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회 초기에 있었던 일인데, 한 소년이 병이 들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본당신부에게 가서 하소연하자, 본당신부는 “아프지 않고, 결코 죽는 일도 없을 곳으로 그를 보내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장소는 아무데도 없습니다.
하느님 섭리를 거스르는 불평에는 투덜거림도 포함됩니다. 때때로 작은 불이익,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감수해야 하고, 또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가 올 것입니다. 어느 훌륭한 박사는 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리면서, 가장 친했던 친구와 함께 지내던 그 때에는 한 번도 덥다거나 춥다거나 하는 불평을 한 일이 없었다고, 그 시절을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훌륭한 가르침을 주는 세상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머니들이 겪는 희생, 고통, 반대 받음을 생각한다면 자신의 고통 따위는 입을 다물게 될 것입니다.
미리 대비하기 위해 추위와 더위를 확인하는 것은 불평이 아닙니다만, 때로는 아주 쉽게 작은 것들에 대해 생각 없이 불평을 하게 됩니다. 혹시 고통을 겪지 않아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천국으로 가는 ‘참된 왕도’는 준주성범이 말하는 것처럼 십자가의 길입니다. 세상의 모든 병을 치유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람이 죽을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 인내해야 합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순종과 인내
의 귀감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보장받을’ 것이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길로 가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보장은 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으로, 이것은 개인을 위해서나 수도 공동체를 위해서나 가장 가치있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1
“십자가에는 구원이 있고, 생명이 있고, 원수의 공격을 막는 방패가 있다. 십자가에는 천상의 아름다움이 스며있고, 십자가에는 지성의 힘이 있고, 십자가에는 영혼의 즐거움이 있고, 십자가에는 가장 높은 덕이 있고, 십자가에는 완전한 거룩함이 있다. 십자가가 아니면 영혼의 구원도 영생의 희망도 없다. 그러니 너는 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라.”2 ‘인내하라’는 것은 단순한 충고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모든 이를 위한 필수적인 지침입니다. 오직 십자가 안에 구원과 생명, 기쁨이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 고통으로 부르심 받은 영혼이 있다면, 그는 특권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함을 높이 평가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진정 우리 것으로 삼아야 합니다. 거룩함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이 아름다움에는 가시, 그것도 아주 작은 가시들이 많이 숨겨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큰 가시들을 견디어낼 힘이 없기 때문에 작은 가시들이 주어집니다. 많은 수녀회의 고해사제였던 어느 본당신부는 “많은 수녀들이 세상의 어머니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사실 수녀들이 어머니들의 덕성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바올리네들은 필요한 때에 자신들이 지닌 기능을 모두 발휘해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 아직 (잘 걸을 수 없어, 다른 이들이 먼저 지나가야
할 정도의) 노인은 없습니다. 공동으로 기도할 때는 모두 함께 아름다운 노래를 힘차게 부르면서 기도하십시오. 좋은 모범으로 젊은이들을 늘 앞서도록 하십시오. 어떤 직무를 맡든, 어떤 분원에 가게 되든 기쁘게 받아들이고 온순하게 따르십시오.
세월이 흐르면서 때때로 덜 순명하고, 덜 따르게 되는 일이 생깁니다.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주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미루지 마십시오. 이런 작은 일들 안에 우리를 위한 성화의 수단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거절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이 더 많은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없어야 합니다. 수도회를 위해 내놓아야 할 힘을 아끼지 마십시오. 수도회를 위해 우리의 모든 힘을 써야 합니다.
가끔 우리는 작은 희생을 큰 십자가로 만들곤 합니다. 작은 일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성 요한 베르크만스가 한 말을 늘 기억하십시오. “나의 가장 큰 고행은 공동생활입니다.” 우리의 공동생활은 작은 일들로 이루어집니다. 당연하게 베일을 써야 하고, 당연하게 흰 칼라를 착용해야 하고, 시간표를 따라야 합니다. 장상의 지시에 토를 달지 말고 단순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때때로 “그분들이 모르기 때문입니다. … 만일 알았더라면 …” 하고 말하기도 하는데 실은 그분들이 더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지시했을 것입니다. 모르는 것은 그대 자신입니다.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되게 도와주시도록 성모님께 기도드립시다. 선배 수녀님들, 서원자들은 다른 자매들보다 더 뛰어나야 합니다. 완덕의 사다리에는 올라가야 할 계단이 많고, 다른 자매들보다 노력해야 할 날들이 더 많이 주어졌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 한 장(22.5x35)으로 된 등사본이다. 제목: “바오로딸들에게 유보된 강의=프리모 마에스트로의 말씀”(6월 14일 주일). 등사본에 M. 이냐치아 발라 수녀가 손으로 “알바 1936년”이라고 썼다. 그 후의 타자본 모음집에는 같은 텍스트를 인용하면서 “인내와 준수”(1934); “너의 십자가를 져라.”(1936)라고 제목과 날짜가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사실 1936년 6월 14일은 원본에 기록된 것처럼 주일이었다. 창립자는 그 전날 6월 13일에 도착하여 강의를 한 것이다.
1 마태 16,24 참조.
2 「준주성범Imitazione di Cristo」, “왕도인 거룩한 십자가La vera regia”, II, XII, 1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