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까지 수도자 신분, 특히 청빈, 정결, 순명과 공동생활에 관한 교회법의 한 부분을 살펴보았습니다.
공동생활은 일종의 순교입니다.│
비록 폭력이 자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적으로 겪는 순교입니다. 성 요한 보스코는 짧게 끝나는 것이 아닌 긴 순교라고 말했습니다.
수도생활의 적들은 성성의 적들이고, 그리스도인 덕행의 실천에서 만나게 되는 장애요소들은 수덕의 장애물과 동일한 것입니다. 수도생활의 적들은 1) 교만 2) 관능 3) 인색입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에 대한 결과로서, 특히 우리의 나날을 좀먹는 신경과민입니다. 이 신경과민은 시대의 질병입니다. 여기에 수도생활을 방해하는 모든 적대자, 자매들의 거짓과 악마가 추가됩니다.
첫 번째 적은 교만입니다. 이때 우리의 잘못에 대한 원인을 알고 잎사귀를 잘라내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밀의 성장을 방해하는 가라지의 그 뿌리를 뽑지 않으면 수확에 큰 피해를 가져옵니다.
교만은 우리에게 많은 아름다운 자질이 있다고 믿게 하여 우리를 오만하게 만들고, 다른 이들을 경멸함으로써 귀중한 결실을 앗아가고 기도를 포기하게 만드는 자애심입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과도한 평가를 하게 만드는 교만은, 영적 거울에 비친 우리의 가치를 바라보는 동시에 물질적인 거울에 비친 세상의 자녀인 나를 바라보게 합니다.
물질적인 거울은 보고, 만지고, 지니고 다닐 수 있습니다. 반면에 추악한 오만의 거울은 쉽게 숨겨지기 때문에 그 사람은│
자신의 내적 감정을 부끄러워하면서도 그러한 자기 자신을 좋아합니다.
교만은 우리가 칭송받기를 열망하고, 그렇게 되려고 애쓰고, 다른 이들이 우리 안에 있는 악이 아니라 선만 보게 되기를 바라게 만듭니다. 그래서 위선자와 거짓말쟁이가 되고, 자주 모독의 원인이 됩니다. 지도하는 사람 앞에서는 어떤 일을 감춤으로써, 필요한 충고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많은 일을 하지만, 교만이 그들 밭의 모든 열매를 먹어치우고 맙니다. 그들은 자신의 업적을 보이기 위해, 높이 평가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미 보상을 받은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Jam recepisti mercedem tuam.”1 위대한 심판날, 예수님은 ‘너는 너의 이기심을 위해 힘쓴 것이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오, 교만은 우리 공로를 얼마나 많이 앗아갑니까! 교만은 자주 우리 행동의 동반자가 됩니다. 어떤 사람은 지혜롭게 보이기를 원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특출한 행동을 드러내고 싶어하고, 또 다른 이들은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사람이 되면서까지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합니다.
더 나아가, 교만은 그동안 얻은 공덕을 다 먹어치웁니다. 기쁜 마음으로 일한 선함이 쌓은 공덕까지 갉아먹습니다. 그토록 고생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느님을 위해 일했기에 그분이 그대에게 주신 보상을, 남에게 보이기 위해 잃어버리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짓입니까? 게다가 교만은 다른 이들을 경멸하여 사랑을 파괴하고, 경솔하게 의심하고, 존경하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2
혹시 우리 마음속에│
아름다운 조화를 망쳐놓고 마는 작은 심술과 함께 이러한 교만이 있지 않은지 성찰해봅시다.
하느님은 교만한 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시기에 교만은 우리의 기도를 헛되게 만듭니다. 수도자는 은총이 없을 때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연약한 본성을 가진 우리인데, 기도에서 오는 힘 없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아주 작은 유혹에도 쉽게 넘어질 것이고, 자매들의 활동을 비난하고, 험담하고, 불평하기 위해 다른 동료들을 계속 찾을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두 명의 장난꾸러기3 소년이 수도회에 들어와 그 다음 날부터 친구가 되어 장난치려고 구석에 숨어 있곤 합니다. 나쁜 성향을 지닌 두 명의 수녀도 공동체에 대해 험담하기 위해 금세 친구가 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끼리끼리 논다.”
교만은 질서를 경시하고, 복종을 힘들어하고, 위선을 꾸미고, 영혼의 선을 파괴하고, 이웃을 오류로 인도하는 단계로 가게 만듭니다. 아, 그렇습니다! 서로 시기하는 귀족의 두 자녀가 왕의 부름을 받았는데, 왕은 첫 번째 자녀에게 “너는 무엇을 바라느냐? 너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 네 동료에게도 곱절의 선물을 주고 싶단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귀족의 자녀는 ‘내가 마을 하나를 청한다면, 내 동료는 두 개를 얻을 것이고, 많은 돈을 청한다면, 내 동료는 나보다 더 부자가 될 거야.’라는 생각을 하다가 자기 눈 하나가 빠지게 해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러면 동료는 두 눈을 몽땅 잃을 테니까!
교만은 사랑과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시하는 사람을 모두가 판단하도록 만들고, 반대조류를 조장하는 데만 급급합니다.
관능은 수도생활의 두 번째 적입니다. 관능은 일반적으로 세 가지 징후를 보입니다. 곧 태만, 탐식, 불순不純입니다.
불순은 호감과 반감으로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수도생활이 가능하겠습니까! … 둘이 함께 걸어갈 때(특별한 우정을 의미함) 이러한 전염병은 쉽게 퍼집니다. 이러한 병에 전염되면 그 다음에 오는 것은 거짓과 위선입니다. 마치 사악한 뱀이 공동체를 파멸시키기 위해 똬리를 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창조된 많은 영혼이 심연으로 빠져들고, 가장 불순한 마귀의 독에 감염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순수하지 못하고, 내적 감정에 분열이 생길 때 손을 쓸 수 없이 확산되어 밖으로 분출되고 맙니다.
성바오로딸들의 정원에 이런 나쁜 잡초가 자라지 못하게 하십시오! 분열된 마음 때문에 결코 예수님을 사랑할 수 없는 영혼은 어떤 거룩한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생각납니다. 지도해 주던 사람이 많이 망설이다가 겨우 서원을 허락해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나쁜 경향을 드러냈지만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28년 후 더 악화되었습니다. 이런 자매는 고쳐지지 않습니다! (성바오로딸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애초에 다른 길로 가야 했는데, 성소를 잘못 택한 것입니다! 제자리를 벗어나면 많은 사람을 괴롭히고 죄를 짓게 만듭니다. 성바오로딸들의 마음이 아버지 성 바오로와 같은 마음이도록, 성 바오로와 성녀 테클라께 기도하십시오. “바오로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이었다Cor Pauli cor Christi.”4
길을 잘못 택한 수녀들은 공동체 삶과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거룩함을 헛된 감정과 뒤섞어버립니다. 겉으로는 멋지게 보이지만 속은 텅 비어있습니다.
때로는 잘라내야 하는 희생을 치르겠지만 용기를 내십시오. 주님이 갚아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마귀에게서 벗어나게 해준 그가 주님을 따르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5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도 부르심 받은 이들과 부르심 받지 않은 이들을 구별하셨습니다.
이 점에 관해 언젠가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서, 방문선교를 갈 때 의사가 병자를 방문할 때처럼 언제나 두 명씩 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드리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공정한 행동이 아닐 때 쉽게 자매를 내보낼 방도만 찾게 됩니다. 이러한 일은 응접실에서도 마찬가지입 니다.
“수도생활의 다른 적은 관능의 열매인 태만입니다.” 취침에 대한 태만, 기상에 대한 태만, 양심성찰과 고해성사 등의 가장 힘든 신심실천의 태만.
지나칠 정도로 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게으른 사람도 있습니다.
태만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어떤 자매는 늘 바쁩니다. 휴식시간에도 무엇인가 할 일을 찾습니다. 그들의 일과는 늘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봉사받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이는 자매들도 있습니다. 태만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합니다. 서원에서 한가한 틈이 생긴다면 소개해야 할 서적들을 선별하기 위해 도서목록을 연구하십시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잃어버립니까! 이런 때 마귀는 할 일을 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쁠 때는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바빠” 하고 말하면 마귀는 그냥 가버립니다.
이따금 어떤 사람에게서 자선을 받기 위해, 또는 위로를 줄 필요가 있어서 머뭇거리는 일이 생기는데, 마귀는 이런 기회도 이용하여 악으로 유혹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저나 마에스트라가 도와줄 수도 없을 정도로 아주 심각한 내면의 유혹에 공격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여러분을 구해 주실 것이며, 여러분에게 아무런 탈출구가 없어 보여도 성모님이 품에 안아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이 천상 어머니에 의해 구원받습니까!
탐식, 전반적으로 경제적인 면을 보았을 때 식비가 부족한 상태인 것을 봅니다. 하지만 희생은 필요합니다. 축일이나 무엇인가 더 준비해야 하는 날도 절제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합니다. 건강 때문에 필요한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 것은 하십시오! 병원에 가는 것보다 빵을 먹는 것이 더 낫습니다! 구체적인 상황 앞에서 여러분이 잘 식별하십시오. …
하느님께 잘 봉사하기 위해 모든 면에서 늘 깨어 경계하십시오.
수도생활의 세 번째 큰 적은 인색함입니다. 곧 청빈정신의 결여입니다. 차별하지 맙시다. 모든 면에서 분수에 맞게 행동합시다. 아시겠습니까? 인색함은 방해가 됩니다. 인색함은 자주 믿음이 부족한 사람의 마음속에 숨어있다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어떻게 드러나는지 보고 싶습니까? 교회법에도 인색이 드러나는 방식을 열거하고 있지만, 인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서는 괄호 안에 닫아두기로 합시다. 그보다는 병자의 고해성사에 대한 교회법 조항을 상기하는 것이 유익하리라 생각됩니다. “고해사제가 병자를 방문할 때 두 명의 수도자가 동반해야 한다. 문을 열어둔 채 멀리 서 있다가 끝난 다음 사제를 다시 안내하도록 한다.”6
교회가 얼마나 지혜로운지 보십시오!
태만에 관해서는 아직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성바오로딸들에게 점차 일이 많아질수록 어려움도 커집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위해 죽고 싶습니다. 저에게 병을 주십시오.”라고 청하는 것이 좋은 일입니까? 아닙니다. 태만입니다!
“병들게 해주십시오.”라고 하거나 “우리에게 십자가를 보내주십시오.” 라고 기도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청했기 때문에 나는 병이 들었습니다. 나를 희생제물로 봉헌하고 싶습니다.”라면서 자만합니다. 그런데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치고 싶다면 일하는 데 더 적극적으로 나서십시오!
그리스도교 초세기에 가끔 이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박해시기 동안 독재자가 순교자를 고문할 때, 군중 가운데 어떤 사람이 자신도 그리스도인이라고 선언하면서 고문받는 자들 가운데로 들어왔습니다. 이런 행동이 적합합니까? 아닙니다.
교회는 경고했습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우리 생명의 주인이시므로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생명을 내놓을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자발적인 의지로 자기 자신을 희생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특별해지려는 야심 때문에 단식을 시작합니다. 한때 얼굴이 창백하고, 야윈 몸이 칭송받는 때가 있었습니다. 이런 것은 잘 알고 있듯이 덕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Manducate quae ponuntur vobis.”7 먹으라고 사정하게 하는 것은 위선이고 야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일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지만, 우리는 이상한 신심이 있는 지역 가까이에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병이 들어 희생제물이 된 것을 드러내려 애쓰고, 또 다른 사람은 음식 먹기를 거절합니다. … 아, 바늘로 찔리는 고통도 참지 못하는 불쌍한 중생들!
어떤 수녀가 늘 “비록 부족하지만, 내가 원장이었을 때 …”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단순한 자매가 어느 날 그 수녀에게 “마드레, 당신께서 비록 부족하지만 원장이셨을 때 …”라고 하자 그 전직 원장은 벌떡 일어서서 “누가 그렇게 가르쳤습니까?”라고 꾸짖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참된 덕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반면에 거짓된 덕은 늘 이렇게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원장의 허락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이지만, 결코 여러분 자신을 희생제물로 봉헌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우리가 병들기를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평화롭게 견딥시다! 보급에 나서는 자매들은 실제로 더 많은 고통을 겪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종류의 서원에 묶여있다면│
곧바로 그러한 속박에서 풀려나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사제들을 위해 희생제물로 저 자신을 봉헌했습니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도 자신을 봉헌했습니다. …”라고 말하겠지만 성녀 데레사는 허락을 받은 다음에 실행했습니다! … 왜 공동체에서 여러분의 힘을 이렇게 소진시키려고 합니까? 교회는, 특히 수녀들을 위해 고해사제들을 지혜롭게 선별합니다. 수녀들은 자기 수도회 정신에 따라 완덕의 길로 인도되어야 합니다.
왜 공동체에서 기도시간을 줄이려고 합니까? 기도는 특별한 힘입니다! 공동체는 기도와 또 힘이 필요합니다. 언제나 공동체 안에서 함께 지향을 두고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협력자들을 위해 허락된 방식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는 성바오로수도회와 성바오로딸수도회에서도 승인된 것입니다.
입원 치료를 받기 위해 코톨렌고 병원에 가게 될 때, 원장은 모든 의무에서 면제해줍니다. 아무도 특별한 신심을 바치지 말아야 합니다. 매일 바치는 60번의 “주님의 기도”는 다른 모든 신심을 대체하는 것입니다.
누가 여러분에게 기도를 청한다면 ‘저는 모든 이를 위해 기도합니다.’라고 대답하십시오. 여러분은 협력자들을 위해, 부모를 위해,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해 기도합니다. … 지금까지 말한 잘못된 인식은 한 번으로 그쳤으면 좋겠습니다!
대피정은 과거를 보상하고 미래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수도서원은 “정의에 따라”8 구속력을 갖는 계약입니다. 사랑으로, 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좋지만, 먼저 정의가 세워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소금을 사러 가서 “내가 소금값 20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싶소. …”라고 말한다면, 상점주인은│
“먼저 여러분의 의무를 행하시오. 그런 다음 애덕을 행하도록 하시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상점 주인의 말이 옳습니다.
“수도생활의 또 다른 적은 신경과민입니다.”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쏟아낸 다음, 기분이 나빴다면 사과하겠어요. 이것이 내 성격이라서.”라는 태도는 고쳐야 합니다! 회원을 양성할 때 좋은 성격, 최상의 성격이 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첫 인상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어떤 결점과 약함도 다 교정될 수 있습니다.
특히 자주 아첨하는 말을 듣게 되는 책임자들은 교정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도움이 되고, 좋은 일입니다. 친구를 얻는 사람은 보물을 발견한 것입니다. 우리를 고쳐주려고 애쓰는 친구가 가장 좋은 친구입니다.
교정해 주는 사람이 우리에게 좋지 않은 말을 한다 해도, 그것을 나쁘게 받아들이지 맙시다.
통풍痛風은 귀족들의 병이고, 신경과민은 …의 병입니다.
“수도생활의 또 하나의 질병은 부모들입니다.” 부모들은 자녀가 수도회에 들어가거나 완덕을 지키는 삶을 사는 것을 반대하곤 합니다. 그러므로 응접실에서 부모님들의 하소연을 들어줄 필요는 있지만, 그런 다음 “저는 수녀가 되겠습니다!”라고 분명히 말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어머니는 여러분이 받아들인 신분을 기쁘게 사는 것을 볼 때 만족해할 것입니다.
때로는 경멸과 감언으로 속이려 드는 세상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 불쌍한 수녀님, 그토록│
젊은데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하다니! … 그리고 여기서 되풀이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말들을 덧붙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해야 합니까? 아무말도 하지 마십시오. 입을 다무는 편이 낫습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에게는 그 어리석음에 맞추어 대답하시오Responde9 stulto juxta stultitiam suam.”10 가장 뛰어난 대답은 침묵입니다.
“오, 결코 여러분이 겪어본 적이 없는 희생의 삶인데!” 세상은 수다쟁이들입니다. 여러분이 잘할 때도 말이 많겠지만, 여러분의 잘못을 볼 때 더 참지 못할 것입니다. 세상은 어떤 것보다도 위험합니다. 나쁜 표양을 보이면서도 놓아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악의에 차 있는 세상에서 도망쳐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미워하기 때문에 세상은 우리를 미워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11 수도생활에는 수많은 적이 있습니다! 길을 가면서 여러분의 보물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늘 깨어있으십시오. 언제나 높은 곳을 바라보십시오. 어디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우리를 앞서 가셨고, 이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곳, 천국을 바라보십시오.
1 마태 6,16 참조.
2 마태 7,5.
3 원문에는 biricchini로 되어있다.
4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표현.
5 마르 5,19 참조.
6 Can. 910/1 참조: “ … 지역 주교단이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주의사항을 따르면서.”
7 루카 10,8.
8 “ex justitia”.
9 원문에는 respunde로 되어 있다.
10 잠언 26,5.
11 요한 15,19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