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성사는 은총의 운하입니다. 은총은 영원한 생명을 위해 솟아나는 샘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성사는 찢긴 늑방을 보이며 왕좌에 앉아 계신 하느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그 벌어진 늑방에서1 물이 흐르는 7개의 골짜기로 표현합니다. 성사는 은총을 가져다주는 많은 강물처럼 영혼을 하느님의 양자가 되게 하며, 성삼의 궁전이 되게 하는 성화 은총이라는 이중의 은총을 가져옵니다. 이것이 성사적 은총인데 모든 성사가 그러합니다.
성화 은총으로 인해 모든 영혼이 거룩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영웅적인 성덕에 이르렀기 때문이 아니라 성삼께서 사시기 때문입니다.
[31] 성사를 많이 받은 만큼 은총을 쌓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은 빗물이 도달하는 골짜기와 같습니다. 빗물이 풍부하다면 골짜기의 물이 점점 불어날 것입니다.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2 성모님은 은총으로 충만한 분이셨습니다. 성인들은 깊은 골짜기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사를 통하여 골짜기를 채우고자 애쓴 분들입니다. 늘 성사를 잘 받는 사람은 죽음의 순간에 골짜기를 채우는 마지막 성사를 받게 될 것입니다.
성사의 은총에는 각 성사의 고유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견진성사는 그리스도의 훌륭한 군사가 되는 은총을 받아 유혹을 견뎌내고, 인간적인 것을 넘어 신앙을 고백하고, 영혼의 원수와 힘차게 싸우며 열성으로 사도직을 수행하는 은총을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성체성사는 매
일 소죄를 예방하는 은총을 부여합니다. 병자성사는 하느님의 사랑, 거룩하신 뜻에 맡기고 죽을 수 있는 은총을 부여합니다. 고해성사는 항상 죄를 미워하는 은총을 부여합니다.
성사 외에 성화 수단은 준성사가 있습니다. 준성사는 외적 표지들로 (행렬, 강복 등) 성화 활동3에 일치하는 교회 기도의 덕에서 오는 효과입니다.
준성사 중에는 죄를 사해 주는 것이 있습니다. |
[32] (고해성사로 죄를 사해 주는 것과 똑같지는 않지만) 이들은 미사의 영성체 전이나 성사 집전 전에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사하여 주소서.” 4라는 기도로써 행합니다. 축복들(묵주, 성당, 성체현시 등), 성주간에 행하는 수난예절, 행렬 등의 전례거행이 있고, 강론, 성경봉독 등 하느님 말씀이 있습니다. 연중 전례, 착복식 등의 여러 준성사를 받는 이들에게 많은 은총과 공로가 증가합니다.
은총과 공로의 또 다른 샘은 기도입니다.
혼자 하는 기도는 영혼이 하느님을 향해 마음을 올리는 것입니다. 기도, 묵상, 묵주기도, 화살기도들, 은총을 얻기 위한 작업, 호칭기도, 그리고 수련기 자체는 기도입니다.
기도의 기능이 무엇입니까? 바퀴가 굴러가게 하고,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드러내게 합니다. 우리는 겸손이 필요한데 기도의 바퀴를 돌리면서 겸덕을 얻습니다. 우리가 유혹을 이겨내야 하는데 기도의 바퀴를 돌리면서 유혹을 이기게 됩니다.
기도로써 원하는 모든 것을 얻습니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입니다.”5
연옥에서 한 영혼을 구하길 바랍니까? 기도하면 은 총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기도의 바퀴를 돌리지 않는다면 은총을 받지 못합니다. |
[33] 세례성사 때는 우리가 청하지 않아도 은총을 받지만 다른 은총들을 얻기 위해서는 청해야만 합니다.
어린이가 이유를 대지 않아도 아빠 엄마는 아이를 위해 미리 모든 것을 배려합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일을 할 수 있으므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자신이 마련해야 합니다.
식탁에 국과 빵이 있는데 바라만 보고 먹지 않는다면 양분과 식욕을 채우지 못한 채 일어서게 됩니다. 양분을 섭취하고 싶다면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야 합니다. 영적 삶도 그러합니다. 은총이 존재하지만 은총을 받고 우리를 성화시키도록 청해야 합니다. 기도로 은총을 청합시다.
기도는 하느님의 선하심에 대한 신비입니다. 기도는 영적 기능을 움직입니다. 은총이 영혼 안에 들어오면서 지성에 신앙을 창출하고, 의지는 덕과 선으로 향하게 합니다. 마음에는 하느님의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기도의 정신과 선한 감정을 일으킵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이 선물들을, 영적 기능들을 무력하게 방치할 수 있습니다. 무엇으로 활발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기도입니다. 이 적극성이 부족하다면 영적 삶은 죽습니다.
적극적이라면 성덕을 가져옵니다.
기도로써 영혼이 성장하고 생기 넘치게 됩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지 않으면 영적 기능이 멈추어 영혼이 시들하여 죽게 됩니다. 마치 심장이 멎을 때 인간 육신이 죽는 것과 같습니다.
[34] 기도하는 만큼 영혼은 활발해집니다. 기도로 가꾸는 만큼 성덕의 열매를 맺습니다. 기도의 가치에 따라 그 사람이 가치 있게 됩니다. 기도는 영적 활기를 주기 때문에 믿음, 희망, 사랑을 실천하게 합니다. 세례 때 받는 믿음, 희망, 사랑으로는 부족하며, 진보하려면 훈련을 해야 합니다. 막 태어난 아기도 생명을 지니지만, 단련하지 않으면 아기의 기능들이 무력해집니다.
저는 신심주의나 영적 달콤함, 무익한 눈물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신심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참된 기도정신이 있습니까? 어떤 자세로 기도합니까? 참된 기도는 우리 영혼의 건강에 필요한 영적 은총을 틀림없이 얻게 하며,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을 얻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모든 덕을 잃어버리고 하느님의 사랑을 지니지 못합니다. 그 대신 기도하는 사람은 모든 영적 기능이 활발히 움직이게 합니다.
기도에 대한 주 결심은 세울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결심은 이미 항상 해야 했고 구원에 꼭 필요한 것이며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좋은 갈망은 많지만, 기도는 조금밖에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먼저 기도에 대한 결심을 하라고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은 기도하는 만큼 가치를 지닙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조금씩 소죄에 빠지게 되고, 조만간에 추락하여 대죄로 몸을 굽히게 됩니다.
[35] 기도를 하고, 언제나 기도하고,6 또 기도를 잘 해야 합니다.
기도할 것. 여러분은 모든 신심을 실천합니까?
언제나 기도할 것. 매일 충실히 신심 실천을 합니까?
잘 기도할 것. 곧 기도할 때 먼저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합니까? 여러 분의 기도에서 겸손과 신뢰라는 두 가지 본질적 조건이 있습니까? 만일 여러분에게 이러한 기도의 정신이 있다면 성인이 될 것입니다.
성 알로이시오7처럼 이미 성덕에 오른 사람이라 해도 아무도 자신의 구원에 관한 믿음이 확고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확신을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항구한 기도입니다. 은총 안에 항구하게 머무는
것은 매일 기도로 청할 때만 얻는 것입니다. 이는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9일기도와 양심성찰을 하고, 은총을 얻은 후에는 그 은총을 얻기 위해 더는 9일기도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다릅니다. 항구함이란 매일매일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항구함의 은혜를 일년 내내 청한 후에 중단하는 것은 부족합니다. 이는 음식 준비로 시간을 소비하지 않으려고 하루 안에 모든 것을 먹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매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일 먹어야 합니다. 매일 은총을 얻기 위해서도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날 기도를 잘 한다면 그날 항구할 것입니다. 한 주간 동안 기도를 잘 한다면 그 주간에 항구할 것입니다.
[36] 신심에 관해서는 결심을 세워야 합니다. “이것은 겸손에 대한 결심이고, 다른 것은 애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신심에 대한 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신심은 다른 모든 결심을 포함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인이 되려는 바람, 큰 성인이 되려는 바람, 빨리 성인이 되고자 하는 바람은 무의미합니다. 마치 앞마당에서 날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날기 위해서는 비행기가 필요합니다.
1 묵시 5,6 참조.
2 루카 3,5 라틴어 원문: “Omnis vallis implebitur.”
4 라틴어 원문: “Indulgentiam, absolutionem et remissionem peccatorum…”
5 마태 7,8 참조.
6 루카 18,1 참조.
7 루이지 곤자가(Luigi Gonzaga, 1568-1591) 성인을 암시한다. 예수회의 젊은 회원으로서 성화와 봉사 정신이 뛰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