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세 가지 생각에 우리 마음을 모으고, 정신을 모아야 합니다. 세 가지 앞에서 우리 교회를 생각해야 합니다. 곧 지상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 순례하는 교회, 아직 영광에 도달하지 못한 죽은 이들이 속하는 교회로, 그리고 정화하는 교회, 마지막으로 축복받은 이들의 천국인, 승리한 교회입니다. 최종적인 교회는 영원하고 결정적인 상태입니다. 다른 두 교회는 우리가 지상에서 겪어야 하고, 우리가 정화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연옥이므로 끝이 있습니다. 그 대신 하늘은 우리의 참된 나라요, 우리가 보상을 받으러 가게 될 곳,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곳입니다. 이 지상에 머무는 동안 준비하고 가야 하는 곳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지상에서 잘 살았다면 상을 받으러 천국에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거대한 군중”1을 마음에 품으며, 위를 향해 눈을 들어 올립시다. 아벨에서부터 마지막 의인에 이르기까지 사도들, 순교자들, 고해사제들과 동정녀들 그리고 죄 없이 산 비신자들까지 포함
되는 이 큰 무리는 교회의 몸이 아니라, 교회의 영혼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만일 우리가 지상에서 하느님을 믿고 오직 하느님과 일치한다면,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우리는 저 높은 곳에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지만, 활동도 필요합니다. 양심성찰을 잘 한다면 활동에 대해서도 잘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양심성찰을 통해 우리의 태도 중에 하느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이 불완전한 것임을 잘 알고 있는 우리는 늘 충실하도록 해야 합니다. 순수하지 못한 불완전한 활동, 긴 시간 바치지만 불완전한 기도, 그리고 양심성찰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도는 참된 것이 아니므로 그만큼 효력도 없습니다. 그 대신 양심성찰을 잘 하는 모든 영혼은 매일 앞으로 나아가고, 아무도 속이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올바른 길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연옥으로 가봅시다. 아, 저는 여러분의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아버지 어머니의 목소리, 여러분의 돌아가신 불쌍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목소리를 여러분이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주변을 둘러볼 때마다 주위에 있는 빈자리를 보게 됩니다. 어제까지 있던 그 사람이 오늘은 없습니다. 어디로 간 것입니까? 임종의 고통을 알리는 종소리는 두 가지 소리를 지닙니다. 첫 번째 종소리는 임박한 죽음을 알리고, 두 번째 종소리는 우리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오늘, 우리 중에 누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도움을 주기 위한 손길을 거절하겠습니까? 우리의 친지 중에 죽은 이들, 그들이 연
옥에서 부르짖습니다. “여보게, 나의 벗들이여, 날 불쌍히 여기게나, 불쌍히 여기게나. 하느님의 손이 나를 치셨다네Miseremini mei, miseremini mei, saltem vos, amici mei!”2 애원하는 이 소리에 누구도 귀를 막아서는 안 됩니다. 만일 지금 귀를 막는다면, 자신의 때가 왔을 때 귀를 막고 돌아서버리는 사람들만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성년聖年을 지내고 있으므로 이 저녁기도부터 내일 저녁기도까지 죽은 이들을 위한 대리기도를 바칠 때마다 ‘매번’3 대사를 얻을 수 있습니다. 희년의 경우를 제외하고, 성년에는 살아 있는 모든 이를 위한 대사가 중지되지만4 연옥영혼을 위한 대사는 늘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105
성당에 들어가 죄를 통회하며, “주님의 기도”를 여섯 번 바치고, 교황님의 지향에 따라 기도할 때 전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 이 기간을 활용하여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결심합시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벗이여, 죽을 때 만족하는 개신교 신자를 결코 볼 수 없을 것이고, 죽기 전에 너무 많은 공덕을 쌓았다고 후회하는 가톨릭 신자도 볼 수 없을 것이네’.
그러므로 주님이 아직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삶을 활용합시다. 교회 묘지 앞에서 생각해봅시다. ‘오늘은 네 차례, 내일은 내 차례’. 죽은 사람은 아주 작은 공덕도 ‘쌓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연옥의 한 영혼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모송”을 한 번이라도 바칠 수 있는 작은 공덕을 쌓을 수 있다면, 나는 세상으로 돌아가 그 많은 고통을 처음부터 다시 겪으라고 해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제 ‘투쟁하는 교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투쟁하는 교회, 다
시 말해 싸우는 교회, 덕을 얻기 위해 악과 맞서 싸우는 교회입니다. 세상의 정신과 맞서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여러분이 이미 겪었고, 승리를 획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 안에 잠심하기 위해, 세상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더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러한 것이라면 그것은 기만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미 이렇게 살고 있는 영혼은 하늘 심판관의 위로의 말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Euge, serva bona et fidelis, intra in guadium Domini tui!”5 영원에서부터 우리를 생각하시고, 우리를 미리 선택하신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혹시 우리가 특별한 공덕을 쌓았기 때문입니까?
수도원에 들어오면서 그 문턱에 입을 맞춘 영혼은 옳았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부름을 받은 성 프란체스카 드 샹탈6은 남작 부인이라는 작위, 그에 따르는 부귀와 모든 재산을 포기했고, 성녀의 길을 막기 위해 문 앞에 눕혀놓은 성녀의 어린 아이들을 넘어서기까지 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성녀를 맞아들이면서, 주님은 이러한 행동을 매우 기뻐하신다고 말했습니다. 하느님은 성인이 말한 당신의 그 사랑을 방문수도회의 한 딸에게 계시로 드러내셨습니다. 바로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7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행복을 가로막는 큰 원수, 마귀와 용감하게 맞서 싸
웁시다.
존경받는 사제를 처음으로 만난 한 젊은 여성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는 제 욕정을 이기기 위해 수녀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이가 웃지 않을 수 없는 단순함으로, 자신의 모든 어려움을 계속해서 설명했습니다. 이에 사제가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예. 당신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조금 전에 제게 보여준 그 아름다운 자세가 그대의 결심 목표를 이미 증거하였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지닌 사람은 차분하게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올바른 길에 서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승리하는 교회’, 축복받은 이들이 하늘에서 우리를 향해 박수를 치면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오십시오, 오십시오, 우리는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대리기도를 청하고 있는 정화하는 교회를 기억합시다.
죽은 이들을 위해 대리기도를 더 잘 바치기 위해 우리의 성당이 빨리 마련되기를 그토록 원했지만, 아직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더 자주 “깊은 구렁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사오니 …”8를 바칩시다. 이 11월 동안 더 청하고 얻어야 할 은총이 아주 많다는 것을 염두에 둡시다. 연옥영혼들은 이미 천국을 보장받았다는 것을 믿읍시다. 그 대신 우리에게는 싸워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열심히 싸웁시다! 우리의 모든 기도가 달콤한 향기처럼 하느님께 올라가고, 그분께는 영광, 우리에게는 평화가 주어지기를 바랍시다.
* EC, 11[1934] 5-6에 “시뇨르 프리모 마에스트로의 강의”라는 제목으로 세 차례의 다른 강의와 함께 게재된 강의. EC에는 시기가 제목 형태로 “목요일, 1-11-34”라고 명시되었다. 타자본의 편집자들이 “투쟁하는 교회 - 정화하는 교회 - 승리한 교회”라는 제목을 붙였다. 당시의 기사는 공동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든 성인의 날 장엄예식 - 우리는 이미 영웅적으로 투쟁하는, 늘 똑같은 방식으로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을 기쁘게 기념했다. 이들은 성인들을 형제들로 여기고, 거룩한 부러움을 갖는 가운데 그들의 귀감을 본받는다. […] 저녁기도에 앞서 시뇨르 프리모 마에스트로가 해주신 강의는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너무도 아름다운 이 강의를 여러분도 공유하도록 이번 호에 게재한다.”(p.2)
1 묵시 7,9 참조.
2 욥 19,21.
3 toties quoties.
4 원문에는 sono로 되어있다.
5 마태 25,21.
6 Giovanna Francesca Frémiot de Chantal(1572-1641)는 프랑스 태생이다, 기혼자, 과부, 모범적인 어머니였던 그녀는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와 협력하여 방문수도회(Ordine della Visitazione: 성모방문수녀회)를 창설했다.
7 Margherita Maria Alacoque(1647-1690)는 프랑스 태생이다. 파레 르 모니알(Paray-le-Monial)의 방문수도회에 들어가, 특별한 신비의 은총을 받은 성녀는 교회 안에서 예수 성심 신심의 사도로 추앙받고 있다.
8 시편 130편: De profund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