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성화 혹은 완덕에 도달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성인들이 성화에 이르렀다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대신덕과 사추덕을 영웅적으로 행했는가를 보면 됩니다. (성인들의) 시성 절차에서 항상 일곱 가지의 덕행에 대해 살펴봅니다. 정의는 경신덕과 순명의 덕에 연관됩니다. 이제 사추덕의 용기와 절제에 대해 살펴봅시다. 의덕이 하느님께 대한 공경과 순명 안에서 이웃과 맺는 관계를 조절하는 데 비해 용기와 절제의 덕은 우리 자신과의 관계를 조절하게 합니다.
용기는 선을 행하고 악을 이길 수 있도록 굳세게 해줍니다. 절제의 덕은 우리로 하여금 목적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수단들을 조절하면서 사용하도록 해줍니다.
[128] 우리에게는 용기와 절제의 덕이 필요합니다. 생도들이 잘 배우기를 바라며 가르치는 선생들은 수업할 때 야단을 치지 말아야 합니다.
용기는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를 위해 세운 결심을 어떤 희생이나 순교를 치르고서라도 도달하게 해주는 덕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1 고 말씀하셨습니다. 길이 좁아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습니다.2
순교자들은 그 어떤 순교의 종류와 죽음 앞에서도 강인했습니다. 성녀 아녜스, 성 로렌조, 우리의 성 바오로와 성녀 테클라를 보십시오. 얼마나 굳센 분들입니까! 예수께 대한 사랑에서 그렇듯 강인한 것입니다.
용기에는 두 대상이 있고, 두 가지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1) 많은 어려움을 견디는 것과 2) 큰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강한 것을 수행하고, 큰 것을 견디는 것입니다 Fortia facere et magna sustinere.”
완덕, 진지하게 성화의 작업을 하는 사람은 욕정에서 기인하는 교만, 인색, 게으름, 자매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이나 때로 조롱과 멸시를 견뎌야 하는 등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공동체에서 성화되고자 하는 원의가 없는 사람이 관대하게 일하는 다른 사람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용기도 없고 일도 하지 않으며 누가 진지하게 일을 하는지 볼 줄도 모릅니다. 그들은 순명하지 않으면서 장상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을 대적하여 화를 내며 다른 사람들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합니다.
[129]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참으로 많은 장애를 견뎌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장상들이 볼 줄 모르고 파악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럴때 당사자는 가엽게도 고통을 당합니다. 진정한 순교자에 대해 탕꿰리는 ‘서서히 타는 불 속에 있는 순교자’3라고 했습니다. 모든 면에서 인내롭게 견디려는 자매를 거슬러 모든 이들이 그에게 돌을 던지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니코시아의 가난한 성 펠릭스를 보십시오. 장상을 포함하여 모든 이들이 마치 그를 고통스럽게 할 권리라도 있는 것처럼 대했습니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모든 것을 견뎌냈기 때문입니다. (성인들의 생애를 보면 어떤 장상들은 참으로 흉한 짓을 합니다.) 어린 새들을 잔인하게 괴롭히면서 즐기는 소년과 비슷한 사람이 있습니다.
성인이 되고 싶은 사람은 큰 시험들을 이겨내야 합니다. 고통을 받고 싶지 않은 사람은 성인이 되는 것도 포기해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 심하게 다그쳐야 의무를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인들은 자기들의 좋은 점을 감추고 싶어하지만 성인이 아닌 이들은 남이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성인들은 멸시를 찾지만 성인이 아닌 사람들은 자기를 거스르는 말들에 화를 내고, 심지어 제대로 보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화를 냅니다.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베들레헴, 나자렛, 갈바리아에서의 예수님을 따르고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30년간 드러나지 않게 일하셨고, 중상모략을 당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굳건해야 합니다. |
[130] 삶에서 주어지는 큰 덕도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은 위대한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큰일에서도 덕을 계속 실천하라는 말입니다.
매일의 규칙준수에 완전하고 준비된 자세로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행하는 것은 위대한 덕이 됩니다. 여기에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분명한 일과 위대한 선을 행하는 것들도 포함됩니다. (사람들에게 수도회에 희사금을 내도록 독려할 때 용기의 덕을 실천하도록 하는 기회가 됩니다.)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수단을 마련하기 위해 큰 지출을 하는 것도 위대한 일입니다. ‘큰일을 착수’ 4하기 위해 큰 지출을 해야만 할 때도 하느님을 믿고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초보자들은 반대되는 결점과 투쟁하면서 용기의 덕을 실천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겁이 많은 사람은 성인이 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때까지 작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위대한 일을 하고자 하는 좋은 갈망을 지니지만 많은 사람이 마음이 약하여 이를 이행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평범함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특색 없이 사는 것을 법처럼 여깁니다.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평범함에서 탈피하여 구별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느 지점까지만 겸손해지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대단히 겸손해야 합니다.
초보자 단계의 영혼은 실행한 후에 중단하는 실망감을 역행하여 무장합니다. 침묵 중에 견디고 끊임없이 작업하는 인내심을 획득합니다.
[131] 진보 단계의 영혼은 서서히 타는 불길과 같은 일상의 순교를 감수하는 용기를 실천하며 역경들을 미소로 대하기에 이릅니다. 때로 그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힘겨운 질병 때문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을 겪을 수 있습니다. 용기의 덕은 이런 고통을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다는 행복감으로 기쁘게 견디어내도록 가르칩니다. 해결점을 찾으려면 기도하고 조언을 구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뜻으로 드러난다면 어려움이 있더라도 한번 결심한 것을 단념하지 말고 견디며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어려움은 항상 강인함을 훈련하기 위한 기회가 됩니다. 완성 단계의 영혼은 성령의 은총으로 용덕을 실천합니다. 곧 성령에게서 오는 용기를 완벽하게 획득합니다. 이 영혼은 십자가의 예수님을 늘 염두에 두고 있으므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그분을 따르고자 합니다.
예수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모든 형리를 멸망시키실 수 있었지만, 온갖 저주와 고난을 평온하게 견디셨습니다. 겟세마니에서의 번뇌, 채찍질과 가시관을 쓰심을 생각해 보십시오. 갈바리아로 오르는 길, 십자가 형, 돌아가시기 전 세 시간 동안의 극심한 고통을 생각해 보십시오. 십자가 상에서 예수께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십시오!5 하신 것처럼 비방과 저주, 반대를 견디고 적들을 위해 기도하려면 용덕이 필요합니다.
예수께서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박해하며,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6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이런 것들을 견디도록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
[13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7 여러분은 자매들의 임종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그 많은 고통을 견디어 냈는지 보았습니다. 인내는 용기의 한 부분입니다.
‘절제’는 우리의 욕정을 절제하고 억제8하는 것인데, 특히 미각과 육감 두 가지 것에 해당합니다. 분노를 완화시켜 온유한 사람이 되게 합니다.
정결, 온유함, 겸손은 절제의 덕에 속합니다.9
우리 안에 있는 욕정에는 두 가지 등급이 있습니다. 대단한 분노에 속하는 것과 정욕에서 오는 것이 있습니다. 절제는 모든 것을 조절할 줄 알게 합니다. 절제의 덕은 시선, 호기심, 알고 싶고 말하고 싶은 욕망, 읽지 말아야 할 것을 쉽게 읽는 것, 방해되는 것을 말하고 싶은 욕구들을 조절해 줍니다. 또 마음과 애정을 절제하게 합니다. 남을 사랑하는 데 있어 지나치게 인간적이고 감각적인 것을 절제하게 합니다. 절제의 덕은 우리의 원의들을 조절합니다. 늘 집에 가고 싶어하고 많은 구실을 대며 갈 기회를 만드는데 이제 여러분의 가족은 바오로가족입니다.
[133] 절제는 대부분 먹고 마시는 것에 적용하는 것으로 여기며 특별히 음식과 마실 것을 조절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모두 맞는다고 볼 수 없습니다만 이것도 절제의 한 부분입니다.
절제는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욕정이 우리를 극한 상황에 까지 끌고 갈 수 있습니다. 만일 휴식이나 보는 것, 상상을 절제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내적 외적 감각들이 어떻게 순수함을 보존할 수 있겠습니까? 분노를 조절하지 않는다면 이성을 잃지만, 화가 날 때 절제하여 조금 기다렸다가 말할 수 있습니다.
전혀 절제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침에 아름답고 빛나는 태양이 떠오르면 온통 환희에 넘칩니다. 대신에 구름에 덮여 있다면 말할 수 없이 불안해하고 의기소침해 합니다. 만일 오늘 자신이 모든 면에서 옳은 것으로 보일 때 자신을 방어하기 이전에 먼저 고해성사를 잘 보도록 하십시오. 절제가 필요합니다! 이 점에 관해 우리 모두 주체자이기에 절제로써 처신할 수 있는 방도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절제하지 않으면 우리의 욕정에 휘말리어 결코 그 어떤 덕도 획득하지 못합니다. 자유분방하고, 올바른 이성의 인도를 받지 않아 절제하지 못할 때 욕정은 해를 끼칩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그 누구도 부유할 수 없기에 겸덕은 하느님 대전에서 부유하게 해주는 덕이다.”10라고 성 암브로시오는 말했습니다.
이는 절제 자체가 덕행의 총체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초보 단계의 영혼은 절제의 덕이 부족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 쉬는 것에서 정도를 벗어나려 하지 않습니다. |
[134] 눈, 혀, 귀, 마음을 조절합니다. 때때로 강렬하게 표출되는 감정을 억제합니다.
관능과 신심을 동시에 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감각적인 신심을 갖고 때로 죄가 되는 일도 행합니다. 그러나 신심은 낭만적인 감성이 아니며, 영성이란 이름 아래 욕정을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진보 단계의 영혼은 예수님의 배움터에 나아가 절제의 덕을 실천하면서 예수님을 닮으려고 노력하고 절제의 덕을 훈련합니다. 예수님의 절제를 관상하십시오. 제자들이 그분께 음식을 갖다 드렸을 때 “나의 버지의 뜻을 행하는 다른 음식이 있다.”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피곤하고 시장하셨는데도 말입니다! 십자가 상에서 그분께 마실 것을 드렸을 때 쓰디쓴 맛을 느끼기 위해 맛을 보았을 뿐 더는 드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설교에는 절제에 관한 말씀이 얼마나 많이 담겨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절제는 특히 그분의 순수함에서 드러납니다. 이 점에 관해 누구도 감히 고발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의 모든 점에 대해 고발했지만, 절제에 관해서는 고발하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위험한 인물들을 대하셔야 할 때도 품위와 겸허함을 지니셨습니다. 그분은 간음한 여인을 보호하실 때 악을 슬쩍 넘겨 버리시지 않고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행하셨습니다. 이런 불결한 일을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단순하게 “다시는 죄짓지 마라.”12 하셨습니다. |
[135] 대단한 절제를 하셨던 것입니다. 십자가에서도 같은 절제 정신을 지니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워 있을 때에도 절제할 수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완성 단계의 사람은 늘 함께하는 경외심의 은총으로 절제의 덕을 실천합니다. 이 은총은 영혼이 하느님을 불쾌하게 해드리거나 신랑이신 주님의 마음을 상하게 해드릴까봐 늘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니는 섬세한 사람 안에 존재합니다. 때로는 영성체를 하러 제대 가까이 가는 것 조차도 두려워합니다. 이런 섬세한 감수성 때문에 연옥 영혼들은 하느님의 빛 안에서 기꺼이 자신을 정화하는 불 속에 뛰어듭니다.
두려움이 없는 영혼은 추락하고 맙니다. 경외심을 지닌 영혼은 모든 면에서 하느님의 마음을 상해드릴까봐 두려워합니다. 이 두려움은 모든 직무수행과 겸손을 살아가는 데 기초가 됩니다. 기쁘게 다른 사람들이 먼저 말하도록 하고 본인은 천천히 말합니다. 두려움은 말을 하지 말아야 할 때 입을 다물게 합니다. 침묵을 지킬 줄 압니다. 분산과 분심을 가져오는 온갖 판단과 무익하고 헛된 장황한 설명으로 책임감을 축적하지 않습니다. 분원에서 침묵을 잘 지킵니까? 이 점에 관해 모원에서 조정해야 합니다. 분원은 인원이 적기 때문에 자주 여러 가지 것에 순응하는 자세가 필요하지만 시간과 장소에 따라 침묵을 지켜야 합니다. 한마디의 말에 대해 꼬리에 꼬리를 물지 말아야 합니다.
보십시오. 많은 악스러움이 혀를 극기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욕정이 혼란에 빠집니다. 혀를 극기하고 침묵을 지키십시오. |
[136] 그렇지 않으면 수도원은 착한 여인들이 모여 사는 집이 되고 말 것입니다.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지만, 수도원들이 예쁜 바구니에 물을 담는 것처럼 될 것입니다. 바구니에는 물을 담지 못합니다.
모든 것에 대해, 모든 이에 대해 쉽게 말을 하여 마음속에서 그릇되고 허망한 많은 것들이 태어나고, 장상에게서 명을 받을 때 이의를 제기하며 비판하는 모든 감정을 드러냅니다. 그렇게 되면 규칙을 지키고 온순히 따르는 대신 힘을 낭비하면서 홀로 떨어져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침묵을 지키십시오. 침묵을 다시 잘 지키도록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수도생활은 마치 뚜껑 열린 병에 아주 귀한 술을 담아 두는 것처럼 다 날아가고 말 것입니다. 시간이 얼마 지난 후에는 병에 나쁜 물만 남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침통한 태도로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는 것도 절제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죄를 통회하고 있는데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죄에 대한 통회는 하느님께 드리는 것이지 자기 주변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절제가 가장 필요한 것은 많은 말에 대한 것입니다. “누가 말을 하면서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면 완전한 사람입니다.”13라고 성 야고보는 말했습니다.
1 마태 11,12 라틴어 원문: “Regnum Dei vim patitur et violenti rapiunt illud.”
2 마태 7,14 참조.
3 A. Tanquerey, Compendio di teologia ascetica e mistica, n.1081.
5 루카 23,34.
6 마태 5,11 참조.
7 마태 5,12.
8 이탈리아어 인쇄 실수로 보여지는 rafferma를 ‘raffrena’로 바로 잡음.
9 A. Tanquerey, Compendio di teologia ascetica e mistica 의 요약, n.1099.
10 라틴어 원문: “Dives est modestia apud Deum, apud quem nemo est dives.” 밀라노의 주교이며 라틴 교회 교부 성 암브로시오(339-397)의 표현이다.
11 요한 4,34 참조.
12 요한 8,11.
13 야고 3,2 라틴어 원문: “Si quis in verbo non offendit, hic perfectus est v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