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분 때문에 수인이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실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은총은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2티모 1,8-9)
“가르치십시오”
마리아는 영적 삶을 통해 자녀들을 키우며 하느님께 이끄는 어머니이시다. 다음은 성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뇽의 말이다. “마리아와 함께 일치하지 않은 채 여러 해를 살아간 사람보다 한 달이라도 어지신 이 어머니와 일치하여 살아간 사람이 하느님 사랑에 있어서 더 많이 진보한다.”
성 바오로는 에페소 사람들에게 이렇게 썼다. “주님 안에서 수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
만물 안에 계십니다. …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주셨습니다.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에페 4,1-6.11-13)
하느님께서 부르신 모든 사람, 곧 설교하는 사도, 사도들을 돕는 복음사가,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이끄는 사목자, 믿는 이들을 가르치는 교회박사 등 그 모두가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가 완전해지도록 그리스도께서 원하신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게 성숙해질 때까지 완전함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당신 자신을 점진적으로 형성하신다. 어린아이에서 온전한 어른이 될 때까지 완전한 인간이 되도록 성장하게 하신다.
마리아는 가장 고귀한 역할을 하셨다. 마리아는 설교하지 않으셨지만 모든 이의 입에 오르내리셨다. 마리아는 모든 이를 가르치셨고 근본적인 신비를 알려주셨다.
스승이신 마리아
교회의 첫 순간부터 함께하신 마리아는 사도들과 신자들의 든든한 지탱이 되어주셨다. 마리아는 어떠한 권한도 지니지 않으셨지만 하느님 어머니로서의 위엄과 성덕, 거룩한 말씀으로 지극한 존경을 받으셨다.
성령강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려고] 세상으로 흩어졌다. 전승에 따르면 마리아는 복음사가 성 요한을 따라 에페소로 가셨으며, 사도의 설교와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의 모범으로 |
그곳에 아름다운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회심한 많은 이들이 하느님의 어머니를 알아 뵙고 경의를 표하기 위해 에페소를 찾았다. 마리아는 그 모든 이에게 위로의 말씀을 하셨다.
순교자 성 이냐시오는 이렇게 썼다. “안티오키아의 많은 신자처럼 저는 물론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어머니를 만나 뵈려는 열렬한 갈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리아께서는 풍성한 은총으로 가득하시며 그 마음에 숭고한 보물인 덕을 넘치도록 지니신 분이라는 말을 많은 사람들에게서 들으셨습니다.”
성 이냐시오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이렇게 간청했다. “저는 이미 수없이 당신께 기도했습니다만, 당신 안에서, 당신을 통해 최근 회심하여 신앙을 받아들인 신자들을 굳건하게 해 주시길 다시 한번 간청합니다.”
성 바오로의 제자인 성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는 그리스에서 에페소로 가 마리아를 뵈었다. 그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지니신 단순함과 존엄하신 모습을 뵙자 감탄하며 그 앞에 엎드려 절하였다. 그가 그곳에 함께 계신 하느님을 믿지 않았다면 성모님의 발치에 엎드려 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의 유년시절에 대해 마리아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마리아는 성 루카에게 예수님의 유년시절, 곧 강생, 탄생, 이집트 피난에 대해 이야기하셨을 것이다.
마리아의 말씀과 가르침, 사도직에 대한 대주교 성 일데폰소의 글은 마음에 새길 만하다. 그는 마리아가 지니신 거룩한 지식과, 마리아가 복음사가들과 오늘날 ‘선한 출판’이라고 일컫는 사도직에 미친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함께하셨고, 그 가운데 일어난 많은 사건을 직접 목격하고 참여하셨기에 |
그 일화들에 확신을 갖고 정확하게 사도들에게 전하실 수 있었다. 사도들은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았지만 마리아의 가르침을 통해 예수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어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자세하게 전달할 수 있었고, 때가 되자 명확한 저술 형태로 영구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선포할 수 있었다.”(성모 승천에 대한 설교 5)
성 베다 베네라빌리스 사제 학자도 성 루카복음 2장 19절과 51절의 “이 모든 것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라는 말씀을 해설하면서 이와 유사한 설명을 한다. “동정 마리아는 구세주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신 모든 것을 잘 알고 계셨다. 성모 마리아는 이 모든 것을 기억하여 마음속에 간직하며 곰곰이 새기셨다. 이는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사실을 사도와 신자들에게 들려주어, 온 세상을 위해 저술하고 선포하기 위함이었다.”(주님 공현 대축일 후 첫째 주일 강론)
마리아의 공로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적 명료함으로 그 견해를 밝혔다. “마리아는 당신의 가르침을 통해 사도들과 복음사가들이 공로를 얻게 하셨다.”(성모 승천 대축일 독서 설교) 그들이 예수님의 탄생 예고, 강생, 마리아의 성녀 엘리사벳 방문과 같은 특별한 계시에 대해 듣지 못했다면 그렇게 설교하거나 저술하지 못했을 것이다. 성 암브로시오의 저술에서도 우리는 소중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여느 사도들보다 성 요한이 거룩한 신비에 대해 더 깊이있게 말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성 요한은 하느님의 계획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던 마리아와 함께 살았기 때문이다.”
데우츠의 대수도원장 루페르트는 하느님의 어머니를 “스승 중의 스승”이라고 칭하며 다음과 같이 |
말했다. “사도들은 성령을 받아들였지만, 그들에게는 아직도 마리아의 가르침이 필요했다. 이는 성령께서 전하시는 내용을 더 잘 이해하여 명확하게 표현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마리아가 교회 안에서 이루신 직무에 대한 성 토마스 주교의 성찰은 매우 아름답고 값지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성모 마리아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생각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마리아의 남은 생애는 길고 힘든 가운데 한숨과 눈물로 예수님과 다시 만날 때를 앞당기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라 여기시며 위안을 받으셨을 수도 있다. 반면에 당신의 가르침과 지탱으로 신자들이 일깨움을 받고 힘을 얻어 성장해야 하는 교회의 필요를 마리아는 깊이 의식하셨다. 게다가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으뜸가는 분, 곧 하느님 아드님의 강생에 협력하신 분을 보려고 곳곳에서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모여들었다. 마리아를 직접 뵙는 것은 그분에 대한 명성과 모든 예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마리아께서 며칠이 아니라 여러 해 동안 이 땅에 머무신 것은 예수님의 뜻이었다. 그것은 교회가 마리아의 가르침과 성덕을 통해 굳건히 서게 하려는 것이었다.”(사도들의 모후께 바치는 의무기도)
설교합시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 …”(마태 28,19)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시다. 그 명령을 가능한 한 |
완전하게 이루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하느님 말씀을 인쇄된 말씀으로 널리 퍼뜨린다면, 영화가 참으로 효과적으로 폭넓게 이야기한다면, 라디오가 광대한 지역에 있는 가정과 각 개인에게 말씀을 전한다면 그것들이 가져오는 특별한 결과가 과연 어떠할까? 비오 11세 교황과 비오 12세 교황이 이에 대해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사실과 조언과 호소는 가톨릭 신자와 사제들에게 가장 신속하고 효과적인 수단을 사용하라고 촉구한다. … 사도들은 하느님이 파견하시며 맡기신 사명 수행을 완수하기 위해 세상으로 퍼져 나갔다. 우리 의무는 복음을 위해 사용할 수단을 가지고 모든 이에게 다다르는 것이다. 이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1 하신 명령을 완수하는 것이다.
출 판
나폴레옹은 출판을 “막강한 힘”이라 했고, 은수자 피에르는 “지상의 전능한 힘”이라고 했으며, 스탈즈는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는 제비뽑기를 하는 자리”라고 했다.
콩브는 반反성직파들의 출판으로 인해 프랑스는 가톨릭교회에서 분리되었다고 말한다. 무신론자들의 신문은, 아동 문학이 하느님께 대한 신앙에서 어린이들을 해방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레오 13세는 악한 출판물은 엄청난 해를 끼친다고 단언했다. 성 비오 10세는 세상에 가톨릭교회를 옹호하는 가톨릭 출판물이 없다면 성당을 짓는 것은 무익한 일이라고 했다!
비오 11세는 리에티 주교에게 “출판 사도직은 우리가 행할 수 있는 최상의 사도적 활동”이라고 했다.
비오 11세는 성 안토니오 마리아 클라렛과의 담화에서 이렇게 덧붙였다. “출판, 서적은 고대에는 알지 못했고 가지고 있을 수도 없던 수단과 방법을 가져다준다. |
오늘날 출판과 서적은 우리 삶에서 참으로 중요한 활동영역을 제시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출판 사도직은 설교 사도직처럼 사람들을 구원하는 하느님 말씀을 전하기 때문이다. 출판 사도직은 인쇄물을 사용하고, 설교 사도직은 생생한 목소리를 사용하듯이 각 사도직이 사용하는 수단은 다르다.
비오 11세는 성 안토니오 클라렛을 출판 사도라고 칭송하며 이렇게 말했다. “더욱 폭넓고, 더욱 현대적이고, 더욱 신중하고, 더욱 활기차고, 더욱 창의적이며, 더욱 대중에게 호감을 주는 책, 소책자, 거리와 공간의 한계를 없애는 신문을 통해 사목 효과를 배가시킨 것은 그가 수행한 직무 가운데 으뜸가는 것으로, 그의 지위와 영광과 특별한 공로를 드러낸다.”
그는 사도 성 바오로에 대해서도 같은 내용을 쓰고 또 이야기했다.
비오 12세는 추기경이었을 때 이렇게 썼다. “사도직을 위해 힘을 쏟는 이들이 가톨릭 신문을 첫 자리에 놓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신문은 사람들을 일깨우고, 편견을 없애며, 가톨릭 문화의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현대적 수단
영 화
비오 12세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가] 가정과 대도시의 사회생활에 미치는 영향의 거대한 힘을 영화 제작자들이 제대로 깨닫고 있는지 때때로 의문이 든다. 눈과 귀는 곧장 인간의 영혼에 이르는 드넓은 길이다. |
그들이 동시에 같은 곳에 있지 않아도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눈과 귀는 모두 활짝 열리게 된다.
화면을 통해 마음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일까? 젊은이의 지식 창고가 채워지고, 결정적으로 인격을 형성하는 행동 규정과 동기는 어디서 형성되며 어떤 자극을 받을까? 그것은 그들을 더 나은 시민이 되게 하여 법규를 사랑하며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데 기여하는 것일까? 건전한 기쁨과 위로에서 위안을 찾고 재충전하게 될까? 성 바오로는 고대 그리스 시인 메난드로스가 고린토 교회 신자들에게 “나쁜 교제는 좋은 관습을 망칩니다.”(1코린 15,33)라고 쓴 글을 인정했다. 그 당시에 진실했던 것은 오늘날에도 똑같이 진실하다. 인간의 성품은 몇 세기가 흘러도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 나쁜 교제가 좋은 관습을 망치는 것이 사실이라면 하느님의 법규와 품위를 조롱하는 행동을 영화에서 생생하게 보여줄 때 좋은 관습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영화 산업이 제공하는 선善의 창고는 얼마나 방대한지 모른다! 이것이 바로 세상에서 늘 활발하게 움직이는 악령이 불경한 목적으로 그 수단을 왜곡하는 이유다.”2
라디오
“거룩한 업적을 남기신 전임교황 [비오11세]께서 바티칸 라디오 방송국을 세운 지 어느덧 14년이 지났다. 라디오 방송국을 세울 당시 그분은 방송국을 설계하고 감독한 마르코니를 동반하셨다. 그분이 맨 먼저 하신 말씀은 하느님께 드린 감사였다. |
인간에게 기술을 발견하고 완전하게 하는 능력을 주시어 사람의 목소리가 지구 끝까지 전파되어 태양 아래 있는 모든 나라와 민족과 종족이 들을 수 있게 하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인간의 모든 발명처럼 라디오도 선과 악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 라디오는 거짓을 퍼뜨리고, 단순하고 무지한 이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며, 여러 나라와 민족 간에 평화를 깨뜨리는 데 사용되었고 또 사용되고 있다.
이는 하느님이 주신 선물을 남용하는 것이다. 남용을 방지하고 없애는 것은 제작자들의 책임이요 의무다. 라디오가 전하는 선이 악을 능가하여 악을 소멸시킬 수 있기를 빈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일까? 분명 이는 인간의 가장 큰 노력을 요구하는 숭고한 목표이며 우리의 간절한 기도다.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이 사랑하는 모국을 축복해 주시기를 청한다.”
이제 교황 비오 11세의 회칙 「그리스도교적 교육Dioini lllius Magistri」의 말씀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자.
“그 어느 때보다 특별히 지금은 더 주의 깊게 깨어 있어야 한다. 도덕적 종교적 좌절의 위험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 특별히 요즘엔 불경스럽고 비도덕적인 책들이 아주 저렴하게 널리 유통되고 있고, 각종 영화도 점점 더 많이 유포되고 있다. 또한 라디오도 모든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을 조장하고 있다.
이처럼 새롭고도 절박한 사도직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는 세상 곳곳의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서 올바른 사고와 활동을 촉진시켰다. 그 결과는 벌써부터 위로를 주고 있다. |
그러나 아직 많은 것이 미흡하다. 교회의 목소리, 모든 사도직의 스승과 귀감, 하느님 말씀이 사회의 다양한 필요에 부응하는 적절한 수단과 편리한 형태를 통하여 널리 퍼져 영광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처럼 영혼에 대한 목마름을 느끼는 사람을 위한 기도(바오로인의 봉헌기도, 기도서 47쪽)
주님, 오늘 미사성제를 드리는 사제들과 하나 되어 성체이신 예수님과 작은 제물인 저 자신을
1.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세상에 널리 퍼져 나가는 많은 오류와 나쁜 표양을 보속하고
2. 이 강력한 수단에 속거나 유혹되어 아버지 당신 사랑에서 멀어져 가는 이들을 위해 당신의 자비를 구하며
3. 이 수단을 사용하여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과 행동을 이처럼 빗나가게 하면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가르침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의 회심을 위하여
4. 아버지, 우리 모두가 당신의 무한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라고 말씀하시며 세상에 보내주신 그분만을 따르기 위하여
5. 말씀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만이 아버지를 알게 하고, 그분의 생명에 참여하도록 인도하는 확실한 길이며 완전한 스승이라는 것을 알고 전하기 위하여
6. 교회 안에 사회 커뮤니케이션 사도직에 봉헌된 사제, |
수도자, 평신도들이 많아져 온 세상에 구원의 소식을 널리 전하기 위하여
7. 저작자와 기술자, 그리고 보급자들이 복음의 정신으로 슬기롭게 되어, 사회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증거하도록
8. 사회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가톨릭 창안이 점점 증가하고, 인간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인 참된 가치를 효과적으로 증진시키기 위하여
9. 저희 모두가 자신의 무지와 연약함을 깨달아 겸손과 신뢰로써 생명의 원천으로 나아가, 당신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몸으로 양육될 필요성을 느끼도록 당신께 바치오니, 아버지, 모든 사람에게 당신의 빛과 사랑과 자비를 베푸소서.
1 마르 16,15.
2 비오 12세, 할리우드 영화위원회 집행위원들에게 한 연설, 1945년 7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