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저는 이 피정에서 반드시 얻어야 할 열매를 얻지 못할까봐 두려워서 어제부터 오늘까지 저 자신과 투쟁을 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요약하고 숙고한 후 마음이 아픕니다. 수도서원 후 진보한 사람은 10분의 1.5명에 해당하고 10분의 5는 퇴보했습니다. 그 외의 사람들은 처음 시작한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더욱 좋지 않은 것은 마치 열정인양 헛된 이상을 키워가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며 비뚤어진 생각으로 오히려 방어한다는 것입니다. 대피정과 월피정에서 이야기한 점들을 잘 받아들이지 않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일년 365일에서 하루도 생각과 마음이 제자리에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생각이 바르게 자리 잡아가는 것을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18] 영향력을 행사하는 몇몇 사람은 |자기 생각이 틀림없다는 깊은 확신으로 사제들보다 한 수 높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매우 위험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삶을 위한 평화와 공로를 없애는 것입니다.
여기서 외적인 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새로 형성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지원자와 수련자들의 양성이 중요합니다. 정말 재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대피정에서 여러분이 얻어야 할 열매를 얻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으로 저 자신과 많은 싸움을 했습니다.
이 피정 동안 여러분은 영적 만남도 하지 말고 대침묵을 지키십시오.
피정 동안 여러분에게 길을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만 들으십시오.
신뢰하십시오. 예수님은 말씀이 모자라는 분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교정할 은총을 주실 것이며, 수도생활에서 약속된 평화를 틀림없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한 자세와 헛된 이상은 은총에 마음을 닫아버리게 합니다. 공동체의 지배적인 결점이 되어버린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인 교만을 미워하십시오.
행위보다도 교만한 생각과 감정들을 미워해야 합니다. 은총에 마음을 여십시오. 어린아이가 되십시오.
정의와 진실함의 본성에 대해서도 헛된 이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데서 무엇이 나오겠습니까? 저는 가능하면 더 확실히 말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이 여러분의 머리를 취하시어 여러분의 생각(사상)을 변화시켜 주시도록 오늘 아침에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19] 원인은 교만에 있습니다. 게으름처럼 다른 결점도 있습니다만, 이런 것은 쉽게 고칠 수 있습니다. 뿌리는 바로 교만입니다. 이 욕정은 원한처럼 사람의 마음을 갉아 먹습니다. 집단적 교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열정으로 잘못 생각합니다. 자기의 생각을 주장하면서 하느님을 위한 열정이라고 믿기 때문에 공동체에 손해를 끼칩니다.
교만은 원죄의 결과입니다. 하와는 경박한 머리로 뱀의 꾐을 물리치지 못하고 하느님처럼 될 거라는1 생각으로 유혹에 빠집니다. 처음에는 선과 천국만을 알았으나 그 이후에는 죄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교만은 지나치게 자신을 높이며 남들이 존경하기를 바라는 식으로 드러납니다.
교만은 눈을 가리어 결점을 덮어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생각을 고집하여 고해사제에게까지 방어합니다. 그들은 정의와 구원과 성화의 원리에 관한 말을 하루에 단 한 마디도 할 수 없습니다.
교만은 또한 남들의 결점을 보는 데 눈을 뜨게 합니다. 장상들은 자신의 결점을 볼 수 없게 완전히 눈을 감을 위험이 큽니다.
교만은 수업을 해주는 선생 수녀들에 대한 존경이라든가 고마운 마음을 차단합니다. 모든 이를, 사제들까지 비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해를 입히는 것으로 그분께서 갚으시기에 많은 어려움과 유혹을 당할 것이며, 비참하게 될 것입니다. |
[20] 교만한 바리사이처럼 그들은 “저는 다른 사람과 같지 않습니다.”2라고 말하곤 합니다.
교만은 정의감과 참된 덕을 밀어내며 하느님과 사람들의 권리를 고려하지 않고 주인 노릇을 하게 합니다.
두 번째로, 교만은 자신을 떠받치게 합니다. 남들이 교정해 주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장상과의 관계에서는 반발하고, 동료들 사이에서는 그들 위에 있기를 좋아하며 멀찍이 떨어져 있으려고 합니다. 아랫사람에게 는 그들의 권리를 무시한 채 억누르려고 합니다.
교만의 결과는 치명적입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때로 대죄에 이르게 됩니다. 평화를 잃게 하며, 많은 소죄에 빠지게 합니다. 생각과 마음이 교만으로 가득 차서 고의적인 소죄를 계속 범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경멸하게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교만이 병에 걸려 이해받지 못하게 하며 무익하게 하여 그가 시작한 모든 것의 끝이 좋지 않게 하십니다.
교만은 자기를 과신하기에 이릅니다. 자신의 힘, 건강, 위치, 능력, 기능 들을 과신하여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게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지혜롭지 못하며, 자주 하느님 징벌의 원인이 되는데, 하느님은 그 오만함의 굴욕을 허락하십니다.
교만은 허영심에 이르게 합니다. 어리석고 과장된 방식으로 사람들이 추켜세우는 말에 연연해합니다. |
[21] 자기를 둘러싼 서너 명의 사람들이 칭찬하는 것을 좋아하며 그들에 대해서만 관심을 두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무관심한데 이것이 바로 자신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덕망 있는 수녀들을 자기의 하인보다도 못하게 다루면서 수도자답지 않은 방식으로 시중을 들도록 합니다.
그런 사람은 많은 결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모두가 그에 대해 말하여도 당사자는 알아채지 못하며, 누군가 자기보다 더 부각되기라도 하면 그와 원수가 되어 버립니다.
교만은 또 다른 해로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모래 위에 건물을 세우는 것으로 많은 기도와 사도직을 무익하게 만들기에3 하느님의 축복도 없습니다. 그 대신 겸덕은 천상 아버지의 축복을 가져옵니다. 하느님은 어린이와 무력한 사람을 존중하시기 때문입니다. 때로 하느님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영웅적인 덕을 행하도록 허락하십니다.
여러분은 낮은 자세를 취해야 하는데, 교만은 지도받기를 싫어하며 사제들 위에 처신하게 합니다. 어떤 사람이 샘보다 높은 곳에 있다면 하느님 은총의 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물은 위로 흐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시기와 분노라는 두 가지 욕정과 연관됩니다. 분노는 항상
교만에서 오는 것은 아니지만 이와 연관이 있습니다. 시기심은 다른 이가 특별히 부각되는 것을 보면 속이 부글거리게 합니다.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슬퍼하며, 심지어 다른 사람의 악을 바라기도 합니다. 시기심이 많은 사람은 자기의 처지대로 있지 못합니다. |
[22] 어떤 사람들은 좀 특별한 자리에 있지 않으면 의기소침해합니다. 이를 감추려고 하지만 외적으로 다 드러나고 맙니다.
시기심은 카인처럼 선을 증오합니다.4 정말 덕스러운 것을 나쁘게 보기 때문입니다.
쫓아냅시다! 이런 시기심을 미워합시다. 여러분 사이에 시기심이 많이 존재합니다. 개인적인 시기심뿐 아니라 집단적인 시기심이 여러분 사이에 많습니다. 교만을 억누르고 감추고 싶어 하는 만큼 밖으로 더 튀어나옵니다. 이 잡초들이 자라도록 내버려둘 작정입니까? 그러면 성소를 잃을 것입니다. 수도복을 입고 있는 것이 대수입니까? 수도 정신이 없으면서 수도복을 입고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것은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더 나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수도 정신을 지니지 못하게 하는 정신을 뿌리고 다닙니다. 도덕적으로 모든 이들의 수준을 낮추는 것보다 공동체에서 떨어져 있으면서 한 가지의 걸림돌을 주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또 다른 욕정은 분노입니다. 자기를 존경하지 않는다고 의심하며 마음에 분노의 불을 지피며 경쟁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불쑥 올라오기도 하겠지만 감정이 자주 일어나고 지속됩니다. 그리고 계속 투덜대고 험담하며 참견을 합니다. 자신의 마음이 온통 녹슬어 있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는 일들이 전부 녹슬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아름다운 영혼은 다른 사람이 잘 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거룩한 경쟁심으로 그를 본받으려 하고, 공동체에 열의가 있는 것을 보고 기뻐합니다.
교만을 대적하여 고쳐야 합니다.
[23] 우리에게 있는 지배적인 욕정의 (열 가지 중 아홉 가지는) 교만이라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선 습득해야 하는 덕은 겸덕입니다. 교만이 자신의 지배적인 욕정이 아닌 사람도 해당합니다. 이 악습에 온 힘을 기울여 투쟁해야 합니다. 교만은 많은 생각을 왜곡시키며 모든 것을 검은색으로 보게 합니다. 입술로는 기도문을 외우고 있고 수도복을 입고 있지만, 교만이 마음을 왜곡시켜 지성과 마음은 하느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뿌리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개입하시어 도와주셔야 합니다.”라는 근본 원리를 정신에 잘 새겨야 합니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나 하느님과 함께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위하여 모든 것을 하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는 영광이 있고 저에게는 멸시가 있습니다.”라는 십자 성호처럼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므로 어떤 칭찬도 어떤 보상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 기도를 아침과 양심성찰 중에, 고해소에서, 피정 중에 항상 반복할 것입니다. 자기 정당화는 덕이 되지 않습니다. 겸손하기 위해서는 은총이 필요하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이 여러분 개인과 그룹, 공동체에 근본적인 이상이 되는 덕입니까? 그것은 겸덕입니다. 첫째가는 덕은 겸덕이고 두 번째도 겸덕, 세 번째도 겸덕입니다. 제게 백 번, 천 번을 물어봐도 여러분에게 겸덕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겸덕이 있을 때 하느님의 모든 축복이 주어집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낮출 때 여러분 위에 축복이 내릴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신다!”5
1 참조: 창세 3,5 라틴어 원문: “Eritis sicut dii.”
2 루카 18,11.
3 마태 7,26 참조.
4 창세 4,1-16 참조.
5 야고 4,6 라틴어 원문: “Deus superbis resistit, humilibus autem dat grati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