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찼다.(루카 1,39-41)
선 행
선행에는 거룩한 갈망의 사도직, 기도의 사도직, 좋은 귀감의 사도직, 고통의 사도직, 그리고 (선한) 활동의 사도직이 따른다.
귀감의 사도직은 사람들을 준비시키며 설득한다. 선행의 사도직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정복한다. 좋은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우리의 고민에 대해 함께 공감하며 필요한 도움을 받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예수님은 많은 선을 행하셨다. 육신의 질병은 보이지 않는 영혼의 질병과 연관된다.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 간질 병자들과 중풍 병자들을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마태 4,24)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은 지극히 온화하신 당신의 마음을 보여주신다.
모든 사람이 이를 보고 이 좋은 기회를 최대한 활용했다.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주었기 때문이다.”(루카 6,19)
당면한 삶에 대한 걱정에 짓눌리고 질병이 있어도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에게 천국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배가 고픈 사람에게 영적 양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마리아는 예수님을 양성시키셨고, 예수님은 충실하게 받아들이셨다. 마리아는 선행의 사도이시다.
(선한) 활동의 사도직
하느님 나라는 이 세상 것이 아니지만 이 세상에 존재한다. 학교, 단체, 전례, 환자들, 그리스도교 가르침, 사명, 수도회, 출판을 위해서는 물질적 재화와 인적 자원이 필요하다.
일하는 사람은 보상을 받아 마땅하다. 제대에서 봉사하는 이는 그 봉사의 대가로 살아야 한다. 사실 성 바오로는 이렇게 말한다. “성전에서 봉직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양식을 얻고, 제단 일을 맡은 이들은 제단 제물을 나누어 가진다는 것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마찬가지로, 주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복음으로 생활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1 관대한 사람들에게는 보상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7) 한편 “자비를 베풀지 않은 자는 가차 없는 심판을 받습니다.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야고 2,13) 금전적인 기부가 좋은 일임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더 좋은 일은 선행을 하는 것, 희생하는 것, 병자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것, 무지한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 하느님 말씀을 인쇄하여 보급하는 것, 교육적이고 종교적인 영화를 제작하여 상영하고, |
상본과 성물을 제작하여 보급하는 것이다. … 선행은 모든 필요를 채워준다.
은총을 베푸시는 마리아
예수님은 30년 동안의 사생활 후에 공생활을 시작하셨다. 예수님은 요르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40일 동안 단식하신 다음, 첫 제자들을 모으셨다.
“사흘째 되는 날,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두세 동이들이였다.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셨다. 그들은 곧 그것을 날라 갔다.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을 퍼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과방장이 신랑을 불러 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요한 2,1-11)
마리아는 신랑신부의 친척이나 친지로서 그들의 초대를 받아 혼인 잔치에 가셨다. 여기서도 마리아는 섬김을 받기보다 봉사할 일을 찾으셨고, 특히 예수님과 제자 일행이 도착한 다음에는 결혼 잔치를 적극 도우셨다. 그러므로 포도주가 모자란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마리아는 그 가족이 겪을 난처함을 눈치채자 곧바로 움직이셨다. 당신 아드님의 신원을 알고 계셨던 마리아는 예수님께 기적을 청하셨다.
모든 것이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그리고 조용하게 진행되었다. 몇 마디 말과 아름다운 기도가 뒤따랐다.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소란스러움이나 특별한 움직임은 없었다. 마리아의 품위 있는 말과 조용한 움직임은 그 영혼의 고결한 품위를 드러낸다. 또한 모든 것은 마리아 자신이 아니라 그 가족을 위한 것임이 드러난다.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나자 잔치는 기쁨 속에서 계속되었다.
이처럼 선행과 자선의 사도직은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도와주며, 자선 활동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여종으로 선포되셨으나, 그분의 선한 행위는 하느님 종들의 종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마리아는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들과 당신 아드님의 형제들을 보신 것이다. 이처럼 더없이 숭고한 선행의 귀감을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
마리아는 카나에 앞서 친척 엘리사벳의 집에서 경건하며, 집안일에 헌신하는 여인으로 드러나신다. 마리아는 모든 이를 위해 어머니 마음으로만 할 수 있는 행위로, 아주 작은 그러나 꼭 필요한 이웃의 어려움을 알아채고 재빨리 도와주기 위해 마음 쓰신다.
기적을 이끌어내신 마리아의 애덕은 |
제자들과 잔치 손님들이 예수님을 참 메시아요, 참 하느님으로 믿게 하는 초자연적 목표를 이룬다. 마리아는 물질적 자선을 통해 영적 자선을 목표로 삼는다.
교회의 적대자들은 흔히 자기들을 민중의 친구라고 말한다. 그들은 재물을 건네며 참으로 자선을 베푸는 것처럼 하지만, 결국 사람들에게서 최상의 재화인 신앙을 앗아가 그리스도교적 삶을 살지 못하도록 그들을 분열시키는데 이는 죄악이다.
결 실
성 요한 사도는 말한다.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1요한 3,18)
예수님처럼 기적을 행하면서 선행의 사도직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다른 기적, 곧 모든 세기에 걸쳐 성인들이 행한 “이웃 사랑의 기적”과 같은 놀라운 일들이 있다.
이러한 기적은 진리를 믿게 하며, 교만에 찬 이들을 굴복시킨다. 가톨릭이 운영하는 단체들에는 병원, 요양원, 가정 방문 등의 조직과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환자 돌봄과 여러 가지 자선 활동의 사도직이 있다.
막달레나, 더 정확히 말해 베타니아의 라자로의 동생 마리아2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어 닦아드리자 누군가가 돈을 낭비한다고 투덜거렸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 여인을 변호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여인은 나에게 좋은 일을 했다. …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을 테니, 너희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들에게 잘 해 줄 수 있다.” 하느님을 찬미하기 위한 헌금과 |
가난한 이들을 돌보기 위한 헌금은 모두 좋은 일이며 합당한 일이다.
선행의 목적은 이중적이다. 곧 사람들의 영혼을 돕고 몸에도 유익하다. 예수님은 치유를 통해 믿음을 불러일으키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셨다. 혈루증을 앓는 여인, 가나안 여자, 벳자타 못가의 중풍병자가 좋은 예다.
육신의 양식으로 영혼의 양식을 주라. 환자들의 영적 돌봄이 육체적 돌봄으로 연결되어 하나가 되게 하라. 그뿐 아니라 고아와 노인들에게 종교교육을 하라. 예수님은 빵을 많게 한 다음 영혼에게 생명을 주는 하늘나라의 빵인 성체성사에 대해 말씀하셨다.
가톨릭 신자들은 교회가 권하는,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을 향상시키려는 목적을 지닌 사회 자선단체에 가입할 것이다.
또한 선거할 때에는 교회를 존중하고 자유롭게 하는 이들을 뽑을 것이다.
모든 이를 위하여
교황 비오 11세는 가톨릭 사도직회 창립자 성 빈첸시오 팔로티3를 “가톨릭 활동의 선구자”라고 했다. 팔로티는 열렬한 자선 행위를 통해 가난한 이들의 빵, 목마른 이들의 물, 헐벗은 이들의 옷, 보지 못하는 사람의 눈, 듣지 못하는 사람의 귀가 되길 바랐는데 … 그 모든 것은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자선은 가장 가까운 친척, 가족, 도움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해야 한다. |
사도는 말한다. “어떤 사람이 자기 친척 특히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그는 믿음을 저버린 자로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나쁩니다.”(1티모 5,8)
신앙에 이르게 하는 마음의 길은 위대하다.
자신을 가톨릭 신자라고 하면서 사랑이 없다면 “그 사람의 신심은 헛된 것이다.”4
그리스도교의 적대자들도 사랑을 통해 참 그리스도인을 알아본다. “보십시오, 그들이 서로 얼마나 사랑하는지.”
자선을 행하는 사람은 사람들의 마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성스러운 무엇인가가 배어 나오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사시는데, 그 ‘하느님은 사랑이시다.’5
할 수 있는 만큼 내어 주어라.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라.”6 사람들이 내어 놓을 수 있는 것들을 모아서 가난한 이에게 주어라. (물질적으로)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동정심, 조언, 위로의 말, 미소, 기도, 고통, 믿음을 주어라. … 모든 그리스도인은 마음속에 모든 부를 능가하는 훌륭한 재물을 지니고 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믿음이 부족하여 고통 받는 이에게 그 믿음을 나누어야 한다.
주 하느님, 겸손되이 비오니, 저희에게 은총을 베푸시어 언제나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기쁨을 얻게 하시고, 복되시며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의 전구로 저희가 이 세상의 슬픔에서 벗어나 하늘 나라의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1 1코린 9,13-14.
2 요한 12,1-8; 참조: 마르 14,3-9.
3 Vincenzo Pallotti(1795-1850), 1963년에 시성됨.
4 야고 1,26.
5 “Deus caritas est…”(1요한 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