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대한 30차례1의 묵상을 마무리하면서, 우리에게 도움이 되도록, 성경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성경을 언제 읽을 것인가? 2. 성경을 어디서 읽을 것인가? 3. 성경을 어떻게 읽고 또 어떻게 전할 것인가?
모든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지켜야 할 규칙을 실행해야 합니다. 곧 날마다 성체를 받아 모시고 복음을 읽어야 합니다. 더 좋은 것은 1년 동안 영성체하는 것보다 더 많이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사실 영성체는 하루에 한 번 이상 할 수 없는데, 성경은 언제나 가지고 다니며 하루에도 여러 번 읽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도회가 정한 규칙에 따라 여러 차례 복음을 읽는 살레시오수도회가 있습니다. 살레시오수도회의 영광스러운 창립자 복자2 돈보스코는 좋은 설교가가 되기 위해 성경을 읽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계기에 그는 젊은이들과 성직자들의 훌륭한 장상이 되기 위해 성경을 읽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은 알지 못한다고 밝혔습니다. 대양을 건너 가는 선교사들에게 그는 거룩한 복음서를 가져가라고 권고했습니다.
살레시오회 선교사들의 활동은 효과적이었습니까? 복자 돈 보스코의 자녀들이 온 세상에서, 특히 청소년들 가운데 이룬 업적은 얼마나 큰지요!
「그리스도를 본받아」(준주성범)는 복음을 성찬례와 같은 차원에 놓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제4차 칼케돈 교회 일치 공의회는 이보다 더 나아가 거룩한 복음에 대한 흠숭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흠숭하는 것과 같은 행위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의 해방자이자 구원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흠숭을 받는 것과 같은 태도로 거룩한 복음서가 공경받게 되기를 확정합니다.”
우리는 어떤 심각한 이유로 평소에 읽던 성경을 읽지 못하게 되는 날은 고통을 느끼는 것과 같은 지점에 도달해야 합니다. 경건한 영혼들이 성체를 받아 모시지 못할 때 느끼는 것과 같은 깊은 고통을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그날을 잃어버린 날처럼 느끼며, 흡족하게 여기지 않고, 갈증과 신비스러운 갈망을 느낍니다.
오, 성경이여! 마치 복음이 우리 삶의 규정이듯, 우리 손 안에서 타오르는 등불이듯 복음서의 일부라도 지니고 다니며, 그 말씀이 우리 삶에 빛을 비추고, 지옥에 있는 악마의 어둠을 몰아내게 합시다.
성경은 학교에서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읽을 수 있습니다. 이미 교과 과정을 앞두고 있는 학생은 날마다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그들의 손에 있는 빛입니다Lucerna in manibus vestris.
고통과 의혹, 삶의 힘든 순간에 성경을 읽으면 얼마나 많은 위로와 빛, 인도를 받게 되는지요! 주사위가 무심코 던져지듯, 주님께서는 우리 눈이 우리에게 알맞은 구절을 발견하게 하십니다.
박학다식한 성 알폰소가 어려운 질문을 풀지 못했을 때, 성경을 가져다 펼치자, 바로 그 순간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에는 경건한 신심 서적이 많아졌지만, 성경만큼 실용적이고 보편적인 책은 찾지 못할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며, 삶의 어느 때나 도움이 됩니다.
성경 없이 출판 사도직을 행하겠다는 사람은 거룩한 사도직에 대해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힘이 없는 사제와 같을 것입니다. 힘이 없는 사제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사제가 성경 말씀 없이 어떻게 영혼들에게 빛과 힘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출판 사도직에 불림 받은 사람이 성경의 진리를 읽고 내면화하지 못할 때 그는 자신의 성소에서 멀어집니다. 그가 여러 사도직 활동을 할 수는 있겠지만, 사람들의 영혼을 위한 생명이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행렬과 같은 외적 활동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사랑하고 읽는 사람은 사물의 핵심을 곧바로 이해하고 따르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출판 사도직에서 성경보다는 주변의 쉬운 서적과 공상적인 책을 찾아 나서는 사람은 핵심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는 많은 신심을 지닌 피상적인 영혼들에 비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런저런 성인들을 공경하고, 성당에 들어가면 곧바로 그러한 성인들의 모습이 담긴 성화 앞으로 다가가 머리를 숙이며 공경을 표하고 무릎을 꿇기까지 합니다. 가장 먼저 존경해야 할 거룩한 성소인 지성소(감실)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이러한 영혼들이 ‘교회’라는 길을 제대로 찾고, ‘성경’에서 진리를 찾으며, ‘복음’에서 생명을 찾게 되기를 빕니다. 그 진리는 성경 안에 있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생명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생명은 거룩한 복음 안에 있습니다!
성경은 학교와 가정에서 그리고 각 개인이 읽어야 합니다.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곧 성경이 지금 바로 여기에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담대하게 우리 자신이 움직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성경을 편집하고 인쇄하며 순수한 손과 마음으로 제본해야 합니다.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3
그리고 올바른 지향이 필요합니다. 올바른 지향이 부족하다면, 설교나 종이에 쓰인 글이 효과를 지녔을지라도 선을 이루지 못하며, 영혼을 구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오, 사도가 영혼들을 위해 갈망하는 은총을 지니고 있다면, 그가 쓴 글은 참으로 선을 이룰 것이고, 영혼이 성화될 것입니다!
영혼들을 비추며 가르치는 일에 있어 출판 사도직으로 충분하다고 믿지 마십시오. 무엇보다 의지를 움직이고 마음을 자극하며 덕의 실천을 사랑하게 해야 합니다. 이 모든 행위를 위해 필요한 것은|
기도와 극기와 희생이며, 이러한 것들이 없다면 믿을 수 없는 은총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없다면 사도는 영혼들에게 은총을 전할 수 없습니다.
또한 더 효과적인 방법은 우리가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을 먼저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앞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경건한 모습으로 깊이 잠심하며 사랑을 다해 성경을 읽는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봅시다. 모든 말씀은 성모님께 사랑으로 꽂히는 번개이며, 하느님을 향해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그림은 안식일에 성경을 읽고 해석하며 묵상하는 천상 스승을 관조하는 우리 자신을 상상해 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진리, 길, 생명의 거룩한 책을 주셨으니, 주님께 감사드리는 마니피캇을 노래하며 마무리합시다.
1 처음 쓰인 글과 맺음말은 아마도 이 책의 편집자 B.길리오네가 쓰고 알베리오네 신부님이 승인한 것 같다. 30 차례의 묵상에는「출판 사도직」에서 발췌한 한 장(章)이 원본 306-314쪽에 삽입되었다.
2 성 요한 보스코, 그 당시는 복자였다. p.147의 각주 4 참조.
3 “Innocens manibus et mundo corde.”(시편 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