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로마 5,8-9)
영혼들에 대한 사랑
사랑에 앞서가는 믿음, 믿음을 따르는 사랑은 사도를 형성한다.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를 왜 사도라 하는가?
아버지 마음을 닮았고, 아버지의 모습을 지니고 계시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이다.
성령께서 마리아의 마음에 참된 신심과 선과 사랑을 불어넣으셨다. 사도직은 마음에서 탄생한다.
하느님과 사람들을 그토록 사랑하신 마리아의 마음을 보라.
가) 하느님께 대한 참사랑과 이웃에 대한 참사랑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두 개의 불꽃을 지닌 불과 같은데,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은 하느님 사랑이라 불리고, 그 주변에 열기를 퍼뜨리는 것은 이웃 사랑이라 불린다. 환경, 학교, 가정, 사회 등 모든 곳에 불을 지펴 활활 타오르게 하라.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을 모두 내어 준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 자기 자신마저 내어 준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참된 종교는 |
하느님을 닮게 한다. 우리 안에 하느님의 생명을 살게 하는 그리스도교는 본성상 사도적이고 광활하고 활기차고 생산적이다. 하느님에게서 배우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아버지는 당신을 완벽하게 닮은 아드님을 사랑하셨으며 … 또한 인간을 사랑하셨다. 어느 정도로 사랑하셨는가?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드님을 내주셨다.”1 아드님은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인간을 위해 돌아가셨으며, 인간에게 당신의 지혜와 성성, 교회, 성사들, 성체, 지극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를 주셨다.
나) 하느님을 본받을 것.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깨끗하고 흠 없는 신심은 어려움을 겪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고,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야고 1,27)
첫째, 아버지와 아드님이 하신 것처럼 영적 부와 자연적 재화를 내어 주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느님 자녀가 될 수 있겠는가?
모든 가르침을 따른다고 하면서 사랑을 거스른다면, 하느님께 온갖 선물을 바친다 해도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다.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2 사랑이 없고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람은 혹독한 심판을 예상해야 한다. 믿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선행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야고 2,15-16)
영혼이 없는 몸은 죽은 것과 같은 것처럼 행동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이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진심으로 사랑하라.
열의와 열정을 가지고 일하지 않으면서 악을 향해 울부짖는 것은 악이 커지게 할 뿐이다.
행동으로 사랑하라!
우리는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3해야 한다.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안다. 영혼 안에 있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깊이는 그 활동을 보면 알 수 있다. 선행으로 이루어진 이웃 사랑은 하느님 사랑의 시금석이며 잣대다.
어떤 율법교사가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열성을 다해 설명하셨다. 예수님은 율법의 두 가지 명령, 곧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거듭 말씀하셨다. 그가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 대답하셨다.(루카 10,25-37 참조)4
이 비유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 아드님의 사랑의 사명, 곧 활동과 희생의 사랑을 암시한다.
강도들의 손에 넘어간 인간은, 악마의 희생 제물이 되어 초자연적 은총의 선물을 잃어버려 자연 재화를 손상시킨 인류를 가리킨다. 옛 희생 제물과 율법은 인류를 회복시킬 수 없었으나 사마리아인으로 표현된 하느님의 아드님이 강생하여 상처 입고 약탈당한 사람에게 허리를 굽혀 은총으로 치료해 주셨다. 그런 다음 그를 교회에 넘겨주어 교회가 그를 돌보아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게 하셨다.
이 같은 사도직이 바로 사제와 참된 그리스도인의 사도직이다.
다) 다른 한편 선은 스스로 퍼지기 마련이다. 하느님의 본성은 자유롭고 무한한 선이시기에 당신 자신을 언제나 더 많이 내어 주려 하신다.
강생하신 하느님 아드님의 지상 삶이 이를 보여준다. 예수님은 온갖 선행을 베푸시고 많은 병자를 고쳐주시며 일상을 보내셨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착한 목자, 잃어버린 동전을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는 여인, 잃었던 아들을 기다리다가 기쁘게 맞이하는 아버지, 당신 생명을 내어 주는 구원자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사도적 불꽃, 곧 당신 사랑의 선물인 생명을 널리 퍼뜨리고 진리를 드러내시며 뛰어난 당신 성덕을 교회에 전해 주셨다.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신부인 교회는 거룩한 창립자의 사도직 활동을 세기에 걸쳐 계속 이어가며, 그리스도의 불꽃으로 활활 타오른다. 사도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마르 16,20)
모든 이를 위해 모든 것을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었다.”(1코린 9,22 참조)
이는 참으로 놀랍고 거룩한 교환이다!5 교황 레오 13세는, 인간은 인간을 통해 구원의 길을 배울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보화의 분배자와 협력자들과 하나 되길 바라셨다. 사제로서 전방에 선 그들은 교황과 선교사와 거룩한 사제들, 그리고 매우 뛰어난 사제와 주교들이다.
그들과 함께 모든 신자는 사도직에 협력한다. 교회 초기부터 공적 사목자들 가까이에는 자원봉사자들과 잘 선별된 단체들이 육성되었다. 이를 통해 교회는 영속적으로 |
활기찬 성장을 이루며 언제나 젊음의 활력을 지닌다.
이처럼 세기마다 열렬한 마음을 지니고 행동하는 사람들, 열심한 가톨릭 신자들은 악의 세력에 대항해 악을 물리치고, 대중에게 파고들어가는 활동을 전개했다. 그들은 밀가루 반죽 속에 들어 있는 누룩이며, 음식의 부패를 막는 소금이었다. 그들은 서품을 받지 않아 교계제도에 속하지 않음에도 놀랄 만큼 크게 기여했다. 활동은 언제나 적절한 때에 행해져 필요에 응답했고 번창했다.
성 베드로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권고한다. “모든 악의와 모든 거짓과 위선과 시기, 그리고 모든 중상을 버리십시오. 선택된 겨레, 임금의 사제단, 거룩한 민족으로 행동하여 어둠에서 불러내어 당신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이끌어 주신 분의 영광스러운 업적을 선포해야 합니다.”(1베드 2,1.9 참조)
성 바오로는 평신도 사도직과 관련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에우오디아에게 권고하고 신티케에게 권고합니다. 주님 안에서 뜻을 같이하십시오. 그렇습니다. 나의 진실한 동지여, 이 여자들을 도와주도록 그대에게도 당부합니다. 이들은 클레멘스를 비롯하여 나의 다른 협력자들과 더불어 복음을 전하려고 나와 함께 싸운 사람들입니다. 이 모든 이들의 이름이 생명의 책에 적혀 있습니다.”(필리 4,2-3)
로마인들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자매이며 켕크레애 교회의 일꾼이기도 한 포이베를 여러분에게 추천합니다. … 그는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의 후원자였습니다.”(로마 16,1-2) 여 부제들의 임무는 가난한 이, 아픈 이, 여성 예비신자들을 가르치고 도와주며, 거룩한 성전을 관리하고, 여성들을 동반하며, 그들이 세례 받을 때, 그리고 이와 유사한 봉사 활동에 함께하는 것이었다.
성 바오로는 다른 서간에서 프리스카와 아퀼라를 |
그리스도 안의 협력자들로 기억한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일했으며, 잦은 박해를 견뎌냈다. 또한 성 바오로와 함께하며 목숨이 위태롭게 되기도 했다. 그들은 사도에게서는 물론 이방인 세계의 모든 교회에게서 감사를 받아 마땅하다.
평신도 사도직6
교황 비오 11세와 비오 12세에 따르면, 평신도 사도직은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 더 유용하고 필요하다. 우리는 조직적인 평신도 활동을 가톨릭 운동이라 한다. 비오 11세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이는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활동 가운데 사도들이 선교 여행을 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언제나 남자와 여자, 군인과 상인, 행정관과 어린이 등 평신도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내적 삶, 좋은 귀감·고통·말씀·활동의 사도직이 있다.
교회, 선교 사명, 빈민가, 교도소, 공장, 출판물, 영화, 라디오, 어린이와 젊은이, 성인 남녀, 죄인과 수녀와 대학생, 육체적 자비의 일곱 가지 활동(배고픈 이에게 먹을 것을, 목마른 이에게 마실 것을, 헐벗은 이에게 입을 것을 주고, 나그네를 따뜻이 맞아주며, 병든 이를 돌보고, 감옥에 있는 이를 찾아가며, 죽은 이를 묻어 주는 것-옮긴이)과 영적 자비의 일곱 가지 활동(의심하는 이에게 조언하고, 모르는 이에게 가르쳐주며, 죄인을 꾸짖고, 상처받은 이를 위로하며, 모욕한 자를 용서하고, 괴롭히는 자를 인내로이 견디며,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옮긴이), 교리와 세미나와 권고 등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피어 나고 있는가! 추수하러 나가라. 좋은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주님께 기도하라.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1코린 13,1)
그런데 이러한 하느님 사랑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이웃을 향한 선행에서 드러난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7
보쉬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이 믿음이 깊은 영혼들이라고, 그들 마음이 하느님 마음과 비슷하다고 저에게 말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은 사람들의 영혼을 사랑하십니다. … 하느님은 내어 주십니다. 하느님은 당신 아드님을 내어 주셨고, 그 아드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었습니다. 어떤 이들의 신심이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을 닮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이 어떻게 신심행위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마음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을 향해 거룩한 목마름을 느낀다. 그리고 하느님을 향한 연민은 언제나 이웃을 향한 연민과 일치한다.
1 요한 3,16 참조.
2 마태 5,24.
3 1요한 3,18.
4 원문은 이 비유 전체를 전한다.
5 라틴어 표현: Ammirevole scambio.
6 Apostolato laico라고 되어 있는데 Apostolato laicale가 더 적합한 표현이다.
7 1코린 1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