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기의 부족은 모든 죄의 근원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극기할 줄 알았더라면 우리가 멸망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고, 죄가 온 세상을 더럽히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온유한 성인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과 강한 투쟁을 했습니다. 자신과의 투쟁이란 미각, 태만, 혀, 호기심과의 투쟁을 말합니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신심생활 입문」1에서 “우리는 말을 적게 하지만 사랑스러워야 하고, 지혜로워야 하며, 대단히 사려 깊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성인은 적게 말하도록 거듭 말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덕이란 입을 꼭 다물고 있거나 얼굴을 찡그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덕이 아니라 결점입니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극기의 훈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
특히 극기해야 할 것은 자만, 칭찬받으려는 마음, 말에 관한 것입니다. 수고와 귀찮은 일을 함으로써 육신을 극기하고, 양심성찰을 잘 함으로써 극기해야 합니다. 이러한 작은 극기가 있을 때 자기를 잘 다스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적 극기는 우리의 지성, 의지, 마음이 완전히 하느님 안에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이미 보잘것없는 존재인데 여기서 더는 덜어내지 맙시다.
의지의 극기는 순명에 있습니다. 순명은 하느님께 대한 우리 사랑의 큰 시험입니다. 온종일 순명의 덕을 행할 수 있습니다. 순명은 명령하는 사람이 마음에 들어 그에게 기쁨을 주기 위한 자연적인 경향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명은 하느님의 뜻을 사랑으로 행하기 위해 나의 의지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또한 논리에 맞지 않고 잘 고려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더라도 행하는 것이 순명입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분이셨으나 요셉의 불완전한 명령을 따랐습니다. 성덕이란 이렇게 순종하는 데 있다는 것을 이해합니까?
성덕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순명의 길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순명을 잘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아포기가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라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중요한 계획을 세웠으나 감기로 눕게 되었다면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이 원하셨으니 나도 같은 것을 원한다고 해야 합니다. 우리 편에서 병을 예방해야 하고, 일이 잘 진행되도록 해야 하지만, 최선을 다했다면 평온하게 지내야 합니다.
일상생활의 규칙에도 순명해야 합니다. 매일 충실하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순명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모든 면에서 하느님의 뜻을 행하고, 하느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합시다. 모든 면에서 수도회와 일치하여 하도록 합시다. 모든 일, 곧 사도직, 휴식시간, 식사 중에도 우리 의지에 대한 포기가 있어야 합니다.
순명의 멍에를 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기꺼이 우리 뜻을 일치시켜야 합니다.
지성을 극기해야 합니다. 우리의 지성은 위험한 것을 본 것과 들은 것으로 분산됩니다. 어떤 것은 기억하지 말고 빨리 쫓아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수도복을 입고 있어도 지성 안에 세속적인 생각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면 수도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수도자가 된다는 것은 우선적으로 지성이 수덕적으로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을 생각하고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며 주어진 임무에 자기 지성을 다해야 합니다. 헛된 책이나 소설을 읽지 말아야 합니다.2 소설을 즐기는 수녀는 경박하고 허영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잠심이나 참된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지성이 수녀답지 못한 모든 것을 버립시다. 교리, 강론, 권고, 임무에 대해 생각을 기울여 수도자다운 생각을 하도록 극기합시다. 이에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도자가 아닌 듯이 계속 가족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부모와 친지들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3
언제나 가족을 생각하는 것은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결함입니다. 이제는 수도회가 어머니이고, 수녀님들이 우리 자매들입니다. 하느님께 관한 것에 관심을 둡시다.
지성이 사랑을 거스르는 생각, 선입견, 세속적인 생각으로 차 있다면 어떻게 수도자라고 하겠습니까? 이렇게 될 때 온 지성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라는 가장 중요한 계명도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허영심을 버리지 못해 자신을 자꾸 타인과 비교하려 들고, 책망을 들으면 침울해 합니다. 또 마음속에 있는 것이 드러나지 않도록 경계하면서 거짓과 위선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하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성바오로딸들은 자신과 이웃과 하느님께 항상 솔직해지기 바랍니다.
어디서나 누구하고나 항상 흰 것은 희다 하고, 검은 것은 검다 하십시오. 교정을 해줘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은 타인을 통하지 말고 직접 겸손과 사랑으로 솔직하게 말해 주도록 합시다. 이러한 임무수행을 오로지 주님 뜻으로 한다면 사람들은 많은 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마음의 극기는 분열과 죄의 원인이 되는 반감이나 호감과의 투쟁이 요구됩니다. 책임자가 반감이나 호감에 좌우된다면 그 공동체는 불평과 혼란과 파멸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주님께 참된 사랑과 이웃을 사랑으로 대할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어떤 사람 안에 있는 선함에 이끌려 사랑하고 존경심을 느끼는 것이 호감이 아닙니다. 그러나 때로 우리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만 가까이 가며, 참된 덕을 지닌 사람을 알아주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자기 육욕을 따르는 것입니다.4
공동체 안에 많은 열쇠가 필요하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특히 그 열쇠를 개인적으로 사용할 경우 더욱 우려해야 합니다. 물론 장상들은 모든 것을 모든 사람에게 보일 필요가 없으므로 열쇠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공동체 안에 다른 이유로 잠그려고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한 사제만을 만나야 하고, 꼭 그 사람에게만 말하거나 편지를 써야 한다면 우리 마음이 얽매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작은 희생들을 바쳐 예수님께 작은 선물을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때 우리 마음이 물건이나 존경받는 것에 대단한 애착을 느끼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선행을 다른 사람이 보아주기를 바라며 모든 이에게 알리고 싶어 합니다. 만일 선을 좀 행했다면 자랑함으로써 그 공로를 잃지 않도록 합시다. 돈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공로를 잃는 것이 더 안 좋은 것입니다. 자신을 무익한 종이라고 생각합시다. 고해신부가 어떤 사람에게서 마귀를 쫓아낸 것을 자랑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온종일 열심히 일하지만 자랑하여 그 귀한 공로를 모두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바른 지향으로 침묵 속에서 일하여 많은 공로를 쌓습니다.
성 그레고리오5 는 두 가지의 권고를 주십니다. 가) 선을 행하라. 나) 행한 선을 잃지 않도록 하라.
환상도 극기해야 합니다. 환상은 우리 안에 있는 미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 마음을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밤에도 작용하는 것이 환상입니다. 밤에는 어쩔 수 없으나 낮에는 이 환상을 극기하도록 해야 합니다.
위험한 만남이 있었거나 나쁜 꿈을 꾸었을 때 환상은 온종일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환상은 직접 지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천국, 성인, 후세에서 기다리고 있는 친지 등 아름다운 생각들을 떠올려 생각을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성, 의지, 마음, 환상의 내적 극기로써 온 존재를 다해 주님을 사랑하는 데 이를 것입니다.
1 Filotea: 하느님을 사랑하기를 바라는 사람의 이름. 성 프란치스코가 「필로테아」 또는 「신심생활의 입문」에서 언급하는 대담자이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3장 30에서 자유로이 발췌하였다.
2 그 당시의 회람지에 소설을 읽는 것에 관해 훈련해야 할 것을 암시한다.(CVV 93에 언급된 내부 회람지 1941년 1-2월호 1쪽 참조)
3 마태 8,22 참조.
4 「준주성범」 1권 15장 2 참조.
5 대 그레고리오 교황(540-604): 교부, 교회 박사. 「사목규범Regola pastorale」과 성경에 관한 수많은 주해서를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