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소 야고보는 다른 야고보와 구별하기 위해 소 야고보라고 불립니다. 다른 야고보는 사도 성 요한의 형으로 대 야고보로, 그는 42-44년 사이에 예루살렘에서 헤로데에 의해 참수됐습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 마리아의 친척인 클로파스와 마리아의 아들인 소 야고보는 유다, 시몬, 요셉1과 함께 그리스도의 사촌입니다. 사실 복음에서 그는 자주 주님의 형제라고 불립니다. 우리는 성모님이 예수님 외에 다른 자녀를 가지지 않으셨고, 복음은 형제와 사촌에 대해 ‘형제’라는 말을 사용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는 열두 사도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 하신 후 그에게 나타나셨고, 후에 그는 예루살렘의 감독으로 선출된 것 같습니다.
약 30년 동안 그는 예루살렘에서 감독의 직무를 수행했습니다.
신중하고 거룩한 그는 자신의 적대자인 유다인들에게도 존경을 받았습니다. 성 바오로는 그가 교회의 기둥 가운데 하나라고 하며 예루살렘을 지나갈 때 방문했습니다.
그는 62-64년 사이에 율법교사와 바리사이들에 의해 시작된 민중의 폭동으로 순교했습니다. 그의 축일은 사도 성 필립보와 함께 5월 3일에 지냅니다.
성 야고보 서간은 이교도 국가들 사이에 흩어져 있는 유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것으로, 박해를 받는 그들을 격려하며, 그들의 삶이 그리스도교 신앙에 부합하도록 독려하고,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한 성 바오로의 몇 가지 표현을 잘못 해석한 일부 사람들 — 시몬과 같은 사람들,2 니콜라오스와 같은 사람들3— 을 경계하도록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성 야고보는 이처럼 파괴적인 생각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는 다른 여러 미덕에 대해서도 언급하지만, 그 가운데 의로움과 사랑을 강조하며 선행이 없는 믿음은 헛되며, 지식과 교리를 과시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적 덕으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 서간은 편지라기보다는 도덕적 권고 형식을 취합니다.
이 서간은 간략한 인사말에 이어 항구함, 행동이 따르는 살아있는 신앙에 대한 권고입니다. 교사가 되기를 열망하여 참 지혜가 아닌 거짓 지혜를 말하는 사람을 비판합니다. 평화와 일치를 권고한 다음 몰인정한 부자들들 경고하고, 인내와 맹세에 대해 말하며, 다양한 상황에서, 특히 질병이 있는 경우 그리스도인들이 처신해야 하는 방법을 언급하며,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권고로 끝맺습니다.
60년 경에 예루살렘에서 쓰인 이 편지는 마치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는 것 같습니다. 믿음에는 실천이 따라야 하며, 의로움은 율법에 따른 행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다운 행위에서 온다는 성 바오로의 생각을 당시 사람들이 잘못 이해했기에 그것을 다시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 법이 놀랍기에 제 영혼이
그것을 따릅니다.”(시편 119,129)
우리는 이미, 성경이 우리 지성을 위한 빛, 우리 의지를 위한 길일 뿐 아니라 우리 마음을 위한 힘이요 은총이라는 사실을 여러번 언급했습니다. 이것이 거룩한 전례의 주요 목표이기에, 곧 성사와 준성사를 통해 우리의 성화에 필요한 모든 은총을 우리 마음에 얻어주는 것이기에, 은총을 바라는 길을 정확히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달의 세 번째 부분을 다루는 지금 여기에서는 이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례가 무엇인지, 그 중요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전례와 성경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 * *
거룩한 전례란 “교도권에 의해 이루어진 공적 예배 행위의 복합형태”라고 정의될 수 있습니다.
전례는 이러한 공적 예배의 모든 것을 내포하므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 전례 행위와 물품, 전례 장소와 시간 등의 여러 요소가 포함됩니다.
예를 들어, 전례 거행자는 미사 때 더 높은 단계에 있는 성직자를 보조하는 낮은 단계의 성직자,|
곧 사제를 보조하는 부제입니다. 사제는 거룩한 미사를 집전하는 기능을 지닌 반면,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부여할 수 있는 권한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서품 계열에서 사제 위에 가장 높은 단계의 주교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전례 수행원들은 전례를 수행하는 모든 이들, 예를 들어 행렬을 구성하는 모든 이들입니다.
전례 행위는 성가, 강복, 축성, 봉헌 등의 합법적인 예식과 함께 거행하는 거룩한 미사, 성사와 준성사의 집행, 성무일도 기도, 행렬 등을 말합니다.
전례 물품은 여러 거룩한 예식에 사용되는 모든 물건입니다. 이중에는 성합과 성반처럼 축성된 것과 십자가, 상본, 그림, 의복, 물, 향처럼 단순한 강복을 받은 것들입니다.
전례 장소는 바실리카(대성당), 성당, 성전, 경당, 기도원, 수도원, 공동묘지 등입니다.
전례 시기에는 무엇보다 전례력이 있는데, 그 놀라운 전례 주기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과 성모님 생애의 특별한 시기, 다양한 성인 축일, 성무일도 기도를 바치거나 거룩한 희생 제물을 바치는 등 다양한 시기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각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면서 한결같이 귀중한 영적 보물을 얻을 수 있는 거룩한 전례를 이루도록 기여합니다. 전례는 20세기 동안 교회 내 예식에 몰두할 수 있었던 성령의 영감과 인도를 받은 교회가 아름답고 신심 깊으며 거룩하게 되는 모든 것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신자들이|
그 순수하고 풍요로운 샘물을 마시며 스스로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깊은 묵상으로 준비된 전례 형식에서, 몇 백 페이지에 이르는 특정 신심 서적이 줄 수 없는 신심의 풍성한 샘물이 솟아날 수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가장 지혜로운 교회가 성경에서 교회 내 모든 전례를 이끌어냈다는 사실로 이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전례는 거룩한 책이 지닌 힘과 능력을 공유합니다.
1. 우리가 이미 언급했듯이 전례에는 성무일도, 미사 경본, 의식서, 예식서, 장엄 미사 등의 용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책을 구성하는 단어의 3분의 2는 성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많은 것을 사제들에게서 듣게 되는데 사제들의 저술도 많이 읽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듣거나 읽은 내용의 상당 부분은 성경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2. 전례에는 매우 아름다운 예식이 많이 있는데, 그러한 예식의 본질적인 부분은 성경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많은 예식은 사실 거룩한 세례성사가 히브리인들의 할례를 대신 하는 것처럼, 예전 방식으로 거행되지는 않지만 전혀 폐지되지 않고 오히려 완성되었을 뿐입니다. 교회는 사제들이 성무로 바쳐야 하는 성무일도 시간경의 분배까지도 성경에서 가져왔습니다. 전례는 모두 본질적으로 성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로마 전례가 지닌 많은 기능과 예배 행위는 거룩한 복음이나 사도행전을 펼칠 때 얻게 되는 온갖 아름다움 속에서 발견됩니다.
3. 교회는 교회 전례의 모든 정신과 혼, 복음적 전례라고 할 수 있는 교회 전례를 성경에서 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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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말씀과 예식과 물품 속에 깃든 전례 정신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단순한 예식이나 성가들로 전례를 축소시키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리스도인, 더욱이 사제직에 부름받은 사람은 이러한 것들에 대해 훨씬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그의 묵상은 전례 물품과 행위와 말씀에 멈추어서는 안 되며, 여러 서적과 번역물을 이용하여 모든 전례 예식과 말씀이 지닌 정신 속으로 파고들어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몇 년 전까지도 전례는 일곱 개의 인장으로 봉인된 유명한 묵시록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주님 덕분에 전례의 비밀과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길을 활짝 열어 준 수많은 번역물과 서적과 전례 잡지가 많이 나왔습니다.
많은 본당에서 신자들이 거룩한 미사, 성무일도 저녁기도, 모든 전례 행사, 특히 성주간 전례 때 전례서를 손에 들고 영혼에 많은 도움을 주는 전례 행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사제의 뒤를 따라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큰 위로가 됩니다.
앞으로 더욱 탄복할 만한 전례 행위가 점점 더 널리 퍼져나가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그리고 성경을 읽는 모든 사람이 성경에서 모든 거룩한 전례 정신과 목표, 곧 “하느님께 영광, 사람들에게 평화”를 발견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귀감 - 백성 앞에서 율법을 읽은 에즈라. 일곱째 달이 되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저마다 제 성읍에 살고 있었다. 그때에 온 백 성이 일제히 ‘물 문’ 앞 광장에 모여 율법학자 에즈라에게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서를 가져오도록 청하였다. 에즈라 사제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모든 이로 이루어진 회중 앞에 율법서를|
가져왔다. 때는 일곱째 달 초하룻날이었다. 그는 ‘물 문’ 앞 광장에서, 해 뜰 때부터 한낮이 되기까지 남자와 여자와 알아들을 수 있는 이들에게 그것을 읽어 주었다. 백성은 모두 율법서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율법학자 에즈라는 이 일에 쓰려고 만든 나무 단 위에 섰다. 그 곁에는 마티트야, 세마, 아나야, 우리야, 힐키야, 마야세야가 오른 쪽에, 프다야, 미사엘, 말키야, 하숨, 하스바따나, 즈카르야, 므술람이 왼쪽에 섰다. 에즈라는 온 백성보다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았으므로, 그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책을 폈다. 그가 책을 펴자 온 백성이 일어섰다. 에즈라가 위대하신 주 하느님을 찬양하자, 온 백성은 손을 쳐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였다. 그런 다음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주님께 경배하였다. 그러자 예수아, 바니, 세레브야, 야민, 아쿱, 샤브타이, 호디야, 마아세야, 클리타, 아자르아, 요자밧, 하난, 플라야 등 레위인들이 백성에게 율법을 가르쳐 주었다. 백성은 그대로 서 있었다. 그들은 그 책, 곧 하느님의 율법을 번역하고 설명하면서 읽어 주었다. 그래서 백성은 읽어 준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느헤미야 총독과 율법학자며 사제인 에즈라와 백성을 가르치던 레위인들이 온 백성에게 타일렀다. “오늘은 주 여러분의 하느님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울지도 마십시오.”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온 백성이 울었기 때문이다. 에즈라가 다시 그들에게 말하였다.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단 술을 마시십시오. 오늘은 우리 주님께 거룩한 날이니, 미처 마련하지 못한 이에게는 그의 몫을 보내 주십시오.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여러분의 힘이니, 서러워하지들 마십시오.” 레위인들도 “오늘은 거룩한 날이니, 조용히 하고 서러워하지들 마십시오.” 하며 온 백성을 진정시켰다.
온 백성은 자기들에게 선포된 말씀을 알아들었으므로, 가서 먹고 마시고 몫을 나누어 보내며 크게 기뻐하였다.(느헤 7,72ㄴ―8,12)
작은 희생 : 누군가와 성경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가 성경을 읽도록 조언을 해줍니다.
주님께 바라고 바랐더니
나에게 몸을 굽히시고
내 외치는 소리를 들으시어
나를 멸망의 구덩이에서,
오물 진창에서 들어 올리셨네.
반석 위에 내 발을 세우시고
내 발걸음을 든든하게 하셨네.
내 입에 새로운 노래를,
우리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을 담아 주셨네.
많은 이들은 보고 두려워하며
주님을 신뢰하여라.
행복하여라, 주님께 신뢰를 두며
오만한 자들과
거짓된 변절자들에게 돌아서지 않는 사람!
주 저의 하느님, 당신께서는 저희를 위하여
기적과 계획들을 많이도 행하셨으니
그 누구도 당신께 견줄 수 없습니다.
제가 알리고 말하려 해도
헤아리기에는 그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당신께서는 희생과 제물을 기꺼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의 귀를 열어 주셨습니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소서, 제가 왔습니다.
두루마리에 저에 대하여 쓰여 있습니다.
저의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즐겨 이룹니다.
제 가슴속에는 당신의 가르침이 새겨져 있습니다.”
저는 큰 모임에서 정의를 선포합니다.
보소서, 제 입술 다물지 않음을.
주님, 당신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당신 정의를 제 마음속에 감추어 두지 않고
당신의 성실과 구원을 이야기하며
당신의 자애와 진실을 큰 모임에서 숨기지 않습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제게 당신의 자비를
거절하지 않으시니
당신의 자애와 진실이
항상 저를 지켜 주리이다.
셀 수조차 없는 불행들이
저를 둘러쌌습니다.
제 죄악들이 저를 사로잡아
더 이상 볼 수도 없습니다.
제 머리카락보다도 많아
저는 용기를 잃었습니다.
주님, 저를 기꺼이 구하여 주소서.
주님, 어서 저를 도우소서.
제 목숨을 잡아채려 노리는 자들은
모두 다 부끄러워하며 수치를 당하고
제 불행을 즐기는 자들은
뒤로 물러나 치욕을 느끼게 하소서.
“옳거니!” 하며 저를 놀려 대는 자들은
부끄러워 몸이 굳어지게 하소서.
그러나 당신을 찾는 이들은
모두 당신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당신 구원을 사랑하는 이들은 항상
“주님께서는 위대하시다.” 아뢰게 하소서.
나는 가련하고 불쌍하지만
주님께서 나를 생각해 주시네.
저의 도움, 저의 구원은 당신이시니
저의 하느님, 지체하지 마소서!(시편 40,2-18)
파스카 양을 잡아야 하는 무교절 날이 왔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이르셨다. “가서 우리가 먹을 파스카 음식을 차려라.” 그들이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도성 안으로 들어가면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를 만날 터이니,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거라. 그리고 그 집주인에게 ‘스승님께서 ′내가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음식을 먹을 방이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하여라. 그러면 그 사람이 이미 자리를 깔아 놓은 큰 이층 방을 보여줄 것이다. 거기에다 차려라.” 제자들이 가서 보니 예수님께서 일러 주신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시간이 되자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자리에 앉으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고난을 겪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파스카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바랐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파스카 축제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다 이루어질 때까지 이 파스카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겠다.” 그리고 잔을 받아 감사를 드리시고 나서 이르셨다. “이것을 받아 나누어 마셔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제부터 하느님의 나라가 올 때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마시지 않겠다.”
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그러나 보라, 나를 팔아 넘길 자가 지금 나와 함께 이 식탁에 앉아 있다. 사람의 아들은 정해진 대로 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 넘기는 그 사람!” 그러자 사도들은 자기들 가운데 그러한 짓을 저지를 자가 도대체 누구일까 하고 서로 묻기 시작하였다.(루카 22,7-23)
기 도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위로 하늘이나 아래로 땅 그 어디에도 당신 같은 하느님은 없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당신 앞에서 걷는 종들에게 당신은 계약을 지키시고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당신께서는 당신의 종 제 아버지 다윗에게 말
씀하신 것을 지키셨습니다. 친히 말씀하신 것을 오늘 이처럼 손수 실현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당신의 종 제 아버지 다윗에게, ‘네가 내 앞에서 걸은 것처럼 네 자손들도 내 앞에서 |
걸으며 제 길을 지켜 나가기만 하면, 네 자손들 가운데 이스라엘의 왕좌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것을 지켜 주십시오. 그러므로 이제 이스라엘의 하느님, 당신의 종 제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진실하다는 것을 드러내 주십시오.
그러나 어찌 하느님께서 땅 위에 계시겠습니까? 저 하늘, 하늘 위의 하늘도 당신을 모시지 못할 터인데, 제가 지은 이 집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나 주 저의 하느님, 당신 종의 기도와 간청을 돌아보시어, 오늘 당신 종이 당신 앞에서 드리는 이 부르짖음과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그리하여 당신의 눈을 뜨시고 밤낮으로 이 집을, 곧 당신께서 ‘내 이름이 거기에 머무를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이곳을 살피시어, 당신 종이 이곳을 향하여 드리는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또한 당신 종과 당신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드리는 간청을 들어주십시오. 부디 당신께서는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어주십시오. 들으시고 용서해 주십시오.”(1열왕 8,23-30)
1 참조: 마태 13,55; 마르 6,3.
2 사도 8,9-24: 시몬 이야기와 시몬과 같은 사람들의 기원. 시몬과 같은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p.270에서 “시몬과 같은 사람들Simoniacs”이라고 언급하는데, 아마도 신부는 “니콜라오스와 같은 사람들Nicholaits”이라는 표현과 함께 여전히 이렇게 지칭하고 있다.
3 적어도 서로 다른 두 종파에 속하는 영지주의자들. 하나는 안티오키아 출신 집사 니콜라오스(사도 6,5)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도 시대에 일어났고, 또 다른 하나는 바르벨로 영지주의와 연결되어 기원후 1-2세기에 번창했다. 묵시록(2,6.14-15)에서 비난받은 첫 번째 부류는 우상을 숭배하고 불륜을 저지르게 하였고, 첫 번째 부류와 유사하게 보이는 두 번째 부류는 이집트의 영지주의에 속한 것으로, 불륜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