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은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과 정신적으로 일치합시다. 교황님의 초대를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분의 지향에 따라 기도하기 위해 거룩한 제대 앞에 모였습니다. 우리의 성체조배 시간1은 세 가지 목적을 지향합니다. 1) 지극히 엄위하신 성체성사 제정에 대해 주님께 감사드리고 2) 성품성사 제정, 다시 말해 가톨릭의 사제직 제정에 대해 주님께 감사드리며 3) 교회 정신 안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오늘 수난주일과 그 이후의 15일 동안, 곧 다음 주간과 성주간에 통고의 마리아와 함께 갈바리아에서 임종의 고통을 겪으시는 우리 구세주 곁으로 다가가도록 우리 자신을 집중시킵시다.
1) 성체성사 제정에 대해 우리 주님께 감사드리기 위해
우리 주님께 찬가를, 곧 우리의 사랑을 드리는 성가를 부르면서 시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찬미의 노래를 부릅시다’.
성체성사 제정에 대한 [성경말씀]을 읽읍시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이 말고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그러자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2
우리 하느님은 찬미받으소서! 당신의 지극히 거룩한 성심, 당신의 성체적 성심은 찬미받으소서! 최후만찬에 자리하신 예수님을 관상합
시다. 예수님은 모세의 파스카 시대를 닫으시고, 그리스도교 파스카를 제정하시어 새 시대를 여셨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신 다음 당신 제자들을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시며, 빵을 들고 쪼개어 사도들에게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 그리고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모두 이 잔을 마셔라.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3 이렇게 해서 사랑의 하느님은 모든 세기를 통해 사람들 가운데 머무르게 되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Ecco, io sono con voi tutti i giorni fino alla fine del mondo.”4 성체는 늘 바뀔 것이고 축성하는 사제들도 바뀌겠지만, 사제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당신 은총을 부어주시고 나누어주시기를 바라며 제대 위에 머무시는 예수님은 늘 같은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성체는 예수님의 ‘참된 현존’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분과 함께 있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 “그런데 너희는 나를 흠숭하느냐? 그리고 나를 찾아오느냐? 내 앞에 존경심을 가지고 머무느냐? 곧 너희는 나와 함께 있느냐?”
쓸데없는 시시한 일에 시간을 낭비한 것에 대해, 그리고 감실에서 달콤한 초대로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시는 거룩한 연인을 잊고 외롭게 버려두었던 것에 대해 우리 마음속에서 진실한 통회가 우러나와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성체는 영혼의 ‘음식’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5 예수님은 우리 영혼의 영적 자양분이 되기 위해 이 성사를 제
정하셨습니다. 성체는 육신에 대해 효력을 일으키는 물질적인 빵과 유사하게 우리 영혼에 네 가지 효과를 낳습니다. 잘 받아 모신 거룩한 성체는 마음을 영원한 선善으로 들어 올리시어 우리로 하여금 천국의 기쁨을 열망하게 만듭니다. 천국에서 우리와 하느님과의 일치는 완전하고, 그 결속은 영원할 것입니다. 영성체는 죄로 인해 잃었던 힘을 되돌려주고, 우리 정신을 회복시켜줍니다. 영성체는 영혼을 지탱해 주고 은총을 키워주어, 우리가 더 풍성한 공덕을 얻게 해줍니다. 영성체는 우리가 갈바리아에 이르기까지 충실하게 우리의 십자가를 매일 짊어지며, 일하고 투쟁하며, 고통을 겪는 영적 힘을 더욱 증가시켜줍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빵을 잘 먹고 있습니까? 우리는 성체를 어떻게 영합니까? 성체는 죄에 대한 통회와 신앙 정신, 그리고 사랑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준비된 자세로 성체를 모십니까? 성체는 우리 가운데 십자가의 희생제사를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성 필립보 베니치6는 갈바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이 만들어졌다고 했습니다. 곧 십자가입니다. 특별한 서체로 인쇄된 책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피와 침으로 더럽혀진 예수님의 얼굴을, 가시에 찔린 그분의 머리를, 채찍의 상처로 뒤덮인 그분의 육신을, 못에 뚫린 그분의 손과 발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갈바리아에서 인쇄된 그 책이 매일 아침 우리에게 도달하여 제대 위에 펼쳐지는 것입니다. 미사는 우리 앞에 옮겨진 갈바리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미사성제를 어떻게 바라보며, 어떤 자세로 참례합니까? 오, 성 루이지Luigi7는 얼마나 열정적으로 미사에 참례했습니까!
그는 세라핌의 열정을 보여줍니다. 성 요한 [베르크만스]8는 자기 주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그때 그를 한 번 쳐다보기만 해도 그의 신심과 신앙 정신에 감명을 받기에 충분했다고 동료들은 말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귀감입니까!
우리는 어떻게 미사성제에 참례했습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십니다! 그런데 그분은 당신 앞에 있는 차디찬 마음, 생기 없는 마음, 무관심한 마음을 보십니다. 미사성제를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은총을 청합시다.
예수님께 감사드리며 노래합시다. 우리의 마음이 성체를 향해 불붙도록, “엎디어 경배하세”9를 노래합시다. “주님, 오늘 미사성제를 드리는 사제들과 하나 되어 성체이신 예수님과 작은 제물인 저 자신을 당신께 바치오니 …”10
2) 사제직 제정
성가로 시작합시다. “너는 사제다 …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고난을 겪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파스카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바랐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파스카 축제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다 이루어질 때까지 이 파스카 음식
을 다시는 먹지 않겠다’. 그리고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시고 나서 이르셨다. ‘이것을 받아 나누어 마셔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제부터 하느님의 나라가 올 때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마시지 않겠다.’ 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12
예수님은 모든 세기에 걸쳐 세상 한 가운데 머무시는 성체적 현존으로만 아니라, ‘신비적’인 당신 현존을 계속하실 방법을 찾으셨습니다. 당신의 마지막 때가 이르렀음을 아시고, 또 성부께 다시 돌아가셔야 한다는 것을 아시고 사제직, 성품성사를 제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축성을 통해 성체가 새롭게 되고, 성사 안에 계신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백성 가운데 언제나 남아 계신 것처럼, 주교가 집전하는 사제 서품식을 통해서도 신비체인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백성 가운데 언제나 남아 계십니다. 성체는 바뀌어도 성체이신 예수님은 남아 계시며, 새로운 사제직을 받은 사람으로 바뀌어도 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남아 계십니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의하시듯,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를 용서하시듯,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통해 우리를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하시듯, 사제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혼들을 낫게 하시고, 구원으로 이끄시며, 탈선한 이들을 회심시키시고, 소심한 이들을 격려하십니다. 사제 안에서 그분은 인간을 모두 그들 나이에 맞게 도와주시며, 다른 삶으로 넘어갈 시기가 가까웠을 때는 그들을 위로하시고, 죽음 후에는 축복해 주시고 기도해 주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Sacerdos alter Chistus; pro Christo legatione
fungimur.”13 또 다른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는 신비적으로 현존하십니다. 성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Sic nos existimet homo, ut ministros Christi et dispensatores mysteriorum Dei.”14 사람들은 우리를 학식이나 사회적 조건에 개의치 않고, 하느님의 대리인으로 보고, 하느님의 자비를 나누어주는 사람으로 봅니다.
나를 불러주신 예수님께 대한 감사로 흘러넘치며, 평소보다 더 충만한 느낌으로 오늘 저녁에 환호성을 올려야겠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Gratia Dei sum id quod sum.”15 제가 사제인 것은, 오직 하느님의 지극히 높으신 은총을 통해서입니다. 저의 공덕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제 편에서는 아, 주님의 은총 앞에 얼마나 많은 장애물을 놓았습니까!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 저는 사제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역시 하느님의 자비를 통해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성 바오로는 굳은 신뢰로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Gratia eius in me vacua non fuit.”16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은총에 응답했습니다.’라고 했는데, ‘나도 그렇게 되기를’17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비참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예수님 앞에 머리를 조아립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여러분은 하느님 은총에 상응하게 살고 있습니까? 사제는 고해성사를 줍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마땅한 자세를 갖추고 고해소에 갑니까? 사제는 미사를 거행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합당하게 미사성제에 참례합니까? 사제는 여러분의 영혼
을 인도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온순하게 따릅니까? 우리는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더 나아가 “이 영예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아론과 같이 하느님에게서 부르심을 받아 얻는 것입니다Nec quisquam sumit sibi honorem, sed qui vocatur a Deo tamquam Aaron.”18 부르심을 받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사제직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성소에 전념하고 있습니까?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Qui ascendit aliunde fur est et latro.”19 여러분은 문으로 들어가면서 합당한 수준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정말 성소의 표지를 보여줍니까? 사제직의 표지는 신심, 면학, 열의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을 갖추고 있습니까? 교회는 많은 성소자를 필요로 합니다. 여러분은 성소자를 위해 기도합니까? 편지와 권고를 통해 기여하고 있습니까? 성소자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까? 장학금과 물질적, 영적 도움으로 그들을 지원하고 있습니까?
목자들의 왕자, 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대한 심판 날 우리 성소에 대한 결산을 요구하실 때, 우리는 그분께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입니까? “오, 주님의 거룩한 기물들을 나르는 자들아, 몸을 정결하게 하여라”20감사의 찬미가를 부릅시다. “찬양하라 시온이여lauda Sion Salvatorem …”21
기도: “스승 예수님 … 저희의 약속을 받아주소서…”22
3) 교회 정신 안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사순시기
“군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 그분의 옷을 가져다가 네 몫으로 나누어 저마다 한몫씩 차지하였다. 속옷도 가져갔는데 그것은 솔기가 없이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이것은 찢지 말고 누구 차지가 될지 제비를 뽑자’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제 옷을 저희끼리 나누어 가지고 제 속옷을 놓고서는 제비를 뽑았습니다.’ 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그래서 군사들이 그렇게 하였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그 뒤에 이미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거기에는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듬뿍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다.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23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그리고 마리아와 애제자였던 요한과 함께 갈바리아산으로 올라갑시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십자가 곁에 서 있읍시다Et stemus iuxta crucem cum Maria matre Jesu.”24 신적 가르침을 배우고,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 위에 풍성하게 내리도록 기도하며
십자가 곁에 머뭅시다. 우리 스승이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길’이요, 귀감이십니다. 그분은 말씀보다 ‘모범’을 통해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25 마지막 날까지 일상적인 희생의 길에서, 특히 공동생활 안에서 예수님을 따릅시다. 마지막까지 인내하는 사람은 영광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진리’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아주 소중한 성혈을 통해 구원받았습니다. 천국의 닫혀 있던 문을 십자가가 다시 열었습니다. 그날 지옥은 분노로 떨었고, 갈바리아 전체가 뒤흔들리고, 수많은 죽은 이들이 부활했습니다. 성전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천국은 구약의 의인들에게 문을 활짝 열었고, 언젠가 주님을 따르게 될 모든 신자를 위해서도 열릴 것입니다.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당신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Adoramus Te Christe… quia per crucem tuam redemisti mundum.”26 아무런 공덕을 쌓지 못한 우리, 많은 책임과 여러 역경의 무거움에 짓눌려 신음하는 우리는 구원의 나무, 십자 나무를 향해 신뢰에 찬 눈길을 들어 올립시다. “주님은 우리 구원이요 생명이며 부활이시다Salus, vita et resurrectio nostra.”27 예수님은 돌아가셨으며, [그분의] 죽음을 통해 우리 모두는 생명을 얻었습니다.
십자가는 ‘생명’입니다.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들일 것이다Cum exaltatus fuero a terra omnia traham ad meipsum.”28 예수님은 우리를 당신께로 끌어당기시고, 우리를 당신 안에 한 몸이 되게 하시고, 우리를 당신과 하나 되게 하십니다. 생명을 통해 하나 되고, 죽음을 통해 하나 되고, 영원을 통해 우리는 그분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분이 계신 곳에는 우리도 갈 수 있습니다! 매일 우리의 공덕이 쌓이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일치가 더욱 결속되기를 바랍시다. 구원과 은총의 날, 눈물과 사랑으로 이루어진 이 날, 영적 깨달음이 주어지고, 우리 영혼에 새로운 신심과 과거의 우리 삶에 대한 통회와 속죄의 느낌이 주어지기를 바라며 참된 부활, 파스카 부활을 준비합시다.
임금님 높은 깃발 앞장서 가Vexilla Regis …29를 노래합시다.
기도: 성 바오로께 바치는 주간기도
* 세 장(22,2X35)으로 된 등사본 본문. 알바, 성 바오로 성전에서 바오로 가족을 대상으로 1시간의 성체조배를 가졌다. 1933년 11월부터 보르고 피아베에 거주하던 성바오로딸들도 중요한 예식을 위해 대부분 성 바오로 성전에 간 것으로 보인다. 등사본에는 저자가 명시되지 않았다. 손으로 “P. M.”이라고 쓴 기록이 있을 뿐이다. 본문의 2항 후반부에 나오는 자전적 설명이 이러한 가설을 확인시켜준다.(p.66 참조) 시기는 전례에 대한 언급을 통해 알 수 있다. 곧 알바, 1934년 3월 18일이다. 그리고 상단에 i.m.i.p.라는 약호가 나온다. 이 등사본은 SSP 문서보관소에 아직도 보관되어 있다. 여성 수도회에 대한 명확한 언급을 위해 모음집에 이 본문을 포함시키는 것이 적절하다고 여겼다.
1 본문은 기도의 형태로 세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다. 각 부분은 길 진리 생명의 방법을 따르고 있으며, 하느님의 말씀, 권고, 성찰, 기도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2 요한 6,44-58.
3 마태 26,26-28 참조.
4 마태 28,20.
5 요한 6,41.
6 필립보 베니치(Filippo Benizi, 1233-1285)는 피렌체 출신의 의사로서, 성 마리아의 종 수도회에 평수사로 입회했다. 그의 귀감이 담긴 내용은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La Passione di N. S. Gesù Cristo」, vol. II, PSSP, Alba-Roma 1934, p.10에서 인용한 것이다.
7 성 루이지(Luigi Gonzaga, 1568-1591)는 만토바 출신으로, 로마에서 예수회에 입회했다. 1590년에 페스트가 만연하여 구호활동을 하던 중 감염되어 사망했다.
8 요한 베르크만스(Giovanni Berchmans, 1599-1621)는 벨기에 출신의 예수회 신학생으로서, 성모님께 대한 감미로운 사랑과 애덕, 수도생활 준수에 뛰어났다.
9 “엎디어 절하나이다. 눈으로 보아 알 수 없는 하느님 …”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지은 성체 찬미가.
10 오늘날 “바오로인의 봉헌기도”로 알려져 있는 “예수님처럼 영혼들의 갈증을 느끼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문의 시작 부분(「바오로 가족 기도서」 참조). 이 기도문은 UCBS, 1924년 2월 15일, p.4에 처음으로 게재되었다.(PP. p.458 참조)
11 Tu es sacerdos…!: 시편 109,4 참조.
12 루카 22,15-20.
13 2코린 5,20.
14 1코린 4,1.
15 1코린 15,10ㄱ.
16 1코린 15,10ㄴ.
17 여기서 알베리오네 신부가 1인칭으로 말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라.
18 히브 5,4 참조.
19 요한 10,1.
20 이사 52,11.
21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 미사 부속가.
22 초판 「바오로 가족 기도서」, 알바, 1922, pp.15-16에 게재되었던 기도이며, 이는 여러 번 수정되었다.
23 요한 19,23-30.
24 야코포네 다 토디(Jacopone da Todi)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부속가이다. “십자가 아래 어머니(Stabat mater)”의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25 마태 16,24.
26 성 금요일 전례의 영성체송.
27 성 십자가 현양축일 입당송.
28 요한 12,32.
29 주님수난 성지주일 저녁기도 찬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