는 음식을 먹을 때 약간 덜 맛있는 것을 택하고, 한 조각을 더 먹고 싶지만 극기하는 등 많은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촉각의 극기에 대해서 봅시다. 하루 동안 특히 게을러지려 할 때 이것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아픈 것도 인내로 잘 참아내야 합니다. 죽을 때까지 아플 때가 많을 것입니다. |
건강도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속한 것이므로 잘 배려해야 하나 남용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육체적 고통, 사도직에서 오는 노고를 기꺼이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가장 비천한, 최하위로 보이는 일을 택합시다. 이것은 하느님 앞에서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모든 면에 준비된 자세를 지닙시다. 어떤 사람들은 결코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떤 수녀는 특정한 어떤 일을 해낼 능력이 없으면서도 그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자신이 낮추어진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셨지만 목수의 일을 싫어하지 않으셨습니다. 교만한 우리는 훌륭한 교육을 받으러 나자렛의 작은 집으로 갑시다!
계단이나 복도, 구석진 곳에서 두 사람이 만나 필요 없이 낮은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할 일을 하기 위해 성당으로, 제본소로 가십시오. 다른 분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려고 하는 사람들처럼 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그렇게 하여 분원에 세속적인 것이 들어오게 합니다.
극기의 실천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눈의 극기 없이 결백한 마음을 지니지 못합니다. 귀의 극기 없이 잠심 상태에 머물 수 없고, 혀의 극기없이 기도를 잘 하는 법을 배울 수 없습니다. 촉각의 극기 없이 참된 수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특별한 고행을 하고 싶어 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어떻게 권고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특별한 것보다는 먼저 일반적인 극기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사람은 많은 유혹 때문에 고복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고복은 아주 열심히 일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어떤 유혹도 머리에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악마에게서 유혹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유혹하는 자는 우리 자신입니다. 극기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플 때는 쉬어야 하지만 게으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우리의 모범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을 따르고 싶습니까? 극기를 실천합시다.
1 빈첸시오 드 폴(1581-1660): 프랑스 태생,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 선교 사제회와 애덕의 딸 수도회 창립자.
2 마르 8,34 참조.
3 도미니코 사비오(1842-1857): 현대의 성인, 12세에 토리노 돈 보스코의 오라토리오에 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