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우리 활동에 자애심이 크게 자리할수록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적고,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크게 자리할수록 자애심이 줄어듭니다. 대단히 거부감을 느끼는 일이 하느님의 뜻인 경우가 많습니다. 살아가면서 되도록 많은 이익을 내도록 하십시오!
사랑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어떤 것을 행한다는 것은 바로 올바른 지향을 지닌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 성모님, 연옥 영혼들, 죄인들의 회심, 우리 친지들의 구원과 선교사들을 위해 지향을 두는 것들입니다. 영성체 준비나 감사기도, 고해성사를 잘 받을 수 있는 은총과 세상에서 거행되는 모든 미사에 동참하기 위해, 십자가의 예수님을 위해 완덕과 성화에 도달하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한 지향이 있습니다. 결국 올바른 지향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모두 우리를 하느님께 데려가는 것이며, 하느님을 향하는 것, 하느님께 가는 것입니다. |
[44] 이 모두가 단 하나의 노선이지만 무한한 점선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올바른 지향이란 여러분의 수도회가 중요한 목표로 삼아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올바른 지향으로 실천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일어나자마자 하느님께 마음을 봉헌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루 동안의 모든 원의와 호칭기도들, 특히 모든 활동을 하기 전에 “예수 성심께” 드리는 기도를 하면서 실천합니다. 이 기도문에서 표현된 지향은 우리의 전 생애에 기초가 되는 신심, 면학, 사도직, 고통입니다. 이 모두를 예수님 다음가는 가장 완전하고 거룩하며 티 없으신 마리아의 성심을 통하여 봉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지향을 두는 것입니까? 사람들을 위해 희생으로 바치신 예수께서 가장 엄숙한 순간에 지니셨던 지향과 같은 것입니다. 이 지향은 무한한 것이기에 가장 거룩하고 원대하며, 가장 완전하고 가장 강력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향에 합쳐 바치는 우리의 지향은 첫째가는 것이며, 대단한 공로를 얻게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지니신 지향이 대단히 크고 열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도회의 올바른 지향들은 매우 섬세하며 지속성을 지니게 하는 것입니다. 이 지향을 아침에만 바치는 것이 아니라 하루 동안 시시때때로 갱신해야 합니다. |
[45] 우리의 관심사, 우리의 원의, 우리의 마음이 아니라 창으로 찔리신 예수 성심의 염원, 그분의 관심을 지향으로 두어야 합니다. 대략 45만 번 드리게 되는 미사(하루동안 전세계에서 봉헌되는 미사-역주) 중에 예수님은 당신의 지향을 계속 갱신하시며, 우리는 모든 미사를 통해 아버지께 봉헌합니다. 이 올바른 지향이란 사랑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랑에는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초심자 단계, 진보 단계, 완덕의 단계가 있습니다.1 초심자 단계는 지옥과 영원한 고통과 연옥을 면하고 천국을 위해 공로를 얻기 위해 죄를 피하려는 지향으로 선한 일을 합니다.
진보 단계에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것에 대해 더 관심을 기울입니다. 완덕의 단계에 있는 사람은 예수님과 성삼의 영광만을 목표로 둡니다. 이 목표가 완덕의 길에 있는 사람들을 다스립니다. 이들은 자신에서 벗어나고 완전한 사랑의 지배를 받습니다. 사랑을 위해 악을 피하고 사랑을 위해 선을 행합니다.
모든 것을 사랑을 위해 하려면 무슨 조건이 필요합니까? 무엇보다도 자애심, 관심, 존경, 자기 존중, 안락함을 바라게 되는 모든 것을 부정
[46] 사도들이 첫 선교를 다녀와 기쁨으로 의기양양해져서 예수께 (악령들을 쫓아낸) 자기들의 위업을 자랑하고 싶어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2 하셨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을 때 기뻐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장상들은 마땅히 정보를 받아야 하므로 아랫사람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애심과 교만이 섞여 있기 때문에 잘 식별하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을 때 누구에게 보고해야 합니까? 모든 자매에게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진정으로 겸손한 태도를 보이면서 오직 장상들에게 하는 것입니다. 자애심을 아래로, 더 굽힐 준비를 하면서 보고하는 것입니다. 가능하면 말하는 데 있어서도 첫 번째가 아니라 항상 마지막에 말하는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때로는 지도하는 사람에게가 아니라 더욱 겸손한 사람에게 공로가 있습니다. 겸손할 때 공로를 더 얻게 됩니다. 더 큰 열매는 아래에서 더 많이 기도하는 사람, 장상의 원의를 후원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활동과 능력이 필요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한다하는 사람들을 흩으시기 위해 하찮은 사람들을 이용하십니다.3
최후의 날에 우리가 훈계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공덕으로 부유해지고 있을 때 우리의 손이 비어 있을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의 자아가 섞여 있지않도록 행동을 주의합시다.
듣고 싶어 하거나 이미 듣는 데 지친 모든 이에게 자신의 덕과 공로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화자찬하는 것입니다. 공로를 잃지 않도록 하십시오!
[47] 올바른 지향을 갖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더 겸손한 일을 선호하고, 자신이 겸손하다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겸손하다고 말하는 것은 교만이고 세련된 자애심일 것입니다.
평범한 것을 하되 비범하게, 사랑으로 올바른 지향으로 해야 합니다.
수도생활에 관해서뿐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행하게 되는 모든 행동에 올바른 지향을 두어야 합니다. 활동의 시작 단계에서만 아니라 활동 중에도 올바른 지향을 두어야 합니다. 하루의 시작에서만 아니라 하루를 지내면서 계속 올바른 지향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바를 충실하게 행한 후에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4라고 말합시다.
1 영적 삶의 스승들한테서 다양하게 발전시킨 영적 여정의 단계는 성 토마스의 「신학대전」 Ⅱ, Ⅱ, 24. 9에서 기원했음을 볼 수 있다.
2 루카 10,20 라틴어 원문: “In hoc nolite gaudare.”
3 1코린 1,27 참조.
4 루카 1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