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러분은 참회의 시편을 노래했습니다. “하느님, 저를 돌아보시어 자비를 베푸소서.”1 이 성가는 사순절과 구원의 시기만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 그 위대한 ‘자비’가 필요한 불쌍한 우리 죄인들에게 늘 적합한 노래입니다. 많은 은총을 쏟아주셨기에 하느님은 많은 사랑, 많은 응답을 받으실 권리가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 저는 여러분에게 단순한 명언 하나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명언은 우리에게 성체이신 예수님을 더 열정적으로, 더 뜨거운 마음으로 위로해드리겠다는 원의를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하느님이 나를 보신다.” 이 말을 지성 안에, 마음 안에 새깁시다. 언제나 하느님의 현존을 기억하도록, 방에 “하느님께서 나를 보고 계시다”라는 글귀의 현판이 잘 보이도록 걸어 놓으십시오.
“하느님이 나를 보신다”라는 말은 성당에서의 성사적 현존만이 아니라, 하느님이요 인간으로서 어디에든 계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은 당신 현존을 통해 어디에든 계십니다. 교실에, 길가에, 정원에 계시고, 빛이 있는 곳과 어둠 속에도 계시고, 아무도 우리를 볼 수 없는 때와 장소에도 계십니다.
“당신 얼굴 피해 어디로 달아나겠습니까?”2 아니, 결코 가능하지
습니다. 땅의 깊은 곳에서도, 당신 눈길은 저를 꿰뚫어보십니다. 당신은 사막에서도, 끝없는 평원에서도 저를 놓치지 않으십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어떤 여자 아이에게 대답을 잘 하면 오렌지를 상으로 주겠다고 하면서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얘야, 하느님이 어디 계신지 말해 주겠니?” 그러자 어린이가 재빨리 대답했습니다. “하느님이 계시지 않은 곳이 어딘지 말씀해 주신다면, 저는 오렌지 두 개를 드리겠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느낌을 아시고, 우리의 생각을 꿰뚫어 보십니다. “우리의 내면과 마음을 꿰뚫어 보십니다.”3 열쇠로 잠긴 곳이어도 우리를 따라오시고, ‘이곳에서는 아무도 우리를 볼 수 없다.’고 말하는 곳에도 우리를 따라오십니다. 당신 능력을 통해 현존하시는 하느님께서 더는 우리를 지탱해 주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허무의 상태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목수가 의자를 만들어 어떤 장소에 둘 때 의자는 늘 그 자리에 있듯이 하느님은 늘 우리를 지탱해 주십니다. 그러나 전등을 매달아두던 줄이 끊어지면4 전등이 떨어지듯이, 하느님이 우리 존재를 지탱해 주시는 선이 끊어지면 우리도 떨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 안에 있고, 그분은 우리 안에 현존하십니다. 우리를 보시고, 우리를 지탱해 주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원하시기 때문에 말하고, 생각하고, 활동합니다.
하느님은 죄를 지으실 수 없으시지만, 우리가 죄를 지어도 하느님은 우리 안에 계시고, 계속 우리를 지탱해 주시고 살아있게 해주십니다.
엄마의 팔에 안긴 아이가 엄마에게 심술을 부려도 엄마는 야단을 치기보다는 아이를 더 꼭 안아줍니다.
두 자매가 있는데, 그중 나쁜 자매가 착한 자매에게 나쁜 짓을 하자
고 꾀었습니다. 그러자 착한 자매가 침착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래, 광장에 장이 설 때 많은 사람 앞에서 그런 일을 벌일 용기가 있다면 나도 함께 할게.”
하느님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그분 앞에서 걸어갑시다. 그러면 죄를 피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유혹에 빠지려 할 때 하느님의 눈길, 하느님의 귀가 우리 머리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아빠와 엄마 앞에서 나쁜 행동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 자신을 잘 살펴봅시다!
하느님 현존에 대한 생각은 우리가 선善을 향해 나아가도록 밀어줍 니다.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생각하고, 활동하고, 기도합시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의 의지는 단호해집니다. 우리가 교실에서 글씨 쓰기를 배울 때, 글씨를 멋지게 쓰기 위해서는 선생님 가까이 있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런데 우리 가까이에 선생님이 아니라 주님이 계시다면, 우리는 언제나 많은 선을 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어떤 영혼을 사랑하실 때, 그에게 큰 고통의 기회를 주십니다.성모님은 하느님에게서 많은 사랑을 받으셨지만, 순교자의 여왕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사랑받는 성자이셨지만, 고통의 왕이 되셨습니다!
딸들이여, 저는 여러분에게 예수님이 알려주신 길과는 다른 길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많은 고통을 겪겠지만, 여정의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이 올라가야 할 오르막 길의 정상에서 엄마나 아빠가 여러분을 기다린다면 어떤 어려움도 개의치 않을 것이고, 오히려 그 목적지에 더 빨리 가기 위해 그 오르막 길을 뛰어 오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오르막 길 정상에서 예수님,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 성인들, 천사들
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용기를 냅시다. 여러분이 견뎌내야 할 힘든 작업, 어려운 공부, 치러야 할 희생이 있습니다. 그럴 때 오른쪽을 바라봅시다. 천사가 우리를 지켜보면서 우리를 깊이 경청하고, 우리의 열망을 모두 모아 기록합니다. 그러니 용기를 내어 우리의 십자가를 사랑합시다.
너무 힘들 때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억합시다. 이 땅 위에서는 평화가 약속되지 않았지만, 우리가 받을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5
* EC, 3[1934] 4-5에 게재된 강의. 저자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하느님 현존”이라는 타자본 왼편 위쪽에는 “P. Maestro”라고 적혀 있고, 오른편에는 “1934년 3월”이라고 적혀 있다. 본문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저녁기도 때 행한 강의임을 알 수 있다. “오늘 저녁 저는 여러분에게 아주 단순한 명언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타자본의 편집자들은 “하느님이 나를 보신다”라는 다른 제목도 함께 붙였다.
1 시편 25,16.
2 시편 139,7.
3 묵시 2,23 참조.
4 원문에는 spezzi로 되어있다.
5 마태 19,29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