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우선 여러분이 대피정을 하기 위해 오신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피정에 관해 여러분에게 일찌감치 정보를 주었기 때문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불편이 없도록 준비해왔고 무엇보다 기도했을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는 대피정의 중요성과 피정을 잘 하도록 고무하는 첫째 강의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피정을 간절히 갈망하며 기다려 왔기 때문에 하느님과 여러분 자신을 생각하는 일에 마음을 온전히 집중하기만 하면 됩니다.
나와 하느님: “나를 알게 하시고 당신을 알게 하소서.”1 이 거룩한 날을 지내면서 “주님, 당신을 사랑하고, 천국을 갈망하며 공로와 은총을 얻도록 당신을 알게 하소서. 저의 부당함을 알고 뉘우치며 자신을 극복하여 새로운 마음으로 결심들을 지키는 것뿐 아니라 더 잘 지키도록
나를 알게 하소서.” 서원한 지 오랜 세월이 지나서 이미 다 이루었다고 멈추면 안 됩니다. |
[6] 앞으로 나아가며 진보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수도서원 후의 은총이 더욱 크기에 한층 더 잘 응답해야 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여러 해 전에 서원한 수녀가 “나는 수련자처럼 있는 것으로 충분해.” 라고 말한다면 대단한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길에 서 있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걸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걸어가지 않는다면 서원의 효과를 내지 못하여 중대한 책임을 지게 됩니다. 수련기 때 살던 상태로 만족한다면 진보를 하지 못하는 것뿐 아니라 퇴보하는 것입니다. 걸음이 필요합니다! 정말 걸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여러분에게 이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 대피정은 진보를 가져오는 피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진보 단계에서 뒷걸음질치지 않는 것만으로 만족해하는 자매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퇴보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나마 땅을 밟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퇴보한 사람들은?
이들은 큰 겸손과 큰 신뢰가 필요합니다. 이 피정을 잘 하기 위해 두 가지의 마음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느님 앞에 어린이처럼 있는 거룩한 단순함이 필요합니다. 어린이의 마음, 단순한 아이의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어린이처럼 된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의 총애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
[7] 예수님은 어린이를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끌어안으면서 제자들에게 본보기로 보여주셨습니다. “너희가 이 어린이처럼 작은 자가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2 이 말씀이 나이와 신체, 판단력에서 아이처럼 되라는 말씀입니까? 이는 악에 있어 아이가 되라는 말씀입니다.3 여러분이 어린이가 된다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들어 높여주시고, 안아주시며 당신 품으로 데려가시어 당신의 은총을 베푸실 것입니다.
첫째가는 준비 자세는 단순함과 겸손, 곧 어린이처럼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해야 합니다. “나는 많은 시간을 버렸다. 나는 많은 결점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도 교만하였구나. 그만큼 내 생각과 마음이 왜곡되었구나. 나는 예수님이 아닌 나 자신을 너무 사랑하였다.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을 찾았구나!”
예수께 다가가는 어린이처럼 되기 위해 영혼을 재정립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두 번째 준비 자세는 신뢰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말씀하시고, 귀 기울여 들으시며 당신의 은총을 건네시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이 피정은 세 가지 목표가 있습니다.
1) 자신의 영적 상태의 현주소를 아는 것.
2) 자유로운 마음과 원대한 사랑으로 주님을 향해 걸어가는 것.
3) 사도직을 예수님과 교회, 우리 수도회의 목표에 상응하도록 향상하고 완수하는 것.
[8] 여러분이 앞으로 나아가려면 아직 죄와 투쟁 중에 있는지, 또는 초보자인지 진보자 내지 완성에 이르렀는지 영혼 상태를 살펴봐야 합니다.
가장 불행한 처지에 있는 사람은 죄 중에 있는 사람, 무지와 악으로 인해 마음이 오그라든 사람입니다. 수녀들 중에도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수녀들 중에도 어떤 심각한 죄를 인정하지 않는 완고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특히 6계명을 거스른 일을 고백하려하지 않고, 양립할 수 없는 일을 유발시키는 유혹에 빠져 빈번하게 수도생활에 죄가 되는 만족을 허용합니다. 이렇게 수도생활을 습관적으로 소홀히 하는 것들로서, 수도생활에 악습이 끼어들고, 습관적으로 침묵을 위반합니다. 장상이 이러한 자매들의 악용을 묵인한다면 대죄가 되고, 남들에게도 대죄를 짓게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귀머리가 되어 들으려 하지 않고 악습을 없애려 하지 않으며, 많은 규칙을 면제받으려고 수많은 구실을 찾아내면서 습관적으로 대죄에 머뭅니다. “선한 의지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만 그것은 대단히 왜곡된 것입니다. 후에 악으로 드러나게 될 왜곡된 이 선한 의지를 적어도 피정 때 제거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어떤 사도직을 주어도 전혀 받아들이지 않으며, 자신의 능력을 주님과 수도회를 위해 사용하려 하지 않는데 이것은 중죄입니다. |
[9] 수도회의 자동차를 훔치는 것이 대죄라는 것은 곧바로 알아듣습니다. 그런데 영혼과 육신의 힘을 빼앗는 것은 수도회와 주님의 것을 훔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죄입니다.
어떤 관계들, 지속적으로 하는 불평들, 습관적인 것들은 중죄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쉽게 의식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태의 두 번째 단계는 겉치레의 수도생활입니다. 자만심에 가득차 죄를 가벼이 여기며 죄의 기회를 피하지 않습니다. 원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말하고 싶은 사람에게 다가가 이야기하기를 즐기며, 모든 그릇된 기회에 빠집니다. 의지적으로 그런 기회에 빠지는 것은 죄가 됩니다. 통회하는 마음 없이 고해성사를 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기도하지만 기계적이고 물리적입니다. 진심을 담아 숙고를 성실하게 하지 않습니다.
이 첫 번째 상태의 세 번째 단계는 수도생활을 그저 평범하게 하는 것입니다. 통회하는 마음도 없이 고해성사를 봅니다. 늘 위험한 기회를 피하지 않습니다. 경고사항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늘상 범하는 소죄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말로써 또 순명하지 않음으로써, 거짓말로써, 침묵을 지키지 않거나 불평함으로써, 그리고 남을 속이는 죄를 범합니다. 소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쉽게 생각합니다. |
[10] 무슨 일이 생기면 이런저런 방식으로 해소하려고 합니다. 합당하지 않은 온갖 구실을 둘러대는데 이는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으려는 것뿐입니다.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은 기도를 잘 할 때도 있지만 그러한 상태가 오래가지 않습니다. 결점과 투쟁하지도 않고 참된 노력도 부족합니다!
두 번째 상태의 사람은 ‘초보자’로서 두 단계 중의 하나, 곧 간헐적으로 신심생활을 하거나 지속적인 깊은 신심을 지니게 됩니다.
첫째 단계에서는 의식적으로 대죄와 투쟁하며 대죄의 기회를 피합니다. 통회하는 마음이 생생하긴 해도 아직은 고의적인 소죄를 자주 범하기도 합니다. 양심성찰에 대해 불규칙적이며 대충하게 되므로 어느 날은 잘 깨닫지만 다른 날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피정이나 월피정 후에는 대단한 열정에 불타 대단한 결심들을 세웁니다만 오래지 않아 새까맣게 잊어버립니다. 작업이나 묵상을 충실히 하겠다는 결심을 하지만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주님의 은총을 받지 못합니다.
두 번째 단계의 사람은 지속적인 깊은 신심을 지녔지만 아직 안정된 상태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걸음을 시작한 사람은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규칙적이며 소소한 일들과 권고를 충실히 따르면 쉽게 ‘진보자의 단계’로 넘어갈 것입니다.
이러한 단계의 사람은 가끔씩 의식적인 소죄는 범하게 되지만 대죄를 범하지는 않습니다.
[11] 그가 하는 양심성찰은 모든 악과 죄를 없애는 데서 멈춥니다. 불완전함과 투쟁을 하지만 쉽게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시련중이거나 위안 중에는 성격의 균형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극기와 덕행을 충분할 정도로 실행하지는 못하지만 최선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진보자의 또 다른 단계는 행위의 가치에서나 횟수에서나 작은 결점과 불완전한 점들까지 고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특별성찰을 아주 잘 하고, 많은 인간적인 만족감을 쉽게 포기합니다. 사랑의 기도를 바치며 단순한 기도에 접근합니다. 그런데 아직은 고해성사를 보는 날이라든가 피정을 하는 날과 평상시가 다르게 보입니다. 이들은 아직 충분히 안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아직은 충격이 필요합니다.
그 후에 완성자 단계가 있는데 이들은 네 번째 단계에 속합니다. (첫번째 것을 따로 본다면 세 번째 단계가 맞습니다.)
완성자는 지대한 힘과 사랑으로 결함을 방지합니다. 기도생활에서 늘 지속적인 일치를 사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들의 생각은 하느님과 천국을 향해 날아갑니다.
포기할 때는 부차적인 목적이 아닌 하느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합니다. 그들의 영적 작업은 초자연적 정신에서 인도받습니다. 세상 것에서 불편심不偏心을 지니는 상태에 들어갑니다. |
[12] 더욱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들이 범하는 결함들이란 순간적인 충동으로 저지르는 것입니다. 지속적인 잠심 상태가 많은 결함을 피하게 합니다. 단순함의 기도에 들어가고 하느님과 하나 되는 것을 더는 어려워하지 않게 되며, 그리스도 안에 변화되기에 이릅니다. 그들은 감실을 바라보면서 이미 주님께 인도됨을 느끼며 그분과 일치되기에 이들을 두고 사람들은 “그들의 고향은 천국에 있다.” 4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최정상에 도달한 완성자 상태는 아닙니다. 아직도 많은 걸음을 하게 됩니다.
대피정의 두 번째 목표는 앞으로 나아갈 결심을 과감하게 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껏 살펴본 네 부류의 단계를 염두에 두고 우리는 그중 어느 단계에 있는지 확인해 보며 앞으로 걸어갈 결심을 합시다.
여러분 생각에는 제자리에 멈춰 서 있으라고 몇 년간을 주님께서 허락하신 것 같습니까? 수련기에서 나올 때와 같은 지점에 남아 있으라고 하신 것입니까? 하느님보다 여러분 자신을 더 사랑할 때 열정을 지녔다고 볼 수 있습니까? 어느 질투심 많은 장상이 자기에 대한 배려와 존경을 기대하면서 자매들이 죄를 멀리하게 이끌지 않는 것이 합당한 일입니까? 연륜이 깊어감에 따라 더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입니까? 이미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착각 아닙니까? 앞으로 걸어가십시오. 땅에 발을 딛고 서 있지만 마십시오. 얼마나 걸었는지 확인하는 일은 오히려 지치게 하고, 걸음을 떼어놓지는 않으면서 소란을 피우는 것입니다. |
[13] 그런데도 여러분 중 많은 이들이 멈추어 있습니다. 여러 해가 흐르고 있습니다!
어떤 수녀들은 남에게는 몹시 까다로우면서 자신에게는 느슨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심각한 잘못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다른 자매들이 빈번하게 잘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좋은 모범을 보이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며 너무 쉽게 규칙을 위반
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피정을 하면서 “잘못한 사람이 접니까?”라는 말을 하지 맙시다.
나탄 예언자는 다윗의 중죄를 꾸짖기 위해 예화를 들었습니다.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부자이고 다른 사람은 가난했습니다.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매우 많았으나, 가난한 이에게는 작은 암양 한 마리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이 암양이 딸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부자에게 길손이 찾아왔습니다. 부자는 자기를 찾아온 나그네를 대접하려고 자기 양과 소 가운데에서 하나를 잡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의 암양을 잡았습니다. 다윗은 그 부자에 대하여 몹시 화를 내며 나탄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런 짓을 한 그자는 죽어 마땅하다.’ 그러자 나탄이 다윗에게 말하였습니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다윗은 그때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하고 고백하였습니다.”5
일상생활 중에 우리는 자신을 정당화합니다. 그러나 피정 중에는 더 많은 은총과 비추임이 있으므로 다른 이들이 행하는 악의 원인이 우리 자신임을 살펴야 합니다. 바로 자신에게 원인이 있으니 다른 사람에게 탓을 돌리지 마십시오.
[14] 피정의 세 번째 목표는 사도직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여러분에게 이야기할 의무감을 강하게 느낍니다.
원장 수녀들(피정 대상자로 보아 maestre 호칭은 분원장 혹은 세 수도회 책임자를 말함-역주)은 자매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들이 자신을 충분히 드러낼 가능성을 여러분이 제공하지 않은 탓도 있고, 또 그들 자신에게 달려있기도 합니다. 수도서원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 만족스럽지 않은 자매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수도회에 입회했을 때 여러분에게 백 배의 상급6 을 약속했고, 여러분은 여러분의 완덕에 대한 갈망을 채우기 위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왜 많은 이들이 평화롭게 지내지 못합니까? 이것은 장상이나 각 자매 자신에게 달려있을 수 있습니다. 자매들의 속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까? 격려하며 적절한 시기에 권고와 가르침을 줄줄 압니까?
우리 자신을 다른 이들에게 맞추어 살 줄 압니까? 또는 다른 이들이 우리에게 맞추기를 원합니까? 어떤 수녀는 원장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좋은 모범을 보여주지 않고 비밀을 지키지 않으며, 자신의 변덕에 맞추어 자매들을 배치하고 양심까지 드러내도록 요구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정말 남들을 넘어지게 하는 뱀과 같아서 자매들뿐 아니라 이성異性들도 잘못에 빠지게 합니다. 젊은이의 교육에서 무엇보다도 수도원은 기숙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며, 성소의 표시가 있는 사람만을 데리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여러분은 여성들이기 때문에 사도직 부서에 소속되어 있음을 기억하며, 도덕에 관한 것을 지도하되 영적 지도는 여러분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역자) |
[15] 여성으로서 여러분은 좋지 않은 표양을 받는 것에서만 아니라 주는 것에서도 위험합니다.7
여러분에게 이해시키기 가장 어려운 점은 회헌을 자유로운 마음으로 지키라는 것입니다. 모든 회헌 조항을 지켜야 하지만 정신적으로 자유롭게 지키는 것입니다. 이미 잘 지키고 있지만 몇몇 사람들은 자유로움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여러 사도직 부문 사이에 사랑을 정착시키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사랑 없이는 두 수도회가 가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심각한 일입니다! 심각한 일입니다! 여러분 모두 서로 더욱 사랑하고 여러분의 총원장 수녀를 사랑하십시오. 프리마 마에스트라께 더욱 일치하여 있으십시오. 이것이 본질입니다. 여러분은 일치하십시오. 그러면 평화와 은총을 누리게 되고, 사도직이 세 배의 효과를 내며 더욱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이 그룹 저 그룹에 대해 얼마나 부풀려서 말하는지 모릅니다.8 얼마나 역겨운 일이 생기는지 모릅니다. 쓰레기를 버릴 때 모두가 그것을 보려고 뛰어가는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쓰레기는 가져가 묻어야 합니다. 서로 일치하십시오. 일치하십시오. 평신도끼리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더구나 수도자들입니다. 어떤 말들… 어떤 불평들… 어떤 의심들은 소죄라고만 볼 수 없습니다…
[16] 일치하고 서로 사랑하며 모두 프리마 마에스트라께 순명하십시오. 아주 사소한 모든 것을 말할 것이 아니라, 중요한 점들을 말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보내준 회람지에 여러분과 성바오로수도회의 관계에 대해 쓴 글을 잘 읽으십시오.9 두 수도회는 더욱 일치하고 장상들은 최고로 일치해야 합니다. 분리해야 할 것은 분리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언제나 서로 사랑하고, 아주 친밀하게 사랑하십시오.
한 그룹을 불쾌하게 하는 것은 온 수도회를 불쾌하게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신중하고 좋은 걸음을 하기 위한 은총을 주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마련하셨으므로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이다운 마음으로 신뢰하며 하느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이제 마지막 권고를 드립니다. 어떤 것에 대해 좀 강하게 말하면 항상 이런 일이 생깁니다. 곧 좀 더 주의 깊게 들어야 할 사람은 백 번을 들어도 전혀 대수롭게 여기지 않으며, 권고가 별로 필요 없는 소수 사람들은 지나치게 근심을 한다는 것입니다.
강의를 잘 이해했다는 표시는 실망하는 일 없이 우리 영혼을 온전히 하느님께 드리면서 “저는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이제 시작하여 보속하고 싶습니다.”10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오랜 기간 동안 얻지 못한 은총과 덕을 주님은 한순간에 베풀어 주실 수 있습니다.
1 성 아우구스티노, 「고백록」 10장 1 라틴어 원문: “Noverim me, noverim Te.”
2 마태 18,3 참조.
3 1코린 14,20 라틴어 원문: “Parvuli malitia!”
4 참조: 필리 3,20 라틴어 원문: “Conversatio vestra in coelis est.”
5 2사무 12,1-14 참조.
6 마태 19,29 참조.
7 알베리오네 신부가 20세기 초에 가졌던 여성에 대한 관점.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넓은 안목으로 이를 초월한다.
8 교육(성바오로딸수도회), 전례(스승예수의 제자수녀회) 사목(선한목자예수수녀회) 세 부문의 사도직을 암시한다.
9 1941년 삼위일체 대축일에 알베리오네 신부는 교황청 순시자의 제안으로 성바오로수도회에 회람지를 보냈다.(CISP p.115 참조)
10 시편 76,11(불가타) 라틴어 원문: “Nunc coe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