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자의 사제서품 100주년을 기념하는 은총의 해인 2007년을 마무리하면서 바오로가족은 카리스마 역사에서 중요한 단계를 드러내는 책을 재조명하는 좋은 기회를 가졌다.
우리가 지금 제시하는 책의 초판은 1948년 아스티의 성요셉출판학교에서 아기 예수와 함께 있는 동정 마리아의 그림을 표지로 사용한 아름다운 양장본으로 출간되었다. 33개의 논고와 가르침을 담고 있는 작은 판형 337쪽의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사명과 사도적 신빙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마리아의 ‘사도직’을 폭넓게 제시함으로써 ‘사도’이신 마리아께 대한 자신의 전망을 확증하고 심화한다.
이 책은 1954년 (알바노 바오로딸출판사에서) 재판되었고, 1955년 (발렌시아 마드리드에서) 스페인어로 발행되었으며, 1956년과 1976년에는 (영국 더비와 미국 보스톤에서 각각) 영어본으로 발간되었다. 이 책은 “사도들의 모후 마리아와 바오로가족의 전형적인 마리아 신심에 대한 알베리오네 신부의 가르침을 매우 체계적으로 전개해나간 것으로 대단히 중요하다.”1
이 판본은 사도들의 모후께 드리는 ‘주간기도’ 다섯 조항을 포함해 초판 내용을 모두 다루고 있으며, 각 항목을 시작할 때마다 성경구절과 본문에 들어간 소제목과 함께 재판 때 덧
붙인 내용을 첨가했다.
1960년 4월, 알베리오네 신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느님의 지혜와 사랑은 바오로가족에게 교회와 온 인류를 위해 최상의 혜택을 주는 소중한 사명을 맡기길 바라셨다. 곧 ‘사도들의 모후’라는 특별한 호칭을 통해 마리아를 더 잘 알고 사랑하며, 기도하고 설교하는 것이다.” 이어서 알베리오네 신부는 이렇게 설명했다. “마리아께 대한 첫 번째 신심은 마리아를 어머니로 공경하는 예수님의 신심이었고, 두 번째 신심은 마리아를 사도들의 모후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본받는 사도들의 신심이었다.”2
확실한 유언의 가치를 지닌 이 확언은 (이 말씀을 하신 순간을 생각해 볼 때) 알베리오네 신부의 삶과 여러 수도회의 창립 가운데 이미 굳건해진 동정 마리아의 현존에 대한 가르침의 최종 승인이요 완성이다.
이 책은 이러한 가르침이 원숙해지는 여정에서 중요한 단계를 이룬다. 그러나 오늘날 이를 정확히 평가하기 위해 우리는 그 시대의 마리아 교의를 되짚어보며 야고보 알베리오네가 살아낸 체험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그는 마리아에 대해 대단히 많이 언급했으며, 거의 1,700쪽에 이르는 분량의 책을 저술했다. 무엇보다 그가 살아낸 신심은 매우 열렬했다.
가르침이 되는 체험
마리아는 알베리오네 신부의 어린 시절부터 온 생애에 걸쳐
생생하고 중요한 현존이었다. 그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는 그를 마리아께 봉헌했으며, 그의 첫 번째 종교교육이 브라의 꽃의 성모 성당, 케라스코의 은총의 동정 마리아 성당, 알바의 모렛따 성모 성당 등 세 성당과 관련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을 즐겨 기억했다. 따라서 알베리오네가 사춘기와 신학생 시절에 마리아를 더 많이 알게 되고 만나게 되기까지 체험한 마리아의 모습은, 그 당시 가정에서 실천하던 신심과 마리아 신심이 깃든 여러 장소를 통해 가장 단순하고 평범하게 제시된 모습이었다.
첫 번째 접근은 그 당시 매우 유명했던 두 저자, 곧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와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뇽을 통해 신학교에서 이루어졌다. 그들의 저서는 신심을 다루는 교재였다.3
그러나 마리아에 대한 진정한 ‘발견’, 곧 그의 삶 가운데 마리아가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은 레오 13세의 묵주기도에 대
한 교황 회칙 「그리스도인들의 도움Adiutricem populi christiani」(1895)을 읽은 후부터이다. 이 책은 알베리오네에게 카리스마적 빛을 환하게 안겨주었다. 교황은 이렇게 썼다. “진리를 충만하게 간직하신 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요 스승이시며 사도들의 모후로 간주되어야 한다. …”
알베리오네 신부는 후에 그 회칙을 상기하면서 핵심을 이렇게 요약했다. “교황 레오 13세는, 마리아가 어떻게 사도들과 첫 그리스도인들에게 스승이 되셨는지 보여준다. 마리아는 성성의 귀감과 권위 있는 조언, 온화한 위로와 효과적인 기도로 믿는 이들을 훌륭하게 감화시키셨다.”4
사명의 필요성
천성적으로 구체적이었던 알베리오네 신부는 마리아와 자신의 관계를 언급할 때면 언제나 생명과 신앙생활, 참된 마리아 영성과 관련시켰다. 곧 지식과 관상 차원을 확실하게 포함시켰으며, 생동감있는 헌신과 사랑과 봉사를 중요시했다.
이처럼 [바오로]가족 안에 흡수된 ‘신심’은 온 존재의 주의 깊은 참여를 이끌어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사실 신심이란 봉헌과 헌신을 뜻한다. … 육체적, 도덕적, 지적 차원에서, 또한 힘이 솟아나오는 존재 차원에서 우리 자신의 전적이고 통합적인 자기 증여를 뜻한다. 그분의 빛과 영, 귀감과 은
총 안에서 자신의 온 인격을 주고받는 것이다. …”5
이 모든 것은 그의 구체적인 성소와 사명에서 비롯된다. 1907년 사제서품을 받은 알베리오네 신부는 어머니이신 모후를 자신의 사목에 영감을 주는 분으로 모시기로 결심했다. 실제로 그는 곧바로 “자기 직무를 사도들의 모후 마리아의 보호에 맡겼고, 신학생들과 젊은 사제들에게도 그와 같이 하도록 가르쳤다.”6
“사목강연(1910-1915)도 마리아의 보호 아래 행했고, 사회학 수업, 사제들의 성무의 첫걸음도 마리아의 보호에 맡겼다.”7
그 후에 초창기 바오로인들이 마리아의 호칭 가운데 어떤 것을 특별히 사용해야 하는지 물었을 때 알베리오네 신부가 이미 검토된 근거를 밝힌 대답을 했다는 것은 납득할 만하다. 창립자는 다음 묵상에서 이를 기억했다.
“1919년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신학생들과 젊은 지원자들이 저에게 와서 마리아를 어떤 호칭으로 불러야 하며, 우리 신심은 무엇으로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인의 도움, 거룩한 은총의 어머니, 착한 의견의 어머니 등. 저는 이에 대해 이미 생각했고 기도했기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모든 사도가 성화되도록, 사람들이 사도들을 후원함으로써 선을 얻도록, 그리고 사도들과 신자들이 모두 하늘에 함께 있도록 사도들의 모후라
는 호칭으로 마리아께 기도하십시오.”8
뜻깊은 날 주어진 이 질문은 알베리오네 신부에게 사도들의 모후라는 호칭의 뿌리와 의미, 영적 사도적으로 함축된 교의적 연구를 시작하라는 결정적인 신호가 되었다.
근거의 조명
‘사도들의 모후’께 대한 신심과 공경은 19세기 중반부터, 1817년 샤미나드 신부가 세운 마리아니스트회, 1835년 팔로티가 세운 천주교 사도직회(팔로티회), 1850년 라마조티가 세운 교황청 외방선교회 등 새로 창립된 선교 수도회들에서 활발하게 퍼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모든 수도회는 여러 차원에서 그 시대의 감수성에 맞는 사도이신 마리아의 영성을 발전시켰으며, 몇몇은 이미 교황청이 승인한 사도들의 모후 전례 신심을 지니고 있었다.9
알베리오네 신부는 교회가 지녀온 지대한 가치를 받아들여 젊은 공동체를 양성할 필요성을 재빨리 인지하고 이에 대해 체계적으로 숙고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20년대에는 교리와 이를 고무시킬 활동의 세세한 계획 안에서 모든 수단, 곧
강론, 소식지, 소책자, 학술 행사, 그리고 무엇보다 묵상을 통해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 표명했다.
마리아에 대해 창립자가 한 달 동안 강론한 내용을 자카르도 신부가 정리하여 사도들의 모후를 체계적으로 제시하는 최초의 책이 1928년 알베리오네 신부의 ‘머리말’과 자카르도의 이름으로 발행되었다. 알베리오네 신부가 이 책의 저자에게 보낸 축하카드 내용은 여기에 인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사도들의 모후」 초고를 단숨에 다 읽었습니다. 주님께서 이처럼 아름답고 훌륭하며 강력한 어머니요 스승이며 모후이신 분의 보호 아래 우리를 맡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편 이 호칭에 대한 공경과 신심을 널리 알리는 일이 이토록 지연된 것이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이제는 그 호칭이 널리 알려지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어머니요, 성소의 어머니십니다! 책을 더 발행하고 보급합시다. 우리 어머니이신 그분께 기도합시다! 올해 저는 많은 은총이 내리길 고대합니다.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랑으로, M. 알베리오네.”10
그로부터 20년 후, 창립자는 여러 공동체에 보내는 일련의 글과 묵상에서 그 주제를 다루었는데, 바로 거기서 「사도들의 모후 마리아」라는 책이 탄생했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전쟁 이후는 이탈리아의 교회 전체가 쇄신을 가져오는 매우 풍요로운 시기였으며, 알베리오네 신부와 바오로가족수도회 모두도 교회의 쇄신에 기여했다. 이 면에서 1950년 전세계 수도자 모임에서 “사도이신 마리아”라
는 주제로 창립자가 발표한 묵상 내용은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알베리오네 신부는 예수님의 어머니를 “사도들의 모후”라는 호칭으로 불러 마땅한 여러 이유를 제시했다. 마리아는 모범의 사도직, 말씀의 사도직, 기도의 사도직, 고통의 사도직 등 모든 사도직을 실천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호칭은 여성이신 마리아, 참된 공동구속자이신 성모님께 타당한 명칭이다.11
“사도들을 양성합시다! 사도들을 지극히 거룩하신 사도들의 모후 동정 마리아께 데려가 성모님께서 그들을 보호하고 위로하며 이끌어 주시도록 맡겨드립시다.”라는 초대가 중재기도의 시작과 끝에서 반복되며 빛을 비추어 준다. 또한 이 주제에 대한 묵상을 그대로 실은 정보지 「성 바오로」의 머리글로 자주 등장한 다음 말씀에서도 빛을 받았다. “기뻐하소서, 마리아님, 당신은 말씀이신 아버지의 아드님이 담긴 신비로운 책을 세상에 내어 주셨습니다.”(성 에피파니오 주교)12
새 기도문과 마리아 이콘
알베리오네 신부는 설교와 저술에서 [바오로인] 수도자들에게 제시한 마리아께 드리는 모든 기도문을 주의 깊게 수정했다. 실제 목표를 염두에 두고 작성한 기도문들은 전반적으로
더욱 적절한 내용을 담았고, 가능한 한 성경에 바탕을 둔 알베리오네 신부의 마리아론을 더 신빙성있게 잘 종합하였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기도문의 내용이 처음에는 성 알폰소의 어조와 시대에 따른 어휘로 표현되었으나 그 후 몇십 년을 지나오면서 그 내용이 본질적이며 더 간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13
이처럼 단순하게 종합된 마리아론은 사도들의 모후께 바치는 주간기도의 다섯 개의 단락으로서,14 묵주기도의 다섯 가지 신비를 발전시켜 초창기 바오로인 세대에게 마리아 신심을 잘 설명해 주었다.15 그 기초가 되는 바탕은 아버지의 사도인 아드님의 구원 활동에 대한 마리아의 협력이다. 그분은 그 모든 것 안에서 스승, 진리, 길, 생명으로서 역사 안에서 계속 활동하신다.
이는 알베리오네 신부가 마리아를 부각시키는 특별한 수단 가운데 하나로, 특히 알바의 사도들의 모후 성화와 로마의 사도들의 모후 기념성당에 있는 성화에 표현된 회화적이고 건축학적인 상징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첫 번째 성화에 대해서는 주세페 바르베로가 다음과 같이
전해준다. “지극히 거룩하신 사도들의 모후 마리아 성화는 알바 도미니코회 수녀가 그렸으며, 1923년 5월 1일 저녁, 신학자님께서 축성하신 후 알바의 정원 한가운데 세워진 새 경당에 모셨습니다.”16
가장 널리 알려진 두 번째 성화에 대해서는 1934년 10월호 소식지 「출판 사도직 협력자회」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로마의 콘티 교수는 우리를 데려가 그 성화의 모델을 보여주었습니다. … 기쁨으로 충만한 천사들 가운데 어머니요 스승이며 모후이신 동정녀가 우뚝 서 계십니다. 그분은 거룩한 작가의 펜을 성 바오로에게 건네시는데, 그분 발치에는 다른 사도들이 모여 있습니다.”17
이는 성화에 대한 증언이다. 그러나 로마 사도들의 모후 기
념성당의 벽화는 더 장엄한 작품으로, 도상학圖像學적 관점에서 더욱 포괄적이다. 창립자의 미술 자문 레나토 페리노 신부가 알베리오네 신부의 “마리아론”에 대해 언급했다.
사도들의 모후 기념성당
“[바오로적 마리아론의] 가장 원숙한 종합, 그 전체성과 세부 항목에 이르기까지 가장 정확하고 정교하게 묘사된 사도들의 모후 기념성당은 알베리오네 신부가 삶의 마지막 시기에 손을 댄 작품으로서, 창립자요 교육자로서의 활동을 드러내는, 거의 인장과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돌처럼 단단한 인장이며, 여러 세기를 향해 도전하도록 운명지어진 기념비적 재료로 쓰인 ‘편지’다. … 그의 마지막 삶의 여정도 그가 세운 마지막 성전, 다시 말해 “늘그막에 얻은 아들”(창세 37,3 참조)과 같은 기념성당에서 온전히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분의 방 창문을 통해 기념성당 건물을 바라보는 노쇠한 알베리오네 신부의 감동적인 모습이 담긴 사진은 창립자와 그를 따르는 모든 이에게 그 건물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매우 강렬하게 드러낸다.
그 기념성당은 실제로 (모든 고통과 금전을 희생으로 바친) 영웅적인 서원 봉헌물 같은 건축물일뿐 아니라, 흠숭과 교리해설의 수단인 성미술에 대한 알베리오네의 사상에 부합하는 교의적 의미의 종합으로 간주해야 한다.
몇몇 형제는 풍부한 분석과 자료를 통해 이러한 의미를 종
합하는 내용을 떠올렸다.18 그러나 1954년 11월 30일 저녁 알베리오네 신부가 이끈 잊을 수 없는 ‘성체조배’ 때 숙고한 내용19을 다시 읽어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때 그는 자신에게 영감을 준 설계 차원을 이해하도록 해 주는, 마리아께 바치는 서원을 장엄하게 풀어나갔다.”20
G.B. 콘티의 작업실에서 구상중이던 그림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이 인용되었다. “거룩한 작가의 펜을 성 바오로에게 건네주는 어머니요 스승이며 모후이신 동정녀”의 독특한 묘사는 안타깝게도 최종적으로 마무리된 성화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알베리오네의 사상을 종합한 탁월한 내용은 1954년 11월 30일 성전 봉헌식 때 바친 기도문 형태로 재현되었다. 이때 알베리오네 신부는 사도들의 모후 마리아를 편집자들의 스승으로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분으로 제시했다. 몬티니 추기경은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며 설명했다. “편집자들은 말씀을 소유하고, 많게 하고, 퍼뜨리는데, 곧 그 말씀에 종이와 문자와 잉크의 옷을 입혀 널리 보급합니다. 그들은 인간적 차원과 신적 차원을 통해 거룩한 말씀의 어머니가 되신 마리아가 지니셨던 사명을 지닙니다. 마리아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인간의 몸으로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이 보고 쉽게 다가가
게 하셨습니다.”21
마지막으로 이 책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이 책이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은 물론, 어머니요 스승이며 사도들의 모후이신 마리아의 영감을 주는 모습을 관상하게 하는 알베리오네의 카리스마에 대한 본질적 주제를 더욱 잘 비춰주리라 믿는다.
2007년 11월 26일, 로마
바오로 영성 센터
1 A. Damino,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의 문헌목록Bibliografia di Don Giacomo Alberione」, Roma, 1994, p. 54.
2 「완전한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Ut perfectus sit homo Dei」(UPS), II, 244.
3 그 당시 신학교에서는 「영원한 원리Le Massime Eterne」,「지극히 거룩한 성체방문과 지극히 거룩한 마리아 방문Le Visite al SS. Sacramento e a Maria SS.」과 같은 신심 교재와 알폰소 성인의 책을 읽는 것이 하나의 흐름이었다. 그리고 「마리아의 영광Le e di Maria」(살베 레지나에 대한 논평), 「구원의 길La Via della Salute」(구일기도, 삼일기도 등의 기도와 묵상 모음)은 알베리오네 신부의 뜻에 따라 초창기에 바오로출판사가 펴낸 간행물이다.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Trattato della vera Divozione alla Santa Vergine」, 또는 「예수님과 마리아의 거룩한 종에 대하여」(1712년에 저술했으나 1842년에 발행됨)라는 몽포르의 책은 모든 젊은이가 손에 들고 읽었다. 알베리오네 신부의 방에 보존된 개인 서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마리아론에 관련된 체계적인 작품들인 「가톨릭 신앙에서의 마리아Maria nel Culto Cattolico」(스위스 주교좌 참사위원 에밀리오 캄파나, 마리에티 편집, 토리노, 1933, 859쪽과 787쪽짜리 두 권)은 1935년 「가톨릭 교의에서의 마리아Maria nel Dogma Cattolico」, (5판, 1943, 1197쪽으로 개정됨)와 「마리아 대전Summa Mariologiae」,(가브리엘레 M. 로스키니, OSM 편집, 밀라노 안코라, 1941-1942, 총 3권, 1624쪽)이다.
4 「성 바오로San Paolo」, 1959년 11-12월호는 이 책 부록에 소개한 「제자요 스승이신 마리아Maria Descepola e Maestra」라는 소책자의 전문을 인용한다.
5 「스승 예수께 대한 편집되지 않은 설교Predicazione inedita sul Divino Maestro」,(PrDM) 색인 카드 36.
6 「당신 은총의 풍성한 부」(AD), 85.
7 AD, 181.
8 「사도들의 모후께 대한 편집되지 않은 설교Predicazione inedita sulla Regina degli Apostoli」, 색인 카드 234.
9 사도들의 모후께 대한 전례 의식에 대해 팔미나 크루치아니(크리스티나 수녀 PD)의 흥미로운 여정을 참고하라. 「역사와 성경적 전례 신학Storia e teologia biblico-liturgica …」, 교황청립 성 안셀모 아테네오 대학교 학위 논문 (로마, 1984). P. 샤미나드의 영성에 대해서는 E. 뉴베르트, 「마리아의 사도적 사명과 우리 사명La Mission Apostolique de Marie et la notre」. (이 책은 「사도들의 모후Regina Apostolorum」라는 제목으로 바오로딸출판사에서 이탈리아어로 출간됨, 카타니아, 1958).8. 「사도들의 모후께 대한 편집되지 않은 설교Predicazione inedita sulla Regina degli Apostoli」, 색인 카드 234.
10 우편엽서 뒷면에 친필로 서명한 원본이 남아 있다.
11 1950년 12월 6일 저녁, 로마 발리첼라의 산타 마리아 성당에서 한 묵상. 「성 바오로」, 1950년 12월호 참조.
12 원문은 “Ave Maria, liber incomprehensus, quoe Verbum et Filium patris mundo legendum exhibuisti.”이다. 이때부터 그 모토가 「성 바오로」 정보지에 모두 등장한다.
13 처음에는 낱장으로 인쇄하여 사용하던 기도문이 소책자에, 주로 「영원한 원리Le Massime Eterne」 또는 「현명한 젊은이Il Giovane Provveduto」에 삽입되었다. 1922년부터는 새 기도문이 다양한 판본의 「성바오로수도회 기도서Le Preghiere della Pia Societa`San Paolo」에 포함되었다. 이러한 기도문들의 주제별 그리고 역사적 기원에 대해서는 「알베리오네 신부의 마리아께 대한 기도Le preghiere Mariane di Don Alberione」(바오로가족 역사자료실 편집, 로마, 1988)에 나오는 몇몇 기도문을 참고하라. 그리고 최근에 나온 작품인 야고보 알베리오네, 「기도Preghiere」, 로마: 성바오로, 2007, pp. 153-206 참조하라.
14 주간기도는 이 책의 마지막 장 끝에 다시 언급된다.
15 이 시기의 「선한출판협력자회Unione Cooperatori Buona Stampa」를 보라.(「바오로인의 봄La Primavera Paolina」, pp. 457-498 참조).
16 (두 번째 성화처럼) 이 성화도 알바의 성 바오로 성당 제의방에 보존되어 있다.
17 이와 관련된 파올로 파잘리니의 증언은 다음과 같다. “잠바티스타 콘티의 사도들의 모후 성화는 1935년에 제작되었는데, 저는 이 일에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 콘티는 우리의 미사경본을 스케치하여 이미 그림을 그려 두었습니다. 이 때문에 알베리오네 신부님은 1934년 마지막 달에 그 화가에게 편지를 써서 그가 알바에 와서 프리모 마에스트로가 바라는 바를 이해하도록 하는 일을 저에게 맡기셨습니다. 화가가 와서 우리가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경청하였습니다. 사도들의 모후는 큰 빛에 싸여 성체 한가운데서 세상에 아기 예수님을 내어주셔야 했습니다. 성 바오로는 눈에 띄는 자리에 있어야 했습니다. … 복음사가들 역시 눈에 띄는 모습으로 우리 사도직을 찬양하는 모습으로 있어야 했습니다. 잠바티스타 콘티는 몇 주 후에 그가 준비해 온 밑그림을 벽에 투사해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마지막 제안에 귀 기울였으며, 1935년 부활절에 성화를 우리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알바 공동체에 성화를 보여주며 그에 대해 폭넓게 해설해 주었습니다. 5월에는 「성 바오로」지에 생생한 기사를 써서 협력자들에게 소개했습니다. … 알베리오네 신부가 마리아께 대한 열정을 참된 기쁨에 가득 차 표현한 것은 바로 이때였습니다. 그는 사도들의 모후를 찬미하는 “모든 사도의 모후에 대하여…”라는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때 알베리오네 신부도 “내 영혼이 마리아를 찬미하며 …”를 작성했습니다. 주일 아침 휴식 시간에 이 글을 우리에게 소개하시던 알베리오네 신부의 행복한 얼굴을 여러분도 보았어야 합니다!”(상파울루에서 E. 스가르보싸에게 보낸 편지, 1992년 8월 3일)
18 R.F. 에스포지토,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의 ‘인류의 길’”, 「기도의 우주적 차원La dimensione cosmica della preghiera」, 로마: 바오로딸출판사, 1981. G. 페레고, 「사도들의 모후 기념성당Il Santuario Basilica Regina Apostolorum」, 바오로가족 역사자료실 편집, 로마, 1985. (또한 www.alberione.org를 보라)
19 「성 바오로」, 1954년 11-12월호: 「성 바오로 안에서 사랑하는 이들에게Carissimi in San Paolo」, pp. 595-600 참조.
20 레나토 페리노,「성 바오로」, 1987년 9월호. G. 페레고,「사도들의 모후 기념성당」, pp. 141-151 참조.
21 「성 바오로」, 1954년 11-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