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우리에게서 많이 드러나는 대죄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 수도회의 힘을 소모하는 것, 정의와 사랑의 결핍이며, (중상모략 또한 가벼운 결점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사도직의 원리에 관해 거짓된 사상을 형성하는 것, 마치 상인처럼 우리 출판사의 것보다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취급하는 것, 헛된 사상이 담긴 철학·문학·세속적인 공부에 관한 것 등입니다. (면학에 관한 잘못된 사상을 가진 신학생은 내보내야 합니다.)
이미 심각한 죄를 범할 위험에 처해 있고 또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주관적인 것은 오직 하느님만 아십니다.) 그것은 이 그룹이나 저 그룹(세 수도회-역주)의 성소에 대해 너무 고집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많은 자매가 행복하지 못합니다.1 사람에 관한 하느님의 권한을 존중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대리자인 프리마 마에스트라를 올곧은 마음과 순명하는 마음으로 사랑하십시오. |
[34] 대피정 중에는 우편물을 나누어 주지 말고, 어떤 편지도 쓰지 말아야 합니다. 피정 중에는 오로지 하느님과 자기 영혼 만 생각하는 것을 손해나 시간낭비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식사 후나 어떤 시간에도 여러분끼리 또는 선생 수녀와도 말하지 마십시오. 공동체 생활을 잘 하십시오. 아주 힘든 희생이 따르더라도 잘 지키십시오.
아침에 일어날 때나 신심업의 여러 실천에서나, 모든 면에서 잘 지키십시오. 요즈음 공동생활 면에서 관면이 너무 많습니다. 어떤 구실은 가당치도 않은 것입니다. 입으로 발설할 수는 있어도 주님은 인준하지 않으십니다. 대피정이 실천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보다도 들은 것에 대해 숙고하고, 덕행 중에 특별히 공동생활을 잘 하십시오.
정신을 온전히 몰입하여 수용하고 피정하면서 자기 분원에서 말해줘야 할 것이나, 자매들에게 권고할 사항들을 생각하지 않기를 간곡히 부탁합니다. 여러분은 물동이지 수로관이 아닙니다. 물동이는 먼저 채운 후 쏟아 붓습니다. 먼저 채워야만 합니다. 성 베르나르도는 “네가 지혜롭다면 수로관처럼 행세하지 말고 물동이처럼 행동하라.”고 말합니다.
피정 강의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것은 더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는 원장이니까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야 하는데요.” 그렇습니다. 양심성찰을 할 때는 자기 직무에 관해서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나에게 해당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리사는 다른 사람 때문에만 음식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자기들이 먹을 것도 마련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자신은 양분을 취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먹을 것만 준비한다면 병이 들고 말 것입니다. “그대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십시오!”2 |
[35] 모든 다른 생각은 유혹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을 찾아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것을 찾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일년이라는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의 결점들을 찾아냅시다. 그렇지 않으면 피정에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자신을 교정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남을 교정하거나 도와줄 수 없습니다.
비오 12세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로 어느 주교님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는 명령하기 위해 직무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도와주기 위해 받아들였습니다.” 대피정의 목표는 바로 이것입니다. 기도와 가르침, 모범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단계에 이르도록 우리 자신을 재형성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다룰 주제를 봅시다.
소죄는 고의적인 것과 고의가 아닌 것이 있습니다.
어떤 죄는 소죄에 해당하지만 대죄에 해당하는 통회의 정으로 보속할 의무가 부과됩니다. (예를 들면 고해성사 중에 오류를 범했거나, 올바른 지향으로 했다 하더라도 장상에게 어떤 자매에 관해 잘못된 정보를 주었을 경우입니다.)
고의성이 배제되거나 불완전한 소죄는 예상치 못하게 닥치는 것입니다. (갑작스런 분노, 정신없이 한 말, 감성이나 육감적인 느낌 등은)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이 아닙니다. 이 점에 대해서도 결심을 해야 하지만 모든 것을 완전하게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겸손해야 합니다. 성인들도 이런 불완전함에서 제외되지 않았습니다. |
[36] 그러나 양적이며 질적으로 이러한 불완전함을 최소한 줄일 수 있는 방도를 찾아야 합니다. 완덕의 궤도에 오른 사람에게서는 소죄를 거의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자신에 대한 성찰이 습관화 된 사람은 자기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주체가 되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지 않는 모든 것을 피합니다. 고의적인 죄에 대해서는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성 알로이시오가 자신의 죄 때문에 울었듯이 정말 많이 울어야 합니다. 그에게 일어난 일 하나는 장난을 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들은 말을 무슨 뜻인 줄도 모르면서 남에게 전한 것이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여러 번 고해성사를 보았는데 고통으로 기절까지 하고, 피를 흘리기까지 통회를 했습니다.
소죄를 미워해야 합니다. 주님께 배은망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에게서 많은 은총과 특혜와 특별한 사랑을 받은 사람은 그분께 더욱 간청하고 감사드려야 합니다.
소죄는 소소한 것에서 주님께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떤 아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그의 권고를 듣지 않는다면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볼 수 있습니까? 소죄는 예수께 창이나 못은 아니지만, 가시관을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가시로 예수님의 심장과 머리를 계속 찌른다면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37] 어떤 사람이 아기의 요람에 다가가 아기의 가슴과 손을 쿡쿡 찌르면서 즐거워한다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잔혹한 일입니다! 소죄는 가장 사랑스러우신 아기 예수님을 찌르는 가시와 같은 것입니다.
소죄는 은총과 공로를 약화시킵니다. 온 사방에서 물이 줄줄 새는 물통과 비슷합니다. 영혼이 영성체를 잘 하고 성사를 잘 받지만, 침묵을 깨고 (특히 대피정 동안 침묵을 지키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일상의 여러 가지 면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여 증가하는 모든
은총을 잃어버립니다. “우리가 바빌론을 낫게 하려 했으나 낫지 않았다. 그러니 그를 버리고 저마다 제 고향으로 돌아가자.”3라고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영혼은 장님이 되어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모든 것에서 불만스러워하며 자신의 처지를 생각지 못합니다. 성 요한은 묵시록에서 “너는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 4 고 말했습니다.
소죄는 예수님과 이루는 친밀함과 평화를 밀어내어 불행하게 만듭니다.
외적으로 행하는 영성체는 어쩌면 괜찮을 수 있지만 거룩하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영혼은 그리스도와 나누는 친밀함을 상실하여 풍부한 은총을 잃게 되면서 곧 메마름을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의 침묵으로 영혼은 불행에 빠지며 아무런 위안을 얻지 못합니다. “내적 위안이 부족하여 모든 것에서 불안해집니다.” 5
죽은 후에 곧바로 천국에 가지 못하고, 지상에서는 상상도 못할 불구덩이 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중에 정화되기 위해 연옥에 가게 될 것입니다. |
[38] 그러므로 소죄를 미워하고 온 힘을 다해 피합시다. 대죄를 이겨낸 영혼은 소죄와 투쟁을 하게 됩니다. 어떤 수단으로 피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통회와 기도, 깨어있는 것입니다. 많은 말로, 감정으로, 많은 느낌으로 지은 과거의 죄를 진정으로 뉘우치고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고해성사를 자주 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미 고백한 것도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자주 보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영혼의 정화에 대해 주의하고 무엇보다도 대죄, 그리고 소죄까지 없애며 죄의 애착과 죄에 대한 아픔을 주시해야 합니다. 죄에 애착하는 것은 교만을 미워하면서도 계속 교만을 지니는 것이고, 가난을 거스르는 것을 미워하면서도 안락한 삶을 계속 바라는 것입니다. 겸손하기를 바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낮추어지기를 바라야 합니다. 이것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애석해하지 말고 죄의 집착에서 벗어나십시오. 화를 내고 또 화를 낸 것에 대해 화를 내고, 슬퍼하고 슬퍼한 것에 대해 슬퍼하고… 이렇게 하면 제자리를 잡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악의 뿌리를 제거해야 합니다.
더는 자기 의지대로 하지 않고 모든 면에서 불편심不偏心을 지닌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애착에서 벗어난 사람들입니다. 불순명에 대한 죄를 고백한 후 이탈 정신으로 어떤 사도직이나 장소에 기꺼이 순응하지 않는다면 죄의 뿌리를 제거하지 못합니다. |
[39] 잎사귀만 떼어 버린다면 처음보다 더 줄기차게 올라옵니다. 보자기로 싼 것을 버리고 같은 물건을 다시 가방에 채우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대한 통회만 아니라 닥쳐올 것에 대처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지은 죄를 고백했지만 애착과 뿌리를 제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무 가지를 자르는 것은 나무가 더욱 튼튼하게 자라게 하는 것임을 모릅니까? 자르지만 말고 뿌리를 캐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미래에 일어날 사항을 바라보십시오.
신학적으로 보아 애착을 버리지 않으면 죄 사함은 유효하지 않습니다.
소죄를 피할 수 있는 두 번째 수단은 기도입니다.
굳건한 마음과 맑은 지성을 지니게 되는 것은 은총의 결과로서, 이 은총은 기도로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불가능한 것을 요청하시는 잘못을 하지 않으십니다. 뭔가 그렇게 하신다면 기도로써 가능하도록 힘을 주십니다. 타락한 본성으로는 초자연적인 것이 불가능하지만 은총이 함께하면 모든 것이 가능해집니다. 기도는 어려운 것을 쉽게 만듭니다.
소죄를 피할 수 있는 세 번째 수단은 깨어있음과 단호한 결심입니다.
우리가 가장 필요한 우선적인 것들, 혹은 우리 삶에서 차지해야 할 특별한 점들에 대한 결심이나 |
[40] 일반적인 원리에서 시작하여 때에 따라 세세하게 적용하게 되는 결심이 있습니다.
주님을 굳게 신뢰하십시오. 그분이 여러분을 부르셨으니 성소에 응답하는 데 필요한 모든 은총을 틀림없이 주실 것입니다.
1 사도직의 세 부문에 대한 언급이다.
2 1티모 4,16 라틴어 원문: “Attende tibi!”
3 예레 51,9 라틴어 원문: “Curavimus Babylonem, et non est sanata: derelinquamus eam.”
4 묵시 3,17 참조.
5 참조: 「준주성범」 1권 25장 3 라틴어 원문: “Undequaque patitur angustiis, quia caritur internis consolationib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