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o Giacomo Alberione

Opera Om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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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이웃 사랑

성 바오로는 코린토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하느님의 선물을 칭송한 다음 사랑에 대해 다룹니다.
성 바오로는 예언하는 은사, 방언의 은사, 기적의 은사에 대해 언급한 다음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일들은 감탄할 만하지만, 나는 여러분에게 가장 아름다운 성성의 길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사랑은 예언보다 우위에 있고, 방언과 기적보다 우월합니다. “내가 이제 여러분에게 더욱 뛰어난 길을 보여 주겠습니다. …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Meliorem viam vobis monstrabo. …Charitas patiens est, benigna est. Charitas non aemulatur, non agit perperam, non inflatur.”1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Charitas Christi urget nos.”2
오늘 저녁에 우리는 이웃 사랑에 대해 다룰 것입니다. 주님이 허락하신다면 하느님께 대한 사랑까지 살펴보려고 합니다.405
“이웃에 대한 사랑은, 우리에게 가까운 사람들을 사랑하는 선한 경향입니다.”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3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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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버렸다.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4
사랑은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호의적인compiacenza 사랑, 자비로운benevolenza 사랑, 갈망하는concupiscenza 사랑입니다.

자비로운 사랑Carità di benevolenza은 이웃이 잘 되기를 바라고, 잘 될 때 좋아합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사는 수업을 잘 하기 위해 준비합니다. 그 교사는 영성체할 때에도 예수님께 제자들을 부탁하고, 하루 종일 그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어떤 주의를 주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어떻게 그들을 사랑할 수 있을지 생각합니다.
방문선교를 하는 우리도 각 가정을 찾아가 선한 출판물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지 그 방법만 생각하며 사랑으로 다가가십시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Charitas Christi urget nos.”

호의적인 사랑Carità di compiacenza은 이웃의 선익을 기뻐하는 사랑입니다. 자매들의 선을 기뻐하고, 그들이 덕에 진보하는 것을 기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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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사랑은 시기, 질투, 악의를 없애고 맑은 마음으로 자매를 바라보게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늘 첫 번째로 칭송받지 못하면 상처를 받습니다.

애덕 또는 갈망하는 사랑Carità o amore di concupiscenza은 다른 이들이 선에 있어 성장하도록 계속 바라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갈망하다Concupiscere라는 말은 강하게 열망하는 것, 곧 염원만 아니라 행동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사랑하는 것은 아주 다릅니다. 사랑은 유일한 것으로, 영혼의 모든 능력이 다 포함되어야 합니다.
생각으로 사랑하는 것은 경솔한 판단과 미숙한 표현을 피하게 해줍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5 …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6 
애덕이 있는 사람은 이웃의 모든 행위를 좋게 바라보지만, 사랑이 없는 사람은 모든 것을 나쁘게 봅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잘못된 것 앞에서 쉽게 단죄하고, 선을 보면 “에이, 보이기 위해 그렇게 하는 거야”라고 말합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은 잘못을 용서하고, 선을 보면 칭찬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특징입니다. 결코 악의로 남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다른 이들에 대해 의심을 멀리해야 합니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불행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좋게 말했습니다. 죽음으로 건너가는 영혼 앞에 하느님 자비의 심연이 있습니다. 그런데 죽은 이들의 영혼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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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카파쏘Cafasso는 자주 착한 우도의 예를 들면서 “그는 끝까지 도둑이었고, 그렇게 많은 죄를 지었는데도 연옥조차 거치지 않았다.”라고 했습니다.
하느님 자비는 위대합니다. 그대가 나쁘게 말하던 그 자매가 천국에서 그대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을 보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사랑은 도를 넘을 수도 있습니다. 가끔 너무 좋게만 보는 잘못을 범하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는 잘못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을 더 좋게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웃은 마귀가 아닙니다. 이웃은 우리와 같은 영혼을 지니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7 당신 피를 모두 흘리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엄격해야 합니까? 우리는 어떤 일을 명령만 하고, 행할 마음이 없기 때문에 모든 악의 원인이 됩니다.
가르치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지도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교의신학도 쉽지 않지만, 윤리신학은 더 어렵습니다. 법을 알아야하고,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하고, 교육학 규범 전체를 알아야 합니다. 그 훌륭한 「교리교사들의 교육학적 양성Formazione pedagogica dei catechisti8이라는 책은 얼마나 복잡한 사항을 담고 있습니까!

좋게 생각해야 합니다: 좋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에게 없는 자질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 성소가 있다고 판단했지만, 성소가 없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신성모독을 범했는데 화살기도를 바쳤으니 괜찮다고 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하지만 그 순간, 그 사람은 그의 행동에 대해 반성했다고 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의 잘못 때문에 세상이 얼마나 악해졌습니까! 교회는 긴 세월을 겪어내며 존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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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일꾼들이 더 열성적이었더라면 얼마나 많은 선을 이루었겠습니까! 우리는 세상이 잘못 되어가고 있다고 쉽게 말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 내 영혼 상태가 어떤지 누가 알겠는가!”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좋은 일을 더 많이 했을 것입니다.
잘 생각하고 나서 좋게 말해야 합니다.

마음의 애덕Carità di cuore: 올바르게, 합법적으로, 초자연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관심 있는 일에 대한 쏠림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사랑에 대한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이웃의 영혼 구원, 덕의 진보, 공덕으로 가득 찬 삶을 염원하는 것이 참된 애덕입니다. 이웃 사랑은 연옥영혼에 대한 연민을 느낍니다. 그들을 연옥 불의 감옥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특히 사랑하는 사람일 때 얼마나 많은 기도가 필요한지 잘 압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9

말에 있어서의 애덕Carita di parole: 잘 말해야 합니다. 잘 말할 수 없을 때는 침묵하십시오. 다른 이들의 결점을 덮어주고, 너무 분명하기 때문에 덮어줄 수 없을 때는 용서하는 마음을 지니십시오. 윗자리에 있다면 교정하고, 주의를 주어야 합니다. 마에스트라들은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시간표를 더 잘 지키고, 책임을 완수해야 합니다. 보조자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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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껏 자매들을 돌보아야 하며, 수도회에 마귀들이 숨을 수 있는 구멍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합니다. 교육, 교정, 경계를 강화해야 합니다! 

행동에 있어서의 애덕Carità di opere: 행동하는 사랑은 먼저 수도 가족을 위해서, 그 다음 다른 이들을 향해야 합니다.
수도자의 사랑은 선한 기질과 겸손한 태도로 드러납니다. 봉사정신이 투철한 삶의 모습은 그 사람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행동을 통한 애덕은 좋은 귀감이 됩니다. 분원에서 좋은 표양은 꼭 필요합니다. 성실한 기도의 귀감, 수도생활에 대한 규칙준수의 귀감, 인내의 귀감 등. 서로 멀리 있을 때는 쉽게 애덕을 실천할 수 있지만, 가까이 있을 때는 결점이 보이기 때문에 충돌이 일어납니다. 까다로운 성격은 좋지 않습니다. 관대할 필요가 있고,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그래야 공동체 삶이 고요하고 평온하게 흘러갑니다.
성녀 데레사가 한 말을 기억하십시오. “자매들이여,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고통을 잘 참을 줄 알아야 합니다.”10
누구에게나 잘 대해야 합니다. 성격이 뾰족하다면 둥글게 만들어야합니다. 인내로써 둥글게 만드십시오! 어떤 자매가 나쁜 성격을 조금이라도 바꿨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격려해 주십시오. 죽을 때까지 동료로 살면서 서로의 짐이 되기 때문입니다.
화가 날 때는 ‘내일 이야기하자, 내일 내 생각을 말하자’고 하십시오. 그러는 사이에 저녁이 오고, 성찰을 하고, 잠자러 가고, 그러면 잠이 많은 것을 정리해줍니다.
아주 온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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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심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 요한 베르크만스가 그랬는데, 그의 동료들은 “그분을11 성가시게 하면 더 좋아요. 나중에 우리를 더 사랑해 주시니까.”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사실 이 성인은 원수들을 더 사랑했습니다. 이러한 것은 불행하게도 쉽게 볼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자주 심술을 부리는 어린이들 같고, 자주 착각에 빠집니다.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12 
페라리13 추기경은 원장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 수녀를 만났을 때, “수녀님은 예수님께 다녀오셨습니까? 이런 일들을 마음에 품고 영성체를 하셨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먼저 예수님과 이야기하십시오.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지요!
태양 앞에 빙산은 녹게 마련입니다! 냉철하게 상황을 성찰해보면, 아주 작은 덕으로 넘어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새끼줄이 뱀처럼 보이고, 각다귀가 코끼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 결점이 그냥 지나가도록 놓아두지 맙시다. 우리 자신은 쉽게 용서하는 반면에 이웃을 질책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외부인들에 대한 공동체의 애덕: 오, 세상의 온갖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잘 설명하십시오! 그들의 영혼은 구원받아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 주님을 많이 사랑해야 합니다! 나쁜 책을 읽는 독자들을 환영하기 위해 지옥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이 영혼들을 도와주십시오.

애덕의 가치: 이웃 사랑은 현재만 아니라 미래의 삶을 위해서도 하느님의 축복을 가져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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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가르쳐주신 큰 덕은 우리에게 평화와 고요함을 가져다줍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14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15
때로는 약간의 노력만 해도 우리는 이깁니다. 어떤 자매가 우리를 대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우리 자신을 이겨냅시다!

애덕을 어떻게 얻습니까? 훈련과 기도를 통해서 얻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특히 기도를 당부합니다. 믿음, 희망, 사랑은 대신덕입니다. 하느님이 직접 주시는 덕입니다. 애덕을 얻기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하십시오!
성 요한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16 만일 여러분이 이 말씀을 실천한다면 더 많은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이 말씀하십니다. “가족 안에 불화를 일으키는 자는 내 앞에서 마땅히 미움을 받는다.”17 불화를 일으키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성경의 다른 곳에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사랑을 씨 뿌리는 자들은 천사들이다!”18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이 그 안에 계십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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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코린 12,31; 13,4.

2 2코린 5,14.

3 마태 22,35-39 참조.

4 루카 10,25-37.

5 루카 6,37 참조.

6 루카 6,27-28 참조.

7 원문에는 per cui로 되어있다.

8 Chiesa F., 「교리교사들의 교육학적 양성Formazione pedagogica dei catechisti」, Pia Società San Paolo, Alba - Roma 1934.

9 마태 25,35.40 참조.

10 Santa Teresa d’ Avila, 「완덕의 길Cammino di perfezione」, II, 11,3: “세상의 큰 고통을 면한 여러분은 제발 주님의 사랑을 위하여 남이 모르는 고통을 좀 참을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11 원문에는 quel로 되어있다.

12 마태 7,3 참조.

13 복자 안드레아 가롤로 페라리(Beato Andrea Carlo Ferrari, 1850-1921)는 밀라노의 대주교였다.

14 요한 15,12 참조.

15 요한 13,34 참조.

16 요한 15,17 참조.

17 잠언 6,16.19 참조.

18 마태 13,39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