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주님께서는 당신 성소에서 경외로우십니다.1 성 바오로, 성녀 데레사, 십자가의 성 요한 등 높은 경지에 이른 분들은 놀라운 완성의 단계에 있는 것입니다. 이는 성삼께서 그 영혼들 안에서 역사하신 결과입니다. 이 영혼들 안에는 당신 은총으로 창조하고 부유하게 하시는 성부의 역사뿐아니라, 특히 성체성사와 수난에 깃든, 당신 사랑으로 이끄시는 성자의 업적(활동)이 드러나며, 은총과 열매들로 단장시켜 주시는 성령의 작용(활동)이 드러납니다.
초심자 안에는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이 우세한데 이때는 정화의 작업을 수행합니다. 진보자에게는 사랑의 갈망이 우세하여 자신을 단장하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완성 단계의 영혼에게는 사랑이 우세하여 궁극적으로 하느님과 하나가 됩니다.
[61] 완성 단계의 초기에 들어선 영혼은 ① 죄와 인간적 애착, 게으름과 교만에서 완전히 정화되었습니다. 여기에 이른 영혼은 양심성찰과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연옥을 면할 수 있는 순수함을 지닐 필요가 있습니다. ② 극기의 정신에 도달한 영혼은 완전히 고양되어 굴욕이나 칭찬, 기쁨이나 고통, 추켜세우거나 혼란스럽게 하더라도 이에 대해 불편심不偏心을 지님으로써 내·외적으로 모든 감각을 단호하게 제어하게 됩니다. 마음과 상상력에 대해 초자연적인 목표를 세워 원수의 공격이 많더라도 생각을 다스리게 됩니다. 인내로써 은총의 초대에 늘 민감하도록 준비 태세를 취하게 됩니다. ③ 완전히 올바른 지향으로 모든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의 온 삶은 다른 지향 때문에 결코 혼란을 겪는 일 없이 온전히 천국을 향해 있습니다. 주님은 그와 혼인 계약을 맺기 위해 그의 영혼의 문을 두드리시며 그리스도와 함께 절대로 해소할 수 없는 일치를 이루어 오직 하나의 생각과 원의를 형성합니다.
이 지점에 이르기 위한 여정은 길고 깁니다. 이 길에 들어서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완전한 영혼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하느님께 대한 단순한 사랑입니다.
[62] 완전한 영혼은 모든 것을 단순화하며 사랑을 위해 사랑의 삶을 삽니다. 마음과 생각, 덕행에 있어 단순합니다. 완전한 영혼은 담화 형식의 묵상이 아니라 관상을 합니다. 영혼이 진리와 원칙으로 양육되고 그 안에서 양식을 찾습니다. 잠심 속에 머물며 조명을 받기 위해서는 십자가와 감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사랑을 위해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버려야 할지 살핍니다.
제단에서 희생되시는 예수님과 성체를 관상할 때 마치 사랑의 대양에 떨어진 한 방울의 물처럼 느낍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 안에서 보고, 하느님 안에서 모든 것을 염원합니다.”2 자연과 바다, 산, 꽃, 과일을 보게될 때 그 자체를 보지 않고 사랑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관상합니다. 물질적인 것들에서 하느님께로 마음을 들어 올립니다. 언제나 자신 안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시어 그분과 늘 하나의 형태를 형성합니다.
“지금 나에게 이 이끌림을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시고, 하느님께서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완성에 이른 영혼의 사고방식이 오직 한 가지 사고방식으로 변화됩니다.
일치의 길에 있는 영혼은 의지도 단순해집니다. 많은 결심을 하지 않습니다. 그의 사고방식과 결심들이 ‘예수님을 위하여’, ‘예수님과 함께’, ‘천국’이라는 단순한 말들로 바뀝니다. 이 영혼은 오직 한 가지, 사랑으로 변화됩니다. 사랑 안에서는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됩니다. 영혼이 초자연계에 사로잡혀 그에 이끌려 그곳에 도달합니다. |
[63] 이 영혼에게는 덕행에 관해 특별히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영혼에게는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3라는 단 하나의 기도와 갈망이 있을 뿐입니다.
성 이냐시오는 많은 저술과 묵상 후에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4 라는 오직 하나의 원의와 하나의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이 경지에 이른 영혼은 정화를 통해 오직 하나의 주된 원리가 형성됩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대단한 작업을 통해 얻는 결실입니다. 일치의 길에서 행하는 주된 작업은 하느님의 것이 영혼 안에 침투함으로 모든 힘을 총괄하여 사랑의 멍에로 변하게 하는 것입니다. 단순화된 결심들은 바로 사랑입니다. 단순화된 기도가 관상입니다.
이것은 천국의 복된 삶의 서곡입니다. 겨우 한 주간이나 죽기 직전에 이 지점에 도달하는 영혼이 있지만, 살아있는 동안 매우 빨리 도달하는 영혼도 있습니다. 이것은 나이나 기회들, 외적 환경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이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내면에서부터 은총의 작업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영혼이 이 상태에서 행복을 느끼는가?”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느님과 일치하여 있기 때문에 행복을 느낍니다. 그러나 적어도 감각의 밤(외적 시험)과 영의 밤(내적 시험)의 경지를 통과해야 합니다. 외적 시험은 병고, 반대, 몰이해 등인데 어떤 때는 악마가 덧붙이기도 합니다. 그런 때는 소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
[64] 때로는 하느님께서 (성녀 소화 데레사나 성녀 젬마처럼) 영혼에게 가족이 겪는 불행같은 외적 시험을 하십니다. 영혼에게는 이것들이 숨겨진 채 오직 하느님만이 아시는 심한 고통을 겪습니다.
어떤 때는 영의 어둔 밤에 세심증을 겪기도 합니다. (초심자와 진보자들도 겪을 수 있습니다.) 자기가 행하는 모든 행동에서 하느님의 마음을 상하게 해 드릴까봐 염려하고 고통을 겪는데, 어떤 때는 진정 순교자와 같은 고통을 겪습니다. 친밀하게 예수님의 사랑에 머물고 항상 그분을 기쁘시게 해드리려 염려하지만, 한편 권태로움으로 인해 몹시 심한 고통을 당합니다. 이것들은 정화를 위한 작업입니다.
사랑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지만 자주 메마름과 계속되는 분심, 유혹, 악신으로 인해 고통을 당합니다. 정말 갈바리아에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을 당하는 영혼을 볼 수 있습니다. 더는 보지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영의 어둔 밤을 겪습니다. 영혼이 희생제물로 바쳐지고 하느님의 심판이 무섭게 내리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더욱 짙은 어둠 속에 갇히게 됩니다. 여기에 신비로움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60세, 70세에 자기 성소에 대한 큰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고, 믿음의 강한 유혹을 겪기도 합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영혼을 정화하시려고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지도하는 사람은 이에 대해 놀라지 말 것이며,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으로 모든 것을 잘라 버리라고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각 영혼은 존경받고 이해받아야 합니다. 모두에게 같은 권고를 해서는 안 됩니다. 잘 이해하지 못할 때는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해줄 뿐 잘못된 권고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당신의 빛을 주십니다. |
[65] 그러한 어둔 밤이 지나면 빛의 날이 와서 영혼은 조명을 받아 하느님 안에 잠기게 되어 그분의 사랑에 사로잡혀 있음을 느낄 것입니다. 평온하게 쉬면서 “내가 수도생활에 부르심 받았고 성성에로 부름받았다.”는 진리의 말을 조만간에 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원하면 할 수 있어.”라는 말을 모두가 할 수 있습니다. 수녀가 될 수 있듯이 성녀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1 시편 68,36.
2 라틴어 원문: “Omnia in uno videt, Omnia in uno concupiscit.”
3 마태 6,10 라틴어 원문: “Fiat voluntas tua.”
4 라틴어 원문: “Ad maiorem Dei gloriam!” 이 말은 예수회의 영적, 사도적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