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성인이 되려면 하느님의 뜻을 이행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제안도 하느님의 뜻을 이행하도록 이끌어 주는 목적을 지닐 뿐입니다. 우리의 성화는 본질적으로 하느님과 일치시키는데, 첫째로 의지의 일치가 있습니다. 의지의 일치에 지성과 마음의 일치가 요약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피앗fiat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마리아의 피앗은 이 세상에 하느님의 아드님을 강생하게 하였습니다. 우리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피앗으로 천국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성화의 길을 방해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의지를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이루도록 자리를 내어드려야 합니다.
그 방법을 봅시다.
1) 우리의 뜻은 매우 자주 하느님의 뜻과 반대됩니다. |
우리의 내면에서 하느님의 소리와 우리의 본성과 욕정에서 나오는 소리 두 가지를 듣게 됩니다. 우리의 뜻은 죄와 잘못으로 이끕니다. 우리를 만족시키는 교만, 게으름, 관능, 미각 등을 따르기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우리 안에는 두 가지 법이 공존합니다.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 그 다른 법이 나를 내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1
불행하게도 우리는 우리의 뜻대로 위중한 죄나 좀 가벼운 죄를 범하여 명백한 하느님의 계명을 거슬러 질서를 어기는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은 주인이십니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2 그리고 우리는 그분의 작고 가련한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분은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나는 원하지 않아!” 하고 말로, 또 더 나쁘게는 행동으로 주님께 얼마나 배은망덕하게 구는지 모릅니다. 죄란 주님을 대적하는 영혼의 반란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뜻을 행하는 사람에게 천국을 약속하셨는데, 죄인은 “나는 당신이 명하시는 것보다 나의 욕정과 나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것을 좋아한다.”고 대답합니다.
자연계는 모두 하느님께 복종하지만, 인간만이 순종 또는 거절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하기를 거부한다면 스스로 자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계명과 수도서원을 잘 지키고 있습니까? 하느님의 뜻을 드러내는 장상의 명을 잘 따릅니까? |
충만한 빛을 받기 위해 기도를 한 후 양심성찰을 잘 하도록 합시다.
항상 주 결심에 대해 양심성찰을 하지만 연피정 중에는 십계명, 수도서원, 맡은 임무,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신 모든 것에 대한 총체적인 성찰을 해야 합니다.
한 해 동안의 양심성찰을 할 때 가끔 주 결심에 너무 고정하여 머물게 되는데 이것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행해야 하는 작업이고, 연피정 중에는 모든 계명을 포함하여 전반적인 성찰을 해야 합니다.
때로는 기도를 소홀히 할 때도 있습니다. (이것은 제1계명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또 어느떤 때는 아직도 너무 세속적이고 본성적인 확신을 갖습니다.
제2계명은 특히 수도서원에 관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성찰할 것이 많지 않습니까? 수도자 본연의 내용이 없고 서원을 지키지 않아 이름만 수도자일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때로는 제3계명이나 다른 계명을 거스를 때가 있습니다. 이 피정 동안 깊이 성찰합시다. 특히 어렵게 하느님의 뜻을 행할 때 우리의 자세가 어떠했는지 보도록 합시다.
2) 성찰을 한 후 깊은 통회가 있어야 합니다. |
“저는 거룩한 무관심과 하느님의 뜻이 나를 인도하도록 허심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보다 나의 뜻을 따르기를 원하였으므로 저는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습니다.”라고 영혼은 말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의 종이 여기 있습니다.”3 우리 생이 길든 짧든, 편하든 불편하든,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게 되거나 전혀 존경하지 않는 사람과 살게 되는 것, 우리를 흡족하게 하지 않고 우리가 한 일에 대해 전혀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과 사는 것, 건강할 때나 아플 때, 기쁠 때나 고통스러울 때, 명예와 멸시에 대해 무관심한지 깊이 자문합시다. 우리 안에 거룩한 무관심을 지니고 있는지 혹은 우리의 의향이 위에서 말한 부분에 조금씩 다 들어가 있는지? 하느님의 뜻을 태양처럼 환하게 바라보는지 혹은 우리 마음에 어떤 욕정이 감추어져 있거나 하느님의 뜻을 반대하는 욕정이 마음에 스며들도록 내버려두지는 않는지? 내가 좋아하는 것만 행하고 내 본성에서 나오는 소리만 들으려고 한다면 나는 하느님의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세상에 속해 있는 것도 아니며, 나자신의 것일 뿐입니다!
성찰한 후에 고백하고 결심을 세웁니다. 전반적인 결심은 나 자신을 항상 경계하여 나의 의지가 하느님의 뜻을 앞서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아하고 바라는 것에 대해 늘 의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인다고 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끌며 은근히 존경받으려는 경향으로 만족해하는 일이 생깁니다.
고백은 무엇보다도 진실해야 합니다. 영적인 일에 대해서도 우리의 뜻, 우리의 만족과 기호가 들어있는지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에서 오직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 하느님의 뜻만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만을 행하기 위해 맡은 일에 대한 충실로 하루를 지내며, 존경받기를 추구하지 않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면 귀중한 공로의 보화를 쌓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일 경우는 마른 검불을 쌓는 것입니다.
늘 지배하려는 우리 의지에 작은 보속을 시키도록 합시다. 성 필립보4는 성덕은 두 손가락 정도의 이마를 굽히는 것에 달렸다고 말했습니다.
곧 성덕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자신을 굽혀 자신을 부정하는 것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 자신의 만족을 위해 몰두한다면 주님께서 상을 주시겠습니까? 우리가 많은 공로를 쌓고 있다고 믿지만 우리의 뜻만을 찾고 있기 때문에 아무 공로도 쌓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서 보상을 바라겠습니까? “이미 너는 보상을 받았다.5 네가 원하는 것을 하였으니 이것이 보상이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착각으로 우리 자신을 속이고 배반하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의 뜻을 부정하고 항상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보속을 합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며 첫째가는 보속으로서 주님을 매우 기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
지난 날의 삶에서 지은 죄를 보속하고 현재 우리의 죄 탓에 연옥에서 하게 될 보속을 전부 면제받도록 합시다.
같이 있고 싶지 않은 사람, 해야 할 일과 일의 방법, 사용하는 물건 등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 기회가 주어질 때 훈련하도록 합시다. 성인들은 바로 그렇게 행하였으며, 어떤 성인들은 모든 면에서 자기 취향에 반대되는 것을 행하기로 서원까지 했습니다. 우리는 그 단계에 있지 않으므로 그런 서원을 하지 않지만 덕을 훈련하기 위해 성인들이 했던 것처럼 우리의 본성과 의지에 역행하여 갈 수 있도록 합시다.
“하고 싶은 것을 거슬러 행합시다!Age contra!” 우리의 뜻을 역행하는 만큼 성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온 의지를 하느님께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진실하게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6라고 말할 수 있다면! 오, 주님, 천사들과 성인들이 하늘에서 당신의 뜻을 이루듯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1 로마 7,23 라틴어 원문: “Video aliam legem in membris meis repugnantem legi mentis meae.”
2 탈출 20,2.
4 필립보 네리(1515-1595): 로마의 사도, 오라토리오 수도회 창립자.
5 참조: 마태 6,2.5 라틴어 원문: “Jam recepisti mercedem tuam.”
6 마태 6,10 라틴어 원문: “Fiat voluntas tua sicut in caelo et in ter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