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대신덕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사추덕과 경신덕에 관한 것입니다.
사추덕의 두 가지 것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이 덕들은 하느님이 부어주신 것입니다. 자연적인 예지가 있습니다만 은총 지위에 있는 영혼에게는 초자연적 예지, 그리스도적이며 초자연적인 지혜가 있습니다. 영혼의 죽음을 가져오는 ‘육적인 예지’,1 곧 가짜 예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많은 쾌락과 편안함을 좇는 모든 수단을 찾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된 예지란 그리스도적이며 성령에게서 오는 것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악의 위험을 피하고 천국을 위한 수단을 취하게 합니다. 이 덕은 어떤 위험을 피하게 하지만 많은 이들이 예지의 덕을 지니지 못하여 경솔하게도 자신을 악에 노출합니다. 여러분은 지혜로웠기에 수도자가 되고자 한 것입니다. 수도생활에서는 죄의 위험을 피할 수 있고 천국을 얻기 위한 수단이 많기 때문입니다. |
[120] 이 삶이 더 힘든 것은 사실이며 본성을 역행하는 것이지만 가장 좋은 길입니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2 예지의 덕 때문에 좋은 몫을 택했다면 완성자 신분에 도달하기 위해 좀 더 지혜로울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마냥 초보자로 남아 있고 싶습니까? 여러분에게 지덕이 가르쳐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더욱 거룩하고 하느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 더욱 좋은 것을 택하는 것입니다. 길에만 머물지 말고 목표에 도달해야 합니다.
예지의 덕을 실천하기 위해 조언을 청하고 동기를 살펴보며 올바른 결심과 온 힘을 다해 행동하는 것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조언을 청합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 고해 사제에게 내면에 관련하여 권고를 청하고, 자신의 지도자와 장상에게 권고를 청할 것입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지나치게 자신의 사고에 의존하게 되고, 조언을 청하도록 자극하는 예지의 덕을 소홀히 여기게 됩니다. 권고를 청함으로써 사건을 쉽게 알아차리게 됩니다. 주님은 겸손한 영혼에게 더 많은 축복을 내리십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올바른 판단을 위해 자기 취향에 맞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천국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더 나은 것을 생각합니다. “이것이 영원한 삶을 위해 유익한가? 이런 행동이 죽음의 순간에 만족할 것인가? 성모님은 이 경우에 어떻게 하실까? 예수님은? 예수님이라면 이 순간에 어떤 식으로 하실까?”3 지혜로운 사람은 아주 중요한 일 앞에서 몇 달, 몇 년 동안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어떻게 처신하면 좋은가를 물어보면서 오랫동안 숙고합니다. 성급한 사람은 지혜로울 수가 없습니다.
[121] 현명한 사람은 깊이 생각하고 올바르게 판단한 후에 성숙한 결정을 내립니다. 육과 피에 의한 결정을 내리지 않고 영원성에 따라 질서 잡으며 좋은 것을 결정합니다. 나의 영혼을 위해 어떤 것이 더 유익한가에 따라 말을 하거나 침묵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좋은 수단을 택하고 강건하게 행동합니다. 결심을 한 후에는 어느 책에선가 읽은 내용에 따라 바꾸지 않습니다. 모든 수단을 취하기 때문에 쉽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육정과 투쟁해야 할 때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 굳건하게 투쟁합니다.
현명한 사람은 위험한 것을 인식하고 그 기회를 피합니다. (선교하러 갈 때 서로 떨어져 있지 마십시오.) 얼마나 자주 많은 사람이 경솔한 말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생각없이 말을 하고는 나중에야 애통해하며 후회합니다.
예지의 덕은 아주 소중합니다. 눈이 없다면 길을 알아 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예지는 열정적인 눈이기도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가 열성을 고취시켜야 하는지, 꾸짖어야 하는지, 주의를 주어야 하는지, 참아야 하는지를 판단할 줄 압니다. 안목을 갖고 더 적합한 수단이 무엇인지 식별합니다. 지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예지가 필요합니다. 예지는 특히 다른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맡은 사람들의 덕목입니다.
얼마나 자주 “지혜로운 동정녀시여!” 4라고 외쳐야 하는지 모릅니다.
지혜롭지 않으면서 열정만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환상이 떠오르는 것이 불편하여 먹지 않으려는 것입니까? (부언설명: 잘 먹지 않음으로써 환상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현명하게 식별하고 건강을 위해 잘 챙겨 먹어야 한다-옮긴이)
건강하지 않을 때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122] 모든 면에서 지혜로움이 필요합니다. 영적으로 현명한 만큼 육체적인 면에서도 현명해야 합니다.
급한 일이 생길 때 실행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면서 마음이 흔들리고 혼란스러워져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미 존재하는 선에 눈을 고정시켜 악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바꾸어버리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실행할 선을 검토하고 평온하게 일에 착수합니다.
하루 만에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결점을 없애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런데 왜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려 합니까? 우리가 질 수 없는 짐을 왜 남들에게 지우려 합니까? 예지의 덕은 짧은 기간 안에 많은 진보를 하도록 평온함과 정신을 침착하게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위험한 것을 피하기 때문에 많은 유혹과 불안을 피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 하느님께 기도하며 도우심과 조언을 청합니다. 이것을 즉각적으로 얻게 해달라고 요구하지 않으므로 서서히 확실히 얻게 됩니다.
영적 생활의 초보자들은 예지의 덕을 거스르는 결점을 피하려고 노력합니다. 곧 악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나 너무 느리고 꾸물거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초보자들은 또한 자기 성소와 고해성사에 대해서 결심한 후에도 확신하지 못하고 의심합니다. 서원한 후에 실수했다는 생각에 고착되어 시간을 낭비하며 좋은 것을 전혀 행하지 않으면서 끝내고 맙니다.
예지의 덕을 거스르는 잘못은 다른 사람들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하려고 하며 변덕을 부리는 것입니다. |
[123] 자기의 이론에 따라 하려 하며, 규칙을 따르지 않고, 적절한 수단을 취하지도 않습니다. 끈기가없으므로 선택·결정한 수단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합니다.
진보한 영혼은 구세주의 모범에 따라 지덕을 실천합니다.
예수님은 지혜로운 스승이셨습니다.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30년간 겸손하게 드러나지 않게 사셨습니다. 중요한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기도로 밤을 새우셨습니다.5
양성을 잘 받기 전에는 사도직을 시작할 수 없습니다. 영혼이 거룩한 은총을 받아야만 집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사도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갈 때 지혜롭게 처신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비천한 어부들을 사도로 뽑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사도들과 사도직을 유지해나가셨듯이 여러분도 건설적인 사람들과 유대를 지속하면서 위험한 주관을 피하십시오. 위험한 사람이 여러분에게 다가온다면 곧바로 거절하십시오. 어떤 사람이 전염병에 걸리면 다른 이들에게 감염되지 않도록 그를 격리합니다. 그런데 정신을 전염시키는 사람은 왜 격리하지 않습니까?
공적인 자리에서 사도들을 꾸짖지 않고 따로 책망하신 예수님처럼 지혜롭게 하십시오. 책망하셨지만 실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항상 자비로 운 말로 격려하며 말씀을 마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지혜로우심을 본받읍시다. 자주 당신의 때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적들을 대면하지 않고 피하셨습니다.
완성 단계의 영혼은 의견의 은혜로써 예지의 덕을 실천합니다. 상당히 높은 경지에서 이 은총을 소유한 사람이 있습니다. |
[124] 하느님은 이 은총을 특별히 사제들에게, 그리고 지도하는 사람들에게 허락하십니다.
이 은총으로 인해 사람은 위험스런 일과 악을 감지하고 선행을 추구합니다. 우리가 “착한 의견의 어머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6라고 기도할 때 이 은총을 청하는 것입니다.
어떤 길을 택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은 이런저런 수단을 쓰면서 어떻게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의견의 은혜로 도움을 받습니다.
‘의덕’은 각각에 맞는 의무를 수행하게 합니다. 하느님께는 흠숭과 순종을, 장상에게는 존경과 복종을, 다른 이들과는 존경과 도움과 고통을 함께합니다. 또한 우연히 생긴 재물에 대해서도 정의를 실천해야 합니다. 셈을 하거나 지급할 때, 물건의 가치를 측정할 때도 정의롭게 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의 선에 관해 정의를 생각해야 합니다. 각 사람의 명성과 행복이 선이 된다는 세 가지의 것을 존중해야 합니다.
남을 비방하고 불평하는 사람, 훔치거나 갚지 않는 사람, 부당하게 때리거나 상처를 입히는 사람은 정의를 위반하는 것입니다.
정의는 하느님께서 지극히 좋아하시는 덕입니다. 우리는 이웃에게 속한 것을 존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웃에게 속한 것들의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의 형제들은 하느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그런데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심판합니까?”7 그들은 하느님의 종 들이므로 벌을 주거나
[125] 초보자들은 이것을 거스르는 잘못들을 피하면서 정의를 실천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비방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으며 이웃을 힘겹게 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자주 단 한마디의 말로 마음을 상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한 사람에게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수도회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더욱 나쁩니다. 남을 비방했다면 보속해야 합니다. 불평했다면 이에 걸려 넘어지게 한 것을 보속해야 합니다.
좋은 표양이 아닌 모든 것들을 버리고 침묵 속에 묻어 버리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이에 대해 아주 훌륭하게 처신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한 가지를 알면 여기저기에 선전하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이런 말들이 연옥에서 뜨겁게 타오를 장작이 되지 않겠습니까?
영적 생활의 초보자들은 다른 사람의 물건에 관해서도 정의를 지키려고 애씁니다. 어떤 때는 정의에 관해 작은 잘못을 범하기도 합니다. 예를들어 자기의 낡은 손수건에서 번호를 떼어 다른 사람의 새 손수건에 붙인다면 정의로운 일이 아닙니다. 누가 책을 빌린 후에 돌려주지 않거나 가을에 빌린 장갑을 봄에 가서야 돌려준다면 정의가 아닙니다.
종종 작은 부정을 하지만 심각한 잘못도 범합니다.
초보자들은 애정이나 합당한 욕망일 때에도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여러분 생각에 다른 이들이 우리 때문에 희생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까? |
[126] 우리가 다른 이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겁니다.
완성자들은 스승 예수님의 정의를 본받습니다. 예수님은 의무가 없으시면서도 황제에게 세금을 내셨습니다.8 그분은 자기들이 가르치는 정의를 실천하지 않는 유다인 사제들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말하는 것을 행하라.” 9 그분은 멸시당하고 비방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지막 백 번째까지도 정의를 실천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완성자들은 정의의 완성인 효경의 은혜로 의를 실천합니다. 장상에게 자녀다운 효경, 동등한 사람에게 형제적인 효경, 아랫사람에게 부성적인 효경을, 하느님께 흠숭과 기도의 효경을 실천합니다.
이러한 덕목을 실천합시다. 주님께서 거룩한 세례성사 때 이러한 덕목을 부어주셨으므로 이를 발전시키고 훈련을 통해 완성해야 합니다.
1 참조: 로마 8,6(불가타 역) 라틴어 원문: “prudentia carnis.”
2 루카 10,42.
3 라틴어 원문: “Quid nunc et quomodo Iesus?”
4 성모 호칭 기도 라틴어 원문: “Virgo prudentissima!”
5 참조: 마르 1,35; 루카 5,16; 6,12.
6 성모 호칭 기도 라틴어 원문: “Mater boni consilii, ora pro nobis.”
7 로마 14,10 참조.
8 마태 22,17-22 참조.
9 마태 23,3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