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o Giacomo Alberione

Opera Om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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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겸손

사람은 대개 어릴 때에는 미각의 지배를 받고, 젊은 시절에는 육욕의 지배를 받으며, 어른이 되어서는 교만으로, 노인이 되면 생명과 세상 것에 대해 애착을 하게 됩니다.
어른이 되면 대단한 겸손이 필요합니다. 모든 면에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행하는 데 첫째이며 가장 큰 방해가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겸손은 우리의 정신을 잘 준비시켜 하느님의 뜻을 행하게 하는 덕입니다. 그러므로 겸손 없이 다른 덕을 먼저 얻으려 한다면 마치 지푸라기나 낙엽을 긁어모으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성인이 되기 위해 첫째로 닦아야 할 덕은 겸손입니다. 두 번째, 세 번째 닦아야 할 덕도 겸손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 복된 겸손에 관해 많은 말을 하지만 이 덕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많은 영혼이 진보하려고 하지만 기초가 되는 겸손이 없으므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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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이란 무엇입니까?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므로, 하느님을 섬기는 데에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겸손이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죄는 무無보다 나쁜 것입니다. 무無는 무죄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범하고, 또 많은 죄가 있음에도 존경받지 못할 때 섭섭해하며 요구가 많은 사람을 볼 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모든 이가 자기를 칭찬해 주고 온갖 관심을 보여주기를 바라며, 대단한 공로가 있는 사람처럼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교만이며 거짓된 삶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가 더 멸시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지 않은 일이 생겨도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느님 없이는 어떤 선도 할 수 없음을, 또 아주 짧은 순간에라도 굉장한 죄에 떨어질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때로 많은 덕을 지녔음에도 깊은 겸덕을 지닌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별것 아닌 것을 하면서도 과시하려 들고 칭찬받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요란스러운 화장과 화려한 옷차림으로 치장하지만 실은 허기를 채울 빵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이라고는 죄뿐이어서 사람들의 멸시나 주님의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존경이나 사랑받을 것은 생각도 못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가 행한 선을 보이려 하지 않고, 항상 하느님 앞에서 머리를 숙인 자세로 남아 있습니다.
겸덕에는 세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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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자신이 하느님 앞에 아무 것도 아니라고, 무無보다 못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죄인이라 여기며 하느님의 자비만을 바랍니다.
둘째, 멸시받기를 원하고 소외당하는 것을 기뻐하며, 비방과 곤경에 처하기를 바라거나 적어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셋째, 멸시당하는 것을 기뻐하고, 그러한 상황을 찾으러 다니기까지 합니다. 지네프로 수사는 집집마다 구걸을 다닐 때 게으름뱅이로 오해받고 돌팔매질을 당할 때 매우 기뻐했습니다.
겸손을 내세우지 않으나 겸손을 잘 살고 있는 수도원이 있는가 하면, 어떤 수도원에서는 겸손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토리노에 있는 섭리의 작은 집1에서는 겸손을 살고 있으므로 끊임없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어떤 집에는 교만이 숨어 있어 지식과 기술과 외형의 대단함에도 선을 조금밖에 행하지 못합니다.
겸손한 집에는 하느님의 축복이 있지만 교만한 집에는 메마름, 지루함, 고통, 무질서뿐입니다. 좋은 땅에 뿌리를 내린 나무는 풍성한 열매를 맺으나 그렇지 못한 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겸손이 필요합니까?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항상 하느님의 미움을 받으나 겸손한 사람은 항상 사랑을 받습니다.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2를 생각해 보아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겸손한가에 따라 성인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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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카리오는 하느님 앞에서 항상 자신을 대 죄인으로 생각했고, 하느님은 그에게 많은 은총을 주셨습니다. 어떤 날 마귀가 마카리오 성인을 찾아와 물었습니다. “왜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하고 나를 미워하는가? 당신이 하느님께 순명하듯이 나도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단식하지만 나는 전혀 먹지 않는다. 당신이 정결을 지키듯이 나도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런데 당신은 왜 사랑을 받고 나는 미움을 받아야 하는가?” 마카리오 성인이 대답했습니다. “네가 교만하기 때문이다. 너는 교만 하나만으로도 악마가 되기에 충분하다.”3
아무리 많은 일을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모든 재산을 나눠 주고 많은 고행과 기도를 한다 해도 겸손이 없다면 이 모든 것을 구멍 난 부대에 넣는 것과 같습니다. 많은 덕을 지닌다 해도 기초가 되는 겸손이 없을 때 다 무너져 버립니다. 겸손에서 인내, 사랑, 믿음, 기도, 다른 많은
선함이 솟아나옵니다. 교만에서는 모든 악이 솟아날 뿐입니다. “새까만 영혼아, 거울에 비친 너의 모습을 보아라. 몇 년이 지나면 너는 벌레의 밥이 될 터이고, 먼지와 재에 지나지 않는 너이건만 어째서 그렇게 교만한가?”
겸덕을 얻기 위해 자신이 누구였는가를 반성하는 것이 매우 좋습니다. 자신의 과거를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누군가 자신의 죄를 알고, 생각을 알게 된다면… 지성을 방해했던 어둡고 부끄러운 생각에 대해 알게 된다면 얼마나 수치스럽겠습니까? 그리고 현재는 어떠한가 생각해
봅시다.
나 자신이 무슨 덕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인내롭고 복종할 줄 알고 어떤 멸시나 고통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까? 굳건한 신앙이 정말 있습니까? 자신을 시험해 보도록 하십시오.
온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한다는 것이 정말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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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찌르는 말을 해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인데… 사랑하고 칭찬하고, 내 주장이 항상 옳다고 받아 주는 사람, 자신에 대해 온갖 관심을 기울이고 보살펴 주는 사람만 관심을 두고 사랑할 뿐이면서 누구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미래의 자신을 생각해 봅시다. 나의 죽음을, 그리고 그다음을 생각해 봅시다. 지금 자신의 몸을, 그렇게 아끼고 염려하고 있는데, 그 몸이 바로 썩어야 할 몸입니다. 나를 그렇게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이 시체의 썩은 냄새가 집안에 배어들까봐 서둘러서 죽은 내 몸을 집 밖으로 옮길 것입니다. 사실 내 입, 눈, 코에서 썩은 물이 흘러나올 것입니다. 몸뚱이에서 머리가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뼈마디가 다 떨어져 나가고 마침내는 바람에 날려갈 한 줌의 재만 남을 것입니다. 내가 살아있을 때 알고 존경하던 이들이 아주 빨리 나를 잊어버릴 것입니다.4
자신을 가장 큰 죄인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 아니며, 완전한 수도자도 아닙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도 말했습니다. “덕에 나가는 데에 교만은 아주 큰 장애물이다. 자신이 모든 이들의 맨 끝자리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면, 모든 사람이 나를 참아주는 인내에 감탄할 수 없다면 나는 아직도 완덕의 길로 나아가지 못했다고 생각해야 한다.”5
참으로 겸손한 영혼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겸손은 사랑이고 인내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주님이 계신 제단을 감히 바라보지 못합니다. 겸손이 기도의 진가를 확인해 주며, 겸손한 사람의 기도를 주님께서는 항상 들어 주십니다.
우리의 교만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우리 멸망의 시초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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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가까이 있는 두 수도원 사이에, 또 두 공동체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교만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럴 듯한 이유인 열성이나 수도회의 품위를 내세워 합리화합니다.
저는 이것에 대해 걱정스럽고 부끄럽게 느낍니다. 이 덕이 잘 실천되지 못하는 것은 제가 잘 가르치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소와 나귀가 사는 동굴에서 탄생하신 예수님의 겸손을 우리는 아직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생길 때 많은 사람 안에 참된 정신이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금이라도 우리의 교만에 대해 눈물을 흘립시다. 그런데 “우리에게 많은 권리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주장할 권리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분은 아버지의 모든 권리를 지니셨지만 세 개의 못으로 십자가 위에 못 박히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는 자주 권리를 보호받아야 한다는 핑계 속에 교만이라는 뱀을 감추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 교만을 존엄성, 열성, 수도회의 권리 등 다른 아름다운 표현으로 드러냅니다.
다니엘 예언자는 사람들이 하느님 대신 뱀을 숭배하여 온갖 먹이를 다 주고 인신 제사까지 바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니엘은 강한 독약을 역청에 넣어 뱀을 죽이고 백성들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보십시오. 여러분이 숭배하던 것을!”6
자주 우리의 공로까지 삼켜버리는 교만을 숭배하고 있으면서도 이것을 의식조차 하지 못합니다. 겸손한 사람이 적습니다. 겸손한 이들은 순명과 단순함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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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신분에 있는 사람이 겸손하지 못할 때 하느님의 활동까지 망치고 불행의 씨앗을 뿌리게 됩니다. 수하 사람들에게 큰 어려움을 주고 있으면서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은 정말 혐오스러운 일입니다. 이웃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악입니다. 명령하는 사람보다 순명하는 사람이 더 거룩할 때가 많습니다. 지도자가 재능이 있고 겸손한 사람이라면 두 배의 공로를 얻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겸손이 있다면 우리가 잘못을 범했어도 주님께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은총을 주십니다. 그러나 교만하다면 아무리 덕스러운 생활을 오랫동안 해왔다 하더라도 항상 두려워해야 합니다. 아주 짧은 순간에도 가장 비참한 죄에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겸덕을 청합시다. 겸덕으로 인해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쉽게 받아들이게 되고, 주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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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32년에 성 요셉 베네딕토 코톨렌고(1786-1842)가 창립한 사랑의 요새다. 가난한 이, 병자, 어느 곳에서도 돌보지 않는 이들을 받아들여 돌보고 있다. 이런 궁핍한 이들을 살리기 위해 코톨렌고 성인은 매일 오직 섭리의 도우심에 의탁하며 자신이 창립한 수도회들의 수도자들과 수녀들의 보호에 이들을 맡긴다. 이들의 활동은 병원, 유치원, 양로원, 고아원, 학교, 작업소 분야로 나뉜다.

2 루카 18,9-14 참조.

3 이 예는 「영적 일기」, PSSP, 알바 1927, 53쪽에서 성인들이 말하고 행한 것과 또 덕행을 이룬 다른 사람들의 것에서 뽑은 것이다.

4 성 알폰소, 「죽음의 장치Apparecchio alla morte」 1장 “L’opera della morte” 참조.

5 「영적 일기」 54쪽에서 자유롭게 인용함.

6 다니 14,23-27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