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o Giacomo Alberione

Opera Om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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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완덕

모든 그리스도교적 완덕은 행하는 것과 견뎌내는 것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선을 행하고 완덕의 길에서 부딪치게 되는 모든 어려움을 견뎌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성화시키시는 데 방해되는 유일한 것은 우리의 의지입니다. 그러므로 이 방해물 곧 우리의 기호와 자애심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아름답고 귀하게 되도록 우리 영혼 안에 일하시도록 내어드릴 때가 언제입니까?
이제 완덕에 대해 말합시다. 완덕은 자신 안에 있는 여러 가지 결점을 없애고 하느님의 사랑을 심는 데 있습니다. 완덕은 수도자의 첫째가는 의무입니다. 수도서원을 할 때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지만 완덕에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사실 수도생활은 공동체 안에서 서원하여 성인이 되기 위한 영적 일을 하는 완덕의 신분이 되게 해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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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진정한 작업이 서원하면서 시작됩니다. 수도서원으로써 수도생활의 첫째 목적인 완덕에 나갈 의무를 주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왜 시간과 생명을 주십니까? 진보를 위해서 입니다. 진보하지 않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우리가 서원을 발했을 때 순명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서원 후에는 더욱더 완전하게 순명하고 더욱 섬세하며 공동체 생활의 규칙도 더 잘 지켜야 합니다. 진보하지 않는 사람은 헛된 삶을 사는 것이므로 불행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계속 새로운 방법들을 제공해 주십니다. 영성체, 고해성사, 묵주기도, 훈화 등은 하느님을 섬기는 데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수단들입니다.
모든 이가 자신의 신분에 따르는 의무를 지니게 됩니다. 우리 신분의 의무는 완덕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진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수도생활이 지워주는 기본적인 의무, 자기 신분의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심판 앞에서 어찌하려고 그러는 것입니까? 예수께서는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에서 나이와 지혜와 은총이 자라셨습니다.1 성인들은 어떠했습니까? 성인들은 자신들의 결점 앞에 평화로이 있지 않았습니다. 매일 더욱 진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생을 마감할 때 탁월한 덕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성 요한 베르크만은2 매일 조금씩 진보하려는 결심을 세웠습니다. 성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얼마 전부터 내 영혼이 큰 평화를 누리고 있다.
이것은 하느님 안에 안주할 때가 가까왔다는 것을 알게 해주시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성인들과 우리가 얼마나 다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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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우리는 어떤 규칙은 영적 초보자나 수련자들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규칙뿐 아니라 장상들의 지시나 권고도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다고 여기며, 이웃에게 요구가 많고, 쉽게 강요하려 들고, 오만하기까지 합니다.
서원한 지 8년이나 10년이 된 후 수도자다운 점이 아직 남아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이런 사람의 삶은 세상에 있는 착한 여인의 삶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안락한 삶과 배려와 섬김을 받으려 하고 특별한 것을 요구합니다. 이들은 수도생활을 하고 있다는 영예와 교만한 생각만 지니고 있는 것이므로 세상을 속일 뿐입니다.
해가 갈수록 어떤 규칙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순명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긴다면 우리의 수도생활은 실패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 대신 신심생활이 더욱 완전하도록 한다면 우리 삶의 마지막 날에 하게 되는 영성체는 가장 열렬한 영성체가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 매일의 삶도 어제보다 더 진보한 나날이 되어 우리 생애의 마지막 날은 이웃에게 가장 많은 친절과 가장 많은 사랑을 베풀고 인내와 넓은 아량을 보여준 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와 반대가 될 때가 많습니다. 나보다는 다른 사람이 더 완전해지기를 요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할 일이다!”라면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편안함을 위해 봉사해 주기를 요구합니다. 다른 사람을 항상 앞세우고 우리 자신은 뒤에 편안하게 있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심판의 날 나를 위해 돌아가신 그리스도께서 심판자로 오실 때 어떤 대답을 드리려는 것입니까?
다른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그렇다면 천국도 다른 사람이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항상 어린이처럼 해야합니까? 그렇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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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3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린이의 단순함, 순결함, 투명함을 지녀야 하며, 동시에 어른의 덕인 슬기로움과 굳셈, 희생 정신, 용덕을 지녀야 합니다. 사람들은 성 토마스에 대해 그는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었지만 어린이와 같은 마음을 지녔다고 말했습니다.
웰메흐르쉬Wermehersch 신부는 해박한 분으로 주교, 추기경들이 의견을 들으러 갈 정도였음에도 단순하게 장상에게 편지를 개봉한 채 우표를 청하여 발송하도록 했습니다. 그는 이미 노인이었고 그의 편지는 보통 신학이나 교회법에 관한 질문에 대한 회답이었는데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런 위대한 분들이 하셨던 것을 우리가 그대로 했다고 해서 무슨 대단한 일이 되겠습니까?
우리가 진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4 는 복음 말씀에 충실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은 자비로우시고 지혜로우시며 온유하신 분입니다. 우리도 자비롭고 지혜롭고 온유하게 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을 실천할 방법을 봅시다. 매일 양심성찰을 할 때 어제와 오늘, 지난 주와 이번 주, 지난 달과 이번 달을 비교해서 더욱 열렬하게 살고 있는지, 세운 결심을 실천하고 있는지 봐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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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피정 때 기도생활에 더욱 충실했고, 더욱 인내롭고 관대하게 사랑했고, 규칙에 충실했는지 자문합시다. 수도생활 2년, 3년, 4년, 10년 후 얼마나 진보했는지? 영성체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봅시다. 공동체 생활에서 인내와 애덕, 규칙준수를 어떻게 실행하고 있는지? 진보하지 못했다면 하느님께 죄를 지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시간과 은총을 헛되이 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주님의 은총에 응답하지 못한 것만 해도 죄스런 일입니다. 이에 대해 잘 성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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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루카 2,52 참조.

2 요한 베르크만(1599-1621): 벨기에 태생의 예수회 젊은 신학생, 공동생활의 철저한 준수로 성화에 이른 점이 유명하다.

3 마태 18,3 참조.

4 마태 5,48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