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태오라는 이름은 예수님께서 그를 초대하여 사도들의 무리 가운데 새 삶을 살게 하셨을 때 처음 등장합니다. 그는 세리였으나 곧바로 세관을 버리고 천상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또 다른 복음구절에 나오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라 불리는 세리가 있는데 마태오와 동일 인물로 여겨집니다.
그가 어디 출신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복음을 통해 그의 회심이 카파르나움 근처에서 일어났음을 우리는 압니다. 그는 부르심 이후에는 언급되지 않으며, 사도행전에서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언제나 육식을 삼가면서 매우 엄격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성 클레멘스에 따르면 그는 15년 동안 팔레스티나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후 그는 인도에서 복음을 전했고, 또 페르시아에서 복음을 전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로마 성무일도가 받아들인 내용에 따르면 그는 에티오피아에서 복음을 전했으며, 많은 기적을 통해 자신의 설교를 더욱 강화했다고 합니다. 임금의 딸을 죽음에서 살려낸 기적으로 그 임금과 왕비와 온 지역민이 개종했다는 이야기는 여전히 유명합니다. 그 임금의 죽음과 함께 후계자가 된 이르타쿠스는 임금의 딸 이피제니아를 신부로 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성 마태오의 조언에 따라 동정을 서약한 그녀는 자신의 거룩한 결심을 결코 바꾸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이르타쿠스는 성 마태오가 제대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을 때 그를 죽였습니다. 그리하여 9월 21일, 성 마태오는 자신의 사도적 삶을 순교의 월계관으로 장식했습니다. 그의 시신은 살레르노로 옮겨져 그레고리오 7세 교황이 그에게 헌정한 성당에 안장되었으며, 오늘날에도 많은 신자들이 깊은 신심으로 그를 공경하고 있습니다.
모든 교부들은 성 마태오 복음을 첫 번째 복음으로 받아들이며, 마태오 복음이 유다인들 가운데 팔레스티나 사람들을 위해, 유다인들을 위해 쓰였다고 주장하는 데 동의합니다. 사실 구약성경에서 발췌한 많은 예언 내용은 복음사가가 유다인 독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설명, 이야기, 관습에 대한 모든 표현이 이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 제시됩니다.
첫 번째 복음의 목적 : 성 마태오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성경에서 약속된 메시아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분 안에서 예언들이 실현되었고, 사람들과 그 지도자들의 편견과 완고한 마음에서 비롯된 불신이 이미 예견되었고 예언되었습니다.
따라서 성 마태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성과 신성을 입증함에 있어서 예언적 주장을 폭넓게 발전시킵니다. 사람들, 특히 지도자들의 불신을 밝히기 위해 그는 동방박사들이 오면서 시작된 사제들과 교사들의 무관심을 묘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회당에서의 박해를 예언하셨고, 또 사람들과 그 지도자들의 비방과 불신을 예견하셨습니다.
마태오 복음의 성격과 목적을 통해 우리는 그 순서와 구성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 마태오는 역사적 작품이 아닌 신학적 작품을 만들고자 했기에 연대순에 대해서는 거의 마음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특정 사건의 설명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히려 사건2과 기적에 대한 교리를 제시하는 데 역점을 둡니다. 예수님은 약속된 메시아시므로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첫 번째 복음서의 작성 시기는 기원전 42-48년 사이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어 번역본 또한 성 마태오의 작품일 것입니다.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시편 119,105)
우리는 9일째4 내용에서 출판 사도직의 교의와 목표가 성경의 목표와 같다고 숙고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성경과 출판 사도직은 모두 보편적이다. 곧,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둘째, 같은 형태를 지닌다. 곧, 최대한의 단순성과 명료성을 지닌다. 셋째, 같은 과정, 곧 인가와 출판 과정을 거친다.
참된 출판 사도직은 저자이신 하느님, 또는 성경을 모델로 삼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위안으로 가득한 주제, 사랑의 대상, 밝게 비추어주는 빛, 굴욕의 대상으로 여겨야 합니다.
출판 사도직은 1) 보편적 성격, 2) 단순성과 명료성, 3) 인가의 혜택을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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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편성.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되기를 바라십니다.
이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바라십니다.”(1티모 2,4)5 이처럼 확고한 하느님의 뜻 안에서 주님은 당신의 모든 자녀에게 하늘 나라로 초대하는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성심에서 “…모두 나에게 오너라.”(마태 11,28) 하시는 매우 감미로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장소와 관련하여 성경 말씀이 모든 이에게 도달해야 하고, 사람들과 관련하여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가 자신의 목적지를 알게 되기를 바라시며, 내용과 관련하여 그 주제가 영적이고 영원하기에 성경은 보편적입니다.
따라서 성경 말씀이 계속 이어지는 출판 사도직은 그 보편성을 지녀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참 빛”이신 하느님의 비추임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출판 사도는 자기의 등불을 밝혀 높은 곳에 올려 놓기를 바랍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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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단순성. 단순함은 대중적인 종교 출판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특성입니다. 사실 단순함은 농민, 노동자, 가난한 사람들과 같은 대중을 대상으로 합니다.
스승 예수님은 단순하게 설교하셨습니다. 설교단이나 학교 같은 외적 장치가 없고, 고상한 언어를 구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장소, 청중, 어조, 어법, 예시例示, 비유 등 모든 것이 단순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가난한 이들에게 파견되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단순함은 진리이고, 단순함은 거룩함의 표지입니다.
그러므로 출판 사도의 저술은 필치 면에서 대중적이고 간결하며, 형식 면에서 단순하고 명료하며, 적정한 기부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6
성체성사는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필요한 음식의 모양을 취하고 있으며 음식 형태로 주어지지만, 하느님이시요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현존하고 계십니다.
마찬가지로 출판 사도직은 우리가 보고 읽을 수 있는 책의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출판 사도직은 소박한 책의 형태로 주어지지만 “나는 진리다.”(요한 14,6)7라고 하신 거룩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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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가의 유익함이란 성경과 출판 사도직에 모두 해당됩니다.
모세와 사도들은 설교한 다음 글을 썼습니다. 이 사도직에 헌신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출판 사도는 같은 수단, 곧 인쇄를 통해 말씀이 읽혀지고 묵상되도록 말씀을 종이에 박아, 활동과 공덕, 영원한 영광의 삶이 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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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사도직이 희생이라면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희생으로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한 출판 양식과 형태, 보급 방식을 취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더욱이 출판 사도직은 빵(양식)으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출판된 책은 모든 사람에게 다가가 영양을 공급할 것입니다. 적어도 모든 사람 손에 있어야 하는 성경의 일부인 신약성경은 매우 특별하게 보급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도직에서 하느님을 귀감으로 삼으십시오.
선을 위한 투쟁에서 과연 누가 승리할까요? 그들은 스스로 희생 제물이 될 줄 알고, 천상 스승 예수님의 마음에 숨겨 있는 전지전능한 희생으로 사도직을 펼쳐 나가는 법을 아는 관대한 영혼들입니다.
귀감 – 성 베르나르도. 이 성인은 복되신 동정녀에 대한 크나큰 신심과 거룩한 지식과 성경에 관한 박학다식함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1090년 프랑스 퐁텐에서 태어났으며, 스무 살에 시토회에 입회했습니다. 시토회에서 개혁을 많이 했고, 더불어 수도원도 많이 창설하였으므로 공동 창립자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많은 저서에서 우리는 그가 성경에 대한 존경심이 얼마나 컸는지, 또 성경을 얼마나 잘 알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 자신이 한결같이 좋아한 면학을 통해 얻은 지식과 흠숭 행위의 결과로서, 그는 그것을 수사들에게 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가 쓴 작품은 경이롭게도 모두 성경 구절에 연결되어 있으며, 그의 전기작가 가운데 많은 사람이 성 베르나르도의 양식은 성경이라고 단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주요 작품들은 거룩한 복음 구절에 대한 설교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성자 강생론Missus est」입니다. 그 다음으로 유명한 것은 「아가」에 대한 84개의 설교와 주석입니다. 그의 전기작가들은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께서 그에게 수없이 나타나, 그가 쓰거나 설교해야 하는 주제를 제시하고, 논의되고 있는 주장을 증명하고,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아름다운 성경 구절을 그에게 가르쳐 주었다고 말합니다.
화가들은 거룩한 아기를 품에 안고 계신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와 대화를 나누며, 아기에게 성경을 봉헌하는 거룩한 박사요 교부로서의 그의 모습을 즐겨 표현했습니다.
그는 1153년, 자신을 따르던 많은 수사가 슬퍼하는 가운데 사랑으로 가득한 황홀경을 맛보며 선종했습니다. 성 베르나르도와 함께 영광스러운 품위를 지닌 교부시대가 마무리되었습니다. 교회는 8월 20일을 베르나르도의 기념일로 지냅니다.
작은 희생 : 출판 사도직을 위해 스승 예수님께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세 번 바친다.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환호하여라.
올곧은 이들에게는 찬양이 어울린다.
비파로 주님을 찬송하며
열 줄 수금으로 그분께 찬미 노래 불러라.
그분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를.
환성과 함께 고운 가락 내어라.
주님의 말씀은 바르고
그분의 행적은 모두 진실하다.
그분은 정의와 공정을 사랑하시는 분.
주님의 자애가 땅에 가득하네.
주님의 말씀으로 하늘이,
그분의 입김으로 그 모든 군대가 만들어졌네.
그분께서는 제방으로 모으듯 바닷물을 모으시고
대양을 곳집에다 넣으신다.
온 땅이 주님을 경외하고
세상에 사는 이들이 모두 그분을 두려워하리니
그분께서 말씀하시자 이루어졌고
그분께서 명령하시자 생겨났기 때문이네.
주님께서 민족들의 결의를 꺾으시고
백성들의 계획을 좌절시키신다.
주님의 결의는 영원히,
그분 마음의 계획들은 대대로 이어진다.(시편 33,1-11)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도록 아들에게 모든 사람에 대한 권한을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수하여, 저는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아버지,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제가 아버지 앞에서 누리던 그 영광으로, 이제 다시 아버지 앞에서 저를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뽑으시어 저에게 주신 이 사람들에게 저는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냈습니다. 이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이었는데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이제 이들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이 아버지에게서 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말씀을 제가 이들에게 주고, 이들은 또 그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제가 아버지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참으로 알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들을 위하여 빕니다.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을 위하여 빕니다. 이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고 아버지의 것은 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을 통하여 제가 영광스럽게 되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지만 이들은 세상에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저는 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켰습니다. 제가 그렇게 이들을 보호하여,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멸망하도록 정해진 자 말고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제가 세상에 있으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이들을 미워하였습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요한 17,1-17)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집주인을 베엘제불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태 10,16-28)
1 LS에는 “생명”이라고 되어 있지만 정확한 말은 “길”이다. 사실 제2부는 모두 “길”을 다루며, “생명”은 제3부에서 다룬다.(참조: 제29장 묵상 제목은 “성경은 출판 사도직에서 생명”이다)
2 여기서 알베리오네 신부는 자신이 충실하게 지켜온 원칙, 곧 말보다 행동이 우선임을 밝힌다. 복자 자카르도는 일기에 복자 알베리오네 신부님의 말씀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오늘 아침 기도 중에 하신 훈화 가운데 이런 말씀이 있었다. ‘여러분은 작고 숨겨져 있지만 죄에 대해 뉘우친다면 겸손이 그 자리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죄인으로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어 하느님께 굳게 신뢰하며 기도한다면, 여러분은 좋은 출판을 통해 온 세상이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내게 될 것입니다. …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여러분의 임무를 통해 부지런히 행동하는 사람이 되십시오.’”(1918년 9월 30일)
3 p.189 각주 1을 보라.
4 원본에서 이 숫자는 19로 쓰여 있는데, 이는 오류다. 19일과 묵상 19로 되어있으나, 정확한 숫자는 9이다. p.95 참조. p.97 이하에서 묵상 9의 제목은 “성경은 출판 사도직에서 진리다”이다.
5 “Deus vult omnes homines salvos fieri.” – 원본에는 “1티모 11,4”로 되어 있는데, 이는 명백한 오류이다.
6 “책 표지에 인쇄된 가격”은 금전이 아니라 “적정한 기부”이다. 알베리오네 신부의 표현에 따르면 사도가 사용하는 말은 결코 상업적이어서는 안 된다. 이 책을 쓰는 동안 알베리오네 신부는 성바오로딸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느님 말씀을 내어 줄 수 있을까요?” 하고 수사학적 물음을 던지면서 곧 이렇게 대답했다. “구원에 필요한 중요한 진리와 함께 아무런 봉헌금도 받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 종이 위에, 작은 교리문답 시간에 이에 대해 펼쳐 보십시오.”(1932년 8월,「 이것을 묵상하라」 II, 4, pp.169-170) 1954년 1월, 그는 바오로딸들에게 이렇게 명확하게 말했다. “우리 사도직은 사업(예를 들어 인쇄기)과 같은 성격을 지니며 상업(서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교회 박사의 손에 들린 펜처럼 전적으로 설교를 위한 수단입니다. 우리는 겉으로 볼 때 사업가와 기업인과 같은 특징을 갖고 출판에 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성 바오로 안에서 사랑하는 이들에게」, p.1089 이하)
1957년 설교에서는 훨씬 명확하고 유머러스하게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전진하라 했다고 해서 가격을 올리라는 것을 뜻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가능한한 최소한의 것을 향해 앞으로 나아갑니다. 최소한의 가격이나 봉헌금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는 우리가 사도직을 계속하고, 우리 수도회가 살아나가고,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수행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Pr D, p.522. 밑줄은 우리가 표시한 것임) 이 주제에 대한 마지막 본문은 1960년에 발행된 것으로 바오로딸 서원의 역할에 대해 다룬다. “바오로딸 서원은 사업체가 아니라 믿는 이들에게 봉사하는 터전입니다. 판매가 아니라 희사를 받는 사도직입니다. 따라서 고객이 아니라 협력자들이 있습니다. 사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빛과 따뜻함을 전하는 센터입니다. 따라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사람들의 선익을 위한 것입니다. 착취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영혼들의 선익을 위한 것입니다. 신자들과 성직자들은 그 안에서 사목을 위한 협력과 빛과 방향을 모색해야 합니다. 가격은 봉헌을 의미합니다.”(「완전한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 IV, p.162)
7 “Ego sum Veritas.”