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o Giacomo Alberi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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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INTRODUZIONE

 

이 책은 1933년 말에서 1939년 말까지 성바오로딸수도회를 대상으로 한 알베리오네 신부의 강의를 모은 것이다. 이 강의들은 일종의 ‘안내’에 속하는 것으로서 수도회 창립(1915년) 때 시작되어 창립자의 서거(1971년)에 이르기까지 이어진다.이 긴 시기의 폭을 이론적으로 다소 비슷한 분위기에 따라 여러 시기로 세분할 수 있으며, 그러한 구분이 모든 시기의 강의를 그 시대의 맥락에서 그리고 전체를 이해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세분할 수 있다.

1. 비공식적 의사소통 시기(1915-1928)
2. 첫 번째 확장시기(1929-1933)
3. 첫 번째 강화시기(1934-1939)
4. 전쟁시기(1940-1945)
5. 창립자의 초기 국제 여행시기 및 두 번째 확장시기(1946-1949)
6. 쇄신 및 교황청 승인 시기(1950-1955)
7. 성숙 및 공의회 시기(1956-1969)

이 책에 모아놓은 본문은 세 번째 시기에 해당되는 내용으로,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속기 책임을 맡은 성바오로딸들이 열심히 기록해둔 요점의 결과물이다. 비록 요점에 불과하지만, 창립자가 수도회 초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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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에 제시한 목표를 향해 지성과 마음을 활짝 연 자매들과 함께 한 걸음 한 걸음을 걷게 해주기에 그 가치는 매우 소중하다.

I. 알베리오네 신부의 강의: 1933년 11월-1939년

1. 역사적 맥락

이 시기(1933년 11월-1939년)는 문화적 정치적 교회적 관점에서 매우 복잡한 시기였다. 그래서 다만 젊은 성바오로수도회의 점진적 발전을 신앙 안에서 모으고 조명해볼 수 있는 몇 가지 측면만 강조해보기로 한다. 사실 이 시기에 국가적 차원에서 그리고 국제적 차원에서 수도회의 첫 번째 확장이 이루어졌다.
1930년대는 시작부터 시대적 상황에 큰 영향을 끼친 심각한 경제 불황이 특징이라 하겠다. 권위주의의 길을 열게 했던 파시스트 독재정치는 출판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한층 더 억압했다. 이탈리아는 파시즘의 통치하에 식민지 확장을 도모했다. 1935년 10월, 에티오피아의 합병전쟁; 1936년 5월, 아디스 아베바 수도에 이탈리아 군대 투입; 빅토리오 엠마누엘 3세가 에티오피아의 국왕으로 선포됨, 1936년 7월, 무솔리니는 히틀러와 결탁하여 스페인 시민전쟁에서 프랑코 군벌세력을 지원하고, 1936년 10월, 이른바 ‘로마–베를린 주축Asse/Axis’ 조약을 체결한다. 1938년 7월, 이탈리아에서 반反유다인 법령을 선포하고, 1939년 4월에는 이탈리아 군대가 알바니아를 침공했다. 1939년 5월, 강철조약 체결로 이탈리아와 독일은 두 국가 중 한 국가가 공격을 받을 경우 군사적으로 도와줄 의무를 지니게 되었으며, 1939년 9월,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는 동안 무솔리니는 ‘중립’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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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참담해지는 이러한 전망 속에서, 교황 비오 11세(1922-1939년)는 전 세계 모든 교구에 1934년까지 이어지는 구원의 희년(1933년)을 선포했다. 희년과 연결하여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국제 성체대회가 개최되었고(1934년), 알베리오네 신부가 특히 존경하던 인물들인 주세페 베네딕토 코톨렌고Giuseppe Benedetto Cottolengo, 요한 보스코Giovanni Bosco의 시성 절차와 젬마 갈가니Gemma Galgani의 시복 절차가 진행되었다. 이 시기의 사건들 중 알베리오네 신부에게 영향을 준 것은 다음과 같다. 바티칸의 출판 사도직에 대한 설명(1936년 5월), 비오 11세의 영화에 관한 회칙 「주의 깊은 관심Vigilanti cura」 반포(1936년 6월 29일), 복음화를 위해 새로운 매체들을 활용하면서 사도적 지평을 확장시키도록 도와주는 세계 차원의 다양한 시도들이다.

1933년 6월 11일, 몬시뇰 루이지 마리아 그라씨 주교Vescovo Mons. Luigi Maria Grassi(1887-1948년)가 알바 교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곧 성실한 인물로 알려졌으며, 아직 교구 직할이던 바오로 가족에게도 세심한 배려와 주의 깊은 태도를 보여주었다. 새 주교가 1935년부터 크게 부각시켜 교구 사업으로 시도한 ‘본당 대회Congresso della parrocchialità’는 많은 준비 과정을 거친 다음 1937년 8월 31일부터 9월 5일까지 알바에서 거행되었다. 이 대회1는 ‘그리스도의 몸’과 교회를 같은 시각에서 바라보도록, 그리스도의 신비를 교회의 중심으로 소개했다. 알바 교구는 “방법에서 내용으로 넘어가는 교리교육의 쇄신에”2 앞장서는 선구자적 교구 중 하나였다. 알베리오네 신부도 그러한 영향을 받아, 1936년 말경 새로운 방법론에 대해 계속 주장했는데, 이러한 점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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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강의에서도 입증된다.
1939년 2월 10일 교황 비오 11세가 서거하고, 3월 2일 에우제니오 파첼리Eugenio Pacelli 추기경(1876-1958)이 비오 12세라는 이름으로 교황에 선출되었다. 이 교황은 위대한 회칙들을 반포한 교황으로서,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시기에 특별한 메시지를 통해 교회를 이끌었다. 성바오로딸들의 내부 회람지는 교황 선출에 대한 느낌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교황직에 오르기에 가장 합당하고 위대한 추기경이셨던 비오 12세 교황의 은혜로운 즉위식에 대해 우리는 진심으로 기뻐했습니다. 모두가 그분께 서약을 드렸습니다. […] 우리는 세 가지 수도서원에 로마 교황께 대한 충성서약을 덧붙이며, 교황을 보호하고, 가능한 한 교황의 말씀을 보급하고, 기도와 활동을 통해 이러한 사랑을 드러내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반포될 비오 12세의 모든 회칙을 출판하기로 결정하면서, 전집으로 모을 수 있도록 디자인과 판형을 모두 똑같이 하기로 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더 많이 보급하도록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3 그리하여 「우리를 인도하는 목자Il Pastore che ci guida」라는 제목으로 전집 출판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행한 알베리오네 신부의 강의에서 개신교도들과 그들의 출판을 통한 홍보활동에 대한 염려가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바오로 가족의 창립자는 모든 사람의 일치, 특히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늘 마음에 담고 있었다. ‘ut unum sint’(하나되어: 역주-이는 시청각통신성서교육원의 좌우명이다)는 그의 지속적인 갈망으로서, 그는 자기 자녀들이 ‘인류의 사도들이요, 일치의 사도들임을 자각하도록’ 촉구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20세기 중엽 교회의 역사적 맥락과 분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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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에 비추어, 본문에서 알베리오네 신부의 비非가톨릭계 그리스도인에 대한 반대와 호교론적인 언급을 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은 약간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알베리오네 신부의 ‘반反프로테스탄트’적 표현들을 객관성을 가지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와 그 지역의 사고방식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당대의 많은 성직자와 교황은 합리주의자들, 자유주의자들, 개신교 신자들을 대항하여 가톨릭교회의 교의적 유산을 보호하고 방어하는 입장을 보였다. 이러한 점에서 교황들의 교도권에 충실했던 알베리오네 신부는 다른 가톨릭신자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더 나아가 알베리오네 신부의 출신 지역인 피에몬테의 분위기는, 세기초부터 비非가톨릭신자들을 대항하여 논쟁을 벌였으며, 그들을 받아들이는 데 너그러울 수 없었다.
무엇보다 진리와 교회에 대한 사랑이 창립자를 깨어 있게 만들었고, 가톨릭 교리를 비추고 심화시켜 주는 서적과 인쇄물을 인쇄하고 보급하는 책임을 성숙시켜 주었다.4

2. 수도회의 현실

이 시기를 뚜렷하게 두 시기로 구분하여 생각해보도록 하자. 두 시기 모두 매우 젊은 회원들로 구성된 공동체라는 점이 주된 특징으로 드러난다. 이들은 여러 분원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아직 양성과정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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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시기
1933년 11월 말에서 1936년 6월 13일까지의 짧은 기간에 해당된다. 당시의 분위기를 알기 위해서는 지난 시기에 일어난 몇 가지 사건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921년과 1922년은 알베리오네 신부의 수도회 창립에 있어 역사적인 시기였다. 알바 시에서 여러 장소로 이전해야 했던 남성 수도회와 여성 수도회 두 그룹은 1921년 8월에 성 바오로 광장에 있는 새로운 건물로 이전하게 되었고, 이곳이 그들에게 첫 번째의 진정한 본거지가 되었다. 이듬해, 첫 번째 수도원 건물 곁에 두 번째 건물을 지었다. 동산에 성 바오로께 봉헌된 성당을 건축했는데, 이는 미래의 바오로 성전의 전초지가 되었다. 1921년 10월에 이 성당에서 14명의 첫 바오로인들이 출판 사도직에 전 생애를 헌신하겠다는 약속과 더불어 사적 서원을 했다. 1922년에 같은 성당에서 9명의 첫 성바오로딸들이 출판 사도직에 전 생애를 헌신하겠다는 약속과 더불어 사적 서원을 했고, 1924년 2월에는 8명의 스승예수의제자수녀들이 처음으로 착복식을 했다.
이 복합 건물 전체를 ‘수도원’ 또는 ‘성바오로수도회’라고 불렀다. 1924년에 이미 4개 동이었던 이 건물에 회원이 더 증가한 남성 수도회와 여성 수도회 그룹이 거주했다. 물론 이 두 그룹의 구분은 분명했고, 비록 인쇄기술과 보급기술이 미숙한 젊은이들에 의해 실현되고 추진되었지만 새로운 사도직 사업이 시작되고 발전되었다.
영적·사도적 열정으로 성 바오로께 봉헌된 성전을 건립하기 시작하여 1928년에 축성식을 했다. 이 성전은 수도가족 전체와 협력자들뿐 아니라, 수많은 평신도의 기도의 중심지가 되었다.
바오로적 삶의 이러한 감격스러운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어, 1929년 3월 15일 성바오로딸들은 몬시뇰 주세페 프란치스코 레Mons. Giuseppe Francesco Re 주교에게서 교구 승인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이 교령은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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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딸들과 스승예수의제자수녀들을 단일승인單一承認으로 결속시켰다. 마침내 1947년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는 최종 교구 교령을 통해 성바오로딸수도회와 구별되는 독자적인 수도회로 인정받게 되었다. 1938년 말부터 시작된 두 그룹 사이의 구별을 향한 행보의 결말이었다. 교령이 선포되기 전까지는 계속 한 총원장이 두 그룹을 이끌어 나갔다.5
성 바오로 광장의 본거지에 있는 동안, 바오로딸들은 바오로인들의 여러 그룹과 일치하는 가운데, 창립자에 의해 깊이 새겨진 영적·사도적 열의와 함께 창립자의 가르침으로 양육되었다.
1933년 11월에 바오로딸들은 성 바오로 광장에서 이사하여 산 카시아노San Cassiano 지역에 있는 보르고 피아베Borgo Piave의 두 건물을 새로운 거주지로 삼았다. 당시 그 주변에는 스승 예수 성당이 건립중이었는데, 이러한 복합 건물이 그들의 ‘모원Casa Madre’이 되었다. 성 바오로 광장에 남아 있던 작은 여성 공동체는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으나,6 양성은 ‘이사한’ 자매들과 함께 받았다.
새 수도회의 특징을 창립자는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새 수도회는 빛의 중심, 덕의 중심, 은총의 중심, 기도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7 총원장이 이끄는 공동체는 대부분 젊은 회원들이었는데, 사도직 부서의 젊은 책임자들, 젊은 서원자들과 12세에서 18세 사이의 지원자, 청원자, 수련자 그룹이었다. 그와 같이 구성된 공동체는 나이만 아니라, 회원들의 준비에 있어 특별한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수도회 조직의 정비와 각종 일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했다. 자유시간에도 벽돌 나르는 일,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 밭이나 주방일 등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젊은이들은 사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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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여러 부서, 곧 인쇄, 제본, 창고와 보급소에 힘을 쏟아야 했고, 창립자의 명확한 지침에 따라 편집 경험도 쌓기 시작했다. 곧 내부 회람지 「모원의 메아리Eco di Casa Madre」의 준비, 「파밀리아 크리스티아나Famiglia Cristiana」 잡지의 기사 작성과 인쇄, 각종 서적, 본당 주보 등의 교정과 인쇄 등이었다.
기초적인 공부 외에, 1934년에 이미 20여명의 젊은 서원자들에게 편집을 위한 철학과 신학 공부를 시작하게 했다.8 1936년 2월에 창립자는 성바오로딸들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성바오로딸수도회는 기술분야와 보급분야에만 국한시킬 수 없습니다. 주님은 역사 안에서 능력 있는 저술가들에게 펜을 주셨습니다.”9
한편 알바 공동체는 갈수록 새롭게 변화되었다. 청원자들도 수도복을 입었고, 수련자들은 서원을 하자마자 보급 사도직에 헌신하는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분원으로 떠났다. 지원자의 입회가 늘었고, 젊은 여성들은 영적·수도적 양성을 받는 한편 기술 사도직 실습에 투입되었다.

로마 시기
알베리오네 신부가 1936년 6월 13일에 로마에 도착함으로써 수도회의 본거지를 그리스도교의 중심지에 마련한 시기가 시작되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성바오로딸수도회의 총통솔과 수련자, 그리고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로마로 왔다. 이렇게 해서 1926년에 시작된 로마 분원은 그 면모를 쇄신하여 수도회의 중심, 모든 양성과 각종 사도직 사업에 있어 중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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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리오네 신부와 마에스트라 테클라의 인도로 알바에서 공부를 마친 그룹은 편집 사도직과 일부 서적 출판에 관여하면서 실력을 키워 나갔다. 창립자의 말씀이 그들을 격려하고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성바오로딸수도회의 여러분과 마에스트라들이 직접 쓰거나 교정한 작품을 인쇄하게 될 때 수도회는 진정한 발전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점에 관해 앞으로 몇 년 안에 발전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10
1937년 2월에는 다시 이렇게 쓰고 있다. “출판 사도직은 편집, 기술, 보급 세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합법적인 권위의 으뜸이 되는 지침에 따르면, 수도단체는 외적으로도 산업 형태와 상업적 형태를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따라서 성바오로딸들은 인쇄물, 정기간행물, 서적을 직접 저술하고 보급하면서 편집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입장을 올바르게 고수해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저술가 그룹 구성이 첫 번째이지만, 오랜 기간을 두고 실현시켜야 할 과제입니다.”11
모든 학생은 첫 면학과정을 교황들의 전기를 편집하는 것으로 끝마쳤다.12 1938년 7월에 4명이 인쇄소에 투입되어 이미 일하고 있던 이들과 합쳐 11명이 되었다.13 알베리오네 신부는 모든 책에 실을 서문을 준비했고,14 이러한 결과를 만족스럽게 여겼다. “여러분은 교만과 나태의 마귀를 이겼으며, 일부는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작업 후에 펜을 놓아버릴 위험이 있는데, 여러분의 성소에 부합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사명의 한 부분만 아니라 모든 부분을 모두 […] 수행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참된 부富는 넓은 밭과 수도회의 건물이 아니라, 여러분이 저술하는 서적과 출판물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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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15 
1938년은 편집에 있어 견실한 발전을 보였다. 1월의 보도기사는 새로운 도약을 기뻐하는 감동을 드러냈다. “마침내 우리의 사랑하는 수도회가 프리모 시뇨르 마에스트로Primo Signor Maestro께서 원하시고 염원하시던 이상적인 도장을 찍기 시작하는 순간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특별히 한 자매에게 주어진 은총이 아니라, 여러 지체로 이루어진 신비체로서 수도회에 허락하신 은총으로 여기면서 겸손하게 주님께 감사드리며, 모든 방법을 다해 천상 스승을 따르기 위해 서로 도울 것입니다. […] 그와 같이 우리는 교회 안에 스승 예수님이 당신의 끝없는 지혜로 우리를 위해 기획하셨고, 우리의 프리모 마에스트로께서 아버지요 창립자의 마음으로 열망하셨던 그 자리에 임할 것입니다.”16
젊은 저술가들은 순명이 허용하는 한 펜을 놓지 않기로 결심했다.17 1939년 1월 25일, 그들은 창립자와 함께 성 바오로 대성전으로 가서 (몇 해 전에 바오로인 학생들이 했던 것처럼) 사도에게 아름다운 황금펜을 봉헌했다. 황금펜은 글 쓰는 일의 상징이며, 수료한 공부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또한 “출판 사도직 분야에서 일하겠다는 약속이자 편집, 기술, 보급에 대한 새로운 보호를 요청하는 표시였다.”18

분원 공동체
그러는 동안 분원 공동체들이 크게 확장되었고, 알바 분원과 양성 그룹으로 이루어져 있던 로마 분원에서 파견된 회원들로 더욱 강화되었다. 1928년에서 1936년까지 바오로딸들은 이탈리아에 32개 공동체, 해외에 8개의 공동체를 개설했다. 비록 젊은 사람들로 구성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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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수도회는 괄목할 만한 확장을 보이기 시작했다. 바오로딸들은 용기를 가지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도 새 공동체를 개설했다. 1935년에는 이탈리아에서 프랑스와 폴란드에 공동체를 개설하기 위해 수녀들이 파견되었다. 그러나 우발적인 심각한 이유 때문에 폴란드에 남아 있던 소수의 바오로딸들은 1939년에 이탈리아로 돌아와야 했다. 그 대신 강대국들의 식민지 확장과 정치적 조약에 힘입어 아프리카를 바라보기 시작하여, 3명의 수녀를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파견했다. 파견된 수녀는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 마드레 스콜라스티카Madre Scolastica와 다른 1명이, 그리고 성바오로딸수도회의 프란치스카 루찬테Francesca Ruzzante 수녀였다. 분원은 1949년까지 지속되었다.
1937년, 창립자는 성바오로딸들을 다음과 같이 격려했다. “여러분이 ‘나는 하느님만으로 충분합니다’라는 생각으로 홀로 걸을 줄 알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여러분이 원하는 곳으로 여러분을 파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자매가 아직 혼자서 잘 지낼 줄 모를 경우, 그 자매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가까이 있게 하는 것은 장상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무에서 빨리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선교를 떠나고 싶습니까? 어디로 가고 싶습니까? 중국이나 일본으로 가고 싶습니까? 누군가 자바 섬으로 가고 싶다고 하기를 저는 열망합니다. 이탈리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아주 작은 그 섬은 인구밀도가 아주 높습니다. 총인구가 3천6백만 명(1평방킬로미터당 300명의 비율)이고 거의 모두가 이슬람교도, 곧 모두가 완전히 이교도입니다.”19
1937년 초에 3명의 자매가 중국으로 떠났다. 2월 12일에 “자매들은 상하이에서 한커우(중국)로 향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20 그런데 전쟁이 이 3명의 선교사에게 중국을 떠나도록 했기 때문에 그 모험은 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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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로 끝내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탈리아로 돌아오지 않고, 이미 성바오로수도회 회원들이 있는 인도에 공동체 개설을 시도했다. 1년을 기다렸으나 지역당국의 체류허가를 받지 못하여, 1938년 콘테 롯소Conte Rosso에서 마닐라로 가는 배를 타게 되었는데 이 배는 마닐라에서 거행되는 성체대회에 참석하러 가는 순례객을 태운 배였다. 그렇게 필리핀으로 옮겨가 그곳에서 제2차 세계대전(1941-1945)이라는 끔찍한 시련을 겪은 다음, 마침내 필리핀 군도에 뿌리내릴 수 있게 되었다. 
1939년에는 해외 공동체의 원장들이 창립자와 프리마 마에스트라와의 만남을 갖기 위해 로마로 초대되어 수도회의 발전에 대해 숙고하고, 체험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 경청하고 대화를 나누는 이 만남의 기회는 큰 열정을 촉진시켰다. 지평이 넓게 열렸으며, 마음은 세계를 향한 열정으로 넘쳤다.
1939년 말경 성바오로딸수도회,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 사목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1938년에 탄생한 선한목자예수회수녀회를 하나의 수도회로 묶어 승인받기 위한 청원서를 한 번 더 제출했다. 그해 말 창립자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여러분에게 감사하고, 여러분과 축하를 나누기 위해 이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성년聖年! 온 마음을 다해 여러분에게 부탁드립니다. 사도직은 셋이지만, 길 진리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봉사는 하나입니다. 모든 사도직에는 마에스트라가 있지만, 프리마 마에스트라는 한 분뿐입니다. 각 사도직마다 매력적인 일들과 힘든 일들이 있겠지만, 길 진리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각 사도직을 위한 은총과 위로가 있습니다.”21 이 내용은 1939년 세 분야의 사도직을 갖춘 수도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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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바오로딸들은 아직 큰 보살핌과 양성이 필요했으므로 알베리오네 신부와 마에스트라 테클라가 자주 방문하여 그들을 비추고, 경청하고, 인도하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여러 차례 대피정을 실시했다.

3. 강 의

이 시기에 창립자가 알바와 로마 공동체에서 행한 강의는 자매들이 꼼꼼히 기록했으므로 우리에게 전해졌다. 그 내용은 여러 기회를 통한 조언과 월피정과 대피정에서 한 묵상들이다. 대부분의 강의는 회람지 형태로 곧바로 분원으로 발송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공동체에 시의적절하게 도달하여 모든 자매가 읽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이 시기의 창립자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도 도달한 것이다. 그것은 1) 내부용은 등사본이나 내부 회람지와 소책자로 인쇄된 두 권의 책자로 보존되었다. 2) 하느님 백성들에게 널리 보급하기 위해 1937년, 1938년, 1939년에는 내용을 손질하여 한 권으로 모았다.

내부용 강의
다음과 같은 형태로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1934년: 스물여섯 차례의 강의와 묵상이 주어졌다. 분명히 분량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1935년: 열네 차례의 다양한 강의와 조언, 한 차례의 피정, 4월과 8월에 행한 대피정의 풍성한 강의가 담긴 한권의 책이 주어졌다.23 성바오로딸들이 첫 번째로 출간한 이 책은 창립자의 말씀으로 자양분을 섭취하고 싶어하는 분원 자매들의 열망을 충족시켜 주기 위한 것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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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창립자는 수도회의 특징을 제시하려 했다. “이탈리아에 있는 모원의 역사는 다른 많은 국가에서 되풀이되어야 할 것입니다. 곧 해외에 있는 다른 분원도 원칙적으로 알바 모원에서 한 것과 같은 모습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국가라고 부르게 될 나라들의 중심에서도 이탈리아에서 수녀들이 행했던 것처럼 모든 도시로 퍼져나갈 것입니다. 결국 모원과 분원에서 같은 일들이 행해질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국가란 동일한 언어를 말하며, 비교적 동일한 관습을 가진 인접 지역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분원은 볼리비아, 칠레, 콜롬비아,24 파라과이25를 포함하여, 아르헨티나까지 하나의 국가로 간주하게 됩니다. 남아메리카의 모든 국가가 스페인어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26 
알베리오네 신부의 이러한 가르침에서 청중의 연령과 수준에 적합한 언어를 사용하는 등, 삶의 전반적인 측면으로 확대되는 완전한 바오로적 양성을 불어넣고자 아버지다운 마음으로 염려했음을 보게 된다.
1936년: 이 해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다섯 차례의 강의만 남겨졌다. 우선 미국 공동체를 방문하느라 마에스트라 테클라가 여러 달 동안 자리를 비웠고, 알베리오네 신부는 6월 13일에 로마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알바 성바오로딸들의 공동체는 같은 해 10월 25일에 축성된 스승 예수 성당27 건립이라는 막중한 일을 해내야 했다.
젊은 원장들과 아직 서원을 하지 않은 많은 젊은 회원들이 참석한, 9월 26일에서 10월 4일까지 로마 분원에서 있었던 대피정에서 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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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차례의 강의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이 대피정에서 창립자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의 이번 피정 강의를 제가 하게 되기를 바랐는데, 여러분의 수도회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 제가 보기에 여러분이 진보한 것으로 보이는 사항과 퇴보했다고 생각되는 한두 가지 사항을 여러분에게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28
대피정 강의 부록에 “성경에 관한 짧은 가르침”을 옮겨놓았다.29
10월 대피정 후에, 창립자는 몇 가지 중요한 변화를 단행했다. 곧 총원장 직책을 맡고 있던 마에스트라 테클라에게 모원을 떠나 로마로 거처를 옮기게 했고, 학생 그룹과 수련자 그룹도 로마로 이전했다. 이렇게 해서 로마 분원은 1936년 11월부터 성바오로딸수도회의 명실상부한 중심 본거지, 곧 총원이 되었다.
1937년: 이 해에 알베리오네 신부는 특별한 이유에서 로마 공동체만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다. 그 때문에 내부 회람지는 분원이 기다리고 있는 매달 정보를 전달하는 소중한 통로가 되었다. 이 해의 강의는 아주 다양하고 풍성했다. 사순절 동안 창립자는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곱 가지 말씀”을 주석했다. 5월에는 마리아를 주제로 한 묵상이 주된 내용이다. 이 강의는 「우리의 희망이신 마리아Maria nostra speranza30 첫 권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내부 회람지를 통해, 창립자가 대피정에서 직접 강의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월 30 ― 4월 7일에 행한 대피정에는 이탈리아의 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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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중부 지방의 많은 수녀들뿐 아니라 북부지역의 수녀들도 참석했습니다.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시뇨르 프리모 마에스트로는 (자주 그랬던 것처럼) 아침 강의를 직접 해주셨고, 다른 부분은 시뇨라 프리마 마에스트라Sig.ra Prima Maestra가 하셨습니다. 대피정에 참석한 대부분의 수녀들과 청원자들, 그리고 지원자들이 얼마나 선의에 차 있었는지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대피정에서 많은 위로를 받고, 변치않는 결실을 맺도록 축원합시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러한 은총을 내려주시기를!”31
7월의 대피정은 특히 의미있는 것이었다. 내부 회람지는 다음과 같이 전해준다. “강의의 특별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매일 복음에 따른 예수님의 삶에 대해 시뇨르 프리모 마에스트로는 정말 아버지다운 마음으로 말씀하시면서 실천적인 사항을 상세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시뇨라 프리마 마에스트라도 정기적으로 훈화를 해주셨습니다. […] 대피정을 동반하시면서 보여주신 선의는 위로와 함께 좋은 결실을 맺게 해주었습니다. 모든 중요한 일들 중에서 더 중요한 이 대피정이 더욱 큰 결실을 맺도록 스승 예수님께 다함께 기도하며 축원합니다. 또한 장상들을 위한 이 대피정에서 받은 은총이 다른 자매들에게도 전해지기 바랍니다.”32
11월 20―29일에 행한 대피정에는 “여러 분원에서 온 자매들과 수도서원을 앞둔 수련자들이 참석했습니다. 평상시와 달리 이번에는 시뇨르 프리모 마에스트로께서 아침과 저녁에 묵상을 해주셨습니다. […] 이러한 창립자의 동반으로 더욱 풍성했던 은총이, 매일의 생활과 사도직에서 잘 열매 맺도록 기도하며 축원합시다.”33
불행하게도 이 대피정 강의는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1938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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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정과 1939년의 대피정 강의도 역시 찾아볼 수 없다. 1938년 4월의 내부 회람지에 실린 보고에 의하면, 이 모든 자료는 출판계획에 따라 잘 정리되고 보존되다가 연이어 출간된 서적들 안에 포함된 것으로 추정된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많은 교육을 필요로 하는 젊은 수녀 그룹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그들에게 필요한 기본적 교육만 아니라, 앞으로 편집 분야에서 활동해야 함을 이미 내다보고 있었다. 따라서 사도직을 위해 필요로 하는 중요한 면학의 의무를 잘 수행하도록 재촉하면서 청중이 미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도 했는데, 그는 저작물을 통해 “교회 안에 자리”34를 잡도록 부르심 받은 이들 안에 그 말씀을 각인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는 미래의 저술가들을 위해 잘 설비된 도서실이 마련되기를 원했고, 1934년에 보르고 피아베의 새 보금자리가 자리를 잡자마자, 프리모 마에스트로의 지침에 따라 가능한 모든 종류의 서적을 구비한 도서실을 널찍한 공간에 마련했다.35 내부 회람지 8월호에는 도서실을 위해 도서 기증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전략을 새웠다고 보고한다. “우리에게는 특별히 과학서적과 고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교부들의 작품이 필요합니다. 그런 도서를 구입했지만 단지 장식품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르니 가족들에게 그리고 방문선교 중에 본당신부들에게 알아보십시오. 하느님의 계획을 쉽게 알아듣는 이들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것은 이미 이루어졌으므로 큰 공헌을 한 훌륭한 자매들에게 감사합시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일들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는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더 큰 영광과 영혼의 선을 위해 이루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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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록, 우리는 기도로 여러분의 노력에 협력할 것입니다.”36
1938년: 여러 가지 강의가 주어졌지만, 그 양은 많지 않다. 겨우 아홉 차례의 묵상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알베리오네 신부의 특별 강의가 하느님 백성에게 제공될 것이다. 그 강의는 전례, 마리아, 예수님의 생애, 기도 등의 주제별로 나뉘어져, 몇 권의 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1939년: 이 해에도 역시 이미 실시된 대피정 강의에 대한 정보가 보존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알베리오네 신부가 5월에 대피정 강의를 특별한 애정으로 행했다는 것만을 알 뿐이다.37 그 대피정에는 이탈리아의 분원과 해외 분원의 원장들이 처음으로 참석한 것이 특별했다고 한다.

대중을 위한 모음집
1935년의 「대피정과 월피정Esercizi e Ritiri」 1권 입문에서 말하고 있듯이, 창립자는 자신의 강의를 손질하여 발간할 생각이었다. 발간 책임은 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가 맡아 대중에게도 보급할 수 있는 형태로 출간되었다. “[…] 하느님이 좋아하실 만하고, 신자들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수정된 다른 출판본도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조직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은 1938년부터였다. 1938년 내부 회람지 4월호가 전하는 정보는 흥미롭다. 내용 전체를 인용해 본다.
“요즘 어떤 분원에서는 시뇨르 프리모 마에스트로의 새로운 묵상과 강의가 너무 늦게 도착된다고 불평을 합니다. 다른 분원들도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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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를 보내지는 않았지만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 우리는 여러분의 열망도 이해하지만, 우리의 입장에 대해서도 변명을 해야 하겠습니다.
지난 1월에 여러분에게 발송한 마지막 강의부터 오늘까지, 시뇨르 프리모 마에스트로께서는 우리에게 더 많은 묵상을 해주고 싶은 원의에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에게 그 묵상들을 보내지 않습니까?’ 하고 묻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만, 이유가 있습니다. 대피정 중에 해주신 묵상이 하느님 보시기에 더욱 훌륭하도록 그 대피정이 끝나자마자 묵상집으로 발간될 계획이므로, 모든 강의 내용을 손질하고 교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1) 그중 한 권은 금년 주일 전례 묵상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주일묵상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순 제4주간까지의 묵상이 준비되어 있고, 계속 전례력을 따라 작업하고 있습니다.
2) 다른 한 권에는 성모님의 각종 축일에 관한 묵상이 실려 있습니다. 지금까지 열 차례의 묵상이 준비되어 있고, 다른 이십 차례의 묵상이 뒤를 이을 예정입니다.
3) 마에스트라들을 대상으로 한 작년 대피정에서 행한 매일 복음이 포함된 예수님의 생애에 관한 묵상도 빨리 책으로 엮을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위해 지금까지 세 차례의 묵상이 준비되어 있고, 가능한 한 다른 묵상도 곧바로 이어지도록 할 것입니다.
4) 기도에 관한 최근의 대피정(지난 2월 2-10일) 강의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묵상은 「기도해야 합니다Oportet orare」의 제2권으로 나올 것입니다. 우리는 완전한 교정을 끝낸 다음 출판하기 전에 이 묵상을 내부 회람지를 통해 여러분이 먼저 볼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가 여러분을 기다리게 하더라도 인내해 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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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열망에 부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일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주십시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다른 묵상이 있다면 곧바로 여러분에게 보낼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성 요셉 축일에 대한 묵상서 출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38

계획은 잘 실현되어 부분적이긴 하지만 책이 출판되었다.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È necessario pregare sempre」(로마, 1940년)는 이 책은 성바오로딸수도회를 대상으로 1938년 2월에 로마에서 행한 대피정 묵상(강의)을 모은 것이다. 

「우리의 희망이신 마리아Maria nostra speranza」 제3권은 성바로로딸수도회 콘체티나 보르고뇨Concettina Borgogno 수녀가 엮은 것으로, 1937년, 1938년, 1939년 5월에 행한 마리아에 관한 강의를 모은 것이다.39 제3권은 이탈리아 분원과 해외 분원의 모든 장상이 참석한 1939년 5월 대피정 강의를 모은 것이다. 내부 회람지는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대피정이 시작되었고, 우리 모두를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줍니다. 은총으로 충만한 소중한 날들이었습니다. 성모님과 일치하여 평온과 잠심 가운데 지냈습니다. 시뇨르 프리모 마에스트로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cum Maria Mater Jesu”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특히 예수님의 유년기, 사생활과 공생활에서 우리의 좋으신 어머니가 우리에게 남겨주신 아름답고 실천적인 가르침을 알려주셨습니다. 이 가르침의 요점을 정리하고 손질하여, 성모님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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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름다운 특별한 책으로 엮으려고 합니다. 조만간 마리아에 관한 아름다운 강의 모음집을 받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40

「연중 매일 짧은 묵상Brevi meditazioni per ogni giorno dell’ anno」 제2권(1948년)은 창립자에게 전달된 전례력과 예수님의 생애에 관한 묵상 모음집이 두 권으로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 재판(1952년) 때에는 성바오로딸수도회의 로사리아 비스코Rosaria Visco 수녀가 성경 본문을 삽입했다.

II. 현재의 출판본

이 모음집에는 위에서 인용한 창립자의 강의를 손질하여 대중에게 알맞게 만든 책은 포함되지 않았다. 여기서는 단지 알베리오네 신부가 강의하는 동안 기록한, 내부용 성격이 짙은 강의만을 수록했다.

1. 비평 기준

당시의 즉각적인 요청으로 이루어진 각 모음집의 본문과 구성을 검토해 볼 때, 출판본을 준비하는 데 아주 엄격한 비평 기준을 채택하고 따랐음이 드러난다. 이러한 비평 기준은, 책 안에 들어 있는 창립자의 사상이 전체적이고 신빙성 있음을 전제하는 가운데 읽도록 해준다.
  1) 이미 책으로 출간된 것과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연대순을 따랐다.
  2) “여러 가지 묵상Meditazioni varie”이라는 제목 아래 앞서 출간된 타자원고로 된 본문을 수용했기에, 묵상이나 강의의 구조가 원본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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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다. 그리고 분명하게 창립자의 것으로 판명된 의미 있는 짧은 글도 포함되었다.
  3) 모든 대피정의 다양한 묵상 앞에 짤막한 안내글을 실었다. 안내글에는 대피정의 날짜, 장소, 대상자, 주제와 목적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밝혀두었다.
모음집은 연도에 따라 여섯 부분으로 세분된다. 1933년 말에 행한 두 차례의 묵상은 1934년의 묵상 안에 포함시켰다.

2. 자 료

1934년, 50세를 맞은 알베리오네 신부는 성숙의 절정에 이르렀지만, 그의 말을 경청하는 공동체는 아주 젊었다. 그는 그 젊은 공동체에 맞추고자 했고, 그 결과로 강의 내용의 다양한 면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길어낸 원천에 대한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 이런 면에서 수도생활의 가치와, 특히 바오로적 성소의 가치를 깨닫고 배울 필요가 있는 양성기의 사람들을 위해 권고하고 바로잡아주는 아버지의 모습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41
구술口述된 내용에서, 창립자는 분명히 자신의 생각에서 파생된 것이더라도 오직 바오로 가족의 영적·사도적 성장을 목표로 삼았음을 본다. 원천이 정확하지 않은 경우는 거의 기억에 의존해서 인용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가 읽은 작품 또는 인쇄중인 작품에서 단서를 얻은 경우에도, 그는 성바오로딸수도회를 염두에 두고 자유자재로 그 내용을 풀어나가, 바오로딸들이 공동체 안에서 또 사도직에서 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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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적용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했다. 가장 선호하는 내용은 성 알폰소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 일부 저자의 책들이 대피정 강의의 배경이 되었음을 보게 된다. 특히 성 알폰소의 영향이 큰데, 그의 작품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의 실천Pratica di amar Gesù Cristo」과 알폰소 학파의 「영적 일기Diario spirituale」가 부각되고 있다. 또한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필로테아La Filotea」,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Gli Esercizi spirituali」, 천상 스승께서 모든 덕을 가르치신 ‘제단cattedra’ 위의 성체성사를 소개한 성 피에트로 줄리아노 에이마르Pietro Giuliano Eymard의 영향도 드러난다.42 「준주성범Imitazione di Cristo」의 인용 또한 자주 등장한다. 1936년 10월 대피정에서 알베리오네 신부는 교회규범에 대해서, 「수도자 신분Stato religioso43을 그대로 따랐음을 보여준다. 입문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1929-1932년, 성바오로수도회 수련자들에게 행한 수업을 정리한 것입니다. […] 유사한 다른 간추린 책도 있지만 […] 이 책은 성바오로수도회의 수련자들을 위해 썼다는 고유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립자가 늘 강조한 목적, 곧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Donec formetur Christus in vobia”에 따라 회원의 지성 의지 마음을 양성시키기 위해 아주 적합한 책임을 알 수 있다.
선별한 출판 분야의 영향: 알베리오네 신부는 바오로 가족의 초기 10년 동안 복음과 교회의 영원한 가르침이라는 일정 부분에서, 세상에 제공해야 하는 메시지 형태를 명확하게 드러냈다. 강의에서 자주 인용한 책은 성바오로딸들이 번역하고 있거나 출간중이던 교부들과 교회 학자들의 작품이었다. 이처럼 바오로적 삶의 구성요소는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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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생활과 공동생활, 사도적 삶 등 여러 차원을 상기시키며 상호 통합시켰고, 특수 출판에 의해서도 자극을 받았음을 보게 된다.
성바오로딸들에게 끊임없이 제시하고 제안한 책들은 내부 회람지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복음, 성경, 성 바오로 서간, 시뇨르 프리모 마에스트로의 저서들, 성 알폰소,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와 성 이냐시오, 로드리게스Rodriguez 등의 저서들”44 같은 풍부한 출판물 가운데, 창립자는 특히 그가 나누어주고 싶어한 영적·신학적 양성 형태에 부응하는 일부 작품들을 선별하여, 묵상과 영적 독서로 추천하면서 강의 중에 그 내용을 해석했다. 한편 다음의 저자들, 곧 성 아우구스티노, 성 베르나르도,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와 교부들의 귀감과 일화에서 풍성한 자료를 길어냈으며, 창립자는 이를 아주 풍요롭게 재해석했다. 여기서 성바오로딸들을 계속 성인들과 교회 성성의 배움터로 인도하려는 의도를 잘 볼 수 있다.”45

3. 문학양식과 언어

이 강의집은 특별한 문학양식에 따라 분류하기는 어렵다. 강의는 구두 의사소통의 성격을 띠기 때문에 즉시성과 자발성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교류방법은 수련자, 서원자, 원장 등 대상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고, 또 기록한 사람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나 다양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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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특정 그룹의 사람들과 대화하는 아버지의 사랑과 권위를 알아차릴 수 있다. 그들은 정신으로 이어진 딸들이므로, 그는 그들을 바오로적 성소로 이끌고, 한층 더 성장하게 도와야 한다는 강한 책임감을 지닌다. 그럼에도 교의신학과 수덕신학적 내용은 그 시대의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때때로 그는 딸들의 손을 잡고 바오로적 삶의 오솔길을 걷게 해주며, 시대적 요청, 기쁨, 어려움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그러나 권위나 책임을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혹독해 보일 정도의 엄격함을 보이는 아버지가 된다. 수도회의 여정이 아직 분명하지 않을 때에도 망설이거나 타협하지 않는, 온전한 일관성을 요구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그는 자신의 가르침이 그들의 마음에 깊이 파고 들어가 그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도록 부추기며,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사람으로서, 그의 언어는 교리적이며 교육학적이다.
비록 꾸밈이 없지만 창립자의 언어는 언제나 듣는 이들에게 확신을 주는 힘이 있다. 이 책을 읽고 묵상하면서, 전체적 짜임새 안에서 규범이 되어주는 모습과 함께 모든 시대, 모든 문화를 아우르는 알베리오네라는 인물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예언자적·관상적 통찰이 잘 맞춰진 ‘모자이크’처럼 빛나는 것을 볼 수 있다.

4. 영적 원천

수도생활과 영성생활을 시작한 자매들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거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이 몇 년 동안의 강의에서, 참되고 고유한 핵심을 가려내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묻게 된다. 서로 성격이 다른 많은 대피정 과정이 이 시기에 있었지만, 연대기적으로는 세 차례의 강의만이 우리에게 인쇄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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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의록의 주제는 다양하다. 그럼에도 전체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길잡이를 발견할 수 있다. 곧 그리스도교 영성에 대한 깊은 인식과 길 진리 생명이신 스승 예수를 그 인식의 중심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창립자는 이렇게 말한다. “프란치스코회 회원들은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공경을 널리 보급시켰고, […] 특히 사랑의 주제를 선택했습니다. 도미니코회 회원들은 진리를 선택했습니다. 모든 수도회가 그들 나름대로 공헌했습니다. 여러분의 특징은 길 진리 생명이신 예수님에 대한 경외심이 신심으로 요약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교회에 무엇인가를 주어야 하는데, 길 진리 생명이신 예수님 전체를 주는 것입니다.”46
길 진리 생명이신 예수께 대한 신학적 통찰은 스승과 함께 밀접한 친교를 이루게 하는 ‘신심’ 또는 자기 증여로 드러난다. “우리 영혼 전체, 곧 지성 의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경외심입니다.”47
알베리오네 신부는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달리고 있습니다.”48라는 바오로의 말씀을 자신의 것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이 말씀을 성바오로딸들과 바오로 가족에게 하나의 자극제로 전해 준다. 그 자극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멈추지 않고 늘 앞을 바라보며, “한층 더 빛을 받고 더 지혜롭고 더 강해져, 자기 목표를 향해 빠르게 달리는 기차처럼 계속 네 바퀴로 균형 있게 나아가라.”49고 권고한다. 그러므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걱정할 것이 아니라 “진정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50에 대해 생각하라고 한다. “수도회의 정신에 따라 언제나 앞으로, 언제나 변함없이”51 나아가라는 것이다. “여러분의 정신은 훌륭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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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 전념하십시오. … 정신을 그릇되게 하지 않는 가운데 수도회와 일치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52

종말론적 전망에서 본 영적 역동성
이러한 전망에서 이 책의 내용에 다가갈 때 몇 가지 역동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 역동성은 온 존재가 천상 스승의 발자취를 따라 하느님과 복음화를 위한 활동에 투신하는 사도로 양성되는 길을 안내해 주고 도와준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젊은 수녀들이 수덕을 통한 성성을 지향하는 확고한 길로 나아가게 한다. 그 수덕이란 “공동생활에서 서원을 준수하게 해주는 믿음, 희망, 사랑에 있어 매일 진보”53하게 하는 자유로운 훈련이다. 모든 기회를 통해 이를 강조했다. “여러분이 말할 때 ‘예’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단순함과 솔직함의 특징을 잘 보존하십시오. … 그 특징을 간직한 채 세상을 두루다니는 … 성바오로딸들이 되십시오!”54 세상의 모든 상황은 지혜, 마음의 수호, 겸손과 극기를 비추어 주는 좋은 기회이다.55 수덕을 향한 길을 가는 젊은 수도자들의 발걸음은 그리스도교 종말론적 빛으로 지탱된다. “죽음은 좋은 조언자입니다. … 준비합시다.”56 우리의 모든 행적이 주님 앞에서 드러나리라는 생각은 “받은 탈렌트를 잘 활용하고”,57 “심판받지 않기 위해 심판하지 않게” 합니다. 그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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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오직 천국만이 확실해집니다. 하늘로 오르시면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하셨습니다.”58 그리고 우리에게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위의 기쁨으로 들어가라.”고 초대하십니다.
창립자는 서원에 관해, 공동생활과 영적 지도에 관해, 그리고 교회법에 따른 수도생활의 요소도 적절하게 소개하면서 성바오로딸들의 양성을 완성한다. “수도회의 가치는 여러분 모두가 지키는 순명 정신에 달려 있습니다.”59라고 하면서, “지성을 다해 … 마음을 다해 … 활동을 할 때 순명해야 합니다.”60라고 강조한다. “수도자의 영혼은 마음이 갈라지지 않도록, 곧 예수님을 위해 마음을 온전히 보존해야 합니다. 마음뿐 아니라 지성과 의지의 순수한 힘도 그분을 위해 보존해야 합니다.”61 또 다음과 같이 재차 강조한다. “수도회는 가난할 때 정신을 잘 보존합니다.”62 “사도직은 여러분의 제대입니다. 그 제대 위에서 여러분은 영혼들에게 강의하면서 희생 제사를 바치고, 그 강의로 생계를 유지해야 합니다.”63 “공동생활은 생각의 일치, 목표의 일치 …, 기획의 일치, 정신의 일치를 포함합니다. … ”64 “여러분의 부르심을 확인하는 영적 지도는 지혜로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수도회에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65

사도적 역동성
모든 양성이 겨냥해야 할 과녁은 “예수님과 사도들의 사도직을 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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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66 바오로딸 사도가 되는 것이다. 이 시기의 알베리오네 신부의 강의는 특수 사도직의 세 단계, 곧 기술, 보급, 편집에 대해 다루면서 특히 편집을 강조했다. 편집을 위해서 “공부와 훈련이 필요합니다. 금년과 지난 몇 년 동안 여러분은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걸음을 걸었습니다. 기술에 있어서도 … 보급을 열정적으로 실천하십시오. …”67 창립자는 학생수녀들에게도 가르침을 주었다. “우리가 저술하는 내용은 하느님 말씀에 관한 것이어야 하므로, 그분을 더 닮아야 합니다. 우리의 출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소개하신 것을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그분은 자신을 길 진리 생명이라고 정의하셨습니다.”68
“여러분의 사도직에 대해 믿음을 가지십시오. 사도직이 영혼을 구원한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믿음과 겸손은 여러분의 내적 삶을 키워줍니다. … 여러분의 사도직의 생명은 하느님이시지만, 여러분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하느님은 사도직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지 않으실 것입니다.”69 사도직의 넋은 복음의 원천, 성사와 바오로인의 기도에서 길어낸 내적 삶이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강의에서 바오로딸들은 무엇보다 길 진리 생명이신 스승 그리스도를 사는 사도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 여러분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드러나도록 한층 더 예수님을 본받으면서 매일의 삶을 성화시키십시오.”70 그리스도를 산다는 것은 사도 바오로가 해석한 그리스도를 사는 것이어야 한다. “성 바오로의 모든 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 그분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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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사십니다.’라고 단언하십니다. 그분은 예수님밖에 몰랐으므로 자신의 강의를 예수님으로만 가득 채우셨습니다.”71 바오로딸은 사도적 마음으로 마리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마리아는 “모든 시대의 사도들의 모범이십니다. 그분은 예수님을 세상에 주셨습니다. 우리 또한 출판물을 통하여 그분을 줍시다.”72 
이 시기의 여러 강의에서 알베리오네 신부는 자주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곱 가지 말씀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에 대한 숙고와 성 요셉에 대해, 수호천사에 대해, 연옥영혼에 대해 신뢰를 가지도록 했는데, 그것은 대중적 신심을 수도회 정신 안에 담아 전수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
내적 삶은 기도의 여정과 개인의 과업을 열심히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지성을 성화시키면서, 매일 믿음과 초자연적 생각을 성장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의지를 성화시키면서 매일 예수 그리스도의 삶, 그분의 귀감, 그분의 계명, 그분의 가르침과 일치해야 합니다. … 우리는 마음을 성화시키면서 매일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기도의 정신과 은총을 성장시켜야 합니다.”73
성사생활은 이 시기의 강의에서 부각되는 또 다른 측면이다. 화해성사, 특히 성체성사, 곧 미사, 영성체, 성체방문을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 “여러분은 성체방문에 충실하십시오. 성체방문은 모든 신심실천을 요약해줍니다.”74
알베리오네 신부는 스승 그리스도의 신비에 전념하기 위한 방법으로 ‘길 진리 생명의 방법’을 제시한다. 이 방법은 그리스도께 대한 전적인 투신을 위한 영적 태도로 전 인격, 모든 신심실천, 모든 사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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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창립자는 이 방법을 절대화시키지 않도록 가르침을 준다. “우리는 전반적으로 이를 활용해야 하지만, 성당에 들어가면서 이미 마음이 예수님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오로지 감실을 바라보는 눈길만으로도 우리 안에 큰 애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므로 우리는 흡족해하면서 우리의 성체방문을 차분하게 계속해야 합니다.”75 방법이 아니라 “신심이 우리 삶에서 첫 자리를 차지해야 합니다. 다른 모든 의무는 그 뒤를 따릅니다.”76

III. 일러두기

  1. 원문과 긴밀한 연결을 유지하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이미 책으로 출간된 묵상이나 대피정에 대해서는 원문을 직접 언급할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해 해당되는 책의 제목을 표시했다. 책의 본문 가장자리에는 원서의 쪽 번호를 기입했다. 쪽 번호가 문장 가운데서 시작될 때에는 세로획 ‘┃’으로 표시했다.내부 회람지와 팸플릿으로 인쇄되었거나 타자원고로 된 여러 가지 묵상은 아라비아 숫자로 표시했고, 이와 구별하기 위해 대피정 강의는 로마 숫자로 표시했다.

  2. 이 모음집의 원문에는 앞선 모음집에서 사용한 ‘강의’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다만 제목만 나오거나 또는 묵상의 제목 앞에 숫자를 표기했다. 원문에 나오는 숫자가 생략되었을 때는 형태를 일관되게 유지하기 위해 추가했지만, 본문을 무겁게 만들지 않기 위해 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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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추가는 연대순 색인에서 대괄호로 표시했다.

  3. 본문은 꼭 필요한 만큼만 손질했다. 원문에서 찾을 수 없을 경우에는 제목을 넣었으며, 관련이 없다고 판단될 때는 제목을 바꾸었다. 어떤 경우에는 동일한 강의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서로 너무 달라 주제를 구별하기 위해 소제목을 넣었다. 그밖의 경우는, 문장 안에서 대문자와 소문자의 통일을 기했고, 악센트나 이중 모음으로 끝나는 경우 현재 통용되고 있는 형태를 적용했으며(예를 들어 “principii”는 princìpi, “martirii”는 martìri 등), 숫자가 생략되거나 부족한 요소는 보완했다. 수정작업 부분은 필요한 경우 대괄호로 표시했다. 때로는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다루고 있는 주제를 세분하기 위해 로마 숫자를 유지했다. 일부 단어는 그 시대의 용법을 반영하기에 통일시키지 않았다. 예를 들면, “obbedienza와 ubbidienza”(순명), “divozione와 devozione”(신심) 등이다.
라틴어 본문을 충실하게 유지하기 위해 번역을 각주에 실었고, 때로는 수정도 했다.(역주: 한국어판에서는 라틴어 번역을 본문에 싣고 라틴어를 각주에 실었다.)

  4. 문법상의 오류, 예를 들어 문장의 일치가 어긋나거나, 오자가 분명하거나 틀린 맞춤법은 수정했고, 원서를 각주에 인용했다. 이해에 의혹이 생길 때는 약어로 보완했다. 이해하기 어려울 경우에만 구두점을 수정했다. 예를 들어 많은 쌍점, 직접화법 문체일 때는 따옴표 (“ ” 또는 《 》)를 제거했고,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따옴표를 그냥 두기도 했다. 겹화살괄호(《 》)는 인용할 때만 사용했다.(역주: 이 책에서는 한국의 알베리오네 전집Opera Omnia 표기 원칙에 따라 인용문은 모두 따옴표로 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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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정보 제공 차원에서 성경구절, 주변 상황, 사건, 인물, 원천 등에 관련된 역사적 자료를 각주에 실었다.

  6. 독서를 쉽게 하도록 여러 가지 각주를 첨부했다. 성경구절, 영명축일, 인용한 서적의 참고문헌, 분석적·연대적 색인 등을 원서와 함께 표기했다.

  7. 작품의 인용은 다음과 같다. 성바오로딸수도회 + 연도 + 이 책의 쪽 번호(예: FSP 34, p.97).그 대신 연구의 목적으로 원서를 언급해야 할 때는 입문에서 사용한 비평 기준을 따랐다. 곧 제목(ER) + 빗금(/) + 연대 + 여백에 표시한 쪽 번호(예: ER/aprile, XIII, p.130).

  8. 성경 각주와 라틴어 본문에 대한 이탈리아어 번역은 「예루살렘 성경Bibbia di Gerusalemme」을 참조했고, 의미를 규명하기 위해 가끔 라틴어성경을 참조했다. 「준주성범Imitazione di Cristo」은 1992년 성바오로딸수도회에서 출간한 것을, 다른 자료의 인용은 가능한 한 바오로 출판사에서 출간한 자료를 사용했다.

성바오로딸수도회
국제 영성 사무국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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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장 활발한 협력자들 가운데에는 신학교 시절부터 알베리오네 신부의 소중한 협조자였던 프리에로 주세페(Priero Giuseppe) 추기경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학자들 사이에 포함될 나탈레 부씨(Natale Bussi) 신부가 있다.

2 Negro D., 「주세페 프리에로, 이 땅의 예언자Giuseppe Priero, profeta della nostra terra」, Piemme, Torino 1995, pp.55-56 참조.

3 CI, 3[1939]4 참조.

4 1934년 여러 가지 묵상 “15.성 바오로 축일”; 「대피정과 월피정Esercizi e Ritiri」, 1935년 4월 대피정, “X.바오로 정신에 따른 사도직”과 “XI.사도직: 편집, 기술, 보급”; 1936년 10월 대피정-장상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Spirituali Esercizi. Istruzioni alle Maestre. “XVIII. 성체방문과 미사성제에 적용한 길 진리 생명 방법” 참조.

5 Martini C. A., 「성바오로딸수도회 역사」(서울 - fsp), 183쪽 참조.

6 UCAS, 11-12[1933] 20-21.

7 EC, 1[1934] 1 참조.

8 Boffa G.,「창립기간(1915-1971) 성바오로딸들의 면학과 편집. 기억과 문서들Gli studi e la redazione delle Figlie di San Paolo nel periodo fondazionale(1915-1971). Memorie e documenti」, Casa Generalizia F.S.P., Roma 1990, pp.24 이하 참조.

9 CVV 56 참조.

10 Alberione G., 「대피정-마에스트라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Sprituali Esercizi. Istruzioni alle Maestre. 1936년 10월」, II, p.410 참조.

11 UCAS, 2[1937] 37.

12 Boffa G., Gli studi e la redazione…, o.c., p.80.

13 상동, pp.81. 95 참조.

14 CVV, 72 참조.

15 상동.

16 CI, 1[1938] 1 참조.

17 CI, 8[1938] 2 참조.

18 CI, 2[1939] 2; UCAS, 3[1939] 64 참조.

19 1937년 여러 가지 묵상 “3.나는 하느님으로 충분합니다”

20 EC, 2-3[1937] 2 참조.

21 CVV, 76 참조.

22 Martini C. A., 「성바오로딸수도회 역사」(서울 - fsp), 365-372쪽 참조.

23 EC, 4[1935] 1; 9[1935] 1 참조.

24 원문에는 Culumbia로 되어있다.

25 비록 전쟁 후까지 기다려야 했지만 칠레(1948), 페루(1960), 볼리비아(1963), 우루과이(1964)에서 성바오로딸들의 현존을 우호적으로 도와주고 지탱해준 국가는 바로 아르헨티나였다.

26 「대피정과 월피정Esercizi e Ritiri」, 1935년 4월 대피정, “VIII.성소자-해외 분원-청빈” 참조.

27 Martini C. A., 「성바오로딸수도회의 역사(서울 - fsp), 331쪽 참조.

28 「대피정Spirituali Esercizi」, 1936년 10월 대피정, “I.대피정의 선물” 참조.

29 이 책에 강의를 싣지 않은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1) 1936년 10월 대피정의 내용 끝에 삽입한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2) 대피정에서 다룬 주제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3) 이 강의를 인용한 등사본이 193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933년의 강의록에 수록하기로 했다.

30 Alberione G., 「우리의 희망이신 마리아Maria nostra speranza」, Vol. I: Mese di maggio, PSSP, Roma, 1938 참조.

31 EC, 4[1937] 1.

32 CI, 7[1937] 1.

33 CI, 12[1937] 1.

34 CI, 1[1938] 1 참조.

35 EC, 3[1934] 3 참조.

36 CI, 8[1937] 2; CI, 12[1937] 1 참조.

37 CI, 6-7[1939] 4 참조.

38 CI, 4[1938] 2.

39 더 자세한 정보를 위해서는 다음의 책을 보라. Borgogno C., 「수도생활과 바오로적 기도에 대한 양성. 기억과 문헌Formazione alla vita religiosa e la preghiera paolina. Memorie e documenti」, 국제 영성 사무국 엮음, 로마 1994, p.154.

40 CI, 6-7[1939] 4.

41 특히 두 작품을 기억해야 한다. 분명히 인용한 것이 아닌, 알베리오네 신부가 이미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여 자유롭게 언급하고 있는 작품이다. Chiesa F., 「생명의 열쇠La Chiave della Vita」, Alba 1927; 상동, 「수덕신학 입문Introduzione all’ Ascetica」, Alba 1929.

42 Eymard P. G., 「실재적 현존La presenza reale」, Società Apostolato Stampa, 로마 1947 참조.

43 Stato religioso, a cura di don Robaldo M. G. E., Pia Società San Paolo, Alba 1934 참조.

44 CI, 8[1939] 1.

45 알베리오네 신부는 바오로적 사도직의 차원은 반드시 성성과 보조를 맞추어야 했으며, 그 영감을 교부들과 교회 학자들에게서 찾았다. 곧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 예로니모, 성 아우구스티노, 성 대 그레고리오, 키아라발레의 성 베르나르도, 성 대 알베르토, 성 토마스 아퀴나스, 성 보나벤투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등이다. 알바의 성 바오로 성전과 로마의 사도의 모후 성전 내부 제단 주변에 설치하기를 바란 조각과 그림은 그 느낌을 확인시켜준다.

46 1935년 여러 가지 묵상 “3.길 진리 생명이신 스승 예수님께 대한 신심과 바오로 정신” 참조.

47 1936년 대피정, “XVIII.성체방문과 미사성제에 적용한 길 진리 생명의 방법” 참조.

48 필리 3,13.

49 1935년 4월 대피정, “XV.성바오로” 참조.

50 1938년 여러 가지 묵상 “1.수도원을 살 것” 참조.

51 1935년 4월 대피정, “성바오로” 참조.

52 상동, “V.순명의 결실” 참조.

53 1934년 여러 가지 묵상 “17.출판 사도직” 참조.

54 상동, “12.솔직함”; “21.성실함” 참조.

55 상동, “13.지혜”; “14. 마음의 보호”; “19.겸손과 면학에 관한 축복”; “23.극기” 참조.

56 상동, “24.죽음” 참조.

57 1935년 여러 가지 묵상 “1.심판” 참조.

58 상동, “13.천국” 참조.

59 1935년 4월 대피정 “V.순명의 결실” 참조.

60 1936년 8월 대피정 “IV.순명서원” 참조.

61 1935년 4월 대피정 “VI.정결” 참조.

62 상동, “VIII.성소자-해외분원-청빈” 참조.

63 상동, “IX.청빈의 실천” 참조.

64 1935년 8월 대피정 “VI.공동생활에 대한 사랑” 참조.

65 1936년 8월 대피정 “XIV.수도회에 따른 영적 지도” 참조.

66 1935년 4월 대피정 “X.바오로의 정신에 따른 사도직” 참조.

67 1937년 여러 가지 묵상 “23.출판 사도직을 위한 영적 사랑” 참조.

68 1935년 4월 대피정 “X.바오로의 정신에 따른 사도직” 참조.

69 1935년 8월 대피정 “VII.사도직의 넋” 참조.

70 1936년 8월 대피정 “XV.길이신 예수님” 참조.

71 1938년 여러 가지 묵상 “8.성 바오로와 기도” 참조.

72 1939년 여러 가지 묵상 “4.사도의 모후 마리아” 참조.

73 1938년 여러 가지 묵상 “4.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와 기도” 참조.

74 1935년 8월 대피정 “X.성체방문” 참조.

75 상동 참조.

76 1935년 8월 대피정, “VIII.기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