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대피정 막바지에 와있습니다. 열매를 수확할 때입니다. 그렇지만 주의하십시오. 악마는 교활하므로 여러분이 얻을 수 있는 선을 얻지 못하도록 온갖 책략으로 교란시키려고 애쓰기 때문입니다.
대피정은 여러분 안에서 지성에 빛, 의지에 길, 마음에 생명이 되었습니다.
지성에 빛이 됨으로써 여러분은 가야 할 길이 어떤 것인지 깨달았고, 의지를 위한 길이 어떤 것인지 알았습니다. 이 기간 동안 여러분이 감미로운 영감을 얼마나 많이 느꼈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대피정은 무엇보다도 여러분에게 생명이 되었습니다. 기도를 [많이] 했기 때문에 영혼을 위한 생명이 되었는데, 곧 미래를 위한 은총을 얻는 성사와 묵상은 여러분의 생명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영혼아,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고, 언제나 나와 함께 머물도록 사랑의 끈으로 너를 나에게 묶어두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영혼아, 왜 혼란스러워하느냐? 천국이 아름답
다는 것을 모르느냐? 미지근함을 떨쳐버려라! 왜 너는 그렇게 우유부단하냐? 오랫동안, 몇 년을 거듭해서 내가 네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으나, 너는 나에게 늘 ‘기다리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너는 결코 나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아직도 그 문을 열지 않았다. 부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나의 은총을 바란다면, 나의 애정, 나의 생명을 원한다면 나에게 다가오너라!” 우리는 자주 예수님께 몸으로는 다가갔습니다. 하지만 영혼으로, 생각으로 …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까!
이제 자문해 봅시다. 대피정을 잘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대피정을 하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약간의 의지 또는 전혀 의지가 없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는 병자와 비슷합니다. “낫고 싶습니까?” “예, 낫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의사를 부릅시다.” “오, 의사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약을 드십시오.” “약은 너무 씁니다. 나중에 먹겠습니다.” “그러면 죽고 싶습니까?” “아닙니다. 낫고 싶습니다.”
자, 어떤 사람이 약간의 의지를 갖고 있거나 의지가 없는 사람입니까? 이런 사람은 자신이 겸손과 애덕을 지녔고,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천 단계에서는 하느님의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갈바리아를 올라갈 때가 되면 그 사람은 사라져 버립니다. 이런 사람은 좋은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의지가 없고, 열망으로만 가득 찬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느끼고, 그분의 영감을 느끼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혼들은 주님을 안다고 하지만, 이 날에서 저 날로, 이 주간에서 다른 주간으로, 이 피정이 아닌 다른 피정으로 늘 미루기만 합니다. 자신 안에 대피정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있지 않고, 결단을 내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죽을 때까지 미루기만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깨닫
습니다. … 아, 불쌍한 영혼들! 그런 이들은 최후심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성녀가 되기를 원하고 성인들을 사랑했지만, 성인들의 덕은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신심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신심은 허울 좋은 가짜 신심일 뿐입니다. 이미 허물어지기 시작한 벽의 표면을 아름다운 색깔로 칠했을 뿐입니다. 이런 치장된 벽보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강하고 튼튼하게 설치된 벽이 훨씬 더 낫지 않습니까? 신심이 있고,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있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 대한 참된 사랑은 희생을 바치는 것, 다시 말해 자신을 바치는 [것인데] 그런 사랑을 알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참된 하느님의 사랑은 정화의 단계를 거쳐야 하고, [그런 사랑을 가지고 있다면] 완덕에 도달하게 해주는 수단들을 어떻게든 잡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좋은 뜻, 또는 어떤 뜻을 가진 두 번째 부류가 있습니다. 이들은 의사를 찾기는 하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약만 먹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수단만 받아들입니다. 상처에 손을 대려 하지 않습니다. 결심은 하지만, 지배적인 결점은 결코 건드리지 않고 덮어두려 애씁니다. 성녀가 되기를 바라지만, 자신의 방법대로 살아갑니다. 이들이 사는 문제를 건드린다면 재앙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은 그들에 대해 아무 문제도 느끼지 못하지만, 이삼일 함께 지내노라면 여러분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태도를 보게 될 것입니다. 마음을 겸손하게 낮추지 않고, 청빈을 살려는 결심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약간의 열매를 맺겠지만, 성실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자신들이 바라는 것만 행하고, 근본적인 결심을 실천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의지가 약해질 때 악마는 좋아하며 웃게 될 때를 찾아낼 것입니다! 비판, 중상모략, 굴욕을 당하도록 자신을 놓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싸워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세월이 가져다주는 아름
다운 꽃을 바라보고 있지만, 곧 무기력해지는 노년을 맞게 될 것입니다. 젊을 때 용서받을 기회를 피한 사람은 나중에 더 딱딱해져, 하루에 두세 종류의 악습을 뿌리 뽑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힘든 때를 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악습을 제거하기가 너무 힘들어 결국 지배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악습을 고칠 수 있겠습니까? 젊음의 에너지로 넘치는 사람입니다. 얼마나 많은 영혼이 헛되게 살고 있는지요! 겉으로는 하느님의 사랑을 내걸고 있지만 실은 자기애를 살면서 본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애는 때때로 열정의 옷이나 신심의 옷을 걸치고는, 처음에는 빵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달콤한 비스킷으로 우리를 유혹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착각하지 맙시다. 우리 자신을 속이지 맙시다!
많은 결실을 맺는 영혼은 바로 세 번째 부류입니다. 온전히 하느님의 사람으로 한계가 없이 정말 좋은 뜻만을 지닌 사람입니다. 이 기간 동안 많은 것을 보면서 자신의 결점이 교만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결점을 고치려 노력합니다. 그는 곧바로 고해성사를 보러 가서 죄의 결과까지 모든 것을 숨김없이 고백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지적을 받으면 3일 동안 끊임없이 저는 교만합니다.’라는 말을 되뇌며 자신의 지도자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사랑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이 뒤따릅니다.
1) 성 바오로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고Fortis ut mors dilectio”,2 혼과 영을 갈라놓을 정도의 날카로운 쌍날칼입니다.3
2) 사랑은 결속력을 지녔고, 희생을 요구합니다. 곧 우리의 뜻을 주님께 일치시키기 위해 예수님이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애쓰
며, 자기 주변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따릅니다.
3) 사랑은 변화시킵니다. 곧 조금씩 예수님처럼 변화됩니다. 어떤 사람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점 더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됩니다만, 우리는 예수님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영혼이 육신을 포기하고 희생을 더 기뻐하기 전까지는 하느님의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베들레헴의 여물통, 짚, 노동, 갈바리아, 십자가를 더 좋아해야 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으로 변모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지닐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변모됩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주님께 반쪽이 아니라, 관대한 마음으로 생각, 감정, 애정, 모두를 내어드려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에게서 이탈해야 하고, 주님께 여러분을 완전히 내어드려야 합니다.
하느님과 여러분의 의무에 대해 생각합니까? 여러분은 공부에 대해, 여러분의 일에 대해 말합니까? 하루는 24시간인데, 주님을 위해 이 24시간 모두를 사용해야 합니다. 무거운 짐을 모두 짊어질 수 있다고 느낍니까? 서원을 하고도 주님께 자신의 반쪽만 드리는 것은 서원에 모순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때때로 입으로는 드리지만, 삶에서는 반대로 행동합니다. 차라리 서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서원을 했으면 관대하게 모든 일을 행하십시오. 주님께만 미뤄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서원을 했으면 관대해야 하고,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어떤 임무를 맡았다면, 그때부터 자신의 삶에서 더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직과 협력
여러분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자문해 보십시오. 나는 사도직을 이해
하고, 사랑하고,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부르실 때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그분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사도직은 진리이고, 길이고, 생명입니다.
어떤 사람은 편집 분야에서 유능하고, 어떤 사람은 인쇄 분야에서 뛰어나고, 어떤 사람은 보급 분야에서 뛰어나지만, 각자는 자기 힘이 주님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협력자들의 직무를 알고 있습니까? 이 결실을 함께 누리도록 많은 사람을 모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당신의 사도직을 통해 사도들, 제자들, 신심 깊은 여인들, 성모님으로 에워싸이기를 원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본받고 있습니까?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만큼 하느님을 섬기도록 하십시오. 하느님의 섭리를 따르고, 순응하고, 협력하십시오. 여러 부류의 협력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기도, 활동, 기부의 협력자 등. 여러분은 협력자들을 찾고 있습니까? 성소자를 양성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반쪽만 주님의 것이 아니라 온전히 주님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관대한데, 그분의 신부들은 차갑고 무관심해서야 되겠습니까? 마리아, 요한, 신심 깊은 여인들을 본받읍시다.
예수님은 감실에서 여러분을 바라보며, 여러분의 마음을 찾고 계십니다. 그분을 만났습니까? 멀리서 눈길을 주고 있는, 많은 선을 행할 수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영혼을 보고 있습니까? 그분은 그들을 바라보고, 그 영혼들을 초대하기 위해 우리의 삶을 내어놓기를 원하십니다. 과연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결론적으로 세 부류의 사람이 이 대피정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런 의지가 없고, 어떤 사람은 약간의 의지를 지니고 있으며, 세 번째 부류는 최상의 의지를 지니고 있습니다.여러분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입니까? 어떤 부류에 속하기를 원합니
까? 보십시오, 주님은 선한 의지의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선한 의지를 지닌다면 대피정은 여러분에게 평화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사랑에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랑은 정화시키고, 결속력을 갖고, 희생을 필요로 하지만 변모하게 해줍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사도직과 협력자들의 직무를 살펴보았습니다.
복음의 폭넓은 보급4
“지상에서 천사들처럼 사십시오. 어느 곳이든 덕의 향기, 건설적인 향기,좋은 귀감의 향기를 남기십시오. 모든 가정에 하느님 말씀의 씨앗을 전하십시오. 하느님 말씀이 선하게, 덕과 은총 안에 자라나게 하십시오.”
* 성바오로딸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 괘선지 세 장(21.8x30)의 타자 원고. 저자는 “프리모 마에스트로의 강의”라는 제목에서 분명하게 밝혀졌다. 그리고 날짜는 “천상 스승 - 성 바오로 1933년 9월 12일”로 기록되어 있다. 보르고 피아베에서 행한 대피정 강의다. 이 대피정에는 성바오로딸수도회와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가 참석했고(참석자 중 한 명인 안나 마리아 달 프라Anna Maria Dal Pra 수녀의 증언), 1933년 12월 17일에 첫 서원을 한 24명의 수련자들도 참석했다. “충만한 열의와 관대함으로 시뇨르 프리모 마에스트로의 손을 통해 하느님 앞에서 자신들의 약속을 맹세했고, 프리모 마에스트로는 작은 공동 실천사항에 충실할 것과 영적 진보의 비결인 침묵을 지킬 것을 강력하게 권고했다.”(UCAS, 1[1934] 13 참조)
2 아가 8,6ㄴ 참조.
3 히브 4,12 참조.
4 EC, 1[1934] 1에서 인용한 본문. 「모원의 메아리」(EC)는 창립자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시뇨르 프리모 마에스트로는 모든 분원이 기도하며 성경과 복음서, 교리서와 교리자료를 더욱 폭넓게 보급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를 바라며 강조한다. 그뿐 아니라 방문선교를 하는 수녀들이 수도자다운 태도, 친절과 정리정돈에 더 섬세하게 마음을 쓰도록 거듭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