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성월”에 늘 묵주기도를 바치고, 이를 매일의 신심으로 간직하며, 그 신비에서 모든 지혜와 은총을 얻는다는 결심을 새롭게 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아, “묵주성월!” 묵주기도는 쉬운 기도요, 효과적인 기도로 영적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우리는 묵주기도, 우리의 거룩한 믿음의 신비를 묵상하도록 이끌어주는 지혜로운 이 기도에서 모든 은총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동반해 주시는 어머니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영적 길에서는 늘 어린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성바오로딸들은 자주 모원에서 멀리 떠나 있게 되지만, 북극지역에 있더라도 기도를 많이 할 때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주님만이 그들을 악에서 지켜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녀는 그의 기도가 가치 있듯이 그렇게 소중한 존재입니다.
기도하는 수녀는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것은 경솔과 무지에서 기인합니다. 하느님은 아버지로서 이러한 딸들을 잘 인도하기 위해 책임을 지십니다.
교황 레오 13세는 “묵주기도”에 관해 열한 차례나 회칙을 반포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교황은 아주 중요한 일을 모든 신자에게 알리기 위해 회칙을 반포하는 것이므로, 여기서 우리는 묵주기도의 중요성을 더 잘 알게 됩니다.
예, 교회는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묵주기도”는 모든 이를 위해, 모든 것을 위해 도움이 됩니다. 영성체와 성체방문 준비에도 도움이 되고, 길을 걷거나 멈출 때에도, 교황과 주교들을 위해서도,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을 위해서도 도움이 됩니다. 묵주기도는 성당에서, 특히 성체방문 중에 바치십시오. 그리고 각 신비를 묵상하면서 바치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침묵이라는 사랑의 귀감을 우리에게 남겨주셨습니다.
이러한 덕은 여러분의 공동체에 아주 중요합니다. 특히 여러분은 많은 시간을 침묵해야 하므로 더욱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침묵’은 입을 다무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정해진 시간 외에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하고, 대침묵, 소침묵, 공동 침묵 등 세 가지 침묵을 지켜야 합니다.
군인들이 말하는 방식이 있고, 사제들의 방식이 있고, 늘 온화하고 지혜로워야 하는 수녀들의 고유한 방식이 있습니다.
또 다른 침묵은 ‘삶의 침묵’입니다. 어떤 자매는 가는 곳마다 큰 소란을 피우고, 어떤 자매는 조용하게 기름처럼 스며듭니다. 그들의 모든 활동과 업적은 기도 안에서 지혜롭게 성숙된 것입니다. 어떤 이는 활동할 때 늘 특별하게 드러나고 싶어합니다. 새로운 관습 앞에서, 또 특별한 장소에 가면 탄성을 연발하고,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바꾸려고 합니다. 이러한 일은 좋지 않습니다. 어디에서든 여러분의 정신을 유지하십시오. 물론 여러분은 프랑스1에서 이탈리아어를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 그러나 이러한 예외적인 경우 외에 말해야 할 사항이 늘 많습니다. 자기 고향이 아닌 지역에 가게 될 때는 아무도 놀라게 만들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 지역의 관례를 보고 놀라지만, 우리 지역의 삶의 방식은 그 지역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놀라움을 주겠습니까!
성바오로딸들은 성직자와 자주 접촉합니다. 여기서 겸손을 유지하기 위해서, 또 도움이 되지 않는 정신을 거부하고 우리 정신에 맞는 것을 취하기 위해 세 곱절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어제 저녁 어떤 주교님이 성바오로딸들에 관한 좋은 점에 대해 언급하셨지만, 성바오로딸들이 만나게 될 위험을 주목하게 해주셨습니다. 그 주교님은 여러 교구를 주관하셨기 때문에, 여러 차례 그런 점을 보게 될 기회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게 되는 장소에서 새로운 것을 만날 때 넋을 잃은 어린이들처럼 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정신에 따라 상황을 판단하십시오. 여러분이 머무는 지역에서는 무엇을 먹습니까? “늘 퍽퍽한 파스타만 먹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합니까? “아, 모원에서처럼 매일 수프를 만듭니다.”
말과 삶의 침묵에 마음의 침묵도 포함됩니다.
“내적 침묵을 지켜야 하지만 외적 침묵도 필요합니다.”
서원은 정해진 시간에 열고 닫아야 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정해진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서원에서는 대화가 사도직을 위해 유익하고 장점으로 작용되는 반면, 어떤 서원에서는 대화할 때 지혜롭게 대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런 일에 있어서는 여러 기준이 필요합니다.
외적 침묵은 봉쇄생활 준수를 포함합니다.
“내적 침묵”, 특히 젊은이들을 쉽게 자극하는 이상한 것을 입 밖에 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호적인 관계일 때는 모든 것이 아름답지만, 만일 호의적인 상황이 아닐 때는 모든 것이 추해집니다. 아닙니다. 안 됩니다.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어떤 자매가 희생자인 듯한 태도를 취할 때 자신에게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는 더 많은 해를 끼칩니다. 그것은 자신이 우월하다고 믿으면서 영혼의 선을 위해 한다고 생각하는 만큼 잘못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정할 수 없습니다.2
성바오로딸들이여, 때때로 여러분의 발전을 방해하는 온통 검은 것만 보이는 환상에 압도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아, 기도하고 또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이 갈증을 느끼는 날,│
두 잔이 아니라 석 잔의 물을 마시는 것처럼 여러분이 낙심할 때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런 날에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느님께 털어놓으십시오.
마음의 침묵은 지나친 기쁨이나 슬픔에 빠지지 않고 늘 잘 조절하도록 마음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가슴 속에서 마음이 자라게 하시고, 머리가 그 마음을 지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머리가 통제해야 합니다! 마음이 지배하도록 놓아두어서는 안 됩니다! 느낌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오, 그런 사람은! … 오, 그런 일은! …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거야! … 이것은 내게 반감을 일으켜 …”라고 말할 때는 아무리 위장하고 감춘다 하더라도 감정에 지배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침묵은 아주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부정적인 부분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긍정적인 부분을 살펴봅시다.
말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침묵해야 합니까? 이것은 결함이 있는 침묵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가시기 때문에 입을 다뭅니다. 어떤 사람이 식탁에서 그리고 방문선교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주변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지적인 노동 후에 피곤을 느낄 때에는 도움을 청하고 위안을 받아야 합니다. 책임자들은 적어도 휴식할 때와 식탁에서는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해야 한다는 진지한3 생각을 합니다. 그들에게 휴식시간에 활기차게 해야 한다는 책임이 맡겨진다면 더 힘들어질 것입니다.
슬픔, 우울, 비관주의, 반감에서 오는 침묵이 있습니다. 그때 수녀는 다른 수녀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 침묵은 성격에서 나오기도 합니다만 우리가 고칠 수 있는지 살펴봅시다. ‘나는 이렇게 생겨 먹었어!’라고 쉽게 말하지 맙시다.
침묵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은 말하도록 노력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기쁘게 하는 데서 그치십시오. 어떤 이는 외부인들에게는 아주 친절하게 대하다가 수도원에 도착하면 좋은 기분을 잃어버립니다. 친절, 호의는 공동체 안으로 퍼져야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교적인 것이고, 수도자들에게는 수도자적인 것입니다. 누구를 더 많이 사랑해야 합니까? 더 가까이 있는 이웃을 더 많이 사랑해야 합니다.
“침묵은 사랑과 활동을 동반할 때 덕이 됩니다.” 사랑은 하느님과 더 일치하게 만들고, 활동은 성인이 되기를 더 열망하게 하고, 선행을 하기 위해 더 노력합니다. 참된 침묵은 무익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의 침묵은 정겹고 진중합니다. 하느님과 일치해야 하고, 영혼이 예수님과 함께 있다고 느껴야 하고, 아침 묵상의 메아리를 자주 들을 수 있어야 하고, 확고한 결심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참된 침묵은 사랑이 넘칩니다. 보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에 대해 경계하게 만들고, 우리 자신에 대해 주인이 되게 합니다. 게으른 것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아, 언제나 우리 자신에 머물러 있는 것, 그것은 얼마나 필요하고, 얼마나 중요합니까!
때때로 우리는 이것 또는 저것을 하지 말라는 소리를 듣습니다만, 그때마다 ‘예’라고 대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허락을 받았다거나 허락 받지 못한 것 때문에 움직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혀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혀를 놀리기만 하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솔한 가여운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생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베란다에 꽂혀 있는 작은 깃발이 좌우로 나부끼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는 두뇌를 가진 인간이니 말하기 전에 잘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창조하시면서 우리에게 보기 위한 두 눈, 듣기 위한 두 귀, 말하기 위한 입 하나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머리에서 그리고 가슴에서 나와야 합니다. 다시 말해 지혜와 사랑으로 말해야 합니다. 목소리를 내기 전에 먼저 통제해야 합니다. 모든 말에 대해 우리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하느님을 사랑하는 영혼은 사랑이 넘치는 침묵 속에서 자신을 슬픔과 비관주의로 빠져들도록 놓아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낙관주의로 나아가게 합니다.
자기 혼자서도 하느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길을 가면서도 사랑과 일치의 행동을 할 수 있고, 선한 계획을 세우고, 사도직을 할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일에 익숙하여 늘 거룩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꿈은 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돈 보스코는 여러 차례 꿈꾸었던 성소의 아름다움에 대해 확신을 가졌고, 열성을 기울였습니다. 그의 꿈들이 정말 꿈이었는지 아니면 환시였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혀는 아픈 치아를 건드리곤 합니다. 열매를 통해 그 나무를 알게 됩니다. 좋은 것으로 가득 찬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 좋은 것을 밖으로 꺼냅니다.
정겹고 진중한 침묵의 필요성
1) “입을 다무는 사람은 하느님을 경청합니다.” 하느님의 지혜로 지혜로운 자가 되고, 초자연적인 빛을 받아 올바른 도리와 규범을 명확하게 인식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말할 때와 충고할 때 매우 현명합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을 들으셨고, 그 말씀을 침묵 중에 묵상하셨습니다.4
2) “입을 다무는 사람은 선과 악을 구별할 줄 압니다.” 복음은 좋은 밀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주님은 이 세상에서 착한 이들과 악한 이들을 갈라놓지 않으신다고 전합니다.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를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5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6
세상에는 악한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수도자들처럼 착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늘 성찰을 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듣고 본 내용이 자신이 지닌 원칙과 복음의 금언에 일치하는지 대조해봐야 합니다. 일치한다면 그것을 허용하고, 일치하지 않는다면 단죄해야 합니다.
착한 문지기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문지기가 집에 아무나 들어오도록 놓아둡니까? 아닙니다. 우리 영혼은 모든 짐승이 들어올 수 있는 곳입니까? 적어도 염소가 들어오지 않도록 문을 닫아야 합니다. 되풀이해서 말씀드리지만 침묵은 하느님과 일치를 용이하게 해주고, 평화를 이루게 하며, 많은 감정에서 오는 혼란을 없애줍니다.
3) “침묵 속에서 많은 활동을 하게 됩니다.” 잠심을 할수록 더 효과적입니다. ‘이것을 행하고, 저것을 행할 필요가 있다!’고 백번 쯤 말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다른 이들이 먼저 행합니다. 실수를 하겠지만 고칠 시간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나쁜 시절을 한탄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면 … 아니, 안 됩니다. 활동합시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 장애물이 있다면, 그것을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노력합시다. 비가 온다면? 집에 있으면서 다른 일을 해야 합니다. 그날을 환상과 잡담으로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인들은 짧은 생애를 살면서도 많은 일을 이루어냈습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성 요한 베르크만스는 짧게 살았지만, 얼마나 많은 일을 했습니까!
[경건한] 제자들(=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수녀들)은 침묵 속에서 그들의 부를 누립니다. 하느님과 말씀을 나누기 위해 사람들에게 입을 다무는 이들은 늘 부유할 것입니다. 바오로딸들도 그렇습니다.
제자수녀들은 수도원 안에서 더 깊은 침묵을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침묵하는 은총을 얻기 위해 성모님께 전구를 청합시다. 나자렛의 작은 집에서는 시끄러운 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 예수님, 마리아와 요셉의 거룩한 대화들! 오, 그 집의 신적 침묵, 감실의 신적 침묵! 예수님은 공생활 3년 동안 자주 제자들에게 외딴 곳으로 가자고 하실 정도로 침묵을 사랑하셨습니다. “너희는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7
다시 말해 ‘잘 쉴 수 있도록 하여라. 그러나 그 휴식은 영혼을 위한 원기회복을 위한 시간이다.’성경에서 침묵의 덕은 특히 칭송을 받았습니다.8
고대 성인들은 세상을 피하여 고독 속에서 살기 위해 사막에 은둔했습니다. 현대의 성인들은 세상 안에 살면서, 그들 삶의 대부분을 성찰과 기도로 채우며 삽니다.
장황한 잡담은 모든 것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정신이 텅 비게 만듭니다. 말을 많이 할 때 잘못을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많은 말 속에는 많은 어리석음이 섞여있습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이 있게 마련이다In multo eloquio non deest peccatum.”9│
그들은 말로 인해 얼마나 많은 연옥의 벌을 쌓고 있는가!
침묵할 때는 필요한 상황이 오면 말을 잘 하지만, 침묵하지 못할 때는 말을 잘하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나 사도직을 위해서 늘 텅 비어있는 불쌍한 영혼들!
거룩하고, 지혜롭고, 활동적인 영혼들은 침묵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의인의 마음은 대답하기 전에 깊이 생각하지만, 악인의 입은 악한 것을 내뱉는다.”10
많은 말을 한 다음 기도하러 가면 쉽게 분심에 빠집니다. 침묵은 영혼이 잘 묵상하도록 준비시킵니다.
아, 정겹고 진중한 침묵은 이로운 점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사람은 침묵을 자신의 주요 결심으로 삼습니다.
1 성바오로딸수도회는 1935년 6월 17일에 프랑스 빌러반느-리용(Villeurbanne-Lione)에 첫 공동체를 열었다.
2 원문에는 incorregibili로 되어있다.
3 원문에는 serii로 되어있다.
4 루카 2,19.51 참조.
5 원문에는 finno로 되어있다.
6 마태 13,24-30 참조.
7 마르 6,31 참조.
8 참조: 시편 37,7; 1티모 2,11.
9 잠언 10,19 참조.
10 잠언 15,28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