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우리의 수다스러움과 생각과 감정으로 성령의 영감에 저항하고 성령의 선물에 역행했던 모든 순간에 대해 성령께 특별히 통회의 기도를 바칩시다. “하느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1 성령께서 우리 영혼 안에서 일하시도록 자리를 내어드리지 않음은 성령을 슬프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종종 우리의 뜻을 고집하여 하느님의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않고 깨달음의 은혜를 거스르게 됩니다.
우리의 수다스러움으로 성령의 선물을 방해하여 퇴보하고, 사고의 체계가 흐릿하여 단순한 것도 알아듣지 못하는 한계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입니다. 우리에게 유일한 중심이 있다면 거기에 일치해야 합니다. 이것은 정말 단순한 것입니다. 그런데 3,4년간 우리는 아주 혼란스러웠습니다. 복잡하게 일하면서 많은 중심을 만들었습니다.
[95] 성바오로딸수도회, 스승예수의 제자수녀회, 선한목자예수수녀회의 위치가 이렇듯 단순한데 각 수도회가 그렇게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좁은 안목과 교만으로 인해 각 그룹의 위치가 복잡하게 되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성령께서 이미 선물을 부어주셨는데 어찌하여 공동체에서 그분을 쫓아내는 것입니까? “그러나 저희는 수도회를 보호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의 수도회가 프리모 마에스트로에게서 공격을 받은 것입니까? 좀 거룩해지도록 합시다. 저는 여러분이 특별한 이유와 많은 작은 문제들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여러분은 어려움과 십자가, 오해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말을 멈추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거룩해지고, 여러분의 성소에 따라 걷고 싶습니까? 혹은 불꽃을 일으켜 모든 것을 파괴하고 싶습니까? 여러분은 계속 전진하며 성령께서 공동체 안에서 활동하시도록 내어드리며, 특히 하느님 뜻에 역행하는 태도를 지니지 마십시오. 퇴보해서는 안 됩니다.
무지한 사람은 빈 깡통처럼 요란한 소리를 냅니다.2 조심하십시오! 어려움이 없는 곳에 어려움을 만들지 말고 단순하게 걸어가야 합니다. 인간적인 논리로 생각해도 일치가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구실을 내세우기 때문에 자연적인 덕과 인간적인 덕, 희망의 덕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의 망덕은 인간적인 희망을 전제합니다. 그것은 자연 위에 초자연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
[96] 올바른 희망을 지니지 않은 사람, 예를 들어 많은 사람이 일치할 때 힘이 분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그리스도교 신자로서의 희망을 지니지 못할 것입니다.
좀 더 단순해집시다! 파리떼와 싸우는데 대포를 쏘지 맙시다. 우리는 비현실적인3 어려움을 만들었습니다. 아직도 상상을 지배할 줄 모르는 것은 보기 흉한 일입니다. 왜 예수께서 “너희는 비둘기처럼 단순하라.”고 하셨습니까? 4 생각이 모자라 지혜의 정점에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말을 하지 맙시다. 대피정 중에 이것에 대해서도 결심하십시오.
전에는 단순했었는데 지금은 단순함을 잃었습니다. 단순함을 새로 얻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희망은 다른 대신덕과 함께 세례 때 부여된 그리스도인의 덕입니다.
희망 자체는 충동적인 욕구입니다. “여러 어려움이 희망을 얻는 데 방해하지만, 지금은 얻지 못하는 고귀한 선을 추구하는 인간의 마음에서 느끼는 감정입니다. 이 감정은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농부가 씨를 뿌릴 때, 항해자가 출항하여 멀리 여행할 때, 상인이 사업을 시작할 때와 같은 힘든 상황에서 사람을 지탱해 줍니다.”5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무엇을 바라게 합니까? 힘들 때 우리를 지지해줍니까? 네, 그런데 영혼의 성화에 관련한 어려움에서 지지해 줍니다.
[97] 좋은 열매를 얻게 합니까? 네, 그런데 영원한 삶을 위한 덕의 열매를 거두게 합니다. 항구에 도달하게 하는 것입니까? 네, 그런데 복된 영원한 항구에 도달하게 하는 것입니다. 흥정을 잘 하게 합니까? 네, 그런데 하느님에게서 받은 재능과 선물을 흥정하기 위해서입니다.6
희망의 첫째 대상은 천국이고, 두 번째 대상은 천국에 도달하기 위한 은총들입니다.
지도하는 사람은 사람들을 선으로 인도하는 희망을 품어야 하며, 모든 이들이 하느님의 뜻에 복종하고, ‘하나의 힘’7으로 행동하고, 도달해야 할 높은 경지까지 수도회를 이끌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천국을 위해 창조되었기에 희망이 매우 유익합니다. 이 세상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죽은 후에 “우리는 한정된 것을 찾고 영원한 것을 추구하지 않아서 지금 고통으로 갚고 있구나!” “우리는 진리의 길을 벗어났다.”8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인들은 천국을 위해 살았습니다. 지상에서 쾌락, 영예, 부유함을 추구할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알아 오직 하느님만을 찾았습니다! 성녀 젬마 갈가니의 모범을 취합시다. 그가 지상에서 찾은 것이 있었습니까? 그는 부모한테 버림받아 마치 고아원에서 살듯이 다른 사람의 집에서 살도록 강요받았습니다. 그리고 수도원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는 영예나 쾌락을 찾지 않고 오직 하느님, 십자가의 주님을 찾았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병으로 허약하게 되어 늘 혼자 지내게 되었지만, 그는 하느님 안에 깊이 잠기어 성녀가 되었는데 매우 빨리 시성되었습니다.
[98] 희망은 역경과 십자가의 삶에서 우리를 위로합니다. 여러분은 구세주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희망을 가지고 수도자가 되려고 왔습니다. “모두 백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9 하느님은 충실하신 분이시므로 당신의 은총과 당신의 도움 없이 여러분의 힘에 부치는 시련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희망은 믿음처럼 주부된 것이며, 우리 의지의 훈련을 요구합니다. 희망은 강화되어 천국의 빛으로 밝아질 빛의 지평을 발견하는 죽음의 자리에까지 계속 완성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육신이 부패하는 것을 보게 될 때 그리스도의 공로와 당신을 위해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선하심과, 가장 소소한 희생에 대해서도 상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에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참된 행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특별히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은 망덕을 실천해야 합니다.
초보자들은 실망과 과신10이라는 두 가지 극단을 피하면서 희망 속에 안정을 추구해야 합니다. 영혼을 공격하는 실망의 여러 원인이 있는데 이것은 유혹이고 자포자기의 일종입니다. 유다가 절망하지 않았더라면 스승을 부정했던 성 베드로처럼 성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두려움보다 더 큰 희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희망은 우리로 하여금 실망을 넘어서게 합니다. 좀 잘못했다고 하여 왜 혼란에 빠집니까? |
[99] 이것은 교만입니다. 참으로 겸손한 것은 죄를 지었을 때 절망하지 않고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하늘이 비를 내리고 땅이 소출을 냈습니다.”11 어찌하여 좋지 않은 것에 유혹을 받았거나 떨어졌다고 해서 놀랍니까? 완전한 사람도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픔을 느끼고 솔직하게 자신을 낮추어야지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내 마음이 해야 할 것을 했다.’라고 말하는 우리 자신에 대한 신뢰를 없애고 하느님을 신뢰합시다. 이제는 하느님 안에만 희망을 두어야 합니다. 씨를 뿌리시는 거룩하신 하느님은 마음이 준비된 사람을 발견하실 때 그의 마음 안에 천상의 씨를 뿌리고 거룩한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하느님께 신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들, 또 이미 나이가 든 사람들도 실망으로 성인이 되는 것을 포기하는데, 이것은 교만입니다.
참된 겸손이 있으면 “지금 나는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체험을 했다. 이제는 하느님과 함께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체험을 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또한 시련을 거슬러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은총을 주시리라는 것이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강하다는 구실로 모든 위험에 쉽게 노출하는 과신을 멀리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기회를 피하고 주님께 도움을 간청합시다.
그러므로 초보자는 두 가지 극단적인 면들을 피하고, 진보자는 하느님을 신뢰하는 자녀다운 마음으로 망덕을 실천합니다. 그런데 완성자는 전면적으로 주님께 의탁합니다.12
진보하는 영혼은 언제나 하느님 안에 희망을 품습니다. |
[100] 죄를 지었을 때는 잃었던 아들처럼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13라고 말합니다. 어려운 직무를 시작할 때 자녀다운 신뢰를 지닙시다. “내가 그런데… 거룩해지는 것이 가능할까?…” 기도하고 신뢰하십시오. 모두가 우리를 대적하고 모든 것이 역행하고 우리에게 온갖 유혹이 일어난다 해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으로 보이고, 우리가 행할 일들에 대해 연륜과 저력이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여도 언제나 자녀답게 하느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희망의 덕을 훈련하더라도 은총이 곧바로 주어지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신뢰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면 반드시 은총을 받을 것입니다.
성 바오로는 이 자녀다운 신뢰에 관해 “당신의 친 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온갖 다른 선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14라고 말하며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럼 왜 하느님을 의심합니까?
하느님은 참된 성화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아주 확실한 일입니다.
자신을 위해 영적 은총을 청하면 얻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신앙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협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노력 없이 얻고자 하는 것은 씨를 심지 않고 밀을 거두고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육체적 질서와 마찬가지로 윤리적 질서 차원에서도 모두 일을 해야 합니다.
완성 단계에 있는 영혼은 전면적인 희망으로 하느님께 의탁합니다. 이신분에서는 투쟁할 일이 많습니다. |
[101] 완성자 신분에서는 예수님 생애의 마지막 시기를 닮기 시작합니다. 박해받고 모든 사도에게 버림받고 그들 중 한 사람에게 배신을 당합니다. 최고의회에서 단죄의 고발을 당하셨을 때 천상 아버지는 우리의 모든 죄를 그분에게 지우셨습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얼마나 짓눌리셨는지 보십시오.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서, 갈바리아로 가는 길에서 어떠하셨는지 보십시오.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임종의 순간을 보십시오. 숨을 거두시는 모습을 보십시오! …우리는 지금 완성의 상태를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듯한 극심한 비탄도 감수하셨습니다. 완덕의 길에 있는 영혼들이 진정 완성되기 위해서는 이 경지에 도달해야 함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완덕의 길에 있는 영혼들은 직무에서 오는 역경, 사람들의 조소, 심한 유혹, 병고, 정신적 비탄에 빠질 거라고 했습니다.15
여기서 영혼은 하느님 안에 온유하게 신뢰하는 것을 실천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압착기 아래, 주님의 타격 아래 영혼은 매일 더욱더 그분 안에 의탁하게 됩니다. “주님 당신의 분노를 제 위에 퍼부으십시오!”라고 성녀 젬마 갈가니는 말했습니다. 성녀는 “예수님! 예수님!” 하며 매우 짧고 단순하고 고귀한 기도를 바쳤습니다. “주님 저를 때리십시오. 그러나 죄인들을 구원하십시오! 당신께서 아직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으시다면, 그러나 저에게 힘을 주십시오!”
완덕 상태에 있는 영혼의 완전한 의탁과 무엇인가 청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주님, 십자가를 주시고 고통을 더 주십시오. 그러나 제게 힘을 주십시오!”라는 것입니다.
1 에페 4,30 라틴어 원본: “Nolite contristare Spiritum Sanctum!”
2 Giuseppe Giusti(1809-1850)의 시 “무능한 왕”(Il re travicello)을 암시한다.
3 ‘상상으로, 가공의’.
4 마태 10,16.
5 Tanquerey, Compendio di teologia ascetica e mistica, n.1190.
6 마태 25,14-30.
7 라틴어 원문: “viribus unitis.”
8 지혜 5,6(불가타 역) 라틴어 원문: “Ergo erravimus!”
9 마태 19,29 라틴어 원문: “Centuplum accipietis et vitam aeternam possidebitis!”
10 Cf. Tanquerey, Compendio di teologia ascetica e mistica, n.1201.
11 야고 5,18 라틴어 원문: “Terra dedit fructum suum!”
12 Tanquerey, Compendio di teologia ascetica e mistica, n.1203.
13 루카 15,18-19.
14 로마 8,32 참조.
15 십자가의 성 요한, 「어둔 밤」 2권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