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완덕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영혼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비슷하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1라는 중요한 이중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데 있습니다. 첫째는 특별히 내적 삶과 온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 이웃의 선익을 위해 행할 사도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수도생활을 하면서 이 두 규정을 잘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하느님께 대한 참된 사랑은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마음과 정서와 갈망을 갖도록 재촉합니다. 예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위해 일하고 사랑하며 고통받기를 원합니다. 관상생활을 하더라도 이에 도달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 대한 참된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한한 사랑으로 성부를 사랑하시는 성자요 구세주이며 인류의 구원자이시지만,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아무것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49] 더욱 관상적인 영혼이 가장 사도적인 사람이 됩니다. 성체께 대한 큰 사랑을 지닌 사람이 이웃을 위해 그만큼 많은 선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 됩니다.2
내적 삶과 사도적 삶은 서로 보완되고 독려합니다. 내적 삶이 결여된 사도적 삶이란 착각이며, 사도직의 불꽃이 없는 내적 삶도 착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자신을 낮추셨으며 사람들을 가르치셨고 성부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 세상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깊은 내적 사도적 마음을 지닌 분이십니다. 성부께 충실하신 분이며 그분의 사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밤새도록 기도하시며 성부를 관상하신 후 사도들을 뽑으셨고3 사도직을 수행하셨습니다.
내적 삶을 살지 않고도 사도직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은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두 가지 삶을 통합할 줄 아는 사람은 복됩니다. 더욱 깊은 내적인 영혼은 하느님의 마음을 더 폭넓게 지니게 되는 동시에 보다 열정적이고 사도적으로 됩니다.
이 점에 관련한 거짓 이상이 있습니다. 악마는 더 중요하고 귀중한 것을 속이려고 애를 씁니다. 1리라짜리를 위조하는 것이 아니라 천 리라짜리 수표를 위조합니다. 내적 삶은 세 가지 형태로 구별되지만, 결국 이 세 가지는 항상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살고, 그분의 원의와 그분의 정서를 지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모든 것에서 활동하실 수 있도록 내어드리기 위해 사라지는 것입니다.
[50] 첫째 단계를 영적 걸음의 초심자, 둘째 단계는 진보자, 셋째 단계는 완성자라고 부릅니다. 초심자란 완덕에 대한 참된 갈망으로 착하고 거룩하게 되고자 실제로 작업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자주 고의적인 소죄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들은 대죄를 지은 후 회심했거나 완덕 생활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한 순진한 사람이거나 대죄를 지을 기회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대죄를 범한 적이 없는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미지근한 영혼일 수도 있습니다. 이들은 초기에 상당히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완덕의 걸음을 시작하기를 바란다면 굳게 다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대단한 도약이나 깊은 통회가 없이 그릇된 평온함을 느끼면서 이를 성덕과 혼동합니다.4
진정 완덕의 길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영신수련, 신심 작업이란 무엇이며,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합니까?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을 지니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주 죽음, 심판, 지옥에 대한 두려움의 동기를 묵상해야 합니다. 영혼이 슬픔 중에 있다면 하느님 은총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주님께 내어 맡긴다는 의미를 묵상해야 합니다. 게으름이 끼치는 손해를 생각합시다.
완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수도자는 “원할 수도 있다.”라고 말하면서 참된 의지가 아니라 실현하지도 못할 야심을 갖고 삽니다. 이런 영혼에 대해 성녀 데레사는 포장된 지옥이라고 불렀습니다. |
[51] 자주 눈을 빼 버려야 할 때가 있고, 많은 욕망과 헛된 것들을 진정 포기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영적 길의 초심자들이 아니며, 진중하게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이 절대 아닙니다.
결심이 효과적이기를 바란다면 결심을 이행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써야 합니다. “내가 저 사람과 함께 가지만 더는 불평하지 않겠다.” 악마는 이런 결심을 비웃습니다. 만일 그 사람과 간다면 자신을 과신하고 있기 때문에 처음보다 더 나쁜 것을 할 것입니다.
또한 두려움의 동기를 묵상하는 것 외에 그것을 실천하고 결심한 바를 지켜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완덕의 길을 걷고자 원하면서도 투쟁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랜 기간의 투쟁과 결심을 지키는 긴 훈련이 필요합니다. 철저하게 순명하고 적극적으로 침묵을 지키며, 특별한 경고나 피정 중에 들은 모든 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양심성찰과 신심업을 열심히 행하며 마음을 잘 다스리고 지키며 보살펴야 합니다. 세상에서 참되게 이탈하여 가정이나 세속에서 생각하던 대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수도회 안에서 사는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할 것이며, 거룩한 무관심으로 맡은 모든 직무를 수행할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삶의 여러 단계를 거치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세심한 기간을 통과해야 합니다. |
[52] 실망하지 말고 주님께서 오직 순명만을 바라신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곧 시간표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 보면서 여러 가지 것을 영적 자세로 해야 합니다. 고해사제가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그런 것 같지 않은데.”라는 생각이 들어도 순명해야 합니다. 어떤 때는 순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예수님이 이를 원하시고 마음으로부터 순명하기를 바라십니다. 믿음과 희망과 육정에 대해 유혹을 받는 시기가 있습니다. 성 베네딕토는 매우 강한 육정의 유혹을 이기기 위해 육신을 극기하려고 가시덤불에 몸을 던졌습니다. 쇼타Chautard 아빠스는5 신앙의 유혹을 이기기 위해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자기 가슴에 “믿습니다!”라고 새겼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시기를 거치지만 이에 지배당하게 방심하거나 실망에 빠져서도 안 됩니다.
투쟁할 때에는 매우 철저히 통제하고 잘 깨어있어야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도 대죄에 빠지고, 또 빠질 수 있지만 진실한 의지가 있다면 위험한 손해를 당하지 않고 통회한 후에 새로이 비약하며 겸손하게 됩니다. 이런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신뢰하기보다 하느님께 큰 신뢰를 두며 불타는 사랑의 갈망으로 그분과 일치하고 영혼들의 구원에 대한 갈망으로 자신을 온전히 맡기게 됩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하느님을 신뢰하며 자기 자신에 희망을 두지 않는 것이 하느님께 이끌리기 시작하는 것이며, 영적 진보 단계에 들어서는 표시입니다.
1 마태 22,37-39.
2 요한 5,35 참조.
3 루카 6,12 참조.
4 A. Tanquerey, Compendio di teologia ascetica e mistica, n.637.
5 Jean B. G. Chautard(1858-1935): Sept-Fonds의 엄률수도회 아빠스. L’anima di ogni apostolato 외 영성 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