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가 있는 동안 모든 사람에게, 특히 믿음의 가족들에게 좋은 일을 합시다.(갈라 6,10)
가 정
사도직 터전의 기초는 가정이다. 하느님께서 이를 바라신다. 우리는 가정에서 우리 자신을 거룩하게 하고 가정 또한 거룩하게 해야 한다.
성가정 축일에 우리는 성 바오로가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을 봉독한다.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주는 끈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한 몸 안에서 이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이르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아내를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일입니다.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그들의 기를 꺾고 맙니다.”(콜로 3,12-21)
레오 13세 교황은 우리 자신과 가정을 거룩하게 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하느님의 명령으로 예정된 시간이 다가와 오랜 세기에 걸쳐 기다려온 인류 구원이라는 놀라운 일이 완성될 때, 자비로우신 하느님은 질서와 경륜을 드러내 이러한 사명을 거룩하게 시작한 가정의 품위 있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셨습니다. 이러한 가정에서 모든 인간은 한 가족이라는 사회와 덕과 성성을 드러내는 가장 완전한 모범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는 모든 민족에게 제시된 나자렛 가정입니다. 정의의 태양, 곧 우리 하느님이며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충만한 빛을 웅장하게 드러내시기에 앞서 어머니이신 동정 마리아와 당신의 아버지로서 충실했던 거룩한 사람 성 요셉과 함께 숨은 생활을 하셨습니다.
가족 공동체에서, 같은 지붕 아래 사는 이들 사이의 일상적인 관계 안에서 사랑을 증거하는 삶, 관습의 성화, 신심 실천, 곧 모든 이의 귀감이 되기로 예정된 성가정에서 무엇보다 가장 강력하게 드러나는 덕을 보고 기뻐할 때 우리는 다른 곳에서도 덕을 실천하며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하느님의 섭리는 온통 선으로 가득한 계획 안에 성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어떤 상황이나 출신지 여하를 불문하고 이러한 귀감을 주의 깊게 살펴봄으로써 모든 덕의 귀감과 그 덕을 실천하라는 초대를 쉽게 받아들이게 하려는 것입니다.”
나자렛에서
복음은 실제로 이렇게 말한다. “헤로데가 죽자, 꿈에 주님의 천사가 이집트에 있는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다.’ 요셉은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아르켈라오스가 아버지 헤로데를 이어 유다를 다스린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러다가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래아 지방으로 떠나, 나자렛이라고 하는 고을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이로써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는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마태 2,19-23)
성가정은 나자렛에서 사랑을 나누며 조용히 살았다. 그 시기에 대해 복음이 전하는 유일한 일화는, 과월절 축제 때 성전에 갔다가 거기서 예수님을 잃었다 되찾은 이야기다. 이 일화는 많은 논거를 제공하는 짧은 말씀으로 마무리된다.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1
복음은 예루살렘에 가신 예수님의 |
범상치 않은 지혜를 전하며 그 사명을 미리 알려 주는 이야기 외에는 30년이 넘는 예수님의 사생활에 대해 침묵한다.
여기서 우리는 신뢰할 만한 줄거리로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잘 살펴볼 수 있다.
성 요셉은 성인이며 노동자, 예수님의 양부,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의 남편으로 성가정의 참된 가장이시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참된 어머니요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 성 요셉의 순결한 아내, 인류의 공동사도요 공동구속자시다.
예수님은 창조주요 성화하는 분이신 성부의 활동의 중보자, 마리아의 참 아드님,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다. 예수님은 말씀과 당신의 죽음으로 초자연적 생명을 사람들에게 되돌려줄 때를 기다리며 거룩한 삶의 귀감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신다.
인류의 가장 장엄한 성전인 작은 집에 계시던 지극히 거룩하신 세 분에 대해 관상해 보자. 날마다 얼마나 많은 천사들이 그들의 모후이신 마리아와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지키며 침묵의 성인 요셉을 공경했을까!
바로 거기에 어린이와 젊은이들의 귀감이 있다.
바로 거기에 세 송이 백합, 곧 요셉과 마리아, 가장 향기로운 예수님이 계셨다. 바로 거기서 개인의 모든 책임, 가정적인 모든 덕, 모든 종교적 실천, 모든 예의와 사회적 책임이 완벽하게 실천되었다.
성가정에서는 모든 것이 단순했지만, 모든 사람의 귀감이 될 고귀한 모습과 위엄이 있었다.
성가정에서 나눈 모든 대화는 지극히 거룩했다. 가장 충만한 일치와 참된 이상이 성가정에서 실현되었다. 성가정은 지상생활의 본보기로서 하늘나라를 이 지상에서 미리 살아가게 해 준다.
덕이 있는 집
참된 근면함에 대해 감탄해 보자. 성 요셉은 작은 마을의 목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마태 13,55) 하고 수군거렸다. 요셉은 자연법과 율법이 요청하는 대로 기꺼이, 자발적인 초자연적 정신으로 열심히 일했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작은 수입에 만족하면서 소박한 일을 기꺼이 했다. 성가정에서 요셉은 하늘에 계신 성부를 드러낸다. 가장 활동적이신 하느님은 또 순수하게 활동하신다. 성 요셉은 한 인간으로서 가장 온전히 하느님을 본받았다. 성 요셉의 마음속에는 천상의 것들로 가득했다. 그의 심장은 언제나 하느님을 위해 뛰고 있었다.
예수님은 처음에는 요셉을 도왔으나 차츰 주도적으로 일을 했으며, 마침내 성 요셉의 목공소 일을 물려받으면서 모든 것을 책임졌다. “저 사람은 목수가 아닌가?” 그분이 놀라운 기적을 행하는 스승의 모습을 드러내셨을 때 마을 사람들은 “이 마을의 목수가 아닌가?” 하고 서로 물었다.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한 5,17 참조)
그분의 영혼은 활동을 하시면서 늘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바라보셨다. 그분의 심장은 하느님과 인류를 향해 끊임없이 뛰고 있었다.
마리아는 히브리 여성들의 관습에 따라 집안일에 바빴다. 노동은 성화의 기반이 된다. 게으른 사람은 결코 성인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음식을 준비하고 옷을 만들고 집안을 정리하며 물레를 돌리는 마리아를 떠올릴 수 있다. 또 예수님과 요셉을 보살피고 친척과 친구들과 적절한 관계를 맺는 마리아를 떠올려 볼 수 있다. 마리아의 생각은 얼마나 드높았던가! |
마리아의 마음은 얼마나 민첩하게 움직였던가! 마리아는 구유에서 들은 말씀과 성전에서 잃었던 예수님을 되찾았을 때 들은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신심생활. 복음은 마리아와 요셉이 해마다 파스카 축제를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갔다고 전한다. 실제로 율법은 남자들만의 소관이었고(탈출 23,17), 여성들은 기도생활 외에는 율법에 관여하지 않았다. 여기서 마리아의 종교적 영혼에 한줄기 빛이 비치는데, 마리아는 자신의 자유의지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지혜와 키가 자랐고 … 총애도 더하여 가는 것’을 보면서 형언할 수 없는 위안을 얻으셨다. 우리가 성당 안에 모셔진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늘 찾아 뵙는 것처럼, 마리아는 사람이 되시어 함께 사시는 하느님을 향해 늘 큰 사랑을 불태웠다.
성가정은 히브리 관습에 따라 나자렛 집에서 매일 아침과 밤에, 특히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드렸고, 안식일에는 함께 회당에 가곤 하셨다.
그 작은 집은 모든 덕을 배우는 학교였다. 예수님은 아이들 가운데 가장 잘 순종했고 온순했다. 마리아는 어머니들 가운데 가장 사려 깊었고, 요셉은 최고의 가장이었다. 요셉은 하느님의 뜻을 알기 위해 늘 주의를 기울였고, 그 뜻을 언제나 널리 알리며 실행하고자 했다. 순종적인 아내 마리아는 요셉이 무언가를 필요로 할 때마다 늘 주의를 기울여 채워나갔다. 예수님은 양부 요셉을 하늘에 계신 성부의 참 대리인으로 모시며 순종했다. 요셉은 이 모두를 단순하고 온화하게 받아들였다.
평화 속에, 그리스도교적 정신 안에, 그리고 합당한 질서 아래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존중하며 충실하게 걸어간다. |
하느님께서 맡기신 자녀들을 보물로 이해하는 부모는 자녀들에게 영적 물질적 행복을 준다.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며 부모님을 공경한다. 가정은 평화, 질서, 정직, 노동, 신심으로 늘 풍요롭다.
성가정 신심
성가정 신심이 곳곳에 퍼지고 있다. 레오 13세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영감을 준다.
“이러한 이유로 가톨릭 신자 사이에 빠르게 스며든 올바른 성가정 신심이 날마다 성장합니다. 이는 성가정에 개별적으로 주어진 명예로움만 아니라 성가정이라는 이름을 지닌 그리스도인 단체가 증명합니다. 무엇보다 성가정 신심에 대한 열정이 타오르도록 전임 교황들이 다져 놓은 특징과 영적 호의가 이를 드러냅니다. 성가정 신심은 17세기부터 높이 평가되면서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등 유럽 전역으로 퍼졌으며, 태평양을 건너 캐나다와 미국에도 전파되어 많은 후원을 받으며 퍼져나갔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 가정에게 완전함과 가정적인 모든 덕을 지닌 성가정의 모범보다 더 완전하고 유익한 본보기는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가정 구성원들이 간청하면 예수와 마리아와 요셉이 도와주러 오시어, 그 가족이 사랑을 보존하며 서로 덕을 본받도록 재촉하실 것입니다. |
사방에서 우리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시련을 견디게 하며 완화시킬 것입니다.”
레오 13세 교황은 성가정 신심을 더욱 향상시키기 위해, 모든 그리스도인 가정이 성가정이 되도록 봉헌해야 한다고 권한다. 베네딕토 15세는 모든 성당에 성가정위원회를 구성하여 미사를 봉헌하라고 권했다.
가정 구성원의 성모 신심은 서로 더욱 일치하도록 하며 가정의 모든 구성원 사이에 온화한 연대를 이룬다. 성모 신심은 격정과 분노를 없애고 권위와 자유의 조화를 이룬다. 자녀 교육에 큰 도움을 주며, 부모는 권위를 지닌 하느님의 대리인임을 가르친다. 권위를 남용하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게 한다. 순종하는 것은 굴욕이 아니며, 기쁘고 안전하게 잘 걸어가게 한다.
1 루카 2,5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