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들이 일어나 그를 기리고 남편도 그를 칭송한다.
(잠언 31,28)
가장 큰 공로
여성 그리스도인. 여러분이 지니는 최상의 영예와 공로는 여러분의 아들이 수도자나 사제가 되도록 주님께 봉헌한 데서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또한 딸을 수녀로 주님께 바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녀들을 남녀 선교사로 봉헌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러한 봉헌이 여러분의 끊임없는 갈망이 되고 항구한 기도가 되길 바란다.
마리아가 당신 태중의 아기를 봉헌하신 것처럼 자기 아들이나 딸을 주님께 바치는 것은 큰 공로가 된다. 이는 주님께 꽃이나 초나 돈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닌 가장 소중한 보물을 내어 드리는 것이다. 모든 어머니는 자녀들을 바치면서 무척 흡족해하며 “이 자녀들은 저의 진주요 기쁨이며 보석입니다.” 하고 말할 수 있다.
부모의 잘못으로 자녀들이 보금자리에서 활발하게 재잘거리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기뻐하지 못하는 가정은 더없이 불행하다! 그곳에는 노동과 삶의 목적fine1만 존재하고 슬픔과 이기심, 어쩌면 즐거움이 결여된, 고독하고 황폐한 노년과 방치된 죽음, 망각, 눈물을 흘리는 이나 명복을 빌어주는 이가 없는 무덤이 존재할 뿐이다.
부모들이 자녀들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꽃과 같은 아이를 예수님이 선택하시도록 내어드린다면 그들의 희생은 하느님께 기쁨을 드리는 합당한 응답이 된다!
최고의 영예. 일반적으로 그 가정에 신앙과 도덕성, 일에 대한 사랑과 질서가 있음을 뜻한다. 착한 아들은 부모의 영예요 그 부모의 덕망을 증거한다.
은총의 샘. 아들이나 딸을 주님께 바친 가정에는 축복이 넘친다. 이는 큰 기쁨이며 수많은 천상 은총을 보장한다. 힘든 희생으로 느끼더라도 신앙과 사랑으로 바치는 희생은 구원의 표징이다.
죽을 때 얻는 위로. 영혼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하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장례식을 합당하게 치른다.
천국에 마련된 특별한 상. 하느님이 예수님의 어머니에게 빚을 지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에게 인간의 살을 주신 마리아께 빚을 지고 있다.
수도 성소의 양성기는 가정에서 사랑 어린 보살핌으로 자녀들을 돌보는 것처럼 소중하다.
일반 학문에서 말하듯 어린이는 어머니에게서 성격과 정서와 성향 대부분을 물려받는다. 어머니가 자기 아들이 사제가 되길 바란다면, 또 주님이 좋아하신다면, 어린 피조물인 아들에게 그와 같은 성향을 각인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어머니의 기도는 하느님 마음을 얼마나 강력하게 움직이겠는가! 본성과 은총은 같은 목적을 향해 작용하며 협력한다.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위대한 |
사제의 어머니이신 동정 마리아의 망토 아래 놓인다. 어머니의 말, 모범, 성물聖物, 기도, 교육 등 모든 것은 성소를 키우는 분위기를 조성하여 성소가 싹트고 자라게 한다.
어린 자녀를 죄에서 보호하고, 그 안에 신심과 덕을 불어넣기 위해 모든 힘을 기울여 보살핀다.
어머니는 자녀를 가까이 두고 가르치며 교정하고, 나쁜 친구와 영화, 오락, 좋지 않은 교육 등 모든 위험에 이끌리지 않도록 한다. 어머니는 아이를 성당에 데리고 가 교리를 배우게 하고, 좋은 학교에 다니게 한다. 어머니는 아이와 함께 기도하고, 아이에게 귀 기울이고, 아이의 정서를 살피며, 늘 온화하면서도 단호하게 아이가 덕을 쌓아 튼튼해지게 한다. 성소의 징조가 드러나는 것을 보기 위해 조심스레 살피며 침묵 가운데 기다린다. 신중하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다가 아들이 신학교에 가겠다고 할 때 어머니는 선뜻 동의한다.
거룩한 어머니들
큰 열정을 가지고 활동한 성 아타나시오의 어머니는 어느 날, “나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내 외아들을 교회를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어머니의 기도와 조언 덕분에 그 아들은 교회의 기둥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력히 주장하고 변호했다.
우리가 미사 때 공경을 드리는 또 한 분의 어머니는 성녀 논나Nona다. 논나는 아기가 태어나자 하느님께 봉헌하며 아기의 손에 성경 사본을 들려주었다. 그 아기는 위대한 성경 해석자요 해설자, |
교회의 뛰어난 박사2가 되었다.
착한 젊은이가 나쁜 친구들 때문에 죄를 범하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훌륭한 어머니의 조언과 기도가 그를 회개하도록 이끌지 못하자 가엾은 어머니는 상심한 나머지 병에 걸렸다. 삶의 마지막 순간이 가까워진 어머니는 교도관에게 한 번만이라도 아들을 보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아들이 두 감독관에게 끌려 어머니 곁으로 오자 어머니는 말없이 간절한 탄원의 눈길로 바라보기만 했다. 감옥으로 돌아온 젊은이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러자 나무라듯 바라보던 어머니의 애절한 눈길이 드디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마침내 회개하여 고해성사를 보았고, 복역 기간이 끝나자 그는 생활방식을 바꾸어 예수회에 들어가 훌륭한 설교가가 되었다. 무엇보다 그의 회개는 완전했다. 그가 바로 스타슬라케르 신부다. 그는 생전에 이 일화를 자주 언급했다.
성 요한 보스코의 어머니 마르게리타는 젊은 사도의 모범적인 교육자였다. 어머니의 훌륭한 모범과 기도, 지혜로운 조언, 끊임없이 바쳐진 희생은 착한 요한의 마음과 영혼에 감동을 주어 사제직과 수도생활에 관심을 갖게 했다. 요한이 조언을 청할 때 마르게리타는 “나는 너의 영원한 구원을 확신하는 것 외에는 너에게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요한은 프란치스코수도회 회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요한의 어머니가 가난한 과부라는 것을 알고 있는 본당신부는 어머니에게 요한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에 어머니에게 먼저 그 사실을 알렸다. 마르게리타는 요한에게 말했다.
“본당신부님이 오셔서 |
네가 수도자가 되길 바란다는 이야기를 하시더구나. 나는 네가 자신을 잘 살피고, 필요한 단계를 잘 밟기를 바랄 뿐이다. 나를 생각하지 말고 네 성소를 따라가거라. 무엇보다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 위해서. 본당신부님은 내가 너를 필요로 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너를 설득하길 바라시지만, 성소에 대해서만큼은 하느님이 우선이란다. … 나는 너에게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가난하게 태어났고, 또 가난하게 죽기를 바란다.” 요한 보스코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수도 사제가 되어 많은 남녀 수도자의 아버지가 되었다.
교황은 성소에 대한 가정의 협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 성전의 꽃들이 자연스럽게 싹이 트고 피어나게 하는 첫번째 가장 좋은 정원은 진실하고 깊은 신앙생활을 하는 가정입니다. 회중이 칭송하는(집회 44,15 참조) 거룩한 주교와 사제들 대부분의 성소와 성덕의 시작은 믿음과 덕이 충만한 아버지가 보여준 모범과 가르침, 순결하고 신심 깊은 어머니, 순수한 관습에 따라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가정적인 덕입니다. 이처럼 가정은 일상적인 섭리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확인시켜 줍니다. 가정의 부모들이 토비야와 사라(토빗 8,4-7)의 모범을 따라 하느님께 많은 자손을 청하며 하느님의 이름으로 영원히 축복해 주시기를 바랄 때, 자녀를 하늘이 내린 선물로, 소중한 담보물로 여기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시초부터 자녀들에게 하느님을 경외하며 그리스도교 신심을 지니고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과 원죄 없으신 동정 마리아께 대한 온화한 신심을 지니며, |
거룩한 장소와 거룩한 사람들을 존경하고 공경할 것을 가르치려고 최선을 다할 때, 자녀들이 부모에게서 솔직하고 근면하며 신심 깊은 삶의 귀감을 볼 때, 부모가 하느님 안에서 거룩하게 서로 사랑하고 성사생활을 잘 하며 금욕과 단식 등 교회법에 순종할 뿐 아니라 자발적으로 그리스도인답게 고행하는 모습을 볼 때, 부모가 집에서 기도하는 모범을 보이며 온 식구가 집에 함께 모여 하느님을 찬미하는 모습을 볼 때 궁핍한 이웃에게는 연민을 갖고 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처럼 자녀는 부모가 보여주는 모범을 본받게 됩니다. 모두가 아니더라도 한둘은 그 영혼 안에서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마태 4,19) 하고 말씀하시는 스승 예수님의 초대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아들이 하느님의 방문이나 거룩한 부르심을 받을 수 있기를 열렬히 기도하지 않았음에도, 걱정하지 않고 계속 기도하는 가운데 가족을 위해 주님께서 아들을 따로 뽑으셨다는 큰 은총을 깨닫는 부모들은 참으로 복됩니다!”(사제직에 대한 회칙)
성소자를 위해 일하십시오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외아들을 바치라고 요구하셨다. 성녀 모니카는 눈물과 기도로 아우구스티노가 회개하는 은총을 청했고, 사제직을 받도록 준비시켰다.
마리아는 가장 훌륭한 사랑하는 외아들을 하느님께 봉헌하셨다.
자녀들은 부모를 위해 존재하지 않고, 부모 또한 자녀들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자녀가 하나뿐이라면 공로는 더욱 크다. 자손의 대가 끊기게 된다 해도 그 아들은 부모에게 더 큰 감사를 드릴 많은 영적 자녀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큰 희생을 치른 성소가 더 가치롭다.
당신이 자녀를 하느님께 바치길 거절한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그를 뽑지 못하시겠는가?
자녀는 하느님의 사람이다. 그가 세상에서 살아가다가 은총을 빼앗기고 비뚤어져서 부모에게 십자가가 될지도 모른다. 하느님께서 현세적으로나 영적으로 많은 은총을 주지 않으실지도 모른다.
자녀가 자기 성소를 따르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대단히 부당하며 매우 중대한 죄가 된다.
아들이나 딸이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려는 바람을 알릴 때 때로는 부모 편에서 거센 반발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며, 실제로 신앙을 실천하는 가톨릭 신자라고 말한다!
부모에 앞서 하느님께 순종해야 한다. 부모는 자녀들이 그들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 것을 반대할 권리가 없다. 이것은 본질적인 권리다. 자녀들은 우선적으로 하느님께 속하며, 그 다음 부모에게 속한다.
하느님보다 아버지나 어머니, 형제자매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를 자격이 없다. 그는 죄를 짓는 것이다. 부르심을 받았지만 먼저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오게 해 달라고 청하는 젊은이에게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마태 8,22)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3
예수님은 열두 살에 예루살렘에 머물러 율법학자들에게 귀 기울이며 |
장차 주어질 사명과 소명을 예시하셨다.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와 성 요셉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한 이유를 묻는 마리아에게 예수님은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4라는 말씀으로 그러한 선택은 자유로운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이는 하느님, 사명, 성소 문제에 관련된 것일 때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고해신부가 확신한다면 부모의 허락은 필수적인 것이 아님을 뜻한다.
교황님께 귀 기울이십시오
이 견해에 대한 비오 11세의 말씀은 매우 명확하다. “부모들과 자신이 진지한 그리스도인 또는 가톨릭 신자라는 것을 영예롭게 생각하는 이들, 특히 지위가 높고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안타깝게도 자주, 너무 자주 자녀들의 사제 성소나 수도 성소를 수긍하지 못하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들은 온갖 변명을 늘어놓으며 노골적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저항합니다. 또 더 완전한 신분에 이르는 성소를 위태롭게 할 뿐 아니라 본인들의 양심은 물론이고 사랑하는 자녀들의 구원까지도 위험에 빠지게 하는 이런저런 수단들을 동원하면서까지 그분의 부르심을 거역하며 버팁니다. 지난 몇 세기 동안 부당하게 만연하던 남용, 자녀들에게 성소에 적성이 없는데도 교회 내 성직자 계열에 들도록 자녀들을 강요하는 개탄스러운 남용은, 지금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 사회 고위층 사람들에게, 또 일반적인 성직자 편에서 보더라도 결코 명예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토록 부유하고 품위 있는 가정에서 자란 이들의 수도 성소가 줄어들게 된 원인과 이유는 방탕한 현대 생활, 특히 대도시에 사는 젊은이들의 열정을 자극하는 유혹의 손길, |
그리고 성소가 성장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여러 지역의 학교와 관련이 있습니다. 슬프게도 가정에서 믿음이 감소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사실 신앙의 빛으로 상황을 바라본다면 그리스도인 부모가 자녀들에게 바랄 수 있는 더 높은 존엄성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말했듯이 사람들과 천사들을 공경하는 것보다 더 숭고한 직무는 무엇일까요? 오랜 슬픔의 체험, 그리고 배반당한 성소 ─ 지나치게 가혹한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의 표시는 자녀들만 아니라 사려 깊지 못한 부모들에게도 눈물의 샘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느님은 이러한 눈물이 시기를 놓쳐 영원한 눈물이 되지 못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십니다.”(사제직에 대한 회칙)
그런데 저는 딸들만 있어서 … 이러한 경우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딸들 가운데 하나에게 수도 성소를 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를 위한 꽃들이 우리 눈에 아름답고 흡족하며 향기롭게 되도록 주의를 기울여 부지런히 돌봐야 한다. 덜 아름다운 꽃이 아니라 가장 좋은 꽃을 하느님께 드려야 한다. … 카인은 땅에서 얻은 가장 보잘것없는 결실을 하느님께 바쳤지만 아벨은 가축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바쳤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아벨의 봉헌물은 받아들이시고 카인의 것은 거절하셨다. 가장 훌륭한 자녀들을 하느님께 바쳐야 한다. 여러분의 가정이라는 정원에서 자란 가장 아름다운 꽃, 가장 건강하고 가장 똑똑한 자녀는 세상을 위해 남겨두고, 가장 뒤처지고 흠이 많고 허약한 자녀를 하느님께 드리려는 것은 왕이신 하느님께 심각한 모욕이 될 수 있다.
가장 좋은 것은 하느님께! 하느님께 대한 불의는 여러분 가정에서 많은 축복을 앗아가며 처벌을 초래할 수도 있다.
저는 딸도 없는데요 … 그렇다면 사제나 수도자가 되기를 바라는 학생을 위해 장학금을 제공하여, 하느님께 그를 봉헌하라.
어느 노부부가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자녀를 갖게 되길 그토록 갈망했는데도 하느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저희는 돈을 저축하여 세 명의 학비를 대줄 수 있을 만큼 마련했습니다. 이제 이 돈을 신부님께 드리니 우리나라를 위해 일할 두 명의 수도 사제와 외국에서 봉사할 선교사 사제의 학비로 써 주십시오.”
어느 가장은 이렇게 말했다. “저에게 매우 소중한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병에 걸렸어요. 저희는 최선을 다했지만 하느님께서 그를 데려가셨어요. 마땅히 흠숭드려야 할 하느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 아들이 받기로 되어 있던 몫의 유산을 이제 신부님께 드립니다. 제비를 뽑아 제 아들의 이름을 받게 될 학생의 학비로 사용해 주십시오. 저는 그를 제 아들처럼 사랑하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겠습니다. 저의 유일한 갈망은, 제가 죽으면 저를 위해 연미사를 드려주겠다는 약속뿐입니다.”
1 Scopo, finalità.
2 나지안의 성 그레고리오.
3 루카 9,60 참조. 중요한 것은 복음의 표현을 정확히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4 루카 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