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께서 말씀하시자 생겨났으니 모든 조물은 당신을 섬겨야 합니다. 당신께서 영을 보내시니 그것들이 지어졌습니다. 당신의 목소리에 거역할 자 하나도 없습니다. 산들이 그 밑바닥부터 바다와 함께 뒤흔들리고 바위들이 당신 앞에서 밀초처럼 녹을 것입니다.
(유딧 16,14-15)
오늘의 문제
현대는 안타깝게도 인류 발전의 모든 발명과 발전이 남용되어 오류와 악덕과 무종교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선의 수단을 올바른 목적을 위해 사용하기도 전에 이러한 일이 자주 일어난다! 이는 사악함을 드러내는 인간의 간계다. 하지만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수도자의 사도직에 대한 방대한 가능성을 새롭게 펼쳐주었다.
사도들이 필요하다! 거짓 은수자를 자청하는 신자, 무관심 속에 감추어진 시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 통합적 가톨릭 교의를 선포할 줄 모르는 신자들은 악마의 속임수에 쉽게 놀아난다. 그들은 가라지를 뿌리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땅을 차지하도록 내버려 둔다.
출판에는 출판으로, 영화에는 영화로, 라디오에는 라디오로 맞서야 한다. 교황은 모범과 말씀으로 앞서 가신다.
거룩한 혁명
깊은 내적 영혼을 지닌 마리아는 그 시대의 사도가 되셨다. 그때는 놀라운 혁명의 시대, 곧 구약에서 신약으로 옮아가는 시기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위대한 사회적, 영적, 종교적, 법적, 도덕적 혁명을 이루셨다. 예수님은 사회의 모든 영역과 분야에서 성전에서 하신 것처럼 행동하셨다. 곧 채찍을 들고 성스러움을 더럽히는 이들을 쫓아내셨다. 마리아는 그 뒤를 따르며 협력하셨다. 회당은 쇠퇴했고, 교회는 마리아와 함께 다락방에서 탄생했다. 하느님 아드님의 설교는 율법을 폐지시켰고,1 한번도 들은 적이 없는 신비를 드러내며, 새로운 사목과 성사와 법을 제정한 종교를 예시했다. 마리아는 스승이요 귀감, 사도들의 모후, 예수님의 어머니, 공동구원자,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맡으셨다. 곧 예수님은 남성 사도이시고, 마리아는 여성 사도이시다.
마리아는 가장 겸손하고 가장 강력한 모습으로 거룩한 대담함을 보이셨다. 마리아는 인간의 모든 예지를 거슬러 거룩한 희망을 보여주셨다. 마리아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했다. 마리아는 강인한 여성, 굳건한 사도이시다.
가톨릭 신자들은 일어났다. 악의2로 부패한 물이 가득 차올라 모든 단체와 온갖 거룩한 진리를 가라앉히려고 위협했기 때문이다.
마리아론에 있어 가장 존경받는 저자 가운데 한 사람인 로스키니는 이렇게 자문한다.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는 다양한 사도적 여정을 걸어가신 하느님의 아드님을 따르셨는가? 복음은 이에 대해 대답하지 않는다. 적어도 명확히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통적이고 굳건한 기반이 되는 응답은, 마리아는 갈릴래아, 유다, 트랜스요르단 등을 거쳐 긴 사도적 여정을 걸으신 |
하느님의 아드님을 따르셨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확증하기 위해 다양한 이유를 제시했다. 스승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여성은 예수님 주변에 사도들과 제자들이 모였듯이 자연스럽게 마리아 주변에 모였다.” “마리아는 예수님에게서 분리될 수 없는 동반자가 아니신가?” “마리아는 공적인 어머니로서 예수님을 따른 것이 아니라 여느 경건한 여인처럼, 아니 그들 가운데서 가장 낮은 자로서 군중 가운데 자신을 숨기며 예수님께 귀 기울이고 섬기기 위해 따랐다. 이는 군중이 자신에게 관심을 쏟는 것을 피하고 오로지 예수님만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더욱이 마리아는 지극히 겸손한 태도, 친절하고 섬세한 마음, 사려 깊은 말, 드러나지 않게 희생하려는 열망으로 예수님을 따르던 경건한 여인들 가운데서 하느님 말씀의 효과를 더욱 확장시키면서 예수님을 섬겼다.”
마리아의 삶은 그리스도의 말씀, 곧 행동하는 복음을 충실히 반향하는 메아리처럼 모든 이에게 드러났다.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는 하느님의 아드님이 3년 동안 사도직을 하는 동안 줄곧 따라다니며, (예를 들어 베타니아에서처럼) 예수님을 환대했던 여러 지역에서 사람들과 함께했다.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동반자로서, 예수님의 일행과 늘 함께했다.”고 성 에피파니우스(4세기)는 기록했다. 마리아는 당신이 처한 상황의 한계를 받아들이면서 기도와 모범과 말씀의 사도직으로 영혼을 사로잡으셨다. 예수님은 대중과 함께 움직이셨다. 마리아는 교회의 심장으로 숨어 계시면서도 역동적으로, |
드러나지 않게 행동하셨다. 두 분은 헌신적으로 인류를 섬기셨다. 그분의 말씀의 사도직은,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시중드는 이들에게 건넨 좋은 권고에서 잘 드러난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복음은 이 탄복할 만한 마리아의 개입 외에 예수님의 공생활 동안 (수난시기를 제외하고) 마리아에 대해 단지 네 번 언급한다. 두 번은 첫 해에, 또 다른 두 번은 마지막 무렵에 언급하는데, 그 중에 두 가지만 떠올려 보자.
예수님은 설교하고 계셨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군중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누가 예수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알려 드렸다.”(루카 8,19-20) 그러자 예수님은 이 상황을 예로 들어 당신에게는 영적 가족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곧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모든 이가 가족이라는 것이다. 영적 가족에 속하는 것, 이러한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은 혈연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고 영예롭다.
또 한번은 스승님의 거룩한 말씀을 듣던 한 여인이 예수님과 그 어머니를 보고 감탄하며 기쁨에 넘쳐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외치자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 11,27-28) 하고 덧붙여 이르셨다. 이 두 예화에서 우리는 마리아가 하느님의 자연적 어머니가 되는 영예보다 더 큰 행운, 곧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행운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설교하실 때마다 늘 함께 계심으로써 하느님의 아드님을 이중으로 들어 높이셨다. 예수님 또한 당신 말씀을 듣는 모든 이를 들어 높이며 |
하느님께 입양된 자녀들이 지닌 위대한 존엄성을 갈망하게 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50) 하느님의 뜻을 실행함으로써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자매가 된다. 그리고 사도직은 영혼들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게 한다.
새로운 사도직
마리아는 거룩한 전환을 가르친다. 출판,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과 같은 영향력이 큰 사도직에 대해 생각해 보라. 교황은 다음과 같이 우리를 일깨웠다.
1) 성 비오 11세 교황은 회칙 「천상 스승이신 그분Divini illius Magistri」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시대에는 도덕적 종교적인 면에서 더 혼란해졌기에 더욱 폭넓고 정확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 특히 영화로 보여주고 라디오로 들려주는, 다시 말해 영화와 라디오를 통해 확산되고 활성화되는 불경스럽고 음란한 서적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많은 책이 저렴한 가격에 독약처럼 퍼지고 있다.)
이처럼 새롭고 절박한 사도직의 필요성은, 모든 분야의 가톨릭 단체에서 생각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도록 촉구하는 훌륭한 기폭제가 되었다. 그 결과는 많은 희망을 주며 장차 약속하는 바가 크다. 모든 사도직의 스승이며 귀감인 교회가 한결같이 내는 목소리와 사회의 다양한 필요성은, ‘하느님 말씀이 널리 전파되어 영광받으시도록’ 적합한 수단과 적합한 형태를 알려주게 된다.”
성 비오 12세 교황은, 글을 쓰거나 말할 때 언제나 진리를 전해야 할 의무를 떠올리도록 미국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편집자, 저자, 연설가로서 자신이 지닌 드높은 소명과 이에 대한 책임감을 의식하는 이는, 자기 말로 인해 강력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수많은 사람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늘 깨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늘 사람들에게 진리를 주려고 합니다. 진리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의도적인 거짓과 중상모략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께서는 … 거짓말하는 혀, 무고한 피를 흘리는 손, 간악한 계획을 꾸미는 마음을 미워하십니다.’(잠언 6,16.17) 여러분도 알다시피 중상모략은 바람처럼 빠른 발을 지니고 있으므로 책임을 지닌 이들, 특히 종교와 그리스도교적 도덕성이 요구하는 바를 따르려는 이들에게 수치심을 주기 위해 달려갑니다. 희생자가 거부하며 방어하는 기사는 흔히 외면당하거나, 거의 일주일이 지나서야 신문 한쪽 구석에서 그 소식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상습적으로 자신들이 쓰는 기사로 타인의 명예를 실추시키거나 거짓 정보로 그 상황을 악화시키는 이들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불이익을 초래합니다. 그들은 같은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들의 영혼에 치명타를 안겨주며 나라의 평화를 심각한 위험에 빠뜨립니다. 합법적인 시민 당국의 개입이 필요할 때 이러한 일탈을 제재하지 않는다면 시민사회는 분명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는 재앙과 불행에 짓눌려 치를 떨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교만하고 야심 가득한 사람들의 저술이나 말에서 파급된 오류와 거짓 도덕의 풍조에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이 받은 소명을 통해, 봉사하려는 여러분의 제안과 보람있는 길을 가려는 동료들에게 하느님께서 힘을 주시기 바랍니다. 가정의 성화와 인류 사회의 윤리 기반을 수호하기 위해 기여하려는 여러분을 하느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2) 비오 11세는 영화에 대한 회칙 「비질란티 쿠라Vigilanti Cura」에서 이렇게 단언한다.
“나쁜 영화가 영혼에게 미치는 해악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이는 젊은이들이 죄를 범하도록 욕정을 부추기며 사악한 길을 따라가도록 유혹합니다. 거짓된 빛으로 조명된 삶의 허상으로 이상을 흐리게 하며, 순수한 사랑과 결혼에 대한 존중, 가정에 대한 애정을 파괴합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편견을 조장하며, 나라와 사회 계층과 모든 인종 사이에 분열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교황은 계속하여 이렇게 말한다. “한편, 좋은 영화는 이를 감상하는 이들에게 도덕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기분전환만 아니라 삶에 대한 드높은 이상과 가치로운 개념, 진리와 미덕을 매력적으로 제시합니다. 여러 나라의 사회 계층과 인종간의 올바른 이해를 다시 일깨워, 정의로운 대의명분을 위해 나서게 하고, 적어도 호의를 지니게 합니다. 그리고 미덕을 일깨우며 세상 속에 윤리적 사회적 질서를 향상시키는 데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게 합니다.”
비오 12세는 영화 제작 관련 그룹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친애하는 대표자 여러분, 그리고 여러분의 직책에 함께하는 분들은 의식 없이 영화를 보는 이들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지켜주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을 지닙니다. 영화를 이용하여 절반의 진리를 전하거나, 다른 요소들은 거의 다루지 않거나 생략해 버려 불균형과 불합리함을 과도하게 드러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영화를 보는 이들은 거짓에 속아 비참한 결론에 이르고, 인류 가족의 사랑하는 구성원 사이에 있어야 할 조화로움마저 잃게 됩니다.”
이어서 교황은 영화의 한 장면에 대해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때로는 영화 한 편이 가정이나 대도시, 공동체의 사회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거대한 힘을 영화 감독이 온전히 평가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의 눈과 귀는 인간의 영혼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드넓은 길과 같습니다. 그 길은 영화 관람자들이 의식없이 들어설 수 있도록 활짝 열려 있습니다.
영화 장면을 통해 젊은이들이 깊이 알아듣고, 결정적으로 성격을 형성하는 행동과 동기가 이루어지는 마음 깊은 곳까지 침투되어야 할 것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건전한 즐거움과 위안을 통해 활력과 기쁨을 발견하고 더 나은 사람, 보다 건전한 시민이 되어 법규를 사랑하며 하느님을 두려워하도록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교회 신자들에게 ‘나쁜 교제는 좋은 관습을 망칩니다.’(1코린 15,33)라고 쓰면서 고대 그리스 시인 메난드로스에게 감사했습니다. |
긴 세월이 흘러도 인간의 본성은 크게 변하지 않았기에 그 당시의 진실은 오늘날에도 똑같습니다. 윤리를 거스르게 만드는 것이 나쁜 교제(교류)로 이끌듯, 하느님의 법도와 품위를 경멸하며 악을 조장시키는 그 내용에 어찌 물들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영화라는 수단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사람을 타락시키려는 불경스러운 목적을 위한 사악한 영이 세상에 늘 도사리고 있는 까닭입니다. 오! 영화 제작으로 얼마나 많은 선을 쌓을 수 있는지!”
3) 라디오 청취자들에게 전한 성 비오 12세 교황의 말씀도 이 책 156번3에 실려 있다.
성모 마리아의 망토 아래
우리는 마리아의 보호 아래 위의 세 가지 사도직을 맡겨야 한다. 우리는 그토록 많은 시련과 환상을 겪은 후에도 여전히 물질이 생명을 줄 수 있다고 확신하는가? 생명 없이 살 수 있는가? 사도직처럼 사람들의 영혼도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만 생명을 얻는다. 원천은 언제나 마리아의 태중에 있다. 어머니가 없으면 자녀들도 있을 수 없다.
여러분은 사도이신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나은 길을 찾고자 하는가? 예수님은 마리아의 귀감과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라고 사도 요한에게 하신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치셨다. 마리아는 자신이 어머니로서 보살펴야 하는 사도가 요한만 아니라, 요한은 모든 이를 대표한다는 것을 아셨기에 예수님의 승천 직후 다락방에서 열두 제자들을 돌보아 주셨다. 그후 몇 세기가 지나는 동안 마리아는 수많은 사도를 보살피셨다.
1 부적절한 표현이다. 마태 5,17 참조: “나는 율법이나 예언서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2 male(악의): 원본에는 ‘mare바다’라고 나오는데, 이는 명백한 실수로 보인다.
3 이 책 156-158번 내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