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영적 지도는 고해성사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므로 고해사제한테서 주어질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포괄적인 지도입니다. 특수 지도는 회원들을 어떻게 양성시킬지 아는 수도회에서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지도입니다. 곧 바오로적 정신의 양성을 위한 일관된 지도입니다. 참된 지도를 통해 여러분은 많은 시간을 벌게 됩니다. 여러분이 오스티아Ostia에 가야 한다고 가정했을 때, 올바른 길을 택한다면 한 시간도 채 안 걸리겠지만, 아무 길로나 간다면 노고와 시간만 들이다가 되돌아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수도회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라고 하신 스승 예수님을 세상에 선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분은 출판을 통해 세상에 드러나시고, 길이신 예수님은 예수님이 먼저 실천하신 수도자의 덕을 보여주신 귀감으로 드러나십니다. 실제로 그분은 우리에게 가정적인 덕, 곧 순종, 겸손, 근면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30년 동안 숨어 사셨습니다.
“순명”,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Et erat subditus illis.”2 복음은 이 문장 안에 나자렛 집에서 생활하신 예수님의 삶을 요약해 주고 있습니다. 경탄할 일입니다! 우주의 창조주께서 당신의 두 피조물에게 복종하시다니! 자신의 아들에게 복종하는 아버지의 겸손이나 자기 하인들에게 복종하는 주인의 겸손보다 더 큰 겸손입니다! 예수님은 사형집행인이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팔을 벌리라는 명령을 했을 때에도 순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겸손의 귀감”이십니다. 구유 안에서 부족하고 연약한 아기로, 도움이 필요한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오직 짐승의 숨결만이 온기를 내뿜는 그 가난한 외양간, 그 구유에서 헤로데의 위협을 피할 수 없어 이집트로 피신하신 사실은 우리에게 얼마나 깊은 겸손을 가르쳐줍니까! 그분은 하느님이시요, 왕 중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나자렛 집에서도 깊은 겸손의 귀감이심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그 집은 사람이 살 수 없어 버려진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집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모습으로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초라한 기술자 취급을 받으셨습니다.
그분 자신이 그 사실을 말씀하시지 않았더라면 그 겸손한 모습 속에 하느님의 성자를 감추고 계셨다는 사실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유년시절을 보내시던 예수님을 관상해봅시다. 아직 연약한 어린이였지만 물을 긷고, 집안을 청소하고, 성 요셉의 공방에서 일을 배웠습니다. 아버지가 일하는 작업대에서 떨어지는 나무 부스러기3를 줍고, 톱과 대패의 사용법을 배우던 모습을 숙고해봅시다. 그분의 노동은 30세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성 요셉의 가르침을 받아 일을 하셨고, 나중에는 공방의 책임자가 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사랑의 본보기, 극기의 본보기, 모든 수도자의 덕의 본보기, 모든 윤리덕의 본보기가 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얼마나 많은 선이 간직되어 있습니까!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배려를 하셨습니까! 당신의 공생활 동안 그분은 병자들을 낫게 하시고, 빵을 많게 하시고, 절름발이를 걷게 하십니다. 더디게 깨우치는 사도들을 교육시킬 때 얼마나 인내하셨습니까! 그분은 마에스트로들의 참된 귀감이십니다!
극기의 귀감으로, 음식의 결핍, 고된 노동, 많은 이에게 반대를 받으심, 그리고 죽음으로 내몰리셨습니다. 아, 당신 수난의 길에서 행하신 예수님의 극기!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은 온순함!4
“나는 길이다.” 거드름을 피우는 길이 아니요, 부자의 길, 환상의 길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무턱대고 “너희의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이 먼저 십자가를 받아들이면서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5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합니까? 수도생활은 예수님의 덕을 본받는 것입니다. 이제 수도생활의 특징인 세 가지 덕, 곧 겸손, 인내, 침묵에 대해 숙고해봅시다.
겸손: 겸손하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낮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곧 우리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우리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준주성범 저자는 “가장 고상하고 유익한 지식은 자신을 참되게 알고, 자신을 낮추는 데 있다Sui ipsius vera cognitio et despectio.”6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에서 겸손한 사람을 이렇게 묘사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7
겸손한 사람은 잘못에 대한 지적을 받으면 ‘더 많은 지적을 받아야해.’라고 말하고, 고통 받아야 할 일이 생기면 ‘하느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시는군.’ 하고 말합니다. 열외로 취급받거나 잊혀졌을 때에는 ‘좋아, 이것이 내 자리야.’ 하면서 그곳을 자신의 자리로 받아들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기도할 때 예수님의 마음이 움직이시어 자비를 베푸시게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시기 때문입니다.8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Qui se exaltat humiliabitur et qui se humiliat exaltabitur.”9 겸손은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큰 사람이 되게 하는 덕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기도할 때 감히 자신의 눈길을 하늘로 향하지도 못한 채 하느님께서 자신을 지지해 주신다는 것을 놀라워합니다.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는 살고 있던 수도원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죄로 인해 붕괴되지 않고 건재하는 것을 놀라워하였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다른 이들이 지적하는 말을 듣기 좋아하고, 잊혀졌을 때 더 잘 지내고, 누군가 자신을 칭송할 때 불편해합니다.
예수님은 잔치에서 윗자리를 찾는 바리사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 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 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10
겸손한 사람은 수도 가정에서 윤활유 역할을 합니다. 기름은 톱니바퀴가 마찰로 인해 마모되지 않도록 하는 데 필요합니다. 겸손한 사람도 이처럼 공동체 안에서 충돌을 막고 오해를 없애는 평화의 요인이 됩니다. 겸손한 사람은 늘 아름다운 색깔과 향기를 뿜는, 수풀 속에 숨겨 있는 제비꽃과 비슷합니다. 겸손은 세상의 그 어떤 돈으로도 결코 살 수 없습니다. 겸손한 마음을 지닌 사람에게는 모든 사람이 친구입니다. 모두가 겸손한 사람을 찾습니다. 모든 것이 잘 되어 갈 때 교만한 사람들은 드러나려고 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마르타의 역할을 더 좋아합니다.11
겸손한 사람은 고통스러움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사람이 필요한 사람, 불안한 사람이 찾아 갑니다.
복된 겸손!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는 이 덕이 자신의 모든 영광의 원리라는 것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라Respexit humilitatem ancillae suae, ecce enim ex hoc beatam me dicent omnes generationes.”12 사실 성모님이 하느님의 총애를 받으신 것은 위대한 겸손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그분이 겸손하셨으므로 당신 어머니로 택하셨습니다. “그분의 동정 때문에 (하느님께서) 좋아하셨고, 그분의 겸손을 통해 어머니가 되셨습니다Virginitate placuit, humilitate concepit.”13 모든 이에게 어떤 부담, 번민거리, 극복할 수 없는 슬픔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거만한 자매 한 명으로 충분하듯이, 고요와 기쁨과 평화로 가득 찬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도 겸손한 자매 한 명으로 충분합니다.
인내: 오, 거룩한 인내 … 인내가 있는 그곳에 우리가 있습니다!왜 ‘거룩한’ 인내라고 합니까? 인내가 성인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순명’, ‘거룩한 사랑’을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여러분은 ‘거룩한 인내’라고 말해본 적이 있습니까? 무엇보다 이 덕을 실천해보았습니까? 이 덕을 누군가 실천하게 합니까, 아니면 우리가 먼저 이 덕을 실천해야 합니까? 이를 실천하고 있다면 인내를 쉽게 깨닫겠지만, 누군가에게 실천하게 하려는 것이라면 인내를 모르는 것입니다. 이를 심판날 보게 될 것입니다. 심판 때 가장 위대한 사람들은 참으로 인내하는 이들, 십자가를 짊어지고 갈바리아로 오르시는 예수님을 본받는 이들입니다. ‘인내하시는 예수님’.14
모든 것을 견딜 결심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웃이 자신을 견디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도원에는 불편한 점들이 많습니다. 요리는 유통기간이 지난 식재료를 사용하고, 침대시트는 새 것이 아니고, 새 신발도 없고, … 그러나 이 모든 결핍은 자신을 위해 아주 충분하다고 여기는, 하느님과 사랑에 빠진 영혼의 몫입니다. 여러분은 재빠르지 않으면 늘 남는 물건을 차지하게 되고, 가장 낡은 시트를 사용하게 되고, 가장 빛바랜 옷이 자기 것이 되고, 가장 힘든 일이 자기 몫이 됩니다. 오늘은 시간의 여유가 있습니까? 좋습니다. 그 시간을 수도원을 청소하기 위해 쓰십시오. 다른 자매들은 쉬러 가라고 하십시오. 피곤하지 않도록 … 그렇지 않으면 자매들은 드러눕게 될 것입니다. … 졸려도 힘들어 하지 않고 잘 견디는 그가 하도록 놓아두십시오!
아, 큰 덕이라는 것을 모르는 채 작은 일들만 하는 부지런한 꿀벌들! 그는 작은 일들만 할 줄 알지만, 이러한 작은 일들이 함께 어우러져│
큰일이 됩니다. 일상의 지속적인 순교입니다. 부지런한 꿀벌은 하느님께 사랑받고, 천사들과 가족들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사랑받습니다! 예, 물론 이러한 영혼들이 있습니다!
인내는 용기보다 위대합니다.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심 많은 사람이 용사보다 낫다Melior est vir patiens viro forti.”15 왜 성공하지 못합니까? 실패는 저쪽으로 던져버리십시오. … 틀림없이 성공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서두르지 말고, 하느님의 섭리를 강요하지 마십시오! “그렇지만 어려움이 너무 많다고요!” 풀릴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많은 이들이 활동을 시작하지만, 소수만이 마지막까지 이어갑니다! 큰 희생정신과 극기정신이 필요합니다.
침묵: 특히 나자렛에서 숨어 사시던 예수님의 삶이야말로 수도자들의 위대한 귀감입니다. 수도생활은 예수님의 귀감을 지속적으로 본받아야 하는 삶입니다. 이는 성바오로딸들의 의무입니다. 크고 작은 수도원은 덕을 쌓는 둥지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수도회는 신앙의 수도회, 성화의 수도회입니다. 여러분을 통해 그분의 생명이 드러나도록, 더욱더 예수님을 본받으면서 매일의 삶을 성화시키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 …”.16
1 요한 14,6.
2 루카 2,51.
3 원문에는 truccioli로 되어있다.
4 참조: 이사 53,7; 예레 11,19.
5 마태 16,24.
6 「준주성범Imitazione di Cristo」, I, II, 2 참조.
7 루카 18,10-14 참조.
8 1베드 5,5 참조.
9 루카 18,14.
10 루카 14,8-10 참조.
11 루카 10,40 참조.
12 루카 1,48.
13 S. Bernardo, 「동정녀 어머님께 대한 칭송Lode alla Vergine Madre」, 강의1, n.5.
14 “Jesus patiens”.
15 잠언 16,32 참조(불가타).
16 갈라 4,19: “ … donec formetur Christus in vob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