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o Giacomo Alberione

Opera Om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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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마리아와 교회

그들은 모두, 여러 여자와 예수님의 어머니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
(사도 1,14)

교회의 사명

교회는 여러 세기에 걸쳐 시간 속에서 구체화되고 확장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는 그분의 신비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예수님은 교회 안에서 가르치고 다스리며 성화하신다. 예수님은 교회를 위해, 교회와 함께, 교회 안에서 모든 것을 하신다.
마리아는 교회의 생명이시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는 참된 “교회의 혼”1이시다.
교회를 통해 선이 구현되며, 초자연적 삶과 세상의 구원이 이루어진다. 그 모든 것은 성모 마리아를 거쳤고, 지금도 여전히 성모님을 거친다. 따라서 마리아의 사도직은 교회만큼이나 넓다. 교회의 사도직은 이미 자녀가 된 교회 구성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담과 너희) 죄로 인해 잘못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신음하는 모든 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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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오라. 내가 너희를 새롭게 하리라.’ 하며 부르시는 모든 사람이 사도직 대상이다.
  마리아는 왜 교회의 생명이신가? 그분은 그리스도의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교회의 모든 지체는 “모후이시며 생명이신 마리아를 찬미”한다. 마리아는 교회의 머리와 하나 된 모든 이,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모든 가지의 생명이시다. 마리아는 왜 교회의 영혼이신가? 영혼은 몸의 활력과 활동의 시작이며 근원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교회의 창립자, 첫 시작, 신비체의 머리요, 실제로 교회이시다.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라고 말씀하셨다.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생명이요 감미로운 희망”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생명이시다. 교회의 창시자인 예수님은 마리아에게서 합당하게 탄생하셨으며, 생명과 구원이 예수님에게서 시작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갈바리아에서 마리아를 우리 어머니로 선포하셨다. 자녀들에게 생명을 전해 주시는 분은 어머니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마리아가 사랑으로 협력하여 당신에게서 태어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그 지체를 이루는 자녀들을 교회에서 낳고 또 자라게 하신다고 가르친다.

교회 안의 마리아

  엔리코 롤랑은 「마리아의 영광스러운 영혼La gloriosa anima di Maria」에서 마리아가 교회의 생명이요 혼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심오한 이유를 설명한다. 대수도원장인 롤랑은 또 말하길, 신비로운 교회는 참되고 실제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강생이라고 한다.
  사람이 되신 말씀의 신비는 마리아의 참여와 강력한 협력을 통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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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서 재현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교회도 잉태기, 탄생기, 어린 시절, 사춘기, 성장기가 있다.
  이 모든 표현 속에서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요한 2,1 참조)는 복음사가의 말씀이 거듭 되는 것을 보게 된다.
  교회는 성령강림절에 다락방에서 탄생했다. 다락방은 교회의 베들레헴이다. 신약시대의 목자들이 거기 있었고, 마리아 또한 거기 계셨다.
  교회는 유다인과 이방인 가운데서 유년기를 보냈다. 힘있는 이들과 박해자들이 교회의 목숨을 노렸다. 교회는 또한 연약한 인간처럼 악마의 세력 때문에 시련을 겪었다. 교회도 기도하고 격려하며 말과 귀감으로 비추어주는 누군가가 필요했다. 이는 몇 세기에 걸쳐 또한 여러 나라에서 활동을 시작한 모든 단체의 첫 걸음을 이끄는 문제였다. 마리아 또한 거기에 계셨다.
  교회는 사춘기를 겪었다. 그것은 외부와 또 내부의 이단과의 싸움이었다. 교회의 적대자들과 합당치 않은 자녀들은 교회를 박해하며 교회의 창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영광스럽고 거룩한 화관을 벗기려 했다. 이에 교회는 교회를 지키기 위해 에페소 공의회를 소집했다. 마리아 또한 거기 계셨다.
  코르넬리우스 아 라피데는 “오, 지극히 선하신 예수님! 당신은 당신 어머니가 이 땅에 더 사시어 교회를 도와주시길 바라며, 당신 대신 성모 마리아께서 교회의 굳건한 기둥이 되시어 사도들의 박사, 신자들의 위로자가 되어 주시길 바라셨습니다.” 하고 외쳤다.
  이후 수세기에 걸친 교회 역사의 장이 시작된다. 그 역사의 모든 시기에, 교회에 닥친 외적 내적인 모든 박해와 이단 가운데, 교회에 몰아친 온갖 폭풍과 공격 속에서 교회는 언제나 승리했다.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처럼 악마의 머리가 짓밟힌 것이다. 마리아께서 거기 계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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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놀랍게도 끊임없이 확장되었고, 경이롭고도 평화로운 방법으로 온갖 어려움을 극복했으며, 탄복할 만한 성성의 결실을 거두었다. 교회는 놀랍고 영원하며 늘 새로운 활력이 생겨났다. … 마리아께서 거기 계셨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하늘에서 우리를 도와주고, 빛을 비추고, 변호하고, 지지하며, 활력을 불어넣으신다. 마리아는 생명이시요, [그리스도의] 몸에서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영혼이시다. 마리아께서는 늘 거기 계셨다.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의 말씀은, 교회를 활성화하여 교회가 행동하도록 고무하는 마리아를 기리는 감탄으로 가득하다. 요한은 마리아께서 태양처럼 끊임없이 햇살을 퍼뜨리며 지구를 따뜻하게 한다며 찬미를 드린다. 태양은 자연에게 영혼과 같아 비옥함과 생명, 꽃의 활기, 빛과 열매를 끊임없이 생성한다. 어딘가에서 요한은 다음과 같이 거룩한 찬가를 바쳤다. “오, 마리아여, 당신은 끊임없이 비추는 햇살, 은혜로운 생명의 보물, 축복이 넘쳐흐르는 시냇물, 모든 은총의 근원이요 중재자이십니다. 당신은 하늘로 올라가셨지만, 영혼들 가운데 당신의 빛과 기쁨과 생명을, 그리고 폭포처럼 쏟아지는 사랑과 한없는 축복을 끊임없이 내려 주십니다.”

해 설

  마리아의 사도직이 지닌 위력과 다함없는 풍요로움에 대한 설명을 듣고자 한다면, 지상에서의 마리아의 내적 삶과 천국에서 마리아가 누리는 무한한 영광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마리아는 내적이고 영적이며 관상적인 매우 깊은 영혼을 지니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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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사가 성 루카는, 마리아는 “이 모든 것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9.51)고 두 번이나 언급한다.
  우리는 마리아를 ‘교부들의 모후’라고 부른다. 메시아를 향한 마리아의 갈망이 모든 교부를 능가하기 때문이다. 또한 ‘예언자들의 모후’라고 하는데, 이는 마리아가 신비로운 하느님에 대해 모든 예언자보다 더 잘 아셨기 때문이다. 또한 ‘사도들의 모후’라고도 하는데, 이는 마리아가 자신에게만 알려진 여러 사실과 말씀을 사도들에게 드러내셨기 때문이다.
  마리아에 대해 깊은 신심을 지닌 어느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사도들은 성령강림으로 모든 진리를 깨닫게 되었지만,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그보다 더 빨리, 더 깊이 그 모든 것을 이해하셨다. 마리아는 거룩한 은총과 거룩한 덕은 물론 거룩한 진리로 가득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은총이 가득하신 분”이라며 인사했다. 하느님께서 마리아와 함께 계셨기에 천사는 마리아와 함께 기뻐했다. 다시 말해, 마리아는 사랑으로 하느님과 일치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해 마리아에게 사도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다.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요한 16,13)
  천사적이라 이르는 성 토마스의 가르침을 떠올려 보자. 예수님과 마리아가 등장하는 카나의 혼인잔치에 대한 성 토마스의 해설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로운 혼인이 지닌 상징성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 마리아는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하신 것처럼 예수님과 모든 영혼의 혼인에서도 기도를 통해 은총을 얻어 주시어, 그리스도와 영혼들 사이에 일치가 이루어지도록 해 주신다.
  교회 안에서 마리아는 ‘거룩한 상지의 옥좌’에 앉아 계시며, 교황, 박사, 글 쓰는 이와 설교가들에게 거룩한 지혜를 전하신다. 마리아는 ‘천상 은총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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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영혼은 마리아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태어난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2 그리스도에게서 주어지는 진리와 은총은 교회의 생명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다.

교회를 사랑하십시오

  교회를 사랑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은 “교회를 말씀과 더불어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셔서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티나 주름 같은 것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당신 앞에 서게 하시며, 거룩하고 흠 없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에페 5,26) 따라서 우리는 교회처럼 생각하고, 교회를 따르며, 교회에 순종하고, 교회와 함께 기도하고, 교회를 옹호하며, 교회를 확장해야 한다. … 우리는 교황과 주교, 교회의 모든 사목자를 사랑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이들, 그리스도 신비체의 살아있는 지체요, 하늘나라의 계승자임을 나타낸다. 이는 일반적인 현실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각 사람은 자기 교구와 본당, 그리고 본당신부를 사랑해야 한다. 그러므로 본당과 교구, 본당신부에게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지려는 강력한 움직임이 있다. “사제는 교회의 인격을 대변하고, 교회의 말씀을 전하며, 교회의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어떤 독실한 과부는 자녀들을 그리스도교적으로 키웠으므로 그들은 매우 반듯하게 성장했다. 또한 이 과부는 병든 남편을 오랫동안 정성껏 돌보았다. 예순 살이 되자 그 과부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본당을 위해 쏟았다. 새로운 성당 건립을 위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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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수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봉헌금을 모았고, 자선 단체를 조직하고, 교리와 성가와 기도를 가르쳤다. … 새로운 성당이 완공되자 가톨릭 단체들이 번창했고, 본당의 모든 신자의 삶이 향상되었고, 도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변화를 뚜렷이 인식한 사람들은 그 과부에게 ‘본당의 어머니’라는 놀랍고도 뜻깊은 이름을 헌정했다.
  우리도 이처럼 착실한 본당신자로서 본당과 함께 살아가자. 교구의 착실한 지체가 되어 교구와 함께 살아가자. 교회의 충실한 자녀로서 교회 활동에 참여하는 착실한 본당신자가 되자. 교구의 착실한 지체가 되어 교구 활동에 참여하자. 이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 그리고 영원히 그리스도께 속하는 길이다.
  본당에는 성사 집행, 하느님 말씀의 설교 등 여러 직무가 있다. 한결같이 좋은 모범을 보이며, 본당사제의 요청에 적극 응하자.
  남성과 청년은 강론대와 성가대 앞줄 난간에 먼저 자리 잡아야 한다. 하느님께 봉사하는 것은 훌륭하고 영광스러운 일이므로 남성들이 그러해야 한다.
  본당에는 자선 활동, 가톨릭 협회, 봉사 단체 등이 있다. 좋은 본당신자는 자기 신분과 처지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단체에서 활동하며, 이런 활동에 대해 좋게 말하고 열심히 참여한다.
  본당에는 교리수업이 있고, 그리스도교적 신앙에 기반을 둔 사회적 정치적 활동도 있을 수 있다. 또 학교 운영이나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있을 수 있고, 자선 활동이 활발한 곳이 있을 수도 있다.
  각 본당에서는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도 있고 나쁘게 살아갈 수도 있다. 구원 받을 수도 있고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도 있다. 가라지는 좋은 밀과 함께 자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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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영원한 곳간에 모을 곡식을 수확하러 오실 때 선택 받은 밀알이 되도록 하자. 그날 가라지는 불에 태워질 것이다.
  자신의 본당에서 참된 사도, 곧 겸손하고 신심 깊고 끈기있는 사도가 되라.
  “나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성직자를 좋아하지 않아.”라고 말하지 마라.
  “나는 종교인이지만 신앙을 실천하진 않아.”라고 말하지 마라. 길은 하나뿐이다.
  “나는 비록 기도하지 않고, 고해성사를 보지 않지만 그래도 신자야.”라고 말하지 마라. 우리의 첫 번째 의무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다.
  “사제들은 다 좋아. 그렇지만 내가 다니는 본당신부는 아니야.”라고 말하지 마라.
  그대의 본당신부, 그대가 다니는 본당과 교구, 오늘날 교회를 이끄는 교황과 함께 살아가라.
  선의를 지닌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선을 위해 작용하고, 선의를 지니지 않은 사람에게는 빛이 어둠이 되고, 십자가가 어리석음이 되며, 성사는 무미건조한 것이 된다. 그러나 올바른 마음, 신실한 신앙, 순수한 양심으로 하느님을 찾는 이는 큰 평화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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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표현은 성령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마리아를 언급하는 이 표현을 주의 깊고 명확하게 숙지해야 한다. 특히 앞으로 나올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생명”이라는 표현에서는 더 그러하다.

2 요한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